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월 17일 서울 서대문 독립문공원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문재인에 대한 정치권의 솔직한 첫인상은 ‘문재인에게 대권의지가 있는가’였다. 특히 진보진영은 이런 의문을 품었다. 6월 17일 문 고문은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관람한 뒤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내건 슬로건은 ‘강한 문재인, 강한 대한민국’이었다. 그에 관한 선입관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 고문의 ‘대권 위상’도 많이 달라졌다. 2011년 6월 7일 리얼미터 지지율 조사에서는 6.6%에 머물렀다. 7월 11일 18.3%로 치솟았다. 이 조사에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지율은 38.8%로 여전히 압도적인 1위였다. 하지만 문 고문 지지율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제친 전체 2위, 야권 주자 중 1위로 의미 있는 수치였다. 문 고문이 치고 나가자 민주통합당 다른 주자들의 견제가 시작됐다. 문 고문과 함께 민주통합당 대권 주자 ‘빅3’로 꼽히는 손학규 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연합전선을 구축해 경선 룰 문제를 놓고 문 고문을 압박하고 있다.
7명의 야권 주자 중 2명을 걸러내는 ‘컷 오프’폐지, 모바일 투표제 포기, 1차 경선 1·2위 후보 간의 결선투표 실시가 이들의 요구사항이다. 문 고문 측은 이 모두를 거부한다. 김두관 전 지사의 한 참모는 “박근혜가 완전국민참여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요구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불통’ 이미지를 고착화시킨 것과 다를 바 없는 독선”이라고 했다.
“세종대왕 추종하면서 한글 부정”
문 고문의 대권가도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있다. ‘노무현의 아바타’라는 이미지도 그중 하나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노무현 참여정부의 공과(功過)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음에도 ‘노무현 프레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표의 확장성을 노린 의도적 차별화다. 그는 7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 정치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었다”며 “나는 자유로운 입장이다. 충분히 새 시대의 맏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참여정부 핵심 정책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세종대왕을 추종하면서 한글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나온다. 노무현 정권 시절 핵심 실세였던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 고문에 대해 “친노라는 이름이 필요할 때는 그 이름을 팔고, 지금 정치적으로 그런 이미지가 불리하니까 꼼수를 부린다”고 질타했다. 이 전 수석은 또 “(문 고문이) 자기가 어렵다고 ‘노무현 정신’마저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어렵더라도 정정당당하게 나가야지,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의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에 대해서도 ‘문재인 책임론’이 제기된다. 노무현 정권 시절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의 개인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자살사건으로까지 번진 박연차 게이트를 인지했다. 이전에도 노건평 씨 비리와 관련한 첩보들이 속속 청와대에 보고됐다고 한다. 이 첩보들을 다룬 책임자가 문 고문이었다. 그는 참여정부 청와대의 첫 민정수석비서관이자,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노건평 씨 관련 첩보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묵살했다고 한다. 문 고문 스스로도 자신이 집필한 ‘운명’에서 노건평 씨가 ‘문제의 시작’이라고 털어놓았다. 다음은 책의 내용이다.
“노무현 투신에 문재인도 책임”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월 17일 서울 서대문 독립문공원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을 관할하는 민정수석 지위에서 감을 잡았다면 초기에 수습할 수도 있었지 않으냐는 지적도 많다. 이강철 전 수석의 말이다. “문 고문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책임이 있는 것은 맞다. 당시 정보기관, 경찰 등에서 노건평 씨와 관련한 첩보가 수없이 올라왔는데 모두 무시했다. 초기에 제대로 처리했으면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는)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코너에 몰렸을 때라도 들고일어났어야 했다. ‘노사모’라도 동원해 적극적으로 항의했어야 하는 데도 그냥 가만히 있더라.”
이 전 수석은 문 고문이 두 번째 민정수석을 맡았을 때 시민사회수석으로서 손발을 맞췄다. 당시 청와대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위치다. 그는 “문 고문이 참여정부 임기 5년 동안 사실상 민정라인을 장악했지만 인사권을 주무르는 일에만 열중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보호하지 못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성질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또 “문 고문은 숟가락만 걸친 데 불과하며 절대 대통령이 돼선 안 될 사람”이라며 “조경태 의원이 제기한 ‘문재인 5대 불가론’에 동감한다”고 덧붙였다. 조 의원이 제기한 5대 불가론은 자질, 경쟁력, 기회주의, 패권주의, 책임 부분이었다. ‘자질’과 관련해 조 의원은 “문 고문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정운영 경험은 청와대 근무밖에 없다. 대통령후보로서 최소한의 능력과 자질이 있느냐”고 반문한 뒤 “민정라인 책임자, 그리고 비서실장을 하면서 노 전 대통령 주변의 친인척 관리를 제대로 했느냐. 노 전 대통령 비극의 시작은 친인척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에 대해 문 고문의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또한 “문 고문은 노 전 대통령이 부산시장선거에 나와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하고 또 부탁했는데 거절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주변 여건이 좋아지자 국회의원으로 나왔다. 부산에서 제일 편하다는 사상 지역구에 나왔고 당선됐다”고 꼬집었다.
