2012년 8월호

“티코, 람보르기니 운전자도 모두 만족시켜야 살아남죠”

고속도로 휴게소의 대변신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입력2012-07-23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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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속도로 휴게소가 바뀌고 있다. 졸음 예방과 기본적인 생리욕구 해결 장소로 인식되던 휴게소가 문화와 쇼핑,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1971년 추풍령휴게소가 처음 개장한 이후 현재 운영 중인 휴게소는 172곳. 고객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그만큼 휴게소 간 경쟁도 치열하다. 한국도로공사(이하 도로공사)의 휴게소 업그레이드 전략에 맞춘 휴게소의 대변신, 그 현장을 찾았다.
    “티코, 람보르기니 운전자도 모두 만족시켜야 살아남죠”

    안성휴게소(서울방향) 어린이 풀장.

    7월 6일 오전 경기 화성시 덕천리 화성휴게소(목포 방향)에는 대형 트레일러와 화물차량, 승용차가 쉴 새 없이 몰려들었다. 65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지만 주차할 곳은 언뜻 눈에 띄지 않았다. 저 멀리 주차요원의 수신호를 보고 겨우 빈자리를 찾았다. 거센 장맛비는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안개비로 바뀌었다.

    “저기, 옥상 교통통제소 보이시죠? 저곳에서 지상 주차요원에게 주차할 곳을 알려줘요. 이제 휴게소도 ‘단골손님’이 많아져 첫인상부터 신경 써야 매출이 늘어요.”

    화성휴게소 이정수 소장(대보유통 이사)은 휴게소 옥상을 가리켰다. 옥상에 설치된 컨테이너 절반 크기의 교통통제소에는 휴대용 무선 송수신기를 든 통제요원이 지상 주차요원에게 주차공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가 말한 ‘첫인상’은 주차 안내였다.

    기자는 이날 서해안고속도로 화성휴게소(목포 방향)와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서울 방향)를 찾았다. 생리욕구 해결 장소로 인식되던 휴게소가 문화, 쇼핑, 여가활동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현장, 그리고 휴게소 운영자들의 인식 변화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1971년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가 첫 개장한 이후 2000년에 100곳을 돌파했고, 2012년 7월 현재 172곳이 운영 중이다. 안의엽 도로공사 언론홍보팀장의 설명이다.



    “국민 경제수준도 높아졌고, 휴게소도 많이 늘었어요. 그만큼 휴게소 운영자들도 고객 눈높이에 맞추려고 분주합니다. 하루 120만 명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찾는데, 예전 휴게소처럼 운영하면 매출은 곧바로 곤두박질쳐요. 편의시설이나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다음엔 절대 찾지 않아요. 그만큼 휴게소 간 경쟁이 치열해진 거죠.”

    휴게소 옥상에서 주차장 통제

    “티코, 람보르기니 운전자도 모두 만족시켜야 살아남죠”

    지난해 12월 개관한 화성휴게소(목포방향) ‘휴 & 쇼핑’ 전시관.

    화성휴게소 역시 영업전략을 세우기 위해 고객 성향 분석에 주력하고 있었다. 화성휴게소는 ㈜대보유통이 낙찰받아 2009년 1월부터 운영 중이다. 이 소장은 ‘단골손님’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휴게소 영업의 필수 업무라고 했다. 그래야 적정 매출이 보장된다. 화성휴게소가 분기별로 휴게소 이용고객 500명을 대상으로 휴게소 만족도를 조사하는 것도 이 때문. 그런데 순간 기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티코’ 자동차부터 ‘람보르기니’ 스포츠카 운전자까지 다양한 계층의 고객이 찾는 곳, 포대기에 싼 유아부터 시쳇말로 ‘장례 손님’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찾는 곳이 고속도로 휴게소 아닌가. 마케팅 타깃을 설정하는 게 가능할까. 기자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이 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파악해야죠. 포니에서 람보르기니 운전자 모두의 취향을 파악해야 살아남아요. 화성휴게소는 서울, 인천, 경기 시흥 등지에서 충남 당진을 오가는 화물차 운전자가 많이 찾아요. 그만큼 휴게소 제품의 질과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영동선과 경부선 휴게소는 고객의 가격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덜해요. 고가(高價) 마케팅이 가능하죠. 이런 여러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영업전략을 세워요.”

