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대학원생 연구 빼앗은 악덕 교수” vs “제자 이용해 나를 음해”

네이처 표지 논문 저자 논란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7-23 1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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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세 물리학자 남구현 박사, 데뷔 논문 네이처 등재
    • 9개월간 함께 연구한 대학원생 전모 씨 “크랙 멈춤을 구현한 건 바로 나”
    • 남 박사 “전 씨는 내 지시대로만 움직였을 뿐”
    • 이화여대 연구진실위 “전 씨의 기여 인정하라” 잠정 결론
    • 연구 기여 없는데도 ‘공동 교신저자’ 부탁한 박 교수와 갈등
    “대학원생 연구 빼앗은 악덕 교수” vs “제자 이용해 나를 음해”
    5월 10일 국내 연구진이 쓴 논문이 세계적인 과학저널 영국 ‘네이처(Nature)’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특히 이 논문의 제1저자 및 공동 교신저자인 남구현(32) 당시 이화여대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특임교수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젊은 물리학자인 남 박사가 교수 임용 후 처음 쓴 데뷔 논문이 네이처에 실렸다는 점도 주목받았지만, 그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천 남동공단 레미콘기사로 일하며 친구의 물리학 책을 빌려 독학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인간 승리 스토리’까지 화제가 됐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5월 8일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대학원생은 노예인가? 교수가 연구 결과 독식”이라는 글이 올라온 이후 상황은 역전됐다. 이 글을 쓴 사람은 2010년 3월부터 12월까지 9개월간 이 연구에 참여한 이화여대 박사과정(석·박사 통합 11학기) 전모 씨(28). 전 씨는 이 글을 통해 “논문에 실린 실험의 모든 과정은 내가 진행했고 논문에 실린 최대 성과는 내가 직접 발견하고 구현했으므로 나도 공동저자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5월 11일 이화여대는 연구진실성위원회 예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상 파악에 나섰고 5월 18일 관련 내용에 대해 “전 씨가 네이처 논문에 실린 실험에 직접 참여해 주요 결과를 얻어내는 데 기여했는데 교신저자인 남 박사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논문을 발표한 것은 저작권에 대한 부적절한 행위”라며 본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고 이슈화되면서 남 박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남 박사는 ‘가난 딛고 네이처 표지 논문 낸 불굴의 청년 과학자’에서 한순간에 ‘대학원생의 연구 결과를 빼앗은 악덕 교수’로 전락했다. 과연 이 논문을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전 씨 “실험 다 내가 했다”



    “대학원생 연구 빼앗은 악덕 교수” vs “제자 이용해 나를 음해”

    5월 10일 발간된 네이처 485호 표지에 실린 논문 ‘균열 제어를 통한 형태화’를 둘러싼 저자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가 된 논문은 5월 10일 발간된 네이처 485호 표지에 실린 ‘균열 제어를 통한 형태화(Patterning By Controlling Cracking)’다. 이 논문은 쐐기나 계단 모양의 흠집, 유리와 같은 깨지기 쉬운 물질을 이용해 실리콘 웨이퍼(반도체의 재료인 둥근 원판)에 직선과 곡선을 포함한 다양한 패턴의 균열(크랙)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극소량의 샘플로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초소형 바이오칩을 만들 수 있고, 회로 선폭이 10나노 단위인 초정밀 반도체 회로도 만들 수 있다. 네이처지는 이 논문에 대해 “균열 연구와 나노 공학을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고 평가했다.

    이 논문의 제1저자 및 공동 교신저자는 남 박사이고, 공동 교신저자에 고승환(38)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도 등재됐으며 박일흥(55)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는 제2저자에 이름을 올렸다. 인터넷 게시판에 문제를 제기한 전 씨는 ‘감사의 글’에 이름이 나온다.