박영준이 문재인 보는 시각
문 고문의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 역할에 대해선 다른 각도의 이야기도 나온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은 기자에게 “참여정부 청와대는 문재인 실장의 지시로 5년 동안의 모든 국정기록을 파기하거나 봉하마을로 가져가버렸다. 이 때문에 국정현안을 파악하느라 상당한 애를 먹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려면 감정을 앞세워 국정의 연속성을 차단한 데 대한 입장부터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 고문은 지난 5월 안철수 원장에게 ‘공동정부 구성’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안 원장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당초 문 고문은 안 원장에게 공동정부를 제안하면서 “나와 안 원장이 단일화하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넘어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6월 12일엔 “제가 후보가 돼야 박근혜 후보를 이기고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문 고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김경수 공보특보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 특보는 “일정이 너무 빠듯하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고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고문의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를 걸자 윤건영 공보팀장이 대신 받았다. 윤 팀장은 “(문 고문이) 너무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한다. 짬을 낼 시간이 없다”고 했다. 공보팀에 질문 요지를 적은 e메일을 보내자 그동안 문 고문이 언론 인터뷰와 각종 토론회에서 했던 말들을 모은 답신을 보내왔다.
“실수할라” 몸조심
부산지역 한 중견 언론인은 “문 고문이 대선 출마 선언 후 개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문 고문이 아직 순수해 기자들의 유도 질문에 넘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참모들이 통화를 차단하는 것 같다. 야권의 다른 대선 주자들에 비해 문 고문의 콘텐츠가 약하다는 우려도 언론, 특히 보수 언론을 기피하는 이유가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이런 한계에도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열 수 있을까. 문 고문의 대권 플랜은 무엇일까. 문 고문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이라는 ‘예선’을 통과해야 대권 고지 등정에 본격 나설 수 있다. 야권의 다른 주자들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장외의 안철수 원장을 제외하면 야권의 다른 주자들을 압도한다. 7월 1일 정치부 기자 222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문 고문은 가장 높은 25.7%를 얻었다. 2위는 18.5%를 얻은 김두관 전 지사, 3위는 18.0%를 기록한 박근혜 전 위원장이었다.
민주당 당권을 꿰찬 이해찬 대표가 문 고문에게 우호적이란 점도 고무적이다. 당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계열을 중심으로 지분을 갖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도 든든한 우군이다. 문 고문 스스로도 ‘옛 DJ맨들’에게 꾸준히 러브콜을 보낸다고 한다. 당의 주축인 호남과 구민주계의 지지가 절실하다는 계산인 것이다.
민주당 현역 의원들의 개별 성향을 분석해봐도 문 고문에 대한 지지가 다른 주자들에 비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손학규 고문과 김두관 전 지사가 요구하는 결선 투표를 한사코 거부하는 것도 변수를 없애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고문은 또 최근 민주당 내에서 경쟁력이 가장 높다는 점을 부쩍 강조한다. 특히 박근혜 식 경제민주화를 공격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문 고문은 7월 12일 “박근혜 전 대표도 경제민주화를 말하지만 핵심이라고 할 재벌개혁이 빠져 있다. 이는 국민으로부터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요구되니 간판만 달고 나온, 진정성이 없는 ‘사이비 경제민주화’”라고 비판했다. 사회 양극화와 관련된 참여정부 책임론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일도 대권 플랜의 핵심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를 겪어보지 않고 참여정부를 시작했고, 저는 참여정부를 겪고 난 이후 새로운 정부를 시작한다. 참여정부의 성취와 한계, 정권 재창출 실패 경험이라는 토대 위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그게 저의 차별화된 비전”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한 참여정부 책임론에 이명박 정부 심판론으로 맞대응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문 고문은 “(참여정부 책임론 제기는) 오히려 우리가 바라는 바다. 참여정부와 새누리당 정권 중 누가 더 심판받아야 할 대상인가.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해 제가 공동책임질 부분이 많은지, 새누리당의 국정 실패에 대해 박근혜 전 위원장이 책임질 부분이 많은지 국민이 판단하기 쉬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한 측근은 “박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해 MB를 반쪽 권력으로 만든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나도 스토리 있는 삶 살아”
‘콘텐츠 부족’ 시비를 불식시키는 노력도 겸하고 있다. 현장 정책 간담회가 승부수다. 문 고문이 본부장을 맡고 있는 ‘좋은 일자리 본부’ 등을 통해 정책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또 부산·경남 출신으로서 지역성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문재인 캠프의 과제다. 문 고문 측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20년간 구축된 새누리당의 아성에 금이 가고 있다고 본다. 문 고문은 “나도 노 전 대통령처럼 스토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피력한다. 이 점이 대선 국면에서 강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부친이 6·25전쟁 흥남철수 때 남으로 내려온 피란민이어서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학생운동을 하다 특전사에 입대했다. 당시 여단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 대대장이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었다고 한다. 군대를 다녀온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인권변호사로도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인생 스토리 측면에선 친노 세력을 양분하는 김두관 전 지사에게 밀린다는 시각도 있다. 김 전 지사는 고향인 경남 남해군의 시골마을 이장을 시작으로 지역 주간신문사 사장과 군수를 거쳐 장관과 도지사를 지낸 뒤 대권까지 넘보게 되었으니 더 입지전적이라는 이야기다. 문재인과 문재인 대체제인 김두관의 스토리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추상적 대망론을 넘어 대권본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문 고문이 5대 불가론과 같은 장애를 극복하고 대권 고지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