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즉사(腐敗卽死)”
또 하나 더 있었다.
“청렴영생(淸廉永生)”
그는 일화를 이야기한다.
“내 재임기간 중 여러 청렴도 조사에서 경기도가 최하위에서 1등으로 올라섰다. 나는 비리척결을 강력하게 표명하고 실행했다. 비리혐의 공무원이 대법원 무죄확정 판결을 받아 살아오더라도 나는 대기발령을 낸다. 보직을 안 준다. 월급은 아깝지 않다. 월급의 수백 배인 권한과 예산을 못 주겠다는 거다. 혐의를 받은 것만으로도 아웃(out)이다. 비리에 따른 리스크가 커지니 비리가 줄더라.”
김 지사는 대선공약의 상위에 ‘세계 10위 청렴국가 건설’을 올려놓고 있다.
그렇다면 액션플랜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한 ‘고위공직자·친인척 비리조사처’ 신설, 청와대 수석실 폐지, 공직비리 신고 50배 포상, 국무총리와 장관의 인사권 보장이라고 한다.
“도지사인 나도 쳐라”
중요한 게 더 있다고 한다. ‘최고 정점의 의지’다. 이 대목에서 그는 다른 주자와 자신을 차별화하려 한다. 비리척결에 서만큼은 ‘원칙의 박근혜’보다 자신이 더 믿을 만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만약 내가 되면 이 부분만큼은 새로운 역사를 쓸 거다. 여야 모든 대선 주자가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말한다. 야당 주자들의 말을 믿을 수 있는가? 대통령 친인척 관리가 주 임무인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에 눈감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고문을 믿을 수 있는가?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잘할까? 과거 논란은 논외로 하자. 정수장학회 일일이 거명 안 하겠다. 그러나 (동생인 박지만 씨 부부와 저축은행의 관계 등) 여러 가지 집안 문제 때문에 세간에 이야기 된다. 친인척 관리가 더 필요하다는 거다. 박 전 위원장 측근 주변에 달라붙는 날파리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리하느냐는 위험 요소도 있다.
문제는 사람이 살아온 이력과 의지다. 나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내 삶과 공직 이력은 청렴 그 자체다.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도 감사실 직원들에게 여러 번 말했다. ‘도지사인 나도 비리가 있으면 치라’고. 비리척결은 국정의 최우선 순위로 두어도 해결될까 말까다. 검찰총장으론 안 된다. 강력한 독립기구를 둬야 한다. 대통령으로부터도 독립해 있는 중앙선관위 정도의 지위에 있어야 한다. 검찰이 기분 나쁘고 청와대가 으스스하겠지만 할 수 없다. 나는 해낼 것이다.”
새누리당 경선은 박근혜 1인 독주 구도다. 다른 주자들은 출마선언은 했으나 아직 국민의 눈에는 잘 안 보인다. 이런 와중에 김문수가 늦게나마 들어와 그나마 낫다는 이야기가 있다. 김문수가 실기(失期)해 효과가 반감했다는 말도 있다. 후발주자들은 아마 한참 앞서가 있는 주자를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책과 공약으로 반전을 노릴 것이다. 문제는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고 선거판의 이슈로 띄워내야 하는 점이다.
현재 박근혜가 내건 경제민주화로 정치권과 재계가 난리다. 그러나 ‘만사형통’ ‘영일대군’ 이상득 전 의원의 구속과 ‘대통령 문고리 권력’ 김희중 청와대 부속실장의 금품수수 혐의도 주목받고 있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극에 달한 것도 사실이다. 김문수의 ‘부패즉사’ ‘세계 10위 청렴국가’가 국민과 대의원의 마음에 통할까? 영화나 연속극의 흥행여부를 맞히는 것만큼이나 예측하기 힘든 일이다.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리면…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는 1년 전 건재했다. 사실 새누리당의 처지에선 이 두 사람이 무럭무럭 자랐어야 했다. 그리하여 지금쯤 박근혜, 오세훈, 김문수, 여기에 또 다른 후보의 경선 빅 매치가 성사되었어야 했다. 국민 앞에 내놓기에 좋고 흥행도 되는 그림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새누리당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세훈은 무상급식 같은 데에 자기의 정치 운명을 거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만 ‘포퓰리즘이 대세가 된 한국 정치판에서 누군가가 포퓰리즘에 맞서 산화했다’는 사실을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세훈 건은 김문수의 행보에도 영향을 줬다. 김 지사는 4월 21~24일 대선출마 선언을 하면서 지사직 사퇴에서 유지로 번복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사직을 유지하면서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러므로 지사직 사퇴는 정치적 행위에 가깝다. 즉,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진정성 있게 출마하는 것이니 나를 믿고 지지해달라’는 정치적 메시지 전달인 것이다.
