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디어 먼로, 단편소설을 읽는 시간

  •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13-12-19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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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어 먼로, 단편소설을 읽는 시간

    디어 라이프<br>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2013년 8월 파리, 한국어학과가 있는 13구 물랭거리와 동양어대학(INALCO) 부근을 산책하다가 근처 새로이 문을 연 서점 지베르 조젭에 들어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파리 시(市)와 13구가 새로 조성하고 있는 파리 대학 지구를 돌아보던 참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낯익은 얼굴들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마가쟁 리테레르’(문학잡지) 여름 특집호가 눈에 띄었다. 최근 영향력 있는 외국 작가 10명의 얼굴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었다. 모옌과 오르한 파묵 등 몇몇은 낯이 익었고, 자디 스미스와 앨리스 먼로 등 몇몇은 낯설었다.

    어딜 가든 발길은 서점으로 수렴되는 버릇대로 안으로 들어가 선 채로 문예지를 후르륵 훑어보았다. 흡사 박완서 선생의 모습을 다시 보듯 부드러운 미소로 비스듬히 정면을 향한 백발의 여성 노작가에 눈길이 멈췄다. 그녀의 사진 위에는 아직도 그녀를 만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듯 큰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먼로를 읽으세요, 먼로를!’

    어린 시절 나는 길게 뻗은 길 끝에서 살았다. 아니 어쩌면 내게는 길게 느껴졌던 길 끝에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집으로 걸어 돌아올 때, 내 등 뒤 진짜 타운에는 활기찬 분위기와 보도와 어두워지면 켜지는 가로등이 있었다. 매이트랜드 강에 놓인 두 개의 다리가 타운 끝을 표시했다. (…) 어머니는 나를 낳기 전에 두 번 유산을 했다. 그러니 1931년 내가 태어난 그해에는 틀림없이 흐뭇한 분위기가 감돌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암울해져갔다.

    -‘디어 라이프’ 중에서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



    3개월 뒤 먼로는 캐나다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82세, 2012년 소설집 ‘디어 라이프’ 출간을 끝으로 긴 작가 인생에 마감을 선언한 1년 뒤였다. 앨리스 먼로는 누구인가. 그날 나는 산책을 마치고 이날코 도서관에서 앨리스 먼로의 책을 찾았다. 동양어대학 도서실이니 그녀의 책이 있을 리 없었다. 가까운 국립 프랑수아미테랑 도서관이나 퐁피두 도서관으로 가든지, 인터넷 서점에서 전자책을 찾아봐야 했다. 한국에는 두 권이 번역되어 나와 있었고, 최근 몇 년 사이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던 캐나다 영화 ‘A way from her’(2007)의 원작이 그녀의 단편 ‘곰이 산을 넘어오다’(2001)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각색된 영화로나마 이미 먼로를 만났던 것이다.

    기억을 다 잃고 나면 그들은 대체 무엇을 할까?

    “어떤 사람들은 그냥 앉아 있죠. 어떤 사람들은 앉아서 울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집이 무너져라 소리를 지르죠. 모르는 게 차라리 나을 거예요.” 크리스티가 말했다.

    “일 년 넘게 방을 드나들어도 당신이 누군지 전혀 몰라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사를 하면서 집에 언제 갈 수 있냐고 묻죠. 갑자기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

    “(…) 정신을 찾았네, 라고 생각하지만 원래대로 돌아가곤 해요. (…)”

    -‘곰이 산을 넘어오다’ 중에서

    영화 ‘어 웨이 프럼 허’의 원작인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그랜트와 피오나라는 노년 부부에게 닥친 치매(알츠하이머)에 대한 이야기다. 전 세계 영화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된 미하일 하케네 감독의 ‘아무르’(2012)와 같은 주제인데, ‘곰이 산을 넘어오다’에서는 남편(그랜트)이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고 겪는 이야기, ‘아무르’는 요양원을 극도로 거부한 아내를 남편(조르주)이 집에서 간병하며 겪는 이야기다.

    위의 인용처럼 ‘곰이 산을 넘어오다’에서 피오나는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다 비정상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그랜트에게 곤혹스러운 상황을 안겨주는 경우이고, ‘아무르’의 안느는 점점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보다 못한 조르주가 베개로 숨을 멎게 해 최후를 맞는 경우다. 어떤 경우이든 정상 상태에 남겨진 남편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며 천형(天刑)이다.

