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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대낮이 어찌 한밤의 깊이를 헤아리겠나

  • 유안진│시인

대낮이 어찌 한밤의 깊이를 헤아리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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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1)____________에 손대지 않고 이 선을 짧게 만드시오



답: 문제의 선보다 더 길게 주욱

________________________ 그어버리면

문제의 선은 저절로 짧아집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가요

자기만의 파라다임으로

각자 성불(成佛)하기가.

‘초월문제’라는 제목으로 시집 ‘둥근 세모꼴’에 실린 소품이다. 둥그러지기를 지향하지만 늘 뾰족스러운 세모꼴의 모순으로 충돌하고 갈등한다는 뜻이었다. 삶이란 60억 인류가 한두 가지 방식이 아닌 60억 가지의 방식으로, 60억 가지 패러다임으로 각자가 성불하는 것인데. 남의 약점을 찾아 해치지 않고 내가 그를 넘어서버리면 해결되는, 모든 것의 문제와 해결법은 내게 있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다.

대추나무는 늦은 봄이 아니라 거의 초여름이 되어서야 잎이 돋는다. 잎이 돋을 때까지는 가히 죽은 것과 다름없다. 대추나무는 그런 배짱과 느긋함으로 가장 단단한 재질을 키우는가? 대추나무로 만든 옷장은 단단한 재질로 벌레가 잘 안 먹고 빨간 빛깔도 고와서 가장 비싸다. 또 도장새김에 가장 좋은 재질로는 단연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든다. 물론 벼락을 맞았다는, 큰 액운을 치렀다는 벽사적(?邪的) 의미를 부여했지만 단단한 재질이 새긴 이름자를 쉽게 지워지지 않게 했다. 반대로 눈 속에 꽃피는 동백도 매화도 그들만의 성깔 아닌가. 내 성깔, 내 즐거움이면 초월이 아닐까.

그래서 덜 자란 아이들, 조금 모자라는 숙맥(菽麥) 칠삭둥이 팔푼이가 자기 식으로 사는 초월자들이라고. 이들은 늘 행복하고 아주 작은 것에도 만족하여 잘 웃으며 아주 행복해한다. 잠자는 아기 모습은 곧 안식의 참모습이다. 평화 자체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의 입국 자격을 아이 같음으로 했으리라.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뜨려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환골탈태(換骨奪胎)란 그런 거겠지.

대낮이 어찌 한밤의 깊이를 헤아리겠나
유안진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동 대학 교육대학원 석사(교육심리학),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박사(교육학)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다보탑을 줍다’‘알고(考)’‘거짓말로 참말하기’등 16권의 신작 시집과 ‘상처를 꽃으로’‘지란지교를 꿈꾸며’등 산문집 다수, ‘한국전통사회의 육아방식’‘아동발달의 이해’등 전공연구서 등 다수.

現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이 소품은 아침에 계란으로 프라이를 하다가 썼다. 그래서 제목도 편안하게 ‘계란을 생각하며’라고 했다. 시도 사람이 쓰는 언어예술인데, 사람 사는 일상생활의 현장과 어찌 별개일 수 있으리. 남의 헤아림을 깡그리 무시한 동백 매화 대추나무처럼, “나는 나다”면 된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불타는 떨키나무가 불타지 않는 것을 보고 올라갔다. 야훼는 먼저 신발을 벗게 하고, 엄청난 사명, 내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라고 했다.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나는 나다”( I am who I am), 즉 창조됨이 아니라, 본래부터 스스로 있다는 뜻이리라. 나는 그대(너)와도 저대(저사람)와도 다른, 오로지 이대(나)다. 오로지 “나는 나일 따름이다”라는 의미로. 무엄하게도 야훼처럼이 아니라, 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초월에 이를 수는 없을까? 하다가, 이제는 하향지원(下向志願)하여 숙맥이 되고 싶다.

우리 엄니는 늘 내 못된 성질에 혀를 끌끌 차면서 “성질이 팔자”라고 하셨는데, 그 성깔 다 썩어 이렇게 되어버렸다. 검정 예찬으로 숙맥철학(?)으로-감히 철학이라고 하기가 부끄럽지만-나의 멘토들은 팔삭둥이 ‘찌질이’ 어리버리들이다. 촌뜨기가 서울특별시민 된 것만도 과분하다고 때 없이 피식피식 웃는다.

신동아 201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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