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반역인가?
1990년대 중반 나는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가 완간된 직후, 프랑스어 번역 사업에 잠깐 말단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이때 번역자에게 가장 문제적으로 대두된 사안이 한국의 토속어들을 어떻게 프랑스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인가였다. ‘토지’야말로 한국어로 쓰였으되 한국어 독자들을 위한 ‘소설 토지 사전’이 필요할 정도였다. 이와 같은 사정으로, 안타깝게도 ‘토지’는 영어나 프랑스어 번역본이 초반 일부만 출간돼 있는 실정이다. 내가 천운영, 김언수를 선두로 파리에 소개되는 한국의 젊은 소설들의 동향을 주목하는 것은 위의 맥락과 관계가 있다.
‘맨해튼 컨설팅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식수나 음료수 대용으로 휘발유를 마시는 사람의 숫자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천사백 명이 넘는다. (…) 그들은 주로 런던, 파리, 뉴욕 같은 거대도시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부유한 사람들이며 게다가 회계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엘리트들이다. 그들은 피곤하고 지쳤을 때 드링크제처럼 휘발유를 마시는 것은 물론 요리재료로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 변화된 종의 징후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마땅한 정의가 학계에 나와 있지 않아 우리는 그들을 ‘징후를 가진 사람들’ 혹은 ‘심토머(symptomer)’라고 부른다. 심토머들은 생물학과 인류학이 규정한 인간의 정의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다. 그들은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 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쩌면 최후의 인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초의 인간일 수도 있다.
-김언수 ‘캐비닛’ 중에서
위의 인용에서 보듯, ‘변화된 종의 징후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김언수의 ‘캐비닛’의 경우, 국가나 대륙의 경계로부터 자유로운 2000년대 보르헤스적인 세계 소설, 또는 혼종적인 환상성(판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유명의 속성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변두리(경계), 연변 조선족들의 신산한 삶을 구체적으로 서사화한 천운영의 ‘잘 가라, 서커스’의 경우, 국지적이고 민족적인 특수성 때문에 고유명의 세계와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작품 전반을 감싸는 정조(情調)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곧 인물들의 대사, 그들이 뿌리내리고 산 고장의 삶의 언어인 사투리의 보장과 복원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여자는 아주 작고 마른 여자였다. 서류에는 스물다섯 살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어설픈 얼굴 화장 뒤에는 피곤한 기색이 깊게 스며 있었다. (…) 형은 여전히 냅킨을 접고 있었다. (…) 형은 네 개의 냅킨을 이어놓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광대였다. (…) 나는 종이광대를 슬쩍 보고 다시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한국에 시집오려 해요”
“….”
(…)
“말 못해요?”
“마흔 시간이나 차를 타고 왔슴다. 여기 오느라 직장도 그만두었에요.”
내내 말이 없던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천운영 ‘잘 가라, 서커스’ 중에서
혼종적인 판타지
천운영과 김언수는 1970년대 초에 태어나 2000년대에 활동하고 있지만 소설 세계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소설이라는 종자가 갖는 특수성인데, 소설은 작가의 이름과 얼굴만큼이나 다른 언어, 곧 작가 고유의 언어를 구사한다. ‘잘 가라, 서커스’를 쓰기 위해 작가는 연변에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현지어를 익히고, 현지 사람들과 살 비비며 살았다. 작가에게 어느 작품인들 산고(産苦)가 없으랴마는, 힘겹게 녹여낸 현지어와 고유명을 번역어로 살려내지 못하고 지워질 수밖에 없는 점을 작가는 번역의 아쉬움으로 꼽았다.
프랑스에 한국 소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한국문예진흥원의 지원 아래 한국인과 프랑스인의 공동 번역 형태로, 파리가 아닌 남프랑스 아를에 있는 악트 쉬드 출판사가 근거지였다. 이청준, 조세희, 이문열 등 한국 대표 작가들의 중편들이 문고판 형식으로 고급스럽게 출간됐다.
2000년대 전후에는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의 지원 중심으로 출간되고 있는데, 영미권이나 독일에 비해 활발한 편은 아니다. 프랑스뿐만이 아니라 해외의 경우 한국 소설의 번역 출간은 물론, 출간 즈음 한국 작가 현지 파견 행사에 이들 기관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세계 독자와 소통하는 경우는 김영하, 신경숙 이외에 드물다. 천운영과 김언수의 소설이 프랑스 파리에 착륙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만나기 위해 모인 파리지앵들 틈에서 지금까지 국가와 문화기관이 꾸준히 지원해온 한국문학의 축적된 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영토를 개척하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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