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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심리 찬물 끼얹은 lose-lose 기싸움

한 달 만에 막 내린 ‘김중수의 반란’

  • 문병기│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

경기회복심리 찬물 끼얹은 lose-lose 기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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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심리 찬물 끼얹은 lose-lose 기싸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5월 9일 2013년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 때문에 현 부총리가 내정되자마자 금융시장에서는 한은이 곧 기준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김 총재 스스로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부터 정부와의 정책공조를 강조하며 금리인하 기대감을 키웠다.

일각에서는 금리 갈등의 이유를 이명박 정부 초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내 ‘MB맨’으로 분류되는 김 총재와 박근혜 정부의 껄끄러운 관계에서 찾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 새 경제팀이 출범하자마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낮추면서 경기 부진의 책임을 전임 정부로 넘기는 ‘빅 배스’(big bath·목욕으로 때를 씻어낸다는 뜻) 전략을 취하자 이명박 정부에서 한은 총재로 임명된 김 총재가 새 정부와의 공조 대신 갈등을 선택했다는 것. 김 총재는 2010년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당시 의원이 “한은의 뒤늦은 금리 정책이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하자 10여 분 동안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은 내부에서는 이런 김 총재가 4월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금리를 동결했던 배경으로 정부의 실책을 먼저 꼽는다. 온건한 성장중시론자인 김 총재가 한은 독립성의 투사처럼 변신한 데는 한은과 충분한 조율 없이 ‘밖에서’ 금리인하를 공론화한 새 정부의 ‘무리수’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상처만 남긴 금리 갈등

새 정부 경제팀과 한은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현 부총리가 취임 전인 3월 13일 인사청문회에서 “금융과 재정, 부동산 등 종합적인 패키지 형태의 경기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며 금리인하를 거론하면서부터.



현 부총리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기재부가 “현 부총리의 발언은 금리인하를 의미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3월 28일에는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정책점검회의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당연직 참석 멤버가 아닌 김 총재의 불참 사실을 부각하면서 청와대-정부와 한은의 불편한 관계는 계속됐다.

특히 4월 1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MB(이명박) 정부 때도 한은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굼뜬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말한 뒤 이틀 뒤에는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추경편성에 따른 국채금리 인상 우려를 설명하며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주면 좋다”고 연이어 한은에 돌직구를 날렸다. 기재부가 뒤늦게 열석발언권(금통위 참석 권한)을 포기하고 현 부총리도 금리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금리는 금통위의 고유권한이므로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물러섰지만 한은과 당정청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워졌다.

금리 압박이 거세질수록 한은은 4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정부의 압박에 굴복해 통화정책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한은 관계자는 “민감한 주제인 금리인하를 놓고 정부가 몇 번씩 노골적으로 언급한 것은 결국 한은의 퇴로를 차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가 불필요하게 한은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한은으로부터 ‘자발적인 지원’을 받을 기회를 스스로 내쳐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총재는 4월 6일 청와대 경제금융점검회의(서별관회의)에 불참하면서 김 총재와 현 부총리는 4월 18일 주요 20개국(G20) 회의 전까지 공식 만남을 갖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장관, 한은 총재가 새로 임명되자마자 회동을 하고 정책 조율에 나섰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달간의 금리 갈등은 한은에 적지 않은 부담을 남겼다. 4월 금리를 동결하면서 “책임질 것은 지겠다”며 정부와의 정책 대결을 선언했던 한은이 자존심을 꺾고 석연치 않은 금리인하에 나서면서 한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아예 이번 금리 갈등을 정권 교체 때마다 나타나는 한은과 정부의 의례적인 ‘기싸움’으로 보는 이도 적지 않다. 1998년 한은법 개정으로 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장(長)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한은 총재로 바뀐 뒤 임명된 총재는 김중수 총재를 포함해 4명. 이 중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임명돼 김 전 대통령 퇴임 전에 임기를 마친 전철환 총재를 제외한 박승, 이성태 총재는 모두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 금리 결정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한은은 못 이길 싸움”

하지만 결과는 모두 새 정부 경기부양 기조에 맞춘 한은의 금리인하로 끝났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경기부양책 필요성을 주장했을 때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맞섰던 박승 전 총재는 북핵 위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 등으로 경기가 급격히 악화되자 정부 출범 두 달 반 만에 금리를 인하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과 첨예한 갈등을 빚다가 그해 8월 정부의 의사와는 반대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정부와 여당 내에서 총재 해임론까지 불러왔던 이성태 전 총재는 곧이어 터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10월부터 12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금리를 끌어내려야 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정권이 교체되면 경기부양을 원하는 정부와 통화정책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한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하지만 저금리의 부작용보다는 경기부양의 효과가 더 눈에 띄기 때문에 결국 한은은 이기기 힘든 싸움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경제팀 역시 한은과 불필요한 금리 갈등을 촉발해 추경 편성을 통한 경기회복심리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게 됐다. 각국이 금리인하와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환율전쟁의 위험이 높아지는 가운데 ‘아베노믹스’로 인한 엔화 약세가 가속화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의 예상을 밑돌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은이 뒤늦게나마 금리를 인하하면서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올해 성장률 3% 달성의 기반을 만들어준 만큼 저금리 장기화로 인한 체감물가 상승이나 가계부채 증가 등의 부작용은 정부의 몫이 됐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정부와 한은의 정책공조 기조가 회복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불필요한 금리 갈등으로 경제상황에 선제적이고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신동아 201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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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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