    전 씨는 5월 8일과 16일 두 차례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이 글을 통해 전 씨는 △연구주제를 생각하고 제안한 사람은 남 박사지만, 실험을 진행하고 실험 과정 및 결과를 연구노트에 기록해 남 박사에게 보고한 것은 본인이며 △논문의 최대 성과인 크랙을 계단형 패턴에서 멈추게 한 것은 본인이 구현하고 발견한 것이며 △네이처 표지 사진을 비롯해 논문에 실린 14장의 사진 중 10장이 본인이 찍은 사진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즉, 실험을 구상한 것은 남 박사지만 실제 실험을 하고 논문에 수록된 실험 결과를 발견한 것은 전 씨라는 것.

    전 씨는 이 글에서 “홀로 밤을 새워 실험을 하고 중간중간 실험에 좋은 아이디어를 적용하면서 좋은 결과를 낸 건 나인데, 네이처가 나올 때가 되니까 (남 박사는) 내 공정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모든 결과물을 빼앗은 후 단돈 20만 원의 수고비만 줬다. 오늘(5월 8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논문과 관련된 기자회견이 열리는데 정작 실험 당사자인 나는 들어갈 수 없었다”며 “남 박사는 나를 노예처럼 부리다 내 연구 성과를 빼앗았다”고 비난했다.

    남 박사 “저자 등재 안 하기로 동의”

    “대학원생 연구 빼앗은 악덕 교수” vs “제자 이용해 나를 음해”

    남구현 전 이화여대 특임교수.

    남 박사가 전 씨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1월이다. 당시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기 직전이던 남 박사는 박 교수가 단장을 맡은 ‘이화여대 초미세전기기계시스템(MEMS) 우주망원경 창의연구단’에 계약직 특임교수로 합류했다. 남 박사는 “한국에 오기 전부터 크랙과 관련된 논문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당시 소속 연구실에서는 그곳 연구비를 이용해 관련 실험을 할 수 없었다. 실험을 통한 데이터, 사진만 얻으면 되는 상황에서 이화여대에 왔다”고 말했다. 실제 이화여대 연구단 합류 당시 남 박사는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쓸 주제가 1개씩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화여대에 부임한 남 박사는 미국에서 함께 연구하던 KAIST 고 교수팀과 함께 본격적으로 크랙 연구에 나섰다. 박 교수는 학생들의 경험을 위해 관련 실험에 전 씨 등 자신의 학생 2명을 참여시킬 것을 남 박사에게 권했다. 남 박사는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전 씨를 저자로 등재하지 않을 것임을 알렸고, 전 씨 역시 동의했다”고 주장한다. 실제 남 박사가 2010년 2월 4일 전 씨에게 보낸 e메일에는 “(크랙 실험에 참여하더라도) 저자로 합류하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전 씨가 이 실험에 참여했다는 데에는 남 박사도 동의하지만, 기여 정도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르다. 전 씨는 “실험을 본인이 주도했고 실험의 결정적인 성과는 본인이 발견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남 박사는 “전 씨는 내가 시키는 실험을 수행했을 뿐이고 전 씨 주도적으로 참여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남 박사가 2010년 5월 13일 전 씨에게 보낸 e메일에는 실험에 이용할 웨이퍼의 수, 각도, 주의사항 등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돼 있다. 남 박사는 “모든 실험 과정에서 전 씨에게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해주면 전 씨는 실험 준비를 한 후 내 허락을 받고 실험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또한 전 씨가 글에서 본인이 발견했다고 주장한 ‘계단형 크랙 멈춤’도 논쟁의 대상이다. 이 논문의 핵심 연구 성과인 계단형 크랙 멈춤 현상에 대해 전 씨는 “계단형 패턴에서 크랙을 멈추게 한 것은 본인이 구현하고 발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남 박사는 “사진을 찍은 건 전 씨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한 것은 나”라고 반박했다. 남 박사에 따르면 5월 31일 전 씨가 무작위로 실험 결과를 찍어온 사진을 보다 계단형 크랙에서 멈춤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 후 6월 2일 그 부분에 대해서만 재촬영을 시켰다는 것. 남 박사는 “만약 전 씨가 크랙 멈춤 현상을 발견했다면 왜 5월 31일 처음 촬영할 때 알아채지 못하고 6월 2일 내 재촬영 지시에 따라 움직였겠느냐”고 반문했다. 함께 실험에 참여했던 다른 학생 역시 “전 씨가 호일을 이용해 실험한 마스크에서 크랙이 멈추는 현상이 나온 건 사실이지만 전 씨가 의도적으로 호일을 배치한 것도 아니고 그 마스크에서 이론적으로 성과를 도출한 것은 결국 남 박사”라고 진술했다.

