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가 2006년 2월 제14대 연준 의장으로 공식 취임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그가 연준 의장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그의 전임자가 무려 20년간 연준을 통치하며 막강한 영향력과 카리스마를 발휘한 앨런 그린스펀이었기 때문이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연준 역사상 최장수 의장을 지낸 그린스펀은 절묘한 통화정책으로 고성장, 저물가의 소위 ‘골디락스(goldirocks) 경제’를 구현해 ‘마에스트로(거장)’라는 찬사를 받았다. 연준 의장에게 붙는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란 수식어도 그린스펀으로부터 유래했고 연준이 경제 분야에서 누구도 도전하기 힘든 권위와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 또한 그린스펀의 공이 크다.
그린스펀은 의도적으로 모호한 화법과 어눌한 말투를 써 소위 신비주의 통화정책을 구사했다. 연준과 금융시장의 거리를 최대한 떨어뜨려 놓은 뒤 알 듯 말 듯한 단어를 사용해 시장을 움직이는 식이었다. 정보기술(IT) 버블이 고조되던 1996년 “주가 상승이 과도하다”는 직설적인 말 대신 “금융시장이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에 빠졌다”고 언급해 경제 전반에 큰 충격파를 미치지 않고 주가 상승을 진정시킨 것이 좋은 예다.
반면 버냉키는 교수 출신답게 직설적이고 평이한 화법을 사용했다. 연준 의장의 권위는 시장과 떨어져 있어야 제대로 나온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버냉키 스타일은 생소했다. 전임자에 비해 무게감과 카리스마가 떨어져 연준의 권위에 손상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의 여파에도 2000년대 초중반 미국 경제가 주도한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바로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 때문이다. IT 붐이 꺼지고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부터 약 2년간 그린스펀은 6.5%에 달하던 미국의 정책금리를 1.0%까지 끌어내렸다.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그린스펀 풋(put)’으로 불렸다. 파생상품시장의 풋 옵션처럼,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그린스펀이 금리를 내려 어김없이 살려놓을 것이란 의미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하지만 6~7년간 지속된 저금리 정책은 ‘버블’이라는 독버섯을 키웠다. 2007년 4월 미국 2위 모기지업체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한국의 법정관리에 해당하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과잉 유동성이 집중된 미국 부동산시장이 불안하다는 경고였다. 지난 수년간의 저금리 정책을 그만두고 유동성의 고삐를 조여야 한다는 의견이 등장했지만 세계경제와 주식시장이 워낙 호황을 보이고 있던 시기라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버냉키가 비판받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서브프라임 위기를 조장한 사람은 전임자 그린스펀 전 의장이지만 현직 연준 의장으로서 서브프라임 징후를 빨리 발견하지 못해 금융위기 선제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1월 약 5년 만에 공개된 2007년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1년에 8번 열리는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 회의로 미국의 정책금리 수준을 논의하는 자리) 회의록에 따르면 버냉키가 당시 서브프라임 위기를 과소평가했다는 점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일부 회의 참가자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위험을 지적했지만 버냉키는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그들의 의견을 묵살했다.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약 1년 만인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이후 베어스턴스, 모건스탠리, AIG 등 대형 금융회사가 줄줄이 무너지면서 전 세계는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에 직면한다.
비록 초기 대응은 늦었을지 몰라도 대공황 전문가 버냉키의 진가는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발발한 후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핵심이 바로 양적완화 정책이다.
2006년 버냉키가 처음 연준 의장이 됐을 때 미국의 정책금리는 5.25%였으나 그는 이를 제로(0%) 수준으로 낮췄다.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수준까지 낮춰도 가시적인 소비증대와 투자증대 효과가 없자 버냉키 의장은 2008년 3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찍어낸 돈을 시중에 직접 공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기준금리가 제로 금리에 근접해 기준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쓰이며 중앙은행은 국채, 회사채, 모기지담보증권(MBS) 등을 사들여 시중 통화량을 늘린다.
연준은 2008년 11월부터 시작해 2010년 3월에 끝난 1차 양적완화 때 1조7000억 달러, 2010년 11월~2011년 6월의 2차 양적완화 때 6000억 달러를 시중에 풀었다. 1차 양적완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쓰러져 가던 미국 금융회사들의 자본력을 확충시키는 게 주목적이었고, 2차 양적완화는 디플레이션을 막아보자는 뜻에서 시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