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복수국적 제도 마련하고도 배타성, 형식주의 벽 못 넘어

이중국적

  • 설동훈│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2013-03-19 1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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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국적 제도 마련하고도 배타성, 형식주의 벽 못 넘어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3월 5일 미국 워싱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2월 21일 한국 국적을 이탈한 프로골퍼 미셸 위 선수.

    국적은 어떤 사람이 특정 국가의 구성원이 되는 자격을 말한다. 국적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은 각 나라의 법률에 정해져 있다. 국적 부여 원칙은 혈통주의와 출생지주의로 나눌 수 있다. 혈통주의는 아이의 출생지가 어디든 상관없이 부모와 같은 국적을 아이에게 부여하는 방식이고, 출생지주의는 부모의 국적과 관계없이 아이가 태어난 나라를 기준으로 국적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중국적’과 ‘복수국적’

    우리나라 국적법은 부모 양계 혈통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부모 중 어느 한쪽이 한국인이고 다른 한쪽이 외국인이면 그 자녀는 출생에 의해 자동으로 부모의 국적을 갖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1개의 국적을 갖고 있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중국적(二重國籍)을 가진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미국, 캐나다 등 출생지주의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부모의 국적뿐 아니라 태어난 나라의 국적도 가진다.

    만약 부모 중 한 사람이 이중국적 또는 3개 이상의 국적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 아이의 국적은 더 많아진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이중국적’보다는 ‘복수국적(複數國籍)’ 또는 ‘다중국적(多重國籍)’이 더 정확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복수국적은 한 사람이 2개 또는 그 이상의 국적을 동시에 가진 것을 가리킨다. 보통은 해외출산이나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아이가 복수국적을 갖지만, 귀화를 통해 새로운 국적을 취득하고 원래의 국적을 상실하지 않은 사람도 복수국적을 가진다.



    혈통주의를 채택하는 나라에서는 성인이 된 국민의 복수국적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 국적과 외국 국적을 함께 가진 복수국적자에게 ‘국적선택 기간’을 설정해 반드시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을 ‘국적선택 의무’라 한다. 국적법에 따르면 만 20세가 되기 전 복수국적을 얻은 사람은 만 22세가 되기 전까지, 만 20세가 된 후 복수국적을 지닌 사람은 그때부터 2년 내에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하거나 이탈한다는 뜻을 법무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개인 유·불리에 따라 국적 못 바꿔

    우리나라는 2011년 1월 1일부터 선천적 복수국적자뿐 아니라 외국인 우수 인재, 한국인과 결혼해 입국한 이민자, 어릴 때 외국으로 보내진 입양인, 국내에서 여생을 보내기 위해 영구 귀국한 65세 이상의 재외동포 등에게 복수국적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복수국적이 허용되는 대상은 다음의 세 집단으로 나뉜다. 첫째, 한국인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자녀로 출생지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다문화가정에서 출생한 사람(선천적 복수국적자). 둘째, 한국 국적 취득자 중 ①혼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귀화 허가를 받은 결혼이민자 ②한국에 특별 공로가 있거나 우수 외국 인재로서 귀화 허가를 받은 사람 ③국적회복 허가를 받은 재외동포 중 특별 공로가 있거나 우수 인재로 인정된 사람 ④미성년 해외입양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가 한국 국적을 회복한 사람 ⑤ 재외동포로서 만 65세 이후 영구 귀국해 한국 국적을 회복한 사람 ⑥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외국 국적을 포기하고자 해도 그 나라의 법률 또는 제도로 인해 국적 포기 의무를 이행하기 어려운 사람. 셋째,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외국 국적을 취득하고 대한민국 국적 보유신고를 한 사람(후천적 비자발적 복수국적자).

    미국 등 출생지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복수국적을 갖게 된 남성은 병역을 마쳤거나 면제를 받은 경우, 여성은 22세 이전에 국내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법무부에 ‘외국 국적 불행사(不行使) 서약서’를 제출하면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예컨대 출·입국 때 한국 여권을 사용하고, 외국인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으며, 외국 운전면허증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개인의 유·불리에 따라 박쥐처럼 국적을 바꾸는 얌체짓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복수국적자가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 내용을 준수하지 않으면 정부는 ‘국적선택 명령’을 내린다. 복수국적자가 ‘국적선택 의무’에서 정한 기간 내에 국적을 선택하지 않거나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 1년 내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라는 법무부장관의 명령을 받는다. 또한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서’를 제출한 복수국적자가 그 뜻에 현저히 반하는 행위, 즉 ①반복해서 외국 여권으로 대한민국에 출국·입국한 경우 ②외국 국적을 행사할 목적으로 외국인등록 또는 거소신고를 한 경우 ③정당한 사유 없이 대한민국에서 외국 여권 등을 이용해 국가·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공공단체 또는 교육기관 등에 대해 외국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거나 행사하려고 한 경우 6개월 내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또한 정부는 복수국적자가 ①국가안보, 외교관계 및 국민경제 등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②대한민국의 사회질서 유지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등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함이 현저히 부적합하다고 인정될 때는 청문을 거쳐 대한민국 국적 상실을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출생에 의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복수국적자는 제외한다.

    한편 국적법은 원정출산으로 인한 복수국적자, 즉 ‘직계존속이 외국에서 영주할 목적 없이 체류한 상태에서 출생한 자’는 병역의무를 이행한 경우에만 국적이탈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출생 당시에 어머니가 자녀에게 외국 국적을 취득하게 할 목적으로 외국에서 체류 중이었던 사실이 인정되는 자’는 외국 국적을 포기한 경우에만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한다는 뜻을 신고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검은 머리 외국인’에 대한 제재 조항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셸 위와 김종훈의 경우

    최근 한국 국적을 이탈한 프로골퍼 미셸 위는 ‘국적선택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만 22세 전에 국내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면 복수 국적을 인정받을 수 있는데, 그는 서약서를 쓸 시기를 놓쳐 미국과 한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국적 제도의 도입 취지 중 하나가 재외동포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해 인적 자원의 유출을 방지하는 것인데, 절차 규정 때문에 한국의 소중한 인재를 잃은 셈이 됐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됐다가 자진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김종훈 전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최고전략책임자의 사례는 우리나라 복수국적 제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는 미국 사회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한국에 왔다. 법적으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미국 시민권 포기를 전제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1000억 원대에 달한다는 ‘미국 국적 포기세’도 감수했다. 그는 장관직을 수행할 강력한 의지를 보였으나 일각에서 ‘복수국적자였던 사람이 국가 보안과 기밀 분야를 다루는 정부 조직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느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데 실망했고, 장관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한국식 정치문화에 좌절했다.

    미셸 위와 김종훈의 사례는 복수국적 제도가 제도적 형식주의와 한국 사회의 편협한 자의식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적으로 복수국적을 허용하고 있는데도 미셸 위는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서’ 제출 시기를 놓쳤다는 이유로 복수국적 취득 기회를 차단당했고, 김종훈은 대한민국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까지 문제 삼는 한국인의 태도에 뜻을 꺾었다.

    겉으로는 외국인 우수 인재 유치를 외치고 있으나, 속으로는 외국인도 아닌 재외동포조차 배타적으로 대하는 게 한국 현실이다. 우수 인재 유치는 제도 손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외국인 인재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개방형 문화로 철저하게 바꾸지 않는다면 문제는 결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논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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