    전 씨가 “중간중간 아이디어를 내서 실험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남 박사는 반박했다. 이 실험은 모든 설정을 마친 웨이퍼를 고가의 반도체 공정 장비인 ‘LPCVD’에 6시간 동안 넣으면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 실험 중간에 수정할 수 없고, LPCVD는 한 번 이용하는데 100만 원 이상 소요돼 대학원생은커녕 자신도 쉽사리 이용할 수 없었다는 것. 남 박사는 “교수인 나조차 2만 원짜리 웨이퍼 한 장 쓰려면 결재를 받아야 했는데 대학원생인 전 씨가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실험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해명했다.

    전 씨가 실험을 시행하는 데만 참여했다는 것은 전 씨가 남 박사에게 보낸 e메일에서도 드러난다. 전 씨가 2010년 12월부터 2011년 1월 초 사이에 남 박사에게 보낸 e메일에는 “제가 지금까지 실험하고 진행한 모든 것은 교수님께서 시키셔서” “교수님께서 주신 좋은 주제에 조언해 주신 대로 실험 진행한 부분밖에 없지만” “그동안 비록 교수님께서 시키신 일을 그대로 하는 데 급급했지만 교수님께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항간에는 “비록 전 씨가 지시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 해도 실험을 주도했다면 저자로 등재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저자인 남 박사의 생각은 다르다. 허황된 아이디어의 경우 실험을 통해 현실화한 사람의 공로가 있을 수 있지만, 이번 연구와 같이 남 박사가 설계한 실험에 구체적인 지시를 받고 실험을 수행한 것만으로는 공로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 저자 등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제1저자인 남 박사의 권한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남 박사도 모르는 전 씨의 연구노트

