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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정치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패션 전문기자가 ‘파워드레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 김민경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채널A ‘스타일 A’ 진행자 holden@donga.com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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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이후 2007년 대통령후보라는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하기까지 박 대통령이 갖고 있던 카드는 애국심에의 호소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였다. 이러한 전략은 당시 옷차림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났다. 세계 여성 파워드레서들을 분석한 ‘파워드레싱’의 저자 로브 영은 이렇게 기술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 김정일을 만날 때 입은 옷 등) 그녀가 좋아하는 실루엣을 보자. 허리 라인이 위로 올라간 재킷, 주름을 풍성하게 잡아 아래로 퍼지게 한 스커트는 한국의 전통 의상인 한복을 연상시킨다. 지구상에서 패션과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국가 한국에서 이렇게 ‘올드패션’한 여성이 최고 지도자가 되는 역설이 생겨난다. (…) 이처럼 과거 회귀적인 이미지가 의식적인 것이든 아니든, 이런 유의 논쟁은 그녀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외빈초청 행사장의 한복은 국가지도자보다는 퍼스트레이디 같은 인상을 줬는데, 좀 더 격식 있고, 좀 더 파워풀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날의 ‘베스트’는 청와대에서 신임 각료들과 함께 첫 번째 업무를 볼 때 선보인 초록색 재킷과 진주목걸이 차림이었다. 초록색은 올봄의 ‘잇 컬러(it-color)’인 데다 박 대통령에게 젊고 활기 넘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준다. 초록색 재킷의 목 칼라 부분과 왼쪽 가슴 부분에는 검은색이 콤비로 매치돼 검은색의 이너웨어, 검은색 하의와 통일감을 줬을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을 둘러싼 검은 톤 양복의 남성 각료들과도 조화롭게 어울렸다. 평소 즐기던 브로치 대신, 밝은색 진주목걸이를 선택한 것도 호감도를 높였다.

흰색 진주목걸이는 ‘파워 펄스(Power Pearls)’라는 애칭이 있을 만큼 전 세계 여성 권력자에겐 필수 액세서리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처 전 총리,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 힐러리 클린턴 및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 티모센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 미첼 바첼렛(현 유엔 여성기구 총재) 등과 퍼스트레이디 베스 트루먼, 재클린 케네디 등 무수히 많은 여성 인사가 흰색 진주를 사랑한다.



‘파워 펄스’의 조건은 한 줄의 굵은 진주알 목걸이를 옷의 목선 위로 오게 하는 것. 권력을 가진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경 11~16mm 천연 진주는 워낙 고가인지라 사치 논쟁에 휘말릴 위험도 있다. 여성주의 작가인 저메인 그린은 “모조나 양식 진주처럼 값이 저렴해도 상관없다. 파워드레서라면 크고 풍요롭고 광채가 나면서 일렬로 품격 있게 꿴 진주목걸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패션은 아슬아슬한 줄타기

파워드레서의 ‘미션’은 패션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감각도 보여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유력 정치인이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하다면 대중에게 ‘사치스럽다’거나 ‘정치적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듣기 쉽다. 모든 여성 정치인이 두려워하는 치명적인 덫이다. 이 함정에 빠질까봐 아무렇게나 입은 옷차림으로 대중 앞에 나서다보면 의전상의 결례를 범할 수 있고,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모르는 구식 정치인이나 비호감 아줌마로 낙인찍혀 지지율 하락을 불러올 것이다.

카를라 브루니 전 프랑스 영부인처럼 전 국민의 기를 죽일 정도로 옷을 잘 입는 파워드레서도 연일 세계 언론에 오르내리지만,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지독하게 패션에 무관심해도 연일 언론에 가십거리를 제공해 국민에게 근심거리를 안긴다. 독일은 언뜻 패션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못지않게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를 많이 배출한 나라다. 1980년대부터 샤넬을 이끌고 있는 카를 라거펠트도 독일인이다. 바로 그 카를 라거펠트가 “우리는 메르켈 총리에게 더 좋은 바지를 만들어줄 재단사를 찾아내야 한다”고 일갈했다. 독일 정론지들도 총리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을 때는 ‘총리, 성공을 위한 옷 입기에 실패’ 라거나 ‘총리, 차라리 구닥다리 옷이 정치력보다 나은 듯’이라고 패션 감각을 물고 늘어진다.

재클린 케네디, 대처, 힐러리 클린턴, 컨돌리자 라이스와 미셸 오바마 등 성공한 파워드레서들의 공통점은 ‘메시지’와 ‘패션 감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오랫동안 그런 고민을 해왔을 것이다. 20대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게 된 1974년부터 2013년 대통령이 되기까지 약 40년간의 옷차림을 살펴보면, 본격 정치인이 되기 전까지 박 대통령은 트렌드를 자기 식으로 소화할 줄 아는 당대의 패셔니스타처럼 보인다. 포토제닉하게 타고난 외모와 젊음도 한몫을 했다.

“빨간 스커트 정장에 진주귀고리를 다세요!”

1 보수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스커트 정장을 즐겨 입은 대처 전 영국 총리. 2 재클린 케네디. 3 매들린 울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유명한 브로치들. 4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은 육군비행장에서 섹시한 군복패션으로 언론으로부터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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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채널A ‘스타일 A’ 진행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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