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7월 5일 출판기념회에서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동교동계와 박지원 원내대표 등 당내 호남 세력의 반대에도 우여곡절 끝에 시민통합당과의 합당을 이뤄내 야권통합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만큼 손 고문은 지난 5년을 올해 말 대선에 정조준하며 뛰어왔다.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삽질 하더라도 제대로”_ 진정성
6월 14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손 고문은 확실히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유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자신감과 오랜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를 갖췄다는 것이다. 문재인, 김두관 등 당내 라이벌과의 승부에 자신감을 보이는 ‘HQ(손 고문 이름의 영어 이니셜) 대선 비책’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손 고문을 한나라당 출신이라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민주당 내 인사들도 손 고문의 진정성만큼은 높게 평가한다. 그만큼 무슨 일이 생기면 다걸기(올인)하고 끝장을 볼 때까지 뛰어든다. ‘손학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일화도 많다.
손 고문이 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1월, 강원도에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설이 내렸다. 손 고문은 당직자들과 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갔다. 막상 도착하니 치울 엄두가 안 날 만큼 눈이 쌓여 있었다. 제설 차량을 부르자는 참모들의 말을 뒤로하고 손 고문은 장갑을 끼고 삽을 들어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난 뒤 참모들이 “다음 일정이 있다”며 만류했지만 “이왕 한 거 계속하자”며 손 고문은 연신 삽질을 했고 결국 5시간 넘게 눈을 치운 뒤 인부들과 샤워를 하는 것으로 강원도 일정을 마무리했다.
손 고문은 당 대표 시절 지방 투어를 자주 했다. 2008년 당 대표로 총선에서 패배한 뒤 강원도에서 2년간 칩거했던 그는 “서울이 갑갑하다”며 자주 지방행을 택했다. 2011년 2월 어느 날 손 고문은 강릉을 찾았다. 시장에서 시민과 인사를 나눈 그는 인근 목욕탕에 들어갔다. 손 고문은 홀로 앉아 있던 할아버지의 등을 거리낌 없이 밀더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 보는 시민과 1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었다. 결국 기다리다 못해 목욕탕 안에까지 들어온 참모들은 손 고문이 목욕을 마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손 고문은 자신의 이런 모습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을 답답해한다. 참모들의 홍보 부족이라기보다는 주로 자신을 탓하는 편이다. 손 고문은 얼마 전 필자와 인터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진정성도 있고 털털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무리 밤새 일하고 나와도 호텔에서 자다 나온 것 같다고 하고, (소탈한 인상의)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호텔에서 자고 나와도 밤새 일하고 나온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런 게 손학규의 왜곡된 이미지인데 그냥 두기는 참 답답하다.”
실제로 그는 함께 식사를 하다보면 별다른 반찬 없이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는 스타일이다. 생선회를 앞에 두고도 종업원에게 “밥 한 공기와 김치를 달라”며 5분 내에 식사를 마친다.
“한나라당 출신 언급 말라”_ 자신감
손 고문 주변에선 더 이상 “한나라당 탈당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없다”고 단언한다. 최측근인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아직도 손 고문에 대해 ‘한나라당 탈당’ 이력을 거론하거나 문제 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손 고문이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손 고문은 필자에게 “내가 민주당이 수권(受權)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나에게 탈당 이력을 거론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손 고문이 최근 들어 강력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도 다름 아닌‘탈당 트라우마’에서 스스로 벗어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영남후보론’과 ‘비욘드 노무현’을 주장하며 당내 유력 주자로 부상한 문재인 상임고문,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물론 장외 강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잇따라 새누리당 논평을 연상케 하는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는 문 고문에 대해 “우리는 힘이 없으니 누구(안 원장)와 연대해 공동정부를 하겠다고 하는 자신 없는 지도자를 국민이 왜 찍어주느냐” “한번 (역사의) 물레방아를 돌린 물은 물레방아를 다시 돌릴 수 없다. 시대가 바뀌었다. 국민의 생각, 의식도 바뀌었다”며 수시로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김 전 지사에 대해서는 “조금 더 숙성되어야 한다”며 아예 ‘어린아이’ 취급하기도 했다.
손 고문의 자신감은 그의 바뀐 말투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여야를 떠나 대표적인 ‘장문(長文)형’ 정치인이었다. 사용하는 문장이 길다보니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 때문에 ‘교수 출신 정치인’이란 평가가 늘 따라다녔다. 그런 손 고문이 최근에는 문장을 짧게 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최근 각종 인터뷰에서 ‘똥’ ‘주홍글씨’ ‘불쏘시개’ 등 이전에 사용하지 않던 직설적 표현도 마다하지 않는다. ‘똥’이란 표현은 민생 대통령을 표방한 그가 ‘잘 먹고 잘 싸야 건강하다’는 뜻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종북 논란과 관련해선 “(이 의원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며 “나에게까지 색깔론을 얘기하면 그 사람은 정신 이상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손 고문 스스로는 화법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를 앞두고 화법에 대해 따로 연구했느냐”고 묻자 정색하고 화부터 냈다. “내가 그런 거나 연구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한 사람처럼 보이느냐. 연구 이런 거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좀 더 절실해진 것 아닐까. (대통령직에 대한) 권력의지가 강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자신감이 더 생겼다는 것”이라고 스스로 진단하기도 했다.