    전 씨가 연구 참여 증거로 제시한 연구노트 역시 의문의 대상이다. 연구노트는 법적 분쟁을 막기 위해 연구 책임자나 이해관계자가 서명을 하거나 전산화하게 돼 있지만, 남 박사는 전 씨의 연구노트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전 씨의 연구노트에 수록된 연구 내용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이화여대의 조사 과정에서 일부 공개된 전 씨의 연구노트에는 ‘스케링 미러’라는 장비를 통해 실험한 내용이 있는데 남 박사는 “스케링 미러는 3000만 원이 넘는 고가 장비로 우리나라에 몇 대 없다. 이화여대에도 스케링 미러가 없으므로 전 씨는 이 장비를 본 적도 없다. 내가 KAIST 고 박사 연구실에서 스케링 미러로 실험을 했고 그 내용을 전 씨에게 알려줬는데 전 씨가 마치 자신이 실험한 것처럼 연구노트에 기록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전 씨의 연구노트 8월 27일에 붙은 사진은 KAIST 학생이 찍은 사진과 동일한데, 이에 대해 남 박사는 “KAIST 학생이 찍은 사진을 내가 전 씨에게 전달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했는데 전 씨가 KAIST 학생의 사진을 프린트해서 자신의 연구노트에 붙인 것 같다”며 “이밖에도 본인의 연구 성과가 아닌 것이 연구노트에 다수 수록돼 있다”고 말했다. 전씨의 논문 기여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던 이화여대측은 “사실관계에 다른 부분이 있다. 전씨는 샘플을 제작한 것도 사진을 찍은 것도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연구노트라기보다는 ‘학습노트’에 가까운 노트에 담긴 모든 내용을 전 씨의 성과물로 믿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이화여대 남 박사팀에서 전 씨와 함께 실험에 참여했던 한 학부 학생도 “내가 지켜본 바로는 전 씨는 교수님의 아이디어와 지시대로 실험을 진행했을 뿐 저자에 등재될 만큼 주도적으로 실험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전 씨는 9개월 남짓 남 박사의 실험을 도와주다 개인적인 이유로 2010년 12월 실험에서 빠졌다. 남 박사는 “당시 전 씨와 다투는 과정에서 전 씨가 ‘내가 이번 논문 저자에 올라가지 않는 대신 후속 연구를 주거나 내 논문을 대신 써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남 박사는 “논문은 직접 써야 한다.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지도할 수는 있지만 논문을 직접 써주는 건 내 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맞섰다. 이후 전 씨가 남 박사 연구팀에서 빠지게 됐다는 게 남 박사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측은 “실험당사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이와 관련된 언급을 꺼렸다. 전 씨는 이대측의 조사과정에서 “남 박사에게 후속연구를 부탁한 적 없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나를 실험에서 배제시킨 것은 남 박사”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25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본조사에는 각 대학 교수진으로 구성된 조사위원 5명이 참석해 남 박사와 한 시간 남짓 설전을 벌였다. 남 박사는 “억울함을 풀어줄 거라는 최소한의 기대를 안고 들어갔지만 ‘역시나’였다”고 회상했다. 복수의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본조사에서 조사위원들은 남 박사에게 “전 씨의 참여를 인정하라. 왜 논문에 기여한 전 씨를 저자에 등재하지 않았느냐”면서 이 논문에 대한 남 박사와 고 교수의 기여를 증명하라고 말했다. 또한 “당신 같은 사람은 학계에 있으면 안 된다” “당신 같은 사람은 혼자 회사 차려서 혼자 연구하라”는 등 감정적인 말도 했다. 남 박사는 “이미 조사위원회는 전 씨가 모든 실험을 하고 나는 그 실험 결과를 빼앗은 사람으로 단정했다. 조사는 나를 협박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7월 중순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측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이라 언급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지만, 이미 전 씨의 연구 기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전 씨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그 결정에는 구속력이 없다. 이미 남 박사는 5월 말 퇴직 처리돼 이화여대 교직원이 아니고, 대학 측에서 네이처에 “전 씨를 저자로 등재해달라”고 요청해도 제1저자인 남 박사의 동의 없이는 성사될 수 없기 때문. 하지만 이 결과가 알려지면 남 박사는 ‘제자의 성과를 빼앗은 연구가’라는 오명을 안게 된다.

    박 교수 “교신저자 올려달라” 갈등

    “대학원생 연구 빼앗은 악덕 교수” vs “제자 이용해 나를 음해”

    이 논문은 불규칙한 균열을 멈추거나 제어해 글씨도 쓸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런데 처음부터 논문 저자에 등재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스스로도 “교수님이 시킨 일을 하는 데 급급했다”고 밝힌 전 씨가 실험에서 빠진 지 1년 반 만에, 그것도 네이처 발표 이틀 전에 공개적으로 저자 등재를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논문의 저자 등재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네이처 논문 게재가 결정되던 3월 초까지 저자 등재 문제를 둘러싸고 남 박사와 고 교수, 그리고 박 교수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 박사와 고 교수는 박 교수가 이 논문이 네이처에 실릴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 논문 ‘교신저자’로 넣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교신저자란 논문에 대한 다른 연구자의 의문에 답하거나 후속 연구를 주도하는 등 책임자 역할을 하는 저자를 말한다. 당시 남 박사가 박 교수에게서 받은 e메일에는 “정치적인 부탁이니 염치가 없지만 교신저자 타이틀을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고 교수가 “논문 내용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박 교수가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했고, 남 박사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 교수가 단장을 맡은 연구단에 소속된 터라 입장이 난처했다. 갈등을 거듭하다 박 교수는 결국 공동 교신저자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고 남 박사는 3월 초 이화여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논문 저자 논란 끊이지 않아

