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손이 타는 듯한 통증 ‘손목터널증후군’ 아시나요?

50대 女가 손 흔들며 섬을 뛰어다닌 까닭

  • 조재현│ 제일정형외과병원 원장, www.cheilos.com

    입력2012-07-20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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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이 타는 듯한 통증 ‘손목터널증후군’ 아시나요?

    손목의 구조.

    5년 전쯤의 일이다. 50대 중반의 체격 좋으신 아주머니가 전남 흑산도에서 병원을 찾아왔다. 아주머니는 수 년 전부터 시작된 양손이 타는 듯한 통증으로 1년 이상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며 서울까지 올라온 사연을 전했다. 밤이면 심해지는 통증으로 더운물과 찬물을 받아놓고 손을 번갈아 담그며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래도 통증이 가시지 않으면 한밤중에 손을 흔들며 흑산도 마을을 뛰어다녔다는 호소에는 할 말을 잃었다.

    사실 필자가 이 아주머니 환자를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초기에 진단만 빨리 받고 적절한 치료를 했으면 비교적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인데 너무 오랫동안 심하게 고생했다는 안타까움이 그 첫 번째고, 환자 한 명에게서 일개 질병의 전형적이며 극단적인 양상을 모두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그 다음이다. 어쨌든 환자분은 수술을 받고 극심한 통증은 쉽게 사라졌지만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돼버린 신경의 변성으로 감각 이상 증상이 해소되고 원상태로 돌아오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흑산도 아주머니를 ‘타는 듯하게’ 괴롭혔던 이 질병의 이름은 ‘손목터널증후군’이다. 질병의 이름에서 살짝 눈치 챌 수 있지만 쉽게 말하면 뇌에서 팔을 타고 손가락으로 가는 신경(정중신경)이 손목의 수근관이라는 부위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눌리면서 각종 통증과 마비증상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팔(上肢)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신경 관련 질환이기도 하지만 통증의 형태가 경추 디스크로 인한 팔 저림 증상과 비슷해 혼동되기도 한다.

    문제는 손목터널증후군을 일으키는 정확한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단지 정중신경이 지나가는 수근관이 단단한 인대(횡단성수근관 인대, 일명 횡수근)로 닫혀 있는 밀폐된 공간인 까닭에 어떠한 이유로든 이곳에 가해지는 압력이 높아지거나 공간이 좁아지면 이 증후군이 발병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보통 설거지나 청소와 같은 집안일을 하는 등 손목을 반복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이들에게 잘 생긴다. 요즘은 지속적으로 마우스를 사용하는 젊은층에서 쉽게 발생하는데, 수근관 부위가 눌린 상태에서 장시간 손목을 사용하는 데 따른 결과다.

    그 외에도 손목터널증후군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다. 감염이나 외상에 부종, 골절 후 부정 유합(뼈가 정확하게 붙지 않은 것), 종양(혹), 잘못된 수면 자세, 진동 기구의 과다사용 등이 그것이다. 비만증이나 당뇨병, 갑상선 기능에 이상이 있어도 발생빈도가 높아진다. 주로 30~60세의 사람에게서, 특히 남자보다는 가사노동이 많은 여자에게서, 그 중에서도 중년(50대) 이후의 과체중인 여성에게 잘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컴퓨터의 사용이 빈번해지면서 젊은 층 환자의 숫자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 프로 게임이 유행했던 3년 전에는 유명 프로게이머들이 손이 저리다며 병원을 찾았다 손목터널증후군 진단을 받고 생소해하기도 했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그 심각성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심평원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진료받은 인원은 2007년 9만5000명에서 2011년 14만3000명으로 5년간 50.3%가 증가했고, 연평균 증가율은 10.7%에 달했다. 총 진료비는 2007년 202억 원에서 2011년 322억 원으로 5년간 59.4% 증가했다. 50대 여성 진료인원은 남성의 6배에 달했다. 이렇듯 환자 수가 급증한 데는 의학기술의 발전과 대중화로 통계수치에 잡히지 않던 사람들이 수면으로 드러난 것이 한몫을 했지만 손목을 혹사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아진 게 주요인으로 보인다.

    손이 타는 듯한 통증 ‘손목터널증후군’ 아시나요?

    ‘손목터널증후군’은 간단한 방법으로 자가진단을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알려면 병원을 찾아 각종 검사를 받고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손목터널증후군이 의심된다면 간단하게 자가진단을 해볼 수도 있다. 손목의 중앙 부위를 가볍게 때려서 손끝의 저린 증상이 발생하는지를 확인해보고, 손목을 1분 정도 구부린 상태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거나, 통증이 심해진다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해야 한다. 이런 자가진단법 외에도 다섯 번째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들과 손바닥의 감각이 둔해지거나 저린 증상이 나타나면 일단 손목터널증후군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 질환의 대표적 증상은 감각 이상과 저림이지만 흑산도의 아주머니처럼 상태가 심각해지면 수면 중에 타는 듯한 통증이 생기거나 감각이 완전히 없어지는 증상이 올 수도 있다. 이 지경이 되면 통증 그 자체 때문에 잠에서 깨기도 하지만 손을 움직여줘야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기 일쑤다. 질환을 방치해 상태가 최악에 이르면 정중신경에 마비가 와 엄지와 검지 사이의 근육이 오그라들고 약화돼 단추를 끼우는 동작조차 힘들게 된다.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 신경 자체의 변성이 진행되고, 이 상태가 되면 흑산도 아주머니의 사례처럼 수술적 치료에도 증상이 완전히 호전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근전도 및 신경전도 검사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목 디스크나 그 외의 신경 관련 질병이 아닌지도 구분할 수 있다.

    치료는 상태에 따라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고 근육의 수축이 없는 경우에는 보존적 치료를 해야 하는데, 초기에 약물 또는 물리 치료를 해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보조기 등으로 손목을 고정하거나 수근관 내에 주사를 놓는 시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보존적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 증상이 너무 심하거나, 10개월 이상 지속된 경우, 손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거나 근육이 수축되는 경우에도 수술적 치료를 해야 한다.

    손이 타는 듯한 통증 ‘손목터널증후군’ 아시나요?
    수술은 부분마취한 상태에서 피부를 2cm 이내로 짼 후 횡수근 인대를 절개하고 정중신경이 눌리지 않도록 공간을 확보해주면 끝이 난다. 대부분 수술로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신경 변성이 심각할 때는 일부 증상이 남을 수 있고 수술 로 인한 신경 손상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하고 수술을 결정하는 게 좋다. 대부분의 병이 그렇듯, 손목터널증후군도 조기에 정확하게 진단되면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자신의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면 병을 키우지 않고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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