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댐·저수지는 무형자산? 편법회계 논란
- 정부 이자지급 법적 효력 없고, 지원기간 특정 안해
- 8조 빚 상환에 20년 이상 걸려… 이자만 또 8조 ‘속빈 강정’
- 또 4조 빌려서 親水구역 개발? 실패하면 재정 파탄
정부는 2009년 초 4대강사업을 검토하면서 본류 사업 16조 원 중 절반인 8조 원 구간에 대해 수공에 투자 참여를 요구했다. 몇 차례에 걸친 정부의 요청에 수공은 ‘투자비 회수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참여를 망설였다. 그러자 정부는 그해 9월에 있은 국가정책조정회의를 통해 ‘재원 조달에 따른 금융비용 지원’과 ‘수변 지역 개발 투자비 회수’ 등을 약속했고, 수공은 사업 참여를 확정했다.
이후 수공은 4대강사업 구간에서 총 16개 보와 댐, 저수지 등 33개 사업에 대한 공사를 시작해 2012년 7월 현재 각 시설의 준공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6월 말까지 투입된 사업비는 총 8조 원 중 7조467억 원. 수공은 2014년 말 완공 예정인 영주댐, 보현산댐 등을 제외하고 본류 공사를 올 연말까지 끝낸다는 계획이다.
기부시설 회계처리 난망
수공은 4대강사업 구간의 각 시설물이 하나씩 완공되면서 고민에 빠졌다. 자사가 공사채를 발행해 만든 모든 시설을 준공과 동시에 국가에 기부채납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천법은 4대강과 같은 국가하천에 지어진 모든 시설물은 국가 귀속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수공이 그 대신 받은 것은 시설물에 대한 관리운영권인데, 이 경우 수익은 없다. 보나 댐, 저수지 등 각 시설물에서 돈이 나올 구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보를 막고 댐과 저수지를 만들어 추가로 마련된 16억t의 수자원은 더 이상 공급할 곳이 없다.
쉽게 말하면 8조 원의 빚을 내 빌딩을 지은 후 남에게 갖다 바치고 청소 등 건물관리만 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셈. 당장 수공은 회계처리에 비상이 걸렸다. 투자는 했는데 그 결과물로 남은 수익자산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수공은 이를 ‘물리적 실체가 없는 무형자산’으로 처리키로 했다. 장부상에는 ‘사용수익 기부자산’으로 정리할 예정이다. 세법상 무형자산은 특허권, 소프트웨어 등 눈에 보이진 않지만 미래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법적 권리나 신용가치 등을 가리키고, 사용수익 기부자산은 자산을 기부했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수익을 취할 수 있을 때만 기장(記帳)이 가능한 개념이다.
수공 측은 “기부채납 한 시설물 자체가 수익을 일으키진 못하지만 2009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와 2010년 12월 제정된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친수구역사업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대치하면 수익성이 있는 무형자산이나 사용수익 기부자산으로 회계처리가 가능하다. 이는 각 회계법인의 자문결과”라고 해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A회계법인 관계자는 “수공이 기부채납한 보와 댐 등 각 시설물 자체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관련 사업권으로 대체하는 방법은 편법이고 회계감사 지적 사항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09년 12월 2일 대구시 달성군 낙동강 둔치에서 열린 낙동강살리기사업 희망선포식에서 4대강살리기사업에 대해 설명 중인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이자 지원기간 특정 안 해
수공이 4대강사업 사업비로 쓴 빚 8조 원에 대한 채권상환이 내년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정부가 수공 대신 물어주기로 한 이자 4000억 원이 내년에도 제대로 지원될지도 의문이다. 기획재정부는 2009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 결과에 따라 2010년 700억 원, 지난해 2550억 원의 금융비용(이자)을 지원했으며 올해도 3558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4대강사업 본류 공사가 올해 말 끝나면 정부의 이자지원 규모는 총 8조 원의 5%에 해당하는 4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문제는 2009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 석상에서 논의된 이자 지원 약속이 법적 효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자 지원을 언제까지 하겠다는 공식 문서도 없을 뿐 아니라 회의석상에서 논의된 내용 중에도 “이자를 언제까지 주겠다”는 지원기간에 대한 약속도 없었다. 내년에 새 정권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이자 지원을 못 하겠다”고 하면 할 말이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신동아’가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입수한 2011 회계연도 결산분석보고서에도 ‘정부가 채권발행액에 대한 이자비용을 매년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원할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다. 