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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무창포 바닷가 늙은 어부의 꿈이여

충남 보령

  • 최학│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무창포 바닷가 늙은 어부의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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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얼굴들 모여 모여서 젖은 이야기로 잠이 드는 밤 가라앉으며 떠오르며 끝없이 서성이는 세상은 눈 굵은 그물로 다 가릴 수 없는 슬픔인데 출렁일수록 깊어가는 상처 따라서 안 보이는 섬 찾아 조금씩 작아지는 푸른 물방울

소금처럼 빛나는 한 줌 슬픔으로 섬을 이룰 수 없는 키 작은 어부들의 영혼이 발목 붉은 도요새 되어 뿔뿔이 허공을 떠돌고 불빛 찾아 손 흔드는 낯선 안강망 어선들 어디에도 지친 닻을 내릴 곳이 없다

눈물이 강물같이 보이던 날 성욕처럼 들끓는 물거품을 바라보며 누구는 죄를 짓고 누구는 용서하고 목쉰 파도 되어 흐느끼지만 죽어서도 산란하는 늙은 어부의 꿈 만난다 앉은뱅이 섬, 혹은

-박라연의 시 ‘무창포에서’ 전문

제목에 ‘에서’라는 조사가 붙은 것에서 보듯이, 이 시는 무창포를 얘기하기보단 무창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인물의 심상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의도적으로 언어들을 질서 없이 나열하는 탓에 구체적인 상황이며 선명한 그림들을 붙잡긴 어렵지만, 대강 무언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감’은 잡을 수 있다. 둘 혹은 셋, 무창포에 온 사람들이 밤늦도록 저들이 살아온 세상의 슬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사연들은 곧 고역과 고통 끝에도 정착을 못하는 어부들의 아픔으로 대입된다. 세상에서 가졌던 죄와 용서 또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가운데 그들의 꿈 역시 떠돌이 어부들의 그것처럼 바다의 섬 같은 정착된 삶, 안정된 삶을 누려보는 것이다.



적적함, 신산함, 호젓함…

만리포 혹은 경포대에서도 가질 수 있는 감정과 이야기를 굳이 무창포에서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짐작건대 첫째는 무창포 자체가 가지는 적적함, 신산함의 이미지 때문이며 둘째는 무창포라는 지명이 주는 어감 때문이다. 지금은 무창포 해변 또한 깔끔한 관광지로 정비돼 있지만, 이 시가 쓰인 1980년대만 하더라도 인근의 대천해수욕장에 비할 수 없으리만큼 황량한 곳이었다. 한편 본래의 한자어가 가지는 의미와 상관없이 ‘무’와 ‘창’으로 발음되는 이곳 지명의 어감은 ‘만리포’ ‘경포대’ 같은 제법 화사한 느낌을 주는 지명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시가 가지는 쓸쓸함, 고달픔의 분위기는 이런 ‘무창포’에서 제격인 것이다.

서해안에는 이름난 해수욕장이 많지만 무창포해수욕장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곳이다. 서해안의 대표격이라 할 대천해수욕장을 지척에 둔 탓에 그 진가가 가려진 점도 없지 않다. 이름난 동백정을 거느린 서천의 춘장대해수욕장과 대천해수욕장 사이에 낀 무창포는 오히려 그 덕분에 호젓하고 맑고 특히 봄가을에 거닐기 좋은 해변이다. 백사장이 길고 수심이 얕고 주변엔 송림이 울창하다. 이런 좋은 여건들을 갖추고 있기에 대천보다 먼저 서해안 최초의 해수욕장으로 개장됐다. 하지만 교통이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매월 음력 보름날과 그믐날을 전후해 하루에 두세 번 해변에서부터 바로 앞의 석대도까지 1.5km의 바닷길이 열린다. 요사이엔 이 바닷길을 걸으며 자연의 신비로운 변화를 체험하며 아울러 게, 조개 등을 채취하는 즐거움을 누리려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대천나들목을 빠져나와 시내 쪽으로 방향을 틀면 이내 대천역을 만난다. 역 앞 사거리에서 북쪽 길을 택한 다음 대천천을 건너 대천여자고등학교를 향해 가다보면 학교에 못미쳐 동부아파트를 만난다. 아파트 오른쪽에는 밭뙈기 몇이 있고 그 너머에 나무들 우거진 야산이 있다. 야산 한쪽 자락에 서너 채의 슬래브 집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소설가 이문구의 생가이며 이 일대가 이른바 관촌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생가는 보령시 대천동 387번지이고, 작가는 1941년 4월 12일 여기서 태어났다.

‘관촌수필’의 고향

이곳 관촌마을은 윗갈머리(上冠村)와 아랫갈머리(下冠村) 중 아랫갈머리로서 연작소설 관촌수필(冠村隨筆)의 무대이며 또한 저자 이문구의 출생지이다. 현 농지개량조합이 있는 곳은 왕소나무가 서 있던 자리다. 드넓은 농경지로 변한 마을 앞 철로 건너편은 조수(潮水)가 드나들던 갯벌이었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소나무 숲과 서쪽 언덕 위에 마을 처녀들이 그네를 뛰던 팽나무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관촌마을의 토속적 향수를 달래주며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있다.

1995년 이 지역 문인들이 마을 어귀에 세운 관촌마을기념비에 적힌 문구다. 그 흔한 문학비 하나도 이곳엔 없다. 죽은 뒤 화장해 마을 뒷산에 뿌리고 여타 아무것도 만들지 말라는 작가의 유언에 따른 일이다. 문화 창달과 관광객 유치라는 명분으로 지방정부며 단체들이 작가들의 생전 업적과 관계없이 다투어 문학관을 짓고 시비, 문학비를 세우는가 하면, 살아 있는 이가 스스로 제 자랑의 돌을 세우고 세금까지 축내는 근래의 세태를 보노라면 죽어서까지 깔끔한 이문구의 뒷모습이 더욱 돋보인다.

고향마을을 무대로 한 소설 ‘관촌수필’은 이문구의 대표작이다. 6·25전쟁 무렵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곳 농민들이 겪는 삶의 애환을 특유의 입담과 토속어로 그려나간 이 연작소설은 곧 우리 모두가 겪은 산업화, 근대화의 한 실상을 고스란히 기록한 소설이기도 하다. 리얼리즘 문학과 사회주의 문학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에도 이편 저편을 아우르며 통 크고 정 깊게 문단을 이끌었던 그에 대한 흠모의 정이 아직도 많은 이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이문구는 동시집을 출간했다. 이승의 짐을 훌훌 벗고 저승으로 가는 길에는 더 이상 소설적 산문이 소용없음을 알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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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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