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상곤 박사의 ‘왕의 한의학’

心膽虛怯 ‘내향성 스타일’ 약물 처방만 100여 종

잦은 병치레…‘국민 약골’ 순조

  •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心膽虛怯 ‘내향성 스타일’ 약물 처방만 100여 종

2/4
동서양 질병 패턴은 동일

순조는 한의학의 도움으로 여러 차례 전염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런데 한의학으로 전염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한의학의 탄생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이론이 아니라 전염병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일반인은 한의학의 원조라면 화타(華陀·중국 후한 말기~위나라 초기의 명의)나 편작(扁鵲·중국 전국시대의 명의)을 떠올리지만, ‘한의학의 히포크라테스’는 동양의학의 원전 중 하나인 ‘상한론(傷寒論)’을 지은 장중경이다. ‘처방’이란 말 자체가 장중경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한론 서문은 전염병으로 죽어간 자신의 피붙이에 대한 애끊는 애정과 자괴감으로 시작한다. “나는 종족이 많아서 전에는 200이 넘었다. 그러나 상한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3분의 2가 넘었다…이 처방으로 모두 낫게 할 수는 없지만 절반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의 시대적 배경은 공교롭게도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이다. 역사서에도 당시의 참상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삼국지 무제기(武帝記)는 “조조가 적벽에 이르러 유비와 싸워 유리하지 못했다. 여기에 더욱 큰 병이 있었다. 관리와 병사들 가운데 죽은 사람이 많아서 이에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라고 담담히 전한다. 조조의 아들 조식은 좀 더 구체적이다. “집집마다 엎어진 시체들의 아픔이 있었으며 어떤 경우는 전 가족이 죽었다…부유한 사람이 죽은 경우는 적었고 가난한 이들이 대체로 죽었다.”

상한론의 치료방법은 전염병의 변화과정에서 나타난 증후들을 귀납적으로 파악해 6가지 증후군으로 나눈다. 첫 번째인 호흡기에서 소화기를 거쳐 마지막인 생식기로 전이되는 과정에 따라 각기 땀을 내거나 구토 혹은 설사를 시키면서 이물질을 죽이지 않고 밀어내는 관용의 치료법을 정한다.



질병의 전이과정은 그리스 아테네의 멸망을 기록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기록과 세밀하게 일치한다.

“처음에는 오한, 발열과 눈의 충혈, 재채기와 기침이 뒤따른다…마침내 위장장애를 일으켜 설사와 구토가 시작되고 피부에 작은 농포와 궤양이 생긴다. 심하면 8일째를 넘기지 못하고, 살아남아도 생식기가 파괴되고 실명(失明)과 기억상실에 걸린다.”

동서양으로 나뉘어 있지만 질병의 패턴은 정확히 호흡기에서 소화기로, 다시 생식기로 감염되면서 끝을 맺는다. 많은 연구자는 발진티푸스를 이 전염병의 원흉으로 지목한다.

현대의학이 직접 바이러스나 세균을 죽이는 치료를 한다면, 동양의학의 기본 정신은 자연과의 조화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그것을 죽이기보다는 빨리 쫓아낼 생각을 한다. 죽여놓으면 간과 콩팥 등에 부담을 주고 뒤처리가 힘들기 때문이다. 호흡기엔 땀으로 발산하는 약을 처방하고 소화기엔 설사로써 밀어내고 생식기에선 내면의 온도를 높여 저항력을 기르는 방식이다. 현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 한의학은 저항력을 기르고 보(補)하는 방식뿐이지만 한의학의 처방들은 훨씬 실증적이며 현실적인 치료의학이다.

순조는 전염병에 혼이 났을 뿐만 아니라 당시로선 새로운 전염병이던 콜레라로도 곤욕을 치른다. 순조 21년, 평양부 감사가 처음 보고한 전염병의 양상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갑자기 괴질이 발생하여 토사와 관격, 즉 구토, 설사와 가슴이 막혀 타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다 잠깐 사이에 사망한 사람이 1000여 명이나 된다”며 안타까워한다. 콜레라는 한자로 호열자(虎列刺)다. 호랑이가 물어뜯는 듯한 고통을 호소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당시엔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백련교도들에게 혐의를 돌리기도 했다.

“서장관 홍언모는 백련교도들이 우물에 독약을 뿌리고 오이밭에 독약을 뿌려 생긴 질병이라고 추측하면서 의심나는 몇 사람을 체포하여 실증을 얻어 조사 중이다”라고 보고한다. 당시 사망한 사람이 거의 1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전염병을 앓은 셈이다.

세도정치로 인한 스트레스

정작 순조를 괴롭힌 건 왕 노릇으로 인한 스트레스다. 정순왕후의 섭정으로 주눅이 든 데다, 다시 여우를 피하다 만난 호랑이처럼 처가 쪽 김조순의 세도정치로 기를 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조증상은 신경성 질환으로 불리는 편두통처럼 다가온다. 순조는 재위 10년을 맞으면서 귀 주변이 땅기고 아프다는 고통을 호소해 육화탕을 처방받는다. 귀 주변이 아프고 땅기는 건 편두통 증상에서 흔한 전형적인 증상이다.

그런데 의관들은 신경성 증상을 중이염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염증성 증상에 투여하는 형개연교탕과 만형자산을 처방했다. 신경성 증상을 염증성으로 착각한 것도 무리일뿐더러 본래 속이 약한 사람에게 생지황이나 찬 성질의 약을 처방하니 소화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의관들은 설사와 식욕부진에 쓰는 건비탕을 급히 다시 지어 올린다.

순조가 본격적으로 신경성 증상을 호소한 때는 다음 해인 재위 11년이다. 순조는 전좌(殿座)하는 일이 자주 있다고 걱정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전좌 증상을 앉아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불안증세로 파악했다.

“근래에 전당에 임어하심이 거의 빠지는 날이 없으시니, 성궁의 노고는 이미 말할 수 없지만, 전좌하셨을 적에는 그 일을 끝낸 적이 없으며, 출궁이나 환궁하는 경우에는 매번 허둥대며 급히 서두르는 탄식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비록 화기(火氣)가 쌓인 증세로 인연하여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답답함을 소통시키는 자료로 삼기는 하지만….”

순조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내 마음을 내가 도리어 알지 못하는 때가 있다.” “평상시에도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걸어다니는 소리 같은 것도 역시 모두 듣기가 싫다.”

2/4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목록 닫기

心膽虛怯 ‘내향성 스타일’ 약물 처방만 100여 종

댓글 창 닫기

2021/05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