    화성휴게소는 화물차 운전자와 목포 등지로 먼 길 떠나는 사람들이 주로 들르는 곳이어서 식사를 하는 고객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식사 메뉴가 ‘영업 승부처’다. 예전에는 레토르트 식품을 간단히 조리해 내놓았지만, 요즘 그랬다가는 손님 떨어지기 십상이라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그래서 운전자들이 든든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신선 순두부와 수제 돈가스를 대표 음식으로 내놓았다.

    화성휴게소는 매일 아침 파주장단콩을 직접 들여와 순두부를 만든다. 유명 ‘맛집’처럼 하루치 순두부를 다 팔면 메뉴에서 뺀다. 수제 돈가스 역시 냉장육을 받아 직접 칼집을 내고 튀김옷을 입혀 숙성시켜 튀긴다.

    “32년 경력의 조리실장과 한 방송사에서 ‘돈가스 달인’으로 선정된 조리사가 직접 조리합니다. 맛으로 고객을 유인하는 거죠.”

    이른 아침 운전하는 화물차 기사가 많이 찾는 만큼 아침 식사를 하는 고객에게 조리사가 직접 이동조리대를 끌고 가 달걀프라이를 만들어준다. 숭늉과 김치꽁다리를 무료로 제공하고 매월 2차례 음식 맛 평가대회를 여는 것도 고객 유치를 위한 몸부림이다.

    맞은편에 있는 화성휴게소(서울 방향)는 수도권 목적지와 가까운 만큼 운전자들은 주로 면류와 간식류를 찾는다고 한다. 면류 식당을 스낵코너 식당가보다 크게 만든 것도 이 때문. 같은 화성휴게소라고 해도 상하행선 휴게소에 따라 음식 맛이 다르다. 서울 방향 화성휴게소는 보통 남도음식을 맛본 고객들이 많이 찾아 조리사들이 음식 간을 조금 짜고 강하게 한다. 남도음식에 익숙해진 입맛에 맞춘 것인데, 소비자의 미각까지 고려하는 서비스 정신에 짧은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휴게소 외부 스낵바와 주차장 사이 테라스에 설치한 수세미 넝쿨대도 마찬가지였다. 길이 40m, 높이 5m의 넝쿨대에는 수세미 넝쿨이 무성했다. 오전에는 햇볕 때문에 외부 스낵바 직원들이 자연스레 인상을 찡그리며 손님을 맞는 것을 보고 3년 전에 햇빛 가리개용으로 설치했다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웃으면서 고객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도음식 맛본 손님 위해 간 조절

    화성휴게소는 지난해 12월 1일 165㎡ 규모의 ‘휴·쇼핑’ 전시관도 개관했다. 도로공사가 중소기업청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중소기업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인데, 화성휴게소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이날 찾은 매장에는 유아 휴대용 소변통을 사러 온 주부에서 레저 장비를 찾는 여행객까지 다양한 부류의 고객들 발길이 이어졌다. 100여 업체의 600여 제품을 판매하는 만큼 웬만한 제품은 다 있다. 백화점 잡화 코너를 옮겨 놓은 듯했다. 지난해 12월 하루 30만 원이던 매출은 입소문이 나면서 요즘은 하루 220만 원으로 부쩍 늘었다. 휴게소 매출도 지난해 상반기 88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96억 원으로 8억 원 증가했다.

    “티코, 람보르기니 운전자도 모두 만족시켜야 살아남죠”

    화성휴게소가 자랑하는 순두부 코너와 회성휴게소 전경, 야외 휴게시설(왼쪽부터).



