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한국 경제 피해 미미할 수도 인위적 원화 절하 부적절

엔저현상과 환율개입

  • 원승연│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입력2013-03-21 15:4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국 경제 피해 미미할 수도 인위적 원화 절하 부적절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환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자국 통화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에서 ‘평가절하’라고 표현하고, 반대로 환율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자국 통화가치가) ‘평가절상’ 됐다고 한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에서 1100원으로 올라가면 원화 가치의 평가절하, 1000원에서 900원으로 떨어지면 평가절상이다.

    환율은 두 나라 간 통화가 거래되는 외환시장에서 외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가령 해외에서 많은 재화나 서비스를 수입하려면 외화 수요가 증가해 환율이 상승한다. 반면 수출을 통해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면 외화 공급이 증가해 환율은 하락한다. 이처럼 환율은 무엇보다 두 나라 간의 교역, 즉 재화와 서비스의 경상거래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국제 자본이동이 활발한 요즘은 외화 수요와 공급이 실물 요인이 아닌 자본거래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해외로부터의 차입이나 외국인의 국내 주식투자는 외환시장에서 외화 공급을 늘려 국내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환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 반대로 해외로의 자본 유출이 환율 상승 요인이 되기도 한다.

    환율이 상승하면 자국 제품의 가격이 하락해 일반적으로 수출 증가 효과를 낳는다. 반면 수입 물가를 상승시켜 수입 감소 효과를 가져온다. 즉, 환율 상승은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요인이 된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이고 유일한 상품인 햄버거 가격이 한국은 900원, 미국은 1달러라고 하면 달러를 가진 사람은 원화로 환전해서 한국에서 햄버거를 사려고 할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햄버거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이와 함께 한국의 햄버거 수출은 원-달러 외환시장에서 달러 공급을 증가시켜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환율이 하락하면 두 나라 간 햄버거 가격차는 점차 좁혀져 한국 햄버거에 대한 미국의 수요가 감소할 것이고, 햄버거 값이 1달러당 900원까지 하락하면 양국 간 햄버거를 둘러싼 무역 불균형은 해소된다.



    그러나 현실에선 환율 작용만으로 무역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다. 두 나라의 생산성이나 기술에 의해 제품의 질이 달라진다면 가격 조정을 통해 무역 불균형이 단기적으로 해소되긴 어렵다. 1985년 플라자 협정으로 엔화 가치가 크게 상승했는데도 일본이 20여 년 동안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했던 것은 상품경쟁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환율의 기능이 제한적인 것은 환율이 실물경제와 무관할 수 있는 자본거래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앞의 햄버거 사례를 다시 보자.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 햄버거에 대한 수요 증가로 환율이 하락 압력을 받고 있는데도 국내에서 미국 주식투자를 확대해 달러 수요가 증가한다면 무역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환율 1000원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이는 한국 햄버거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가 지속된다는 의미다. 외환시장에선 균형이 이뤄졌지만 실물경제의 측면에선 두 나라 간 불균형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집권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지난해 가을부터 ‘엔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의 핵심 정책으로 양적완화와 엔저의 강력한 추진을 천명하고 있다.

    일본의 엔저 정책은 일본판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이뤄진다. 일본은행이 물가통제 목표를 1%에서 2%로 높이는 등 통화 확대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엔저를 유도하겠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일본은 2011년부터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했고 지난해엔 적자폭이 더욱 확대됐다. 1980년대 이래 일본이 경상수지 적자를 겪은 기간은 3년 정도에 불과한데, 최근 2년간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니 엔화 평가절하를 정책 수단으로 고려할 여지는 충분하다. 엔화가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아직도 평가절상 상태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국제금융시장의 위험 확대에 따라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투자 자금을 회수하고, 미국 등 여타 선진국과 달리 양적완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베 내각의 립서비스

    문제는 엔저 현상이 자본시장의 작용에 의해 급격하게 심화하고 있어 실물 부문이 이런 상황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양적완화 정책이 실물 부문의 활성화와 물가상승을 유발해 해외 재화 및 서비스 수요를 확대시키고, 이것이 외환시장 수급에 영향을 미쳐 환율이 평가절하되기까지는 대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그러나 정보소통이 활발해진 요즘 금융시장에서는 그러한 경로를 밟기 전에 미리 반영된다. 아베 내각의 립 서비스는 충분한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산업경쟁력 약화, 경상수지 적자 확대 등을 감안할 때 엔저 현상은 속도의 완급은 달라질 수 있으나 정상적인 방향으로 보고 대응하는 게 현명하다. 일본의 재정적자 누적으로 인한 한계 등으로 엔저 현상이 지속되기 어려운 면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엔-달러 환율은 100엔을 다소 상회하는 정도까지, 그리고 원-엔 환율은 100엔당 1100원 이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엔저 현상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직접적으로는 대일(對日) 경상수지 악화가 예상된다. 최근 보도된 일본 관광객 감소나 수산물 대일 수출 감소가 그런 정황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일본 상품의 가격경쟁력 상승으로 한국의 주력 상품인 자동차, 전자제품 등의 수출이 감소하는 상황일 것이다. 또한 자본거래 측면에서 엔저 현상은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싼 엔화를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것)의 한국 유입을 우려하게 한다. 이로 인한 과도한 원화 강세가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국내 금융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

    그러나 엔저 현상으로 한국 경제가 받을 타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은 대일 무역적자를 지속해왔다. 우리 수출산업의 주요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산업구조가 주원인으로 지적된다. 즉, 엔저 현상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할 가능성은 있으나 일본 제품의 단가 하락은 일본 부품을 수입하는 국내 기업에 이득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엔화 가치는 2008년 금융위기 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국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이 최근 2~3년보다는 악화되겠지만, 원-엔 환율은 아직은 일본과 경쟁할 만한 수준이다.

    아직은 일본과 경쟁할 만

    그리고 지금 일본 경제의 구조를 볼 때 ‘아베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양적완화가 일본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어 엔저 현상이 장기적인 시장 방향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일본은행의 양적완화는 주로 국채 매입을 통한 것일 텐데, 안 그래도 재정적자가 큰 일본 정부가 향후 재정적자 폭을 얼마나 더 확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엔저 현상이 가속화하면 일본 주력 산업, 즉 가격 탄력성이 낮은 고부가가치 산업의 이익이 감소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경제적 안정에 기여했던 물가가 상승국면으로 전환하면 엔저 정책은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지금은 차분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의 엔저 현상은 우리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겪고 있다. 엔저 현상은 전 세계적 양적완화 정책에 일본이 뒤늦게 동참한 결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우리 정책 당국이 엔저 현상에 대응해 원화를 평가절하할 의도로 인위적인 정책을 구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가계부채 등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내부 요인을 정비하고, 국제경제의 흐름에 대응해 경쟁력을 제고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혹자는 1998년 원화 가치가 고평가됐던 것이 외환위기를 유발한 주원인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사전 대응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국제수지 적자로 인해 환율 절하 요인이 있었는데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고평가한 데 문제가 있었다. 과거의 경험에선 정부의 인위적인 환율정책은 효과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다만 금융시장의 과도한 엔저 현상 전망에 따라 자본 유입이 크게 확대될 경우에는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단기 투자를 노린 핫머니로 인해 자본시장과 환율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것은 실물경제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엔저 현상 등이 유발할 수 있는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을 주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토빈세 등 단기 자본 이동에 대한 과세 등의 정책 수단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논점 2013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