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軍과 골프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3-03-21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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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청주의 한 공군전투비행단. 교전(交戰)이 일어나면 이곳에서 발진하는 전투기들이 수도권 방어의 한 축을 맡는다. 이 부대 안엔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호수 한가운데에 골프코스 1번홀 티샷 타석이 떠 있다. 여기서 한 공군장교가 친 드라이버 샷은 물살을 시원스레 가로질러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장교는 걸어가면서 ‘공군과 골프’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나라든 전투기 조종사는 가끔 치는 골프로 스트레스를 풀죠. 공군을 위해 골프장을 지어준 게 우리나라 골프장의 효시일걸요?”

    6·25전쟁 후 주한미군 파일럿은 국내에 골프장이 없다보니 휴일이면 골프를 치러 일본 오키나와에 자주 갔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보고 국가안보 공백을 우려해 건국 이후 최초의 골프장인 서울컨트리클럽을 만들었다. 이 장교의 말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전투기 조종사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한다. 비상대기도 잦다. 가끔씩 추락사고가 나는 낡은 전투기도 타야 하니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이 때문에 민간 항공사로 자주 이직한다. 작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복무규정 범위에서 전투기 조종사들이 부대 내 골프장을 찾는 것은 용인될 만한 일이다.

    공군 골프장 15곳을 포함해 전국에 군 골프장 29곳이 있다. 대개 민간 퍼블릭 골프장에 비해 시설 수준이 떨어진다. 대신 군 장성이나 장교는 ‘체력단련장’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상대적으로 편하고 저렴하게 골프를 친다.



    ‘전문적 군사지식’이 없어서…

    ‘군 골프장’은 일종의 ‘군 면세품’이나 ‘군인 연금’ 과 같은 성격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목숨 걸고 풀타임으로 국방에 헌신하니 이 정도 편익은 주자’고 사회가 합의해놓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일반 공직자의 민간 골프장 출입과 군 장교의 군 골프장 출입은 달리 봐야 할 것이다.

    최근 군 골프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한 신문은 ‘북한 도발 위협으로 한반도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군 장성들이 주말 골프를 쳤다’고 보도했다. 국민은 ‘수해 골프’ ‘3·1절 골프’에 선행학습이 되어 있다. 군 골프 보도는 이런 ‘반(反)골프 정서’에 어필했다. 국방부는 “사전에 골프 금지령 같은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면서도 여론에 당혹스러워했다. 이런 해명을 한 국방부 대변인도 골프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참모총장과 공군참모총장도 ‘키리졸브 훈련차 미 해·공군이 한반도로 오는 와중에 골프를 쳤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당사자들로선 ‘규정을 어긴 것도 아닌데…’라는 억울한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일반의 상식으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이어 “정전협정 파기” “최종 파괴” “정밀 핵 타격 수단으로 서울을 불바다로”라며 당장 뭔가를 터뜨릴 것처럼 불안감을 조성하는데 우리 군은 천하태평인 듯 보여 도통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보통의 시민은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국방부 고위관계자)와 같은 ‘전문적 군사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여러 군 장성은 ‘미 항모, 핵잠수함, 스텔스기가 몰려오는 한미연합훈련 때가 실은 라운드하기에 가장 평화스러운 시기’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지 모른다. 보통의 시민에겐 오랜 군 지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런 ‘생활의 지혜’도 없다.

    군은 사회와는 다른 점이 많은 곳이지만 적어도 시민의 평균적인 상식과 감정을 배려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군은 여론의 무풍지대에 있지 않다. 군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선전전은 성공적인 국방의 첫 단추다.

    민정수석의 첫 공개활동

    軍과 골프
    다만 이번 골프 건으로 군을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비상이 걸린 것도 아니고 훈련 중도 아닌데 너무 몰아붙이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특히 청와대 민정수석의 대응은 아쉬움을 남긴다. 평소 언론보도와 담쌓고 지내듯하다 ‘군 골프’ 보도엔 즉각 동조하며 ‘심각한 기강 해이’ ‘고강도 진상조사’ 운운하다 며칠 후 흐지부지됐다. 민정수석의 첫 공개 활동치고는 싱겁고 가벼워 보인다.

    안보위기 상황의 국군 통수권자에겐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강군’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군에도 숨통을 틔워주어야 한다. 군령을 어긴 것이 아니라면 여론이 좀 떨떠름해도 오히려 통 크게 포용해 주는 게 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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