    “티코, 람보르기니 운전자도 모두 만족시켜야 살아남죠”

    안성휴게소 내부 모습. 새 단장한 화장실과 패션 아울렛 ‘단지. 스팀 세차장, 수유실, 식당(시계방향)

    “제가 휴게소를 운영한다고 말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돈방석에 앉은 줄 알아요. 실제는 그게 아니거든요. 자칫 방심했다가는 고객이 다른 휴게소로 가버려요. 인근 행담도휴게소는 시속 100km로 달리면 15분 거리입니다. 행담도휴게소와 경쟁에서도 이기고, 다음 휴게소 입찰을 위해서라도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어휴, 피 말려요.”

    사실 이러한 휴게소의 변신을 촉발한 곳은 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라고 휴게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2003년 코오롱건설이 도로공사 폐도부지 18만8790㎡(약 5만7000평)에 세운 덕평자연휴게소는 2007년 개장과 동시에 고객들의 눈높이를 부쩍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 볼 수 있던 테마휴게소를 처음 선보인 것. 덕평자연휴게소에서는 아웃도어 매장과 골프용품 매장 등 17개 유명 브랜드가 입점해 있어 쇼핑을 즐길 수 있고, 정원과 산책로를 조성해 마치 자연휴양림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연간 1000만 명의 이용객 중 가족나들이객(24%), 연인·친구(21%)들이 절반을 차지해 ‘가족 휴게소’로 자리 잡았다. 2008년 100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00억 원 이상 급증해 전국 1위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동시에 휴게소 영업자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박철현 도로공사 휴게시설계획팀 차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덕평자연휴게소를 한번 찾은 고객들은 휴게소에 대한 눈높이가 매우 높아져요. 다른 휴게소에도 덕평휴게소 수준의 편의시설과 서비스 개선을 요구하죠. 무한경쟁 시대에 전반적으로 휴게소 문화를 향상시켰다고 봐요. 도로공사도 휴게소 업그레이드 결과를 평가에 반영해요.”

    여기서 잠시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에 대해 알아보자. 1995년 3월까지는 도로공사 자회사인 고속도로시설관리공단이 휴게소를 운영했다. 정부의 시설관리공단 민영화 방안에 따라 휴게소 민간 위탁운영이 시작됐고, 민간업체가 뛰어들었다. 도로공사는 매년 운영 서비스를 평가해 1~5등급을 매기는데, 이는 휴게소끼리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비스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건 그렇고, 이날 오후 찾은 안성휴게소(서울 방향) 역시 고객들의 요구에 정면대응하고 있었다. 안성휴게소는 ㈜영풍이 1995년 10월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재계약을 통해 2015년까지 운영권을 부여받았다. 안성휴게소는 휴게소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5723㎡)를 자랑한다. 음식 맛으로 승부를 겨루는 화성휴게소와 달리 안성휴게소의 화두는 ‘고급화’였다.

    ‘단골’ 유치한 호텔급 화장실

    지난 6월 개장한 패션아웃렛 ‘단지’는 806㎡ 부지에 8개 고급 브랜드를 갖췄다. 은은한 LED조명과 호텔 수준의 화장실은 백화점을 연상케 했다. 자작나무를 이용한 인테리어와 새로 단장한 수유실도 눈길을 끈다. 안성휴게소 성태훈 소장의 말이다.

    “안성휴게소는 비교적 구매력 높은 고객들이 찾는데, 60% 이상이 단골 고객입니다. 쇼핑몰은 그러한 고객들의 욕구에 맞춘 겁니다. 교통 체증을 피해 휴게소를 찾은 고객들이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충동구매’를 하면 곧 단골손님이 되죠. 한번 찾은 식당은 다음에도 편하게 찾게 되잖아요?”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운전자들은 다 안다. 평일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은 안성휴게소 부근에서부터 밀린다. 이를 피해 안성휴게소를 찾은 고객들이 고급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쇼핑몰에서 충동구매를 하면 다음에도 반드시 찾게 된다는 게 성 소장의 ‘단골 만들기’ 전략이다. 경험칙상, 특히 여성 이용객에게는 깨끗한 화장실이 휴게소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된다. 그의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고급화 전략은 식당에서도 잘 나타났다. 안성휴게소 일식당은 고객이 직접 식판을 옮기는 여느 휴게소 음식점과 달리 종업원이 물과 음식을 가져다주는 ‘풀서빙 음식점’ 1호점이다. 도넛, 아이스크림 등 유명 브랜드 업체 4곳을 입주시킨 것도 고급화 전략의 하나다. 야구연습장과 어린이 간이 풀장을 설치하고, 매주 음악회를 여는 것도 마찬가지다.

