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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로켓, 탱크, 핵무기, 레이저총…20세기 과학 발전 ‘상상력’ 원천

  • 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로켓, 탱크, 핵무기, 레이저총…20세기 과학 발전 ‘상상력’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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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탱크, 핵무기, 레이저총…20세기 과학 발전 ‘상상력’ 원천

우주전쟁<br>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권기대 옮김, 베가북스

일요일이던 1938년 10월 30일 저녁 7시 58분, 미국 CBS라디오는 드라마를 방송하다 말고 갑자기 뉴스를 전했다.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긴급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습니다. 화성인들의 군대가 뉴저지 주의 한 농장 부근에 착륙했습니다. 화성인들이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도로는 피란민 행렬로 북새통입니다. 미국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러자 뉴욕에서는 공포에 질린 수천 명의 시민이 진짜 피란에 나섰다. 뉴저지 주에서는 ‘유독가스가 퍼졌다’는 유언비어가 돌면서 20여 가구가 탈출을 시도했다. 피츠버그에서는 절망한 여성이 독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미국 전역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 훗날 600만 명의 청취자 중 12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보도했다.

‘겁먹은 사람들이 화성인의 독가스를 피하려 젖은 타월을 얼굴에 두르고 집을 뛰쳐나갔다. 서부에서는 로키산맥으로 향하는 피란민 행렬이 줄을 잇고 일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던 신자들은 종말이 왔다는 사실에 몸을 떨었다.’

이 뉴스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화성인의 습격’이라는 드라마의 일부였다. 뉴스를 보내기 전 드라마 제작자 오손 웰스는 성우의 목소리를 빌려 실제가 아니라 드라마라는 점을 몇 차례나 강조했다. 하지만 뉴스 형식을 동원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삽입하자 드라마를 듣던 청취자들이 실제 상황으로 착각한 것이다.

매스미디어 역사상 가장 큰 해프닝으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당시 23세이던 웰스는 ‘천재적 연출가’ ‘드라마의 신동’으로 불렸다. 웰스는 영화사에 스카우트돼 3년 뒤인 1941년 ‘20세기 최고의 영화’로 격찬받은 ‘시민 케인’을 만들었다.



인간의 만행 비판

드라마 ‘화성인의 습격’은 영국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공상과학소설 ‘우주전쟁’(원제 The War of the Worlds)을 각색한 것이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됐다. ‘우주전쟁’은 드라마보다 40년 전에, 지금으로부터는 115년 전인 1898년에 첫 출간됐다.

문어처럼 생긴 괴물 화성인들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앞세워 지구를 침공하는 게 줄거리다. 이 작품은 주인공 ‘나’의 적막하고 불길한 목소리로 시작된다. “19세기 마지막 몇 년, 만약 인간보다 높은 지능을 소유했으면서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결국 죽게 마련인 존재에 의해서 이 세계가 날카롭고 면밀하게 관찰되고 있다면,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으리라.” 주인공은 ‘유일한 지성체는 자신’이라고 믿는 인간의 오만함과 인간보다 뛰어난 외계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러던 20세기 초 어느 날, 그가 사는 영국의 작은 마을에 화성에서 날아온 실린더 모양의 우주선이 착륙한다. 그들은 화성에 종말이 닥치자 지구를 찾아온 것. 그날 밤 우주선 안에는 거대한 눈과 촉수를 가진 화성인이 숨어 있다가 초록색 열선(熱線)과 독가스를 발사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런던은 곧 초토화한다. 화성의 우주선이 연이어 도착하면서 전투 기계로 무장한 화성인들이 지구를 점령해나간다.

지구에서는 각종 무기로 대항한다. 지구인들은 19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핵무기까지 등장시키지만, 화성인은 그마저 쉽게 무력화한다. 생존자들은 지구가 화성인에게 정복당했다고 절망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성인들이 죽어간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것. 지구의 미생물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성인들이 모두 죽자 생존자들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우주에 있음을 깨닫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외계인의 침공에 대비하기로 한다.

이 작품은 다양한 인물의 심경 변화와 행동을 통해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이렇게 비판한다. “인간은 끝없는 안이함으로 그들의 하찮은 일에 정신이 팔려 이 지구 위를 오갔으며, 자신들의 왕국이 물질을 지배하고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차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지구상의 인간들은 기껏해야 이런 식의 공상에 빠졌다. ‘화성에도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 몰라. 아마도 우리보단 열등한 존재라, 우리가 사절단이라도 보낸다면 크게 환영할걸.’”

소설은 인간의 잔혹성도 신랄하게 꼬집는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젠 사라지고 없는 들소나 도도새 따위의 동물뿐 아니라 그보다 더 열등한 생물들에게도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철저한 파멸을 야기시켰는지를. 호주 태즈메이니아인들은, 영락없이 인간과 같았음에도, 유럽에서 이주해온 자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불과 50년 만에 완전히 멸종당하고 말았다. 만약 화성인들이 이와 같은 생각으로 전쟁을 걸어온다면, 우리가 무슨 불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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