김 지사는 사퇴 의사를 거두면서 그 이유로 경기지사 보궐선거 비용을 거론했다. 민주통합당 측에 따르면 경기지사 보궐선거에는 최소 300억 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 측에 따르면 김 지사의 사퇴 철회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작용했다고 한다. 다음은 새누리당 고위 인사의 말이다.
“오세훈 시장 사퇴로 발생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안철수의 등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렀다. 자칫했으면 4·11 총선에서 우리 당이 망할 뻔했다. 김문수 지사가 사퇴해 경기지사 보궐선거가 발생하면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질 것이다. 대선 투표와 경기지사 보궐선거 투표가 같은 날 치러진다. 야권 연대와 야권 후보단일화가 촉진될 게 뻔하다. 문재인 대선 후보, 안철수 경기지사 후보…이런 카드는 수도권 유권자를 현혹하기에 더없이 좋다. 우리 당으로선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치명적 악재가 된다. 김 지사가 경기지사를 사퇴해선 안 되는 가장 큰 이유였다.”
4월 당시 당의 이런 의사가 김 지사 측에 전달됐다고 한다. 새누리당 인사는 “처음부터 지사직 유지하겠다고 했으면 가장 좋았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즉각 회군(回軍)한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당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김 지사가 모양새 잠깐 구겨지는 것을 우려해 사퇴를 밀고 갔다면 최악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오세훈 시장이 정치 무대에서 퇴장한 이후 오세훈-김문수 라이벌 구도의 한 축이던 김 지사에게도 이상하리만큼 악재가 겹쳤다. 일반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라이벌 관계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낫다. 라이벌이란 있을 때는 눈엣가시 같지만 지나고 보면 자신의 성장을 도와준 촉매제와 같은 존재인 법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일전이 최고의 흥행카드이듯 라이벌 관계는 주변과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럼으로써 양측의 지명도를 함께 높여주는 것이다.
김 지사의 악재로는 춘향이 관련 성적 발언, 119 전화통화, 이면지 홍보문건이 대표적이다. 119통화와 홍보문건에 대해선 김 지사 측도 항변을 한다. 춘향이 발언에 대해선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한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춘향이 발언에 대해 “김 지사의 이미지에 일정정도 부정적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 사안은 어휘 실수로 보인다. 작심하고 의사를 피력한 노인폄하발언과는 다르다. 김 지사는 언어사용에 더 신중하고 설득력 있는 비전과 그럴듯한 업적을 계속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지사직을 사임하고 민주통합당 경선에 뛰어든 것과 김문수 지사의 행보가 종종 비교된다. 그런데 민주통합당 내에선 김두관의 지사직 사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남도민이 민주통합당 소속 지사의 중도 사퇴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걱정이다. 새누리당은 대선에서 불리할 게 없다고 판단한다.
‘여의도 언론’
그러나 이는 두고 볼 일이다. 새누리당이 상품성 있는 지사 감을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안상수 전 대표, 홍준표 전 대표 등이 경남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만약 총선 공천이나 본선에서 떨어진 인물이 경남지사 후보가 된다면 PK여론은 ‘새누리당이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 1200만의 경기도 내 선출직 공직자(국회의원, 시장(군수), 지사) 중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김문수일 것이다.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이듯 김문수도 경기도 내에선 ‘선거의 왕’쯤 된다. 그는 1996년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정계에 입문한 이래 네 차례의 국회의원선거와 두 차례의 지사선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김문수에게 찾아온 악재들이 이런 진면모를 가리고 있다고 그의 측근들은 안타까워한다. ‘여의도 언론’에 대한 원망도 내비친다. 여의도 언론이란 ‘여의도의 국회에 대해선 시시콜콜한 것까지 보도해주면서 수원의 김문수에 대해선 119 전화통화 같은 것만 보도하는 우리 언론의 경향성’을 일컫는 경기도 측의 자체 조어(造語)다.