    1995년부터 안성휴게소에서 근무한 성 소장은 17년 전과 비교하면 영업소 운영은 천지개벽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많이 팔아야 한다’는 매출 중심의 운영이었다면, 현재는 고객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오래 머물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죠. 그러면 휴게소에 머무는 시간도 늘고, 그만큼 매출도 올라요.”

    인터뷰 | 장석효 한국도로공사 사장

    “휴게소, 호텔·백화점 수준 업그레이드해 최고 서비스 할 겁니다”


    “티코, 람보르기니 운전자도 모두 만족시켜야 살아남죠”
    7월 2일로 취임 1년을 맞은 장석효(65·사진)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지난해 8월 전국 휴게소에 있던 328개 불법 노점상을 완전 철거했고, 땅값 비싼 수도권 고속도로에 복합 테마휴게소를 중점 추진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복합 휴게소로 바뀌고 있네요.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국민의 욕구도 다양하게 표출되는 만큼 휴게소 서비스도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야 해요. 이제 휴게소도 여행지 못지않은 볼거리와 지역 특성을 살린 테마휴게소로 바뀌어야 해요. 고객들이 업무를 보거나 쇼핑, 여가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서비스 수준을 호텔이나 백화점 수준으로 향상시킬 겁니다. 도로공사도 이를 평가 점수에 반영해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유도할 거고요.”

    -수도권 고속도로는 교통량은 많지만 휴게소가 적은데요. 특히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소규모 간이 휴게소가 3곳뿐입니다.

    “수도권 지역은 토지 가격이 비싸 부지 확보도 어렵고 각종 규제도 많아 고심하고 있어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휴게소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발상의 전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시흥복합휴게소와 중부고속도로 마장복합휴게소, 서해안고속도로 매송화물차복합휴게소가 발상의 전환으로 탄생하는 대표적인 휴게소예요. 2014년 운영 예정인 시흥휴게소는 고속도로 위에 휴게소를 만드는 ‘본선 상공형’ 콘셉트로 지을 겁니다. 고속도로 상공에 휴게소가 만들어지는 거죠. 넓은 부지를 사들일 필요도 없어요. 환경 훼손도 줄죠. 매송복합휴게소 역시 화물차와 일반 차량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상하행선 휴게소를 구름다리로 연결하는 명물 휴게소로 만들고 있어요.”

    -휴게소 노점상 철거를 마무리했는데요. 쉽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맞아요. 지난 30년간 노점상은 휴게소 주차장을 불법 점유했어요. 트로트 음악을 크게 틀어놓거나 불량제품을 팔아 고객들이 불편을 겪었고요. 2001년에도 강제 철거를 하려 했지만 저항이 심했던 데다가 노점상에 대한 온정적 여론이 일어 철거를 중단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난해에는 노점상들의 전직을 도와주거나 휴게소 잡화코너 ‘하이숍’에 입주토록 해 완전히 해결했어요. 도로공사와 휴게소 운영업체가 하이숍 영업을 관리 감독하고 있죠. 상생의 길을 찾은 겁니다.”

    -알뜰주유소도 많이 늘었는데요.

    “알뜰주유소는 휘발유 기준으로 일반 주유소보다 L당 50원가량 싸요. 현재 휴게소에 있는 80개 주유소가 알뜰주유소로 전환했는데, 올해 추석 전에 100개로 확대할 거예요. 향후 모든 고속도로 주유소가 알뜰휴게소로 바뀔 거라고 봐요. 이런 노력이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거라고 믿어요. 지켜봐주세요.”


    “티코, 람보르기니 운전자도 모두 만족시켜야 살아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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