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올림픽 시즌이다. TV 프로그램, 신문기사, 각종 광고가 올림픽 열기로 달아오른다. 시계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 런던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는 오메가다. 기록경기에서 시간을 측정하고, 선수가 받은 점수를 매겨 합산하고, 경기결과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업무를 총괄 수행하는 업체를 공식 타임키퍼(Time Keeper)라고 한다.
1879년 론진이 선보인 크로노그래프
스위스 시계 브랜드 론진이 첫 올림픽 타임키핑을 맡았다. 론진의 기술력은 당대 최고였다. 1879년 5분의 1초까지 측정이 가능한 기록기를 최초로 선보였다. 아테네 대회에서 사용한 기록기는 1879년 등장한 것보다 기술적으로 진화한 제품이었다. 시·분·초침이 하나로 놓인 포켓 크로노미터(휴대용 정밀 태엽시계)가 육상 100m 공식 기록을 계측하는 데 사용됐다.
1회 대회 타임키퍼는 론진
론진은 오랫동안 타임키핑 분야에서 맹활약했다. 특히 동계올림픽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40년 헬싱키, 1952년 오슬로, 1960년 스쿼밸리, 1964년 인스부르크, 1968년 그레노블, 1980년 레이크 플래시드, 1984년 사라예보, 1988년 캘거리, 1992년 알베르빌에서 론진이 기록을 측정했다.
론진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타임키퍼가 론진이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때는 전문가 40명과 35t의 측정 장비, 30㎞의 케이블을 지원했다.
론진은 하계올림픽으로는 서울올림픽 외에 1972년 뮌헨, 1976년 몬트리올, 1980년 모스크바,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활약했다.
런던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는 오메가다.
정밀 기기 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스위스는 공식 타임키퍼 최다 배출국이다. 론진, 태그호이어, 오메가 등이 타임키퍼로 일했다.
육상이나 수영처럼 기록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종목에서 측정은 경기의 알파요 오메가다. 10분의 1초, 100분의 1초 차이로 금메달 주인공이 바뀌므로 타임키퍼가 되려면 100분의 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기술력을 가져야 한다.
오메가의 올림픽 홍보대사 타이슨 게이
일본, 독일 브랜드가 타임키퍼로 활동한 적도 있다. 세이코는 1964년 도쿄 올림픽 타임키퍼가 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1962년 ‘경기용 스플릿 세컨드 스톱워치’라는 긴 이름의 장비를 개발해 국제육상경기연맹 인증을 받았다. 세이코는 도쿄 올림픽 때 시계 1274개를 제공했다.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타임키퍼도 세이코가 맡았다. 세이코가 일본에서 열린 대회에서만 활약한 것은 아니다.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기록을 측정한 시계가 세이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세이코는 시계 제작비로만 15억 엔을 사용했으며 운용요원 250명을 자사 부담으로 스페인에 파견했다. 경향신문(1992년 6월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세이코는 “오메가가 시계 제작비와 운영 요원 경비로 바르셀로나 올림픽조직위원회에 약 46억 원을 요구했으나, 세이코는 모두 자사 부담으로 하겠다고 해서 공식 시계로 지정받았다”고 한다. 세이코는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도 타임키퍼로 활약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는 독일 브랜드 융한스가 타임키퍼로 활동했다. 1969년 10월 1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오메가 時計 올림픽 公式 기록용 은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어보자.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의 오메가 광고
오메가는 뮌헨 올림픽에 시계가 아닌 다른 기술로 참여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채택된 오메가의 터치패드 기술이 뮌헨 대회에서도 그대로 채택된 것. 선수들이 손으로 패드를 터치하면 자동으로 기록이 측정되는 기술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뮌헨 대회 수영 종목에선 1000분의 1초 단위로 금메달 주인이 결정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400m 혼영 결승전에서 거너 라슨(스위덴)과 팀 매키(미국)가 4분31초98의 기록으로 ‘동시에’ 골인했다. 1000분의 1초까지 비교해봤더니 매키가 4분31초983, 라슨은 4분31초981로 측정돼 있었다. 라슨이 우승자로 발표됐다. 세계수영연맹은 이후 100분의 1초까지만 기록을 측정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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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 올림픽을 바꾸다
스위스 브랜드 티소는 최근 올림픽 타임키퍼로 느닷없이 등장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활약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타임키퍼도 맡았다. 이 업체가 가진 기술력이 갑자기 좋아진 걸까? 론진, 티소, 오메가는 현재 모두 스와치그룹 소속이다. 1970년대 세 회사가 스와치 산하로 합병됐다. 2010년 작고한 니콜라스 하이에크 스와치그룹 회장은 올림픽 타임키핑 분야를 오메가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태그호이어를 밀어내고 타임키핑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오메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론진, 티소, 스와치를 올림픽에 함께 참여시킨 것.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육상경기 때 기록판 위에 ‘SWATCH’라는 문구가 적힌 것은 스와치가 오메가와 함께 스와치그룹의 일원 자격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스와치그룹의 이러한 행태가 사람들을 혼동시킨다는 지적이 나왔고, 오메가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부터 스와치그룹 차원이 아닌 오메가 단독으로 올림픽 타임키핑을 담당하고 있다. 스테판 우콰드 오메가 사장은 2008년 바젤월드에서 “브랜드 창립 150주년과 베이징 올림픽 중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연히 올림픽(Absolutely Olympic)”이라고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올림픽은 오메가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1932년 이후 올림픽 타임키핑 선정 경쟁에선 오메가가 사실상 독주하고 있다. 이 회사가 올림픽 타임키핑의 역사를 써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메가의 혁신적 발명품 중 하나가 ‘독립적 휴대용 방수 광전자 장치’다. 이 장치에 활용된 기술은 육상경기에서 여러 명의 선수가 거의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한 ‘레이슨드 오메가 타이머(Racend OMEGA Timer)의 개발로 이어졌다. ‘포토 피니시 카메라’로도 불리는 이 타이머가 개발된 것은 1949년이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때 오메가는 ‘오메가 타임 리코더(OMEGA Time Recorder·OTR)’라는 포토 피니시 카메라를 제공했다. 스포츠 분야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전자 계측을 도입한 것이다. 이때부터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의 기록을 100분의 1초 단위로 보여줄 수 있게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오메가는 2020년 올림픽까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오메가는 올림픽에서 시간 계측, 기록 데이터 관리, 경기장에서의 결과 발표 디스플레이를 책임진다. 전 세계 미디어에 경기 결과를 전달하는 역할도 오메가가 맡고 있다.