    “대학원생 연구 빼앗은 악덕 교수” vs “제자 이용해 나를 음해”

    이화여대 대학원생 전모 씨가 포털 사이트에 올린 글.

    남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 박 교수의 지도학생인 전 씨가 난데없이 저자 등재를 요구한 것을 두고 ‘박 교수가 전 씨를 앞세워 논문에 대한 본인의 기여를 주장하고 나를 압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포털 사이트에 글이 올라온 것은 박 교수가 전 씨를 대동하고 교과부 브리핑실을 찾았다가 행정적인 이유로 들어가는 데 실패한 직후였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본질과 관련 없는 일”이라면서 말을 아낀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원생 전 씨의 주장이 진위에 대한 검증 없이 네티즌에게 많은 지지를 얻은 것은 한국 학계의 관행적인 ‘논문 저자 공동 등재’ 실태와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연구에 과학적·기술적인 기여를 한 사람을 정당한 이유 없이 논문 저자에서 빼거나, 기여하지 않은 교수 등을 논문 저자로 등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글을 올린 전 씨 역시 으레 유사한 사건의 피해자일 거라는 추측이 인 것이다. 

    서울 한 사립대 이공계 대학원생은 “모 교수의 경우 실험실 대학원생들의 실험 데이터를 고스란히 빼앗아 논문을 쓰는 걸로 유명하다”며 “선배들이 몇 차례 당한 이후 좋은 실험이 있어도 그 교수한테는 보고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의 이공계 대학원생은 “박사과정 졸업을 앞둔 한 선배의 논문이 국내 학회지에 실렸는데, 사실 그 논문은 모 연구교수가 연구 성과가 없는 선배가 안쓰러워 대신 써준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남 박사는 “한국 학계에서 이와 같은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논문 저자 등재에 연구자의 철학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저자는 논문을 쓰고 이후 책임질 사람을 뜻하는데 실제 연구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적인 이유로 논문 저자를 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 남 박사는 “이번 논쟁으로 다시는 네이처에 논문을 실을 수 없다고 해도 내 철학을 지키기 위해 절대 전 씨를 저자에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한 학계 관계자는 “만약 전 씨가 정말 네이처에 올릴 만한 성과를 냈다면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있을 것이니 그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후속 연구를 통해 성과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며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공정한 위치에서 남 박사와 전 씨의 기여 정도를 밝혀 논문 저자 문제에 대한 선례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네이처 표지 저자 등재 논란’ 관련 반론보도]

    본지는 8월호 pp. 160~170 “대학원생 연구 빼앗은 악덕교수 vs. 제자 이용해 나를 음해”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5월 ‘네이처’ 표지에 실린 논문의 교신저자 남구현 박사와 실험 연구에 참여했던 이화여대 박사과정 전모 씨의 저자 등재 논란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 씨는 “연구자로서 직접 실험한 내용을 기재한 연구노트가 근거가 되어 지난 7월 연구진실성위원회 본조사위원회 조사결과, 실험에 직접 참여해 주요 결과를 도출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며, “연구노트가 학습노트에 가깝다고 폄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알려왔습니다.

    한편, 전 씨가 남 박사에게 후속 연구를 주거나 대신 논문을 써달라는 요구를 했고, 이후 개인적인 이유로 실험에서 빠졌다는 남 박사의 주장에 대해, “실험에서 자발적으로 빠진 것이 아니라 배제된 것이며, 남 박사에게 연구자로서 부당한 요구를 한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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