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만 왜곡시킬 수도
이번에 도입된 연봉 공개에 관한 법률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등기임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연봉을 많이 받는 임원은 등기를 꺼릴 것이다. 2002년 구 ‘증권거래법’에서 사외이사의 수를 이사 전체의 과반이 되도록 정했는데, 이때 기업들은 사외이사를 대거 임명할 경우 기업비밀의 누출 사고 등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이사 전체의 수를 대폭 줄였다. 근로자가 20만 명인 대기업도 등기이사 3명에 사외이사가 4명에 불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 등기임원의 개별 연봉이 공개되면 사내외의 모든 사람이 들여다볼 것은 자명한 일. 그러면 보수의 적정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이고, 노동조합의 중요한 투쟁 이슈가 될 수 있다. 임원들도 남의 주목을 받아 피곤해지느니 차라리 등기에서 제외되기를 원할 것이다.
지금도 등기이사를 단 1명만 두고 나머지는 전부 사외이사로 임명한 기업이 있다. 앞으로 많은 기업이 이러한 모델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엔 단 1명의 보수만 공개하면 된다. 사외이사의 연봉은 대체로 2000만~3000만 원 선이고 고액을 받는 경우에도 7000만 원을 넘지 않으므로 이러한 지배구조 모델은 법률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회사로서도 경비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 결국 실질적이고 중요한 업무는 미등기 임원들이 결정하고 집행할 것이다. 그들은 등기이사보다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고, 그 사실을 공개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이번 개정법은 경영책임자를 숨게 만들고 기업 지배구조를 왜곡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기업에서 각종 혜택과 비급여성 보수를 지급하더라도 그것은 공시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개별 임원에게 귀속되지 않은 공동사용 목적의 차량이나 시설 또는 업무추진비, 판공비, 이사책임보험의 보험료, 연금기여금, 세금보조 등도 보수에 포함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임원에게 지급해오던 스톡옵션도 보수에 포함될지 미지수다.
사기업의 보수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것은 기업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음성적 보수를 부추기며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일자리를 사라지게 할 위험이 큰 ‘실험’이다. 준(準)공공기관 성격을 띤 금융기관 임원의 보수 문제를 일반 기업 전체로 확대해 이를 공개하는 정책을 어설프게 실시하다간 실익도 없으면서 기업의 지배구조만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외국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보수 산정 기준과 산정 방법을 제시하도록 한 것도 상당한 분량을 차지해 연말결산 서류업무를 가중시킨다. 이는 기업에 비용을 강요하는 규제다. 또 기업 임원이 맡은 업무에 따라서는 산정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준법 감시실 임원이나 기업윤리 및 사회적 책임 담당 임원은 생산이나 영업 분야에 종사하지도 않는데, 무엇을 근거로 평가할 것인가. 현재 추진되는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은 기업인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기업의 엑소더스(exodus·대탈출)를 지원하기 위한 패키지 법률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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