경남도지사 출신의 김태호 의원도 새누리당 경선에 출마했다. 그 사이 김문수 진영에선 경선 참여 여부를 놓고 찬반양론이 오갔다. 일부 참모는 “완전국민경선제 요구가 당 지도부와 박근혜 측에 의해 일언지하에 거부됐으므로 경선에 나서지 않아야 한다”고 공개리에 주장했다.
당 일각에선 ‘김문수가 김태호와 2위 싸움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부 언론에도 보도됐다. 김 지사 측 관계자들은 ‘메이저리그 대표 선수를 어떻게…’라며 경악한다. “우량주는 주가가 잠시 주춤했다가도 치고 올라온다”고 이들은 말한다. 경선 투표일까지의 한 달여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본다. 신뢰할 수 있는 정책·공약으로 거함 박근혜와 맞붙어 보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김 지사에게 “경기도민 누구나가 인정하는 잘한 일 한 가지만 대어보라”고 했다. 그는 “대중교통 환승할인제”라고 했다. “서울로의 출퇴근 문제가 시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데 대중교통 카드 한 장으로 싸고 편리하게 서울을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매일 수백 만 명의 시민이 체감 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부드러운 경제민주화’론
“도지사 재임 6년 동안 전국 일자리의 56%를 경기도가 만들었다. 내 경험으론 사는 곳과 일하는 곳, 어린이집이 가까이 있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집권하면 일자리 창출 중심으로 우리나라 도시계획을 다시 짜겠다. 이 방법으로 하면 분명히 성공한다. 나는 도지사로서 민생현장의 문제를 해결한 실전경험을 갖고 있다. 1만여 공무원을 지휘하면서 국방, 외교, 산업, 복지 등 8000여 가지 법정사무를 다뤄왔다. 박근혜 전 위원장은 당 대표와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면서 도상훈련을 한 거다. 국정수행능력에선 경험 많은 내가 더 낫다고 본다. 박 전 위원장 주변에 전문가가 많다는데 전문가는 우리가 더 많다. 야권은 어떤가? 김두관 전 지사는 도지사 하다 관뒀다. 안철수 원장은 안개 속에 있는 분이다. 전혀 검증이 안 된다.”
김 지사는 박근혜 위원장의 소통문제를 새누리당 경선에서 반드시 짚고 가겠다고 벼른다. 주요 경선 전략 중 하나로 보인다. 그는 “정두언 체포동의안 처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복도의 한마디’가 당을 좌지우지한다.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매우 위험하다. 의회민주주의가 위험한 게 아니라 박근혜 위원장이 위험하다. 제왕에게 대선 투표일까지의 5개월은 무척 긴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박 전 위원장처럼 적극적 남북교류를 표방하고 있다. 북한 황해도를 개성공단처럼 만들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박근혜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박근혜 대북관은 국가방어에 대한 강조가 약하다. 나는 국방을 강조한다. 교류와 국방 투 트랙으로 간다. 휴전선 접경지 단체장으로서 수도권 방어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님을 잘 안다”고 했다.
김 지사는 또한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를 경선의 정책 쟁점으로 몰고 가려고 한다. “박근혜의 경제민주화가 과격하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을 대립시키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대립시키고 있다. 적대적이지 아니한 모순을 적대적인 모순으로 가져가고 있다. 나는 함께 세계일류로 나아가는 ‘부드러운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겠다”고 했다. ‘원조 경제민주화’와 ‘부드러운 경제민주화’의 격돌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김 지사는 경선 참여 결정까지 긴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박근혜를 위한 경선의 ‘페이스메이커’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