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의 진한 황토와 감미로운 바닷바람에 그만 마음을 내준다. 사방이 탁 트인 이 드넓은 평원에선 누구라도 그러하리라. 인간사 번뇌란 한 줌 흙 부스러기 같은 것. 3개 코스 54홀을 휘감아 도는 장대한 물길은 지상에서 영원으로 흐르는 듯 아득하다. 막 이발을 끝낸 페어웨이에서 상큼한 풀 냄새가 진동한다. 그린 주변 잔디가 어찌나 매끄러운지 에이프런을 한참 벗어난 지점에서도 퍼트를 하고픈 충동이 인다. 웅성거리는 갈대 숲 위로 제비들이 낮게 비행하고, 창공의 백구(白球)는 잠자리 떼의 군무 속으로 사라진다. 늘 그렇듯 바다는 말이 없고.
● 소나무마다 거미줄이 늘어져 있고 날파리와 지렁이가 많다.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적 골프장이라는 징표다. 동코스에는 350m(화이트 티 기준) 이상의 파4홀이 5개다. 동B코스 1번홀(파4, 387m). 티샷 볼을 200m 이상 보내놓지 않으면 우드로도 투 온이 힘들다. 짧은 파5홀인 3번홀(476m)에선 가볍게 버디를 낚다. 연못에 어른 팔뚝만한 가물치가 돌아다닌다. 완만한 오르막인 동A코스 2번홀(파4, 349m). 그린에 오르자 왼쪽으로 바다가, 앞쪽으로 멀리 무안공항 관제탑이 보인다. 언덕에서 아래로 티샷을 하는 3번홀(파3, 178m). 무안CC의 거의 모든 홀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가슴이 확 뚫린다.
● 서코스도 파4홀의 길이가 만만찮다. 서B코스 3번홀(파4, 380m). 티박스 좌우로 거대한 갈대밭이 웅크리고 있고 전방 250m 지점에 대형 워터해저드가 가로막고 있다. 드라이버를 칠 때 전방 200m 지점의 벙커를 주의해야 한다. 5번홀(파5, 488m)은 티박스에서 그린에 이르기까지 좌우에 해저드가 끝없이 펼쳐진다. 서A코스 2번홀(파4, 303m)에선 뒤에 있는 동반자보다 먼저 치다가 연못을 넘기는 90m짜리 세컨드 샷을 실수하다. 역시 인생은 질서를 지키며 순리대로 살아야 하나보다. 모처럼 갈대밭이 없는 4번홀(파4, 354m). 시야가 확 트였다고 좋아하다가 더블 보기. 이러니 골프를 참 알 수 없는 운동이라 하지.
● 세 코스 중에서 가장 오래된 남코스는 잘 가꿔진 정원 분위기다. 남A코스 3번홀(파4, 360m). 까치 두 마리가 페어웨이에 떨어진 컬러볼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간다. 타원형 우(右)도그레그 홀인 5번홀(파4, 329m). 전방 연못만 잘 넘기면 세컨드 샷을 편하게 할 수 있다. 늘 그렇듯 버디를 하고 나니 꽃이 보인다. 연갈색의 자귀나무 꽃이 어찌나 고운지. 마음도 넉넉해져 동반자에게 후하게 컨시드를 준다. 남B코스 3번홀(파4, 326m). 홀컵 50㎝에 붙여놓고 버디를 놓치자 내내 아쉽다. 그 여파로 이후의 홀들에서 죽 쑨 걸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 “골프장은 (페어웨이) 잔디와 그린 좋은 게 최고다. 다른 건 필요 없다. 클럽하우스도 없어도 된다. 비본질적인 것에 돈을 많이 들이고 차입경영으로 금융 부담이 크니 골프장 사용료가 비싼 것이다. 우리 골프장이 전국에서 가장 싸지만, 나는 더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재훈 무안CC 대표이사는 실속파 경영인이다. 그린피를 낮춰 고객을 많이 유치한다는 그의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다. 평일에도 200여 팀이 몰릴 정도니 지방 골프장으로는 이례적으로 호황을 누린다. 전국중고생대회나 전남도지사배, 용인대총장배 등 각종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흑자경영에서 비롯된 여유와 자신감 때문이다.
최 대표는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태도와 격의 없는 대화로 직원들에게 인기가 좋다. 보너스는 꼭 현금으로 주고, 중·고교는 물론 대학 학자금까지 지원한다. “18홀 가는 게 인생길이라 하지 않는가. 살다보면 고난(OB)도 있고, 행운도(버디)도 있고….” 무안CC의 모기업 격인 남화토건은 65년 역사의 탄탄한 건설사로, 최 대표의 부친 최상옥 씨가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