손 고문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 주자 중 안철수 원장, 문재인 고문에 이어 3위를 기록 중이다. 올해 들어 이 순위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어찌 보면 위기다. 그러나 손 고문은 이를 ‘이미지 정치가 만든 허상(虛像)’이라고 주장한다. “나라고 지지율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면 곧 이미지로 흥한 주자와 콘텐츠를 갖춘 주자 간에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승패는 내용에서 갈린다”_ 콘텐츠
사실 손 고문은 여야를 떠나 대선 주자 중 가장 화려한 국정 경험과 이력을 자랑한다. 당 대표는 물론 4선 의원, 경기도지사에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던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결코 뒤지지 않는 ‘스펙’이다. 그만큼 나름의 준비를 해왔다.
실제로 최근 대선 레이스에서 가장 자주 회자되는 대선 주자의 슬로건은 손 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데 정치권 내 이견이 거의 없다. 꾸준한 경제성장과 보편적 복지, 가족 중심의 삶 등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됐을 때의 총체적 모습을 압축적으로 담아냈다는 게 손 고문의 주장이다.
얼마 전부터는 ‘저녁이 있는 삶’에 ‘맘(mom) 편한 세상’이란 슬로건을 얹었다. 엄마가 편해야 보육 문제가 해결되고 그에 따라 여성 경제인구가 자연스레 증가하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진다는 논리다. 손 고문은 이 밖에도 노동, 비정규직, 복지 분야의 정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노동 분야 주요 정책은 △정시퇴근제 도입 △법·제도 정비를 통한 연장·휴일 근로 제한 △노동시간상한제 도입 등이고, 비정규직 분야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입법화 △특수고용직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이 대표적이다. 복지 분야 정책으로는 △청춘연금(부모와 정부가 함께 저축해 아이가 성인이 될 때 목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공공보육시설 아동 비율 50% 달성 △남성 육아휴직 2개월 할당제 △지역별 표준임대료 산정을 통한 공정 전·월세 제도 정착 등을 제시하고 있다.
손 고문은 이를 통해 ‘준비된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하고 있다. 아직 지지율이 반등하고 있지 않지만 손 고문은 ‘걱정할 것 없다’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대선은 총선과는 다르다. 국민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총선에서는 자기가 친하거나 편한 후보를 찍을 수 있다. 하지만 대선은 나라의 운명을 5년간 맡기는 선거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그만큼 국민이 막상 찍으려면 ‘후보가 준비되어 있는지’ ‘자격이 실제로 있는지’ 등을 볼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지역 나눠 먹나”
지금 손 고문은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넘쳐 있다. 당내 경선이 가까워질수록 해볼 만하다는 게 캠프 분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손학규의 한계가 엄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한계는 민주당 안팎에서 점차 확산되는 영남후보론이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 후보만이 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는 정치 방정식이다. ‘정치 공학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렇다 할 반대 논리를 개발한 정치 세력은 없다. 더군다나 아직 출마를 결정하지 않은 안철수 원장뿐 아니라 문재인 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 모두 PK(부산 경남) 출신이다.
이에 대해 손 고문은 “영남후보론은 10년 전 통용됐던 논리”라며 “이번 대선에선 누가 중도층을 잡느냐에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반박했다. 안철수, 문재인, 김두관이 자신들의 안방인 PK지역에선 비PK인 자신(경기 시흥 출생)보다 표를 더 얻을 수 있지만 그 차이는 별것 아니고, 오히려 영남·호남 편 갈라먹기에 신물 난 표심(票心)이 온건 합리노선의 손학규를 선택할 것이란 주장이다. 유권자의 50.3%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고 중산층 중도층의 표심이 민주당 경선은 물론이고 대선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논리다.
그는 자신이 지난해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분당에서 이긴 것을 거론하며 이번 대선을 ‘분당 구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소수론이고, 손학규 특유의 ‘정치학적 논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또 다른 한계는 ‘스토리텔링’의 부재다. 손 고문은 누구보다 다양한 정치적 스토리가 있고, 콘텐츠가 있지만 아직도 이를 전달하고 유권자에게 설명(‘텔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손 고문 캠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손학규’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건 수년 동안 특정한 정치적 어젠다와 콘텐츠를 유권자에게 설명해야만 얻어질 수 있는 건데 손 고문은 이를 간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동시에 “왜 나를 알아주지 못하느냐”는 손 고문의 안타까움도 배어 있다. “이렇게 오래 준비했고 나를 던질 각오가 됐는데, 어떻게 문 고문이나 김 전 지사처럼 갑자기 ‘튀어나온’ 주자에 눈길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자신의 스토리를 차분히 설명하기보다는 국민이 이를 알아주길 더 바라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만나보면 손 고문은 자신의 대선 출마에 대해 확신에 가까운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종교적 신념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당내 주자들이 난립하면서 확실히 ‘손학규계’로 불릴만한 의원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회의론도 없지 않다. 물론 전직 당 대표로서 명백히 자신의 계보를 갖춘 중진이지만 의원들이 어느 때보다 지지율 추이와 여론 흐름을 지켜보며 이합집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각 후보에 대한 막연한 충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한 재선 의원은 “애매한 회색 지대에 있다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확실히 지지 후보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선 손 고문은 이번 대선이 마지막 기회이자 위기다. 어느 때보다 강한 자신감으로 무장했고 만만치 않은 콘텐츠도 갖췄다. 하지만 5년 전에는 등장하지도 않았던 문재인, 김두관, 그리고 안철수라는 장외 주자가 야권에서 그와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대선 도전을 손 고문이 어떻게 마무리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