    노년의 삶, 치매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먼로가 70세 때 발표한 소설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2001, 서정은 옮김, 뿔)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으로 제시한 주제들을 열한 편의 단편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맨 마지막 결혼의 장에 해당된다. 요양원 규칙상 피오나를 맡기고 한 달 만에 찾아간 그랜트는 50년간 함께 산 자신을 몰라보고 오브리라는 낯선 남자에게 온 마음을 쏟고 있는 뜻밖의 장면을 접한다. 먼로는 이 기막힌 사연을 태생지인 북미 캐나다의 차갑고 투명한 겨울 날씨만큼이나 정제된 문장으로 그랜트의 생각을 전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피오나가 오브리에게 쏟는 정성과 헤어진 뒤 보이는 슬픔의 강도가 클수록 독자는 그랜트가 결혼 후 피오나 모르게(그러나 대부분은 알게) 저지른 수많은 여성 편력에 대한 일종의 반전(복수)의 의미로 되새긴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곤 하죠.” 그가 말을 시작했다. (…)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면 슬픔에 사로잡히죠. 사실 제 아내 피오나가 그래요.”

    “당신이 그녀를 보러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네. 하지만 제 아내가 원하는 건 제가 아니에요.” 그가 대답했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 중에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수록 인간의 노년을 그리는 작품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 이전,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탐구의 방법으로 안락사를 심층적으로 다룬 것은 일본 작가들이다. 모리 오가이의 ‘다카세부네’(1916)와 후가자와 시치로 원작,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1982)가 그것이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각색한 영화 ‘어 웨이 프럼 허’를 처음 접한 2007년 전후, 나 역시 창작자로서의 관심이 인간의 여러 시기 중 마지막 몇 년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웰 빙)와 맞물려 어떻게 죽을 것인가(웰 다잉)에 소설적 주제가 맞추어져 있었고, 실제 그 시기 안락사 또는 존엄사를 투영한 단편 ‘환대’(2006)와 ‘구름 한 점’(2008)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한국 소설계에도 다양한 입장과 형식으로 노년의 삶에 주목했는데,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는 노인의 기억을 망상의 메커니즘으로 형상화한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2007)와 망상에 그치지 않은 실종의 메커니즘을 지극히 처연한 사모곡으로 그린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2008)가 대표적이다.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

    앨리스 먼로가 공식적으로 작가 인생을 마감하며 세상에 내놓은 마지막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작은 타운에서 태어나 성장한 일대기를 자전소설 형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서사가 응집된 에피소드와 마지막 장면은 파킨슨병을 앓다가 죽은 어머니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자신의 행위를 반추하고 있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리고 장례식에도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 내게는 어린 자식 둘이 있었는데 밴쿠버에는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거기까지 갈 경비가 없었고 남편은 의례적인 행동을 경멸했다. 하지만 그것이 왜 그의 탓이겠는가. 내 생각도 같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디어 라이프’ 중에서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가 2013년 수상자로 그녀를 지목한 이유를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밝힐 만큼 앨리스 먼로는 평생 단편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열한 살에 소설가를 꿈꾸었고, 19세에 첫 단편을 쓰지만, 작가로서의 공식적인 출발은 38세 때에 발표한 ‘행복한 그림자의 춤’(1968)이다. 그녀는 45년 작가 인생 중 총 14권의 소설책을 출간했는데, 그중 ‘소녀와 여자들의 삶’만 장편에 해당되고 모두 단편소설집이다.

    단편소설 장르로 말하자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이 강세다. 작가마다 서사를 다루는 호흡이 다르듯, 나라마다 서사를 기리는 바탕이 다를 수 있다. 한 작가가 단편과 중·장편을 모두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몇몇 작가는 단편작가로서의 기질과 미학을 운용하는 데 천부적이다. 캐서린 맨스필드, 앨리스 먼로, 오정희, 윤성희 등이 그들이다. 반면 단편과 장편 모두 넘나들며 인간의 내면과 세상의 심연을 날카롭고도 복잡미묘하게 그려내는 작가들이 있는데 박완서, 신경숙, 성석제, 김연수 등이 그들이다. 단편소설만으로 45년 작가 인생을 이끄는 데에는 재능 이외의 또다른 자질이 필요한데, 앨리스 먼로가 생애 마지막 소설집인 ‘디어 라이프’에서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은 소설의 제목인 ‘자존심’이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오래 살다보면 많은 문제들이 그냥 해결된다고. 선택된 사람들만 들어가는 모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살았건 그 시기에 이르면 많은 문제들이 상당수 해결된다. 모두의 얼굴이 고통을 경험했다. 당신의 얼굴만이 아니라.

    -‘자존심’, ‘디어 라이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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