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BEYOND SCIENCE

‘죽은 자의 영혼’과 ‘우주 의식 저수지’ 사이

다윈과 퀴리 부인은 왜 영매술에 빠졌을까

  • 맹성렬 |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sunglyulm@gmail.com

‘죽은 자의 영혼’과 ‘우주 의식 저수지’ 사이

2/3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성 과학자로 물질의 근본적인 구조를 파헤쳐 두 차례나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던 그녀가 왜 이런 비이성적인 실험 현장에 주역으로 참여한 것일까. 그 이유를 찾아내려면 한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마리 퀴리의 남편 피에르 퀴리는 강령회를 ‘과학적 실험’이라고 할 만큼 심령현상에 우호적이었다. 1905년 여름, 파리에 머물던 그 영매를 대상으로 피에르 퀴리와 샤를 르세는 특별한 실험을 했다. 그들은 영매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고 강령회장을 용의주도하게 준비했으며, 그들이 잘 아는 소수 인원만 배석시켜 공모에 의한 눈속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영매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고 피에르 퀴리는 이 모든 일이 어떤 속임수로도 불가능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1906년 4월 교통사고로 죽기 닷새 전 피에르 퀴리는 절친한 동료에게 그 영매가 보여준 능력에 관해 편지를 쓰면서 “이 우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퀴리 부부와 교류하던 노르웨이 출신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셜록 홈스’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작가 아서 코넌 도일, 프랑스의 수리물리학자 앙리 푸앵카레, 그리고 전화를 최초로 발명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그레이엄 벨 등도 퀴리 부부와 함께 여러 차례 강령회에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마리 퀴리는 남편이 죽기 전에는 강령회 참석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남편의 강권에 마지못해 끌려가는 식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뒤 마리 퀴리는 영혼의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혹시 남편의 영혼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주도적으로 강령회에 참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 격변의 시대



‘죽은 자의 영혼’과 ‘우주 의식 저수지’ 사이

최면 요법

저명한 과학자가 강령회에 참가한 예는 이들뿐만이 아니다. 1931년 미국의 한 소설가 집에서 열린 강령회에는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참석했다. 아인슈타인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업튼 싱클레어와 절친했다. 그의 작품에 열광했으며 정치적 성향도 잘 맞았다. 1930년경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초빙으로 아인슈타인이 캘리포니아에 1년 남짓 머무르게 됐을 때, 마침 그곳에 살고 있던 싱클레어와 교제할 시간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 이외 분야의 멘토 격인 싱클레어를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함께 영화를 보면서 일상을 즐겼다.

1931년 초 어느 날 싱클레어는 파사데나의 자택에서 연 강령회에 아인슈타인과 함께 절친한 과학자 2명을 초대했다. 이들은 얼마 후 맨해튼 프로젝트(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주도한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의 수석 과학자문이 되는 리처드 톨먼과 칼텍의 이론물리학 교수 폴 엡스타인이었다.

이들이 영매와 함께 탁자에 둘러앉아 시연을 보려 할 때 싱클레어가 “너무 놀라지 말라”고 사전 경고를 했다. 그에 따르면 이 영매는 지난번 강령회에서 탁자를 공중부양시켰다는 것. 아인슈타인의 비서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헬렌 두카스의 기억에 따르면 영매는 갑자기 몸이 경직되면서 트랜스 상태에 빠져들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테이블은 몇 번 흔들리기만 하고 공중부양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 그때 초인종이 울려 일행은 잠시 긴장했다. 두카스는 이웃의 누군가가 신고해서 아인슈타인이 해괴한 집회에 참여한 것이 들통 나는 게 아닌가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결국 강령회는 실패로 끝났다. 몹시 흥분한 싱클레어는 일행 중에 강한 불신자가 있으며, 그 사람 때문에 실패했다고 불평을 쏟아냈다.

오늘날 마술사들은 빌딩을 사라지게 하거나 벽을 뚫고 지나가는 등의 놀라운 마술을 보여준다. 하지만 누구나 그것이 눈속임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왜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지성들은 영매술에 매혹되어 그것이 진짜라고 믿었던 걸까. 무엇보다 피에르 퀴리가 시도했듯,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한 상황에서 영매들이 조작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놀라운 현상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며 당시 시대상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대의 지성들은 원자나 방사능,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 새로운 발견에 의해 그 이전까지 믿고 있던 사실들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과학적 격변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 따라서 어떤 비상식적인 주장도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었다. 그런 마음가짐이 영매술에 대해서도 관대하거나 호기심을 갖게 했을 것이다.

물리적 영매, 심리적 영매

세계의 지성들이 영매술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근원지는 영국 런던이었다. 이곳에서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출신 학자들을 중심으로 1882년 세계 최초로 심령연구협회(SPR·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가 결성됐다. 영국 학자는 아니지만 샤를 르세도 초창기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다윈, 퀴리 부부, 아인슈타인과 관련된 영매는 각각 찰스 윌리엄스, 유자피아 팔라디노, 카운트 오스토자였다. 이들은 모두 물리적 영매들로 물건을 공중부양하거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사람들을 만지거나 연주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이와 상대적인 개념인 심리적 영매는 상대방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아맞히는 능력을 발휘한다.

물리적 영매 중에는 유자피아 팔라디노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 놀라운 능력으로 당대의 많은 지식인을 경이롭게 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팔라디노는 19세기 말~20세기 초 30여 년 동안 이탈리아 폴란드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지에서 열린 강령회를 통해 유럽 지성들에게 영매 능력을 시연하고 다녔다. 팔라디노는 탁자의 네 다리를 동시에 공중으로 들어올렸고, 멀리 떨어진 물체를 공중부양하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참석자들의 얼굴과 신체를 더듬게 했고, 진흙에 손이나 얼굴 모습이 찍히도록 했다. 또한 탁자 밑에 놓아둔 악기를 손이나 발을 대지 않고 연주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발광하는 유령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기도 했다. 샤를 르세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이 모든 능력을 진짜라고 믿었다. 코넌 도일은 1926년에 쓴 ‘심령주의의 역사(History of Spiritualism)’에서 팔라디노가 보여준 심령 능력과 유령 현상을 극찬했다.

2/3
맹성렬 |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sunglyulm@gmail.com
목록 닫기

‘죽은 자의 영혼’과 ‘우주 의식 저수지’ 사이

댓글 창 닫기

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