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너는 피아노를 잘 쳤었지. 드디어 그 간호사들이 너를 데리고 왔을 때 너는 우리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초점 없는 미소였지만, 어디를 보는지 도통 짐작할 수 없었지만. 너는 그동안 더 고개가 옆으로 삐딱하게 가 있었다. 그전엔 우리를 알아보는 것 같더니, 이제 너는 그저 웃고만 있는 것이 전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너의 얼굴은 더 평화로워져 있었다. 얼굴의 선이며 부축받은 팔의 선은 더욱 부드러워져 있었으며 “그동안 잘 있었어?” 하는 우리의 말에 너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하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열심히 하였다. 무엇이라고 너는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문법의 말이 전혀 아니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까지는 그래도 묻는 말에 “그냥”이라고 대답하며 웃었는데 이번엔 그 단어도 어디로 가버렸구나.
우리는 너에게 신발을 신겼다. 이제 너는 발을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너는 신발을 쉽게 신었었는데…. 나는 또 중얼거린다. 너는 운동선수였는데…탁구 선수였지…스케이트도 잘 타고, 스키는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겨울마다 가곤 했었지. 그리고 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메기의 추억’을 부르자 웃으며 마구 따라 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가사를 잊었는데, 너는 똑똑하게 들리는 발음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하긴 너는 성가대였지. 성가대의 소프라노였지. 점심 먹을 집을 찾는 동안 너는 쉼 없이 노래하고 있었다. 차창에 기대어 햇빛 쏟아지는 창밖을 향하여. 나는 노래의 힘에 대해 새삼 감탄한다. 언어를 다 잊어버린 뒤에도 기억하는 것. 언어라는 것이 기껏 그 멜로디에 매달려 살고 있다니….
“그림은 또 얼마나 잘 그렸게…. 집안 구석구석 자기가 그린 그림을 걸어놓더니….”
너는 마치 “그럼, 그럼. 아니야, 지금도 잘 그려”라고 하기나 하는 것처럼 무슨 말인가를 힘들게 했다. 우리는 모두 일치단결해 “으응, 으응” 했다.
점심을 먹는 동안, 너에게 b가 열심히 밥을 먹이는 동안에도 너는 노래를 부르려 했다. “맛있니?” 하고 물으면 또 뭐라고 대답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너는 돌아오는 차 속에서도‘메기의 추억’을 열심히 불렀다.
“왜 이렇게 노래를 부를까. 그런데 노래는 참 잘 부르네. 나보다 나은데…” 하는 나의 말에 b는 “이젠 밖으론 안 나오는 거야. 자기 세계 속에서 노는 것이지”라고 반응했다.
b는 또 말한다.
“이젠 우리를 전혀 몰라봐. 지난번만 해도 알아보는 것 같더니…‘메기의 추억’을 부르는 건 아마도 유년시절을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 이상하게도 자기 아들은 기억하지 못해. 그러나 유년시절에 놀던 우리들은 기억을 한다고….”
그러니까 너는 ‘잊기’를 못하는 것이구나. 잊기를 못해서 과거의 담요를 뒤집어쓰고 너의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이구나.
아, ‘잘 잊기’. 하긴 우리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이지. 망각이 없다면 우리는 잘 살 수 없을 거야, 하면서도 우리는 망각할까봐 또는 망각했을까봐 흠칫거리곤 하지. 남미의 작가 보르헤스의 소설에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한 사람이 나오지. 그는 포도주 잔 뒤에 어른거리는 포도 알맹이들, 포도 덩굴들,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사귀의 수까지 헤아려 기억하며 시간을 정복해가지.
그러면 너는 시간을 정복한 것일까. 시간을 정복해 고향으로 돌아간 것일까.
그러나 고향은 떠나야만 고향이다. 거기 묻혀 있으면서 거기를 그리워할 수는 없으리라.
그리움은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리움은 그렇게 하여 키가 큰다. 살이 찐다. 동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