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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는 왜 시계로 로비를 했을까?

  • 이은경 │시계 컨설턴트 blog.naver.com/veditor

CJ는 왜 시계로 로비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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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는 왜 시계로 로비를 했을까?

까르띠에 발롱블루, 파텍필립 월드타임, 프랭크뮬러 롱아일랜드(왼쪽부터).

시계를 뇌물로 건네는 까닭

세상의 수많은 값비싼 물건 중 유독 시계가 로비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로비의 대상이 대부분 성공한 남자이며, 그들이 고가의 시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개당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명품 시계 매출은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명품 시계의 매출은 해마다 급속도로 늘었다. 그만큼 고가 시계의 인기가 높다. 시계는 남자가 착용하는 가장 비싼 액세서리다. 과거에는 수백만 원대 시계를 접하는, 처음이자 유일한 기회가 결혼식 때였다. 언제부터인가 사정이 변했다. 성공한 남자들이 명품 시계를 소비하기 시작한 것.

직접 구입하기엔 값이 부담스러운 명품 시계를 선물로 받는다면 어떨까. 여자들이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로 받았을 때의 기쁨보다 더 클 것 같다.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값비싼 명품 시계를 선물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 그렇기에 명품 시계를 선물로 받았을 때의 기쁨은 상당할 것이다. 선물로 위장하고 로비 수단으로 명품 시계를 건네는 데는 이런 까닭이 있다.



시계가 로비에 자주 이용되는 또 다른 이유는 누가 샀는지, 누구에게 건네졌는지 등 종적을 추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액의 현금이나 유가증권, 자동차 등은 추적이 가능하지만 시계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명품 시계 제조사 대부분은 브랜드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의 고객 리스트를 보관하면서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 하지만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는 터라 외부에 절대로 유출되지 않는다. 단 몇 개만 생산하는 수억 원짜리 시계도 구입자가 누구인지는 절대로 알리지 않는 것이 시계 업계의 룰이다. 그러니 시계를 뇌물로 받은 사람은 행여나 적발될까 하는 걱정이 덜하다.

돈 주고도 못 사는 시계

CJ는 왜 시계로 로비를 했을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같은 스위스제 피아제 보석시계 세트.

시계 로비가 화제가 되는 것은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때마다 베이징의 명품 업계가 특수를 누릴 정도로 공산당 관리들에게 고가의 사치품을 뇌물로 주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올해 2월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새 지도부가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뇌물이 오고 갔는지를 증명하듯 부정·부패와의 전쟁 선포 후 중국 내 고가 시계 매출이 현격하게 줄었다. 2013년 1~3월 스위스의 시계 수출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2.4% 늘었지만 대(對)중국 수출은 26%나 줄었다.

시계가 은밀한 선물로 사용되는 데는 자산 가치가 높다는 점도 한몫했다.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5년 전에 사서 차고 다니다 되판다고 가정해보자. 중고 시계를 5년 전의 새 시계 가격과 비슷한 수준에 팔 수 있다. 2003년 서브마리너의 가격은 500만 원대였지만, 지금은 1000만 원이 넘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계의 가치가 매년 오르고 있기 때문에 중고 시계의 가격도 높게 형성돼 있다. 샤넬 가방의 가격이 매년 급상승하는 데다 한국 내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비싸기 때문에 수년 전에 사둔 가방을 되팔거나 외국에서 싸게 구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것을 ‘샤테크’라고 하는 것처럼 시계에도 ‘시테크’라는 말이 생겨났다.

2000년대 들어 골드 소재로 만든 시계가 인기를 끌었다. 금값이 오르면서 시계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최근 금값은 소폭 하락했지만 금값 때문에 오른 시계 가격은 내리지 않았다. 브랜드는 디자인이나 구성을 조금씩 변경한 모델을 선보이며 그때마다 일정액씩 시계 가격을 올린다. 시계 가격이 점점 올라가는 것은 고가의 시계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늘어나서다.

매년 적게는 수천 개에서 많게는 100만 개 넘는 시계를 생산하는 각 브랜드의 인기 모델은 최소 몇 달에서 1년 이상을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파텍필립 월드타임 모델이다. 1년에 5만 개가량의 시계만 생산하는 파텍필립은 기계식 시계 애호가들이 꼽는 최고의 브랜드다. 그중에서도 월드타임 모델은 ‘갑 중의 갑’. 돈을 주고 사려 해도 살 수 없는 시계다. 다이얼에 에나멜로 지구 모양을 그려 넣은 플래티넘 소재의 월드타임 모델 신제품 가격은 현재 8000만 원대다.

그런데 이 모델의 중고 제품 가격은 대부분 그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1년에 생산하는 시계의 양이 극히 적고, 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판매하는 모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이 시계를 구입한다. 1946년 제작한 월드타임 플래티넘 모델이 2002년 경매에서 400만 달러에 낙찰된 적도 있다. 경매 사상 손목시계 중 최고가를 기록한 것.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 시계 경매시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지만, 홍콩 뉴욕 제네바 등지에서 시계 경매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희소성 높은 모델은 높은 가격에 낙찰되기 때문에 시계를 잘 관리하고 보관한다면 언젠가는 높은 가치로 되팔 수 있다. 기계식 시계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환금성도 덩달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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