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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제2의 ‘부안 사태’ 피할수 있나

한국 원자력계 ‘폭풍 속으로’

  • 이정훈 | 편집위원 hoon@donga.com

불붙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제2의 ‘부안 사태’ 피할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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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10만 년 지속

불붙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제2의 ‘부안 사태’ 피할수 있나

사용후핵연료에서 나온 열로 수조의 물이 증발해 수소폭발이 일어난 후쿠시마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수조 건물.

사용후핵연료에선 수십 년 동안 물을 펄펄 끓일 수 있는 열이 나오므로 그 기간에는 수조에 넣어놓고 관리해야 한다. 어느 정도 식었다 싶을 때 꺼내 방사선을 차단하는 통에 넣어 보관하거나 영구처분한다. 2011년 현재 미국은 103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이들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의 총 누적량은 6만5200여t이다(2011년).

사용후핵연료에서는 강한 방사선이 나오는데, 이는 10만여 년이 지나야 자연방사선 정도로 세기가 떨어진다. 인류가 문자로 기록을 해온 역사시대는 2000~ 3000년에 불과하다. 10만여 년은 인류가 기록을 남겨보지 못한 긴 시간인데, 그 사이 지각변동 등 어떤 재해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재해가 일어나면 영구처분한 사용후핵연료가 튀어나와 인류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생물에게 피해를 주고 먹이사슬에 의해 인류에게 간접 피해를 주는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

미국은 이런 사정을 고려해 모든 생물이 접근할 수 없고, 지각변동을 포함한 어떤 재해가 일어나도 변화가 없다고 판단되는 두꺼운 암반 수백m를 파고 들어가, 쌓여가는 사용후핵연료를 매립하기로 했다. 그리고 매립 입지로 네바다 주의 유카(Yuca) 산 등 세 곳을 선정했다. 세 곳을 정밀 조사해 가장 조건이 좋은 곳에 영구처분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암반 수백m를 파고 들어간 곳에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하고 주변 환경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지각변동을 일으키지 않는지 등을 조사하는 비용이 ‘숨이 턱 막힐’만큼 엄청날 것으로 예상됐다. ‘궁하면 통한다’고 미국은 바로 지혜를 짜냈다. 가장 안전한 곳으로 보이는 유카 산에만 실험시설을 갖춰 계측해보고, 문제가 없으면 그곳을 영구처분장으로 하자고 결정한 것. 방폐물 정책법도 그에 맞춰 개정했다(1987년).



날아간 20년, 20억 달러

그러자 네바다 주 주민들이 “왜 우리가 사는 지역을 방폐장 부지로 선정했느냐”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은 법치를 중시하기에 국익상 필요하면, 그리고 법에 근거한 것이면 일부에서 강력하게 저항해도 밀어붙인다.

미국 에너지부는 유카 산의 깊은 암반 속에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했을 경우 주변 환경이 받게 될 영향을 계측 실험했다. 이 실험은 20년이 지난 2007년에 마무리됐는데, 별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듬해 조지 W 부시 정부는 예정대로 유카 산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을 짓는다는 결정을 내리고 필요한 인허가 절차를 밟았다. 그러자 네바다 주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강력히 반대했다.

바로 그해(2008년) 미국에선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유카 산 영구처분장 건설에 반대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당선됐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과 의기투합한 이가 2005년부터 상원에서 민주당 원내총무를 맡아온 네바다 주 출신의 해리 리드 의원이다. 리드 의원은 1987년 네바다 주 주의원으로, 유카 산만을 대상으로 영구처분장 실험시설을 짓는다는 정부 정책에 강력히 반대했다.

리드 의원 등의 지원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9년 초 유카 산 처분장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리고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블루리본 위원회’를 만들었다(2010년). 2년 후 이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사용후핵연료는 재처리하지 말고 애초 계획대로 영구처분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폐로 원전 등 여러 원전에 분산 수용된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어려움이 있으니, 한곳에 모아 집중관리하는 중간관리시설을 짓는다. 중간저장시설은 에너지부가 아닌 별도 기관이 담당한다. 이 시설은 유카 산이 아닌 다른 곳을 선정해 짓는데, 반드시 지역 주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유카 산에 영구처분장을 만들기 위해 벌여온 모든 작업이 공중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위원회는 미국 정부가 20여 년간 20억 달러 이상을 투입했는데도 다시 새로운 곳을 선정해 유사한 실험을 하고 처분장이 아닌 중간저장시설을 지으라고 했다.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다. 에너지부는 2021년까지 실험용 중간저장시설을 지어 안전성 여부를 살펴보고, 문제가 없으면 2025년 중간저장시설을 완성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日, 기민하게 중간저장시설 건설

불붙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제2의 ‘부안 사태’ 피할수 있나

지역 발전을 위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유치한 스기야마 무쓰 시장.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사고를 당한 도쿄전력 등 9개 발전회사가 원자력발전을 하고 있다. 미국이 유카 산에 실험시설을 설치해 각종 계측을 하고 있던 2000년 일본 본토 최북단 아오모리(靑森)현의 무쓰(陸奧)시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유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무쓰시의 결정을 이끌어낸 것은 도쿄전력과 J-파워 2개 발전회사였다.

무쓰시는 두 회사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만 중간저장하기로 하고 2006년 공사를 시작해 올해 8월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무쓰시는 재처리공장이 있는 롯카쇼무라 북쪽에 있는 한촌(寒村)이다. 이렇다 할 경제활동이 없어 적자가 적지 않은 지역이라, 중간저장시설을 유치해 이를 해소하려고 한 것.

중간저장시설인 만큼 지하암반을 뚫어 매립하지 않는다. 지반이 안정된 지상에 건물을 짓고 사용후핵연료를 캐스크(cask)라는 통에 넣어 이 건물 안에 보관한다. 이 통은 한국의 두산중공업에서도 제작한다.

운영기간은 50년. 50년 뒤에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영구처분장을 지을 것이니 그때 그곳에 보관해온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처분장으로 옮긴다.

그러나 영구처분장 건설이 지지부진하고 주민들의 동의가 있으면 기한을 연장할 수도 있다. 반대로 안전성에 문제가 있으면 주민 결정으로 폐기할 수도 있다.일본은 ‘법대로’ 밀고 나가다 ‘정서 민주주의’에 좌절한 미국과는 반대로 주민 정서에 호소했다. 도쿄전력 등은 ‘지역을 발전시키려면 혐오시설이지만 안전한 시설을 유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주민을 설득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무쓰 중간저장시설은 두 회사만의 것이기에 일본은 이것과 별도로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결정할 ‘원자력발전환경정비기구’라는 이름의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었다. 일본도 국가 차원에서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방향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회가 결정을 내리기 전 일본은 무쓰에 중간저장시설을 완공하고 롯카쇼무라의 재처리 공장도 가동에 들어간다. 일본 국민은 사용후핵연료를 여러 방향으로 처리 처분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중간저장시설 건설로 해결하게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한국은 외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한미원자력협정이 평화 목적의 재처리를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년 후 한미원자력협정이 한국의 평화적인 재처리를 허용하는 쪽으로 개정되지 않는다면 한국 원자력계는 일본을 계속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는 일본보다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발생 위험이 작다’고만 자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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