오메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전문가 450명과 1000명 넘는 자원봉사자를 동원했으며 420t 규모의 장비를 스위스에서 공수했다. 런던 올림픽에도 베이징 때와 비슷한 규모의 장비와 전문가를 파견했다.
오메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초스피드 카메라, 신개념 타이밍 기계, 부정 출발 감지 시스템 등을 소개하면서 타임키핑의 역사를 새로 썼다. 그렇다면 런던 올림픽에 새로 등장한 기술로는 어떤 게 있을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00만분의 1초를 측정하는 퀀텀 타이머다. 과거에 사용하던 장비와 비교해 시간을 100배 더 쪼개 측정할 수 있다. 이 타이머는 1000만분의 1초의 오차만 허락한다. 메인 유닛엔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시계 16개와 입력시스템 128개, 출력시스템 32개가 설치돼 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사용된 육상 출발 신호를 알리는 총(왼쪽),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이용되는 플래시건.
육상선수의 출발 반응 속도를 구름판의 백 블록(Back Block)에 닿는 힘을 측정해 계산하는 장치도 선보였다. 이 백 블록은 장비의 세팅을 바꾸지 않고 신체 조건이 다른 모든 선수의 반응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육상경기의 구름판(Starting Block) 역시 1948년 런던 올림픽 때 오메가가 최초로 선보인 기술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전설의 육상선수 제시 오웬스(육상 단거리 4관왕)는 삽을 이용해 출발선 뒤쪽에 직접 구멍을 팠다. 오메가가 스타팅 블록을 제공하면서부터 모든 선수가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하게 됐다.
오메가는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스위밍 쇼’라고 하는 라이트 시스템을 공개했다. 수영선수가 레이스를 마무리하면서 손으로 터치하는 패드의 블록에 라이트를 설치한 것인데, 1등으로 들어온 선수의 레인엔 가장 큰 원형 라이트가, 2등 선수 레인엔 중간 사이즈 원형 라이트가, 3등 선수 레인엔 작은 사이즈의 원형 라이트가 불빛을 내뿜는다. 선수와 관중이 기록판이 아닌 라이트를 보고 순위를 확인할 수 있다. 스위밍 쇼는 100m마다 1·2·3등을 불빛의 크기로 표시해주기도 한다.
1948 vs 2012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사용된 론진 기록 측정기.
1948년 대회는 현대 스포츠 타임키핑의 새 장을 연 해다. 육상경기에서 광전지(Photoelectric Cells)가 처음으로 사용됐다. 육상 트랙 한 쪽에 수신기와 발신기를 갖춘 광전지를 설치하고 반대쪽에는 거울을 세워놓은 뒤 광전지에서 발사된 빛이 거울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한 것이다. 1952년 대회 때는 거울을 없애고 수신기와 발신기를 분리해 트랙 양쪽에 설치했다. 세월이 흘러 광전지의 모양은 달라졌지만 기능과 성능은 런던 올림픽에서 사용하는 것과 처음 등장했던 것이 별반 차이가 없다.
1948년 대회 때는 수영 종목에서 세 명의 심판이 스톱워치를 들고 직접 기록을 쟀지만 2012년 런던에서는 진보한 터치패드와 스위밍 쇼가 금메달 주인공을 즉각적으로 알려준다. 1948년 런던에서는 서부영화에서나 볼 법한 총으로 육상선수에게 출발 신호를 알렸다. 이번 대회에선 플래시건과 음향 생성기가 출발 신호를 낸다. 심판이 플래시건의 방아쇠를 당기면 소리가 울리고 떨림이 퍼져나간다. 출판 신호음을 울린 뒤 방아쇠를 다시 당기면 부정 출발이 있었을 경우 또 다른 소리가 울린다.
1896년 근대 올림픽 부활과 함께 타임키핑의 역사가 시작됐다. 5분의 1초를 측정하던 기술은 116년 동안 혁신적으로 진화했으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가 이룩한 성과를 숫자로 기록해 후손에게 전한다는 타임키핑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