이자 지원기간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수공측은 “이자 지원기간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은 맞다. 공식적으로 오간 문서는 없지만 당시 회의석상에서 오고 간 말은 모두 문서화되어 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어도 정부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만약 내년부터 4000억 원의 이자를 받지 못할 경우 수공은 당기순이익이 당기순손실로 바뀌고 이자를 갚기 위해 또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실제 그런 상황이 발생하고, 투자원금 회수기간이 길어진다면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8조 원에 대한 원금 회수기간이 20년(경인아라뱃길은 30년) 걸린다면 수공의 금융비용 부담액은 투자 원금인 8조 원을 넘어서게 된다. 실제 수공은 현재 진행 중인 친수구역 개발이 제대로 진행된다 해도 원금 8조 원을 완전 회수하기까지는 2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공은 “정부가 배신할 일은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그리 녹록지 않다.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최고 지지율을 보이는 대선 주자들이 4대강사업 자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데다, 설사 정부가 예산안을 올려도 국회에서 이를 그대로 승인해줄지도 의문이다. 당장 올해 말에 있을 예산안 심사 때부터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친수구역 개발 4조 또 빌릴 판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실 관계자는 “처음부터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업인데 국민의 혈세로 왜 4000억 원의 이자비용을 대줘야 하느냐”며 “절대 줄 수 없고 8조 원 투자비 회수 대책이 당장 나오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결산보고서에도 정부의 이자비용 지급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볼 수 있다.
‘정부가 금융비용을 지원하지 않을 경우 수공은 당장 당기순이익이 당기순손실로 전환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로부터의 안정적인 이자비용 지원은 수공이 투자비 회수계획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수공측은 “수익사업을 해 채우지 못하는 4대강사업 채무 원금 부족 부분은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키로 국가정책조정회에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마저도 법적 효력을 가지지 못한 회의 결과일 뿐인데다 ‘사업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수공의 재무상태 등을 감안한다’는 전제가 붙어있다.
7월 11일 수공이 친수구역 개발지역으로 처음 선정한 부산 강서구 ‘에코델타시티’ 개발사업도 단기적으로 재정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수공은 이 사업에 2018년까지 4조3500억 원(총 사업비 5조4386억 원)을 투입해 6000억 원의 수익을 거둔다는 계산이다. 당장 자금이 없는 수공으로선 투자비 마련을 위해 매년 수천억 원의 채권을 또 발행해야 한다.
이 지역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가 개발을 포기한 곳으로 최근의 부동산경기 침체 상황을 고려하면 사업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성공한다 해도 4대강사업 투입비용 8조 원을 모두 건지려면 이런 거대 도시를 13개나 더 만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공이 원금 회수에 20년 이상의 기간을 잡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첫 사업이 실패한다면 수공은 걷잡을 수 없는 재정위기에 빠지게 된다.
수공은 2011년 금융부채(11조2958억 원)가 4대강사업이 시작된 2009년(2조3538억 원)과 대비해 4.8배로 늘어났다. 공기업 중 최대규모다. 그런데도 수공은 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2년 연속 A등급을 받았다. 7월 27일 3년 임기가 만료되는 김건호 수공 사장은 1년간 연임됐다. 4대강사업을 잘 추진해온 공로였다.
그러나 수공 관계자들도 4대강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내놓고 말도 할 수 없어 답답해하고, 한편으론 억울해하는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사업에 정부 요청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로 참여했지만 이제는 그 부담을 모두 자신들이 떠안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