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 이종각 지음, 서해문집, 280쪽, 1만2900원지인들은 졸저가 출간되자 “난학이란 말이 무슨 뜻이나”고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쇄국정책을 취하던 에도시대 일본이 서양 국가 중 유일하게 통상을 허용한 네덜란드를 화란(和蘭)이라 표기했는데, 이에 따라 네덜란드 학문을 난학(蘭學)이라고 한다. 난학이란 말을 모르니 난학을 개척한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1733~1817)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 체류 10년째에 접어들던 어느 날, 일본인 지인으로부터 스기타 겐파쿠를 처음 전해 듣고 평전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국내에는 난학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고, 이를 주도한 겐파쿠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여서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771년 초봄, 에도(현재의 도쿄)의 한 형장에서 일본 근대 의학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일본의 근대를 바꾸는 단서가 되는 일이 일어났다. 에도 각 번의 시의(侍醫·다이묘(大名) 등을 진료하는 의사)들이 이 형장에서 인체 해부를 처음 참관하고, 모종의 결의를 한 것이다. 이날 겐파쿠를 포함한 의사 셋은 인체 내부를 처음 봤고, 일본에 전해 내려오는 옛 중국 의서에 실린 인체도는 실제와 다른 반면 자신들이 갖고 간 네덜란드 인체 해부서에 실린 것은 실제와 정확히 같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의사라면서 인체 구조도 제대로 모른 채 주군을 모시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반성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해부서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로 결의한다. 하지만 그 결의는 무모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겐파쿠는 알파벳도 몰랐고, 다른 두 사람도 네덜란드어 실력이 극히 초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번역 도구라고는 조잡한 필사본 네덜란드어-일본어 단어장 한 권 정도였다. 이들이 네덜란드어 의학 전문서적을 해독하고 번역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들은 약 3년에 걸친 고심참담(苦心慘憺),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번역을 마치고 번역서를 출간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해체신서(解體新書)는 일본 역사상 첫 번역 서양 의학서이자 일본 근대 의학의 여명을 밝힌 쾌거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의 출간은 이후 난학이 일본에 융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해체신서’ 출간 이후 난학은 일본 근대 의학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 나아가 교육, 사고방식, 관습 등 일본인과 일본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퍼져나갔다. 일본이 서양식 근대화를 이루는 하나의 토양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위업으로 겐파쿠는 일본에서 ‘난학의 선구자’ ‘일본 근대 의학의 개척자’로 칭송되고 있다. 겐파쿠 등이 보여준 ‘의사라면서 인체구조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려는 자세는 프로페셔널의 귀감이라 할 만하다. 또한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에 도전해 악전고투 끝에 새로운 길을 열어나간 것은 바로 창의, 개척정신의 발로다. 이들의 자세는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것이 언뜻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겐파쿠의 행적을 더듬어보는 이유다.
이종각 | 동양대 교수, 한일관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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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실록 | 박영규 지음‘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쓴 저자가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 광복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 10명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를 정리했다. 대통령은 한 시기를 상징하는 존재로 대통령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그 개인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 시대를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는 게 저자가 이 작업을 한 이유다. 대통령마다 재임 당시 정치·외교·국방·경제·사회·문화를 움직인 주요 사건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 시대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재임 기간뿐 아니라 성장 과정과 퇴임 후까지 포함해 한 인물에 대한 총체적 서술을 시도했다. 왜 그가 그 시기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는지,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 대통령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그가 대통령의 자리를 어떻게 지켰고 무엇 때문에 위태로워졌는지 등에 대한 답을 독자와 함께 찾고 있다.
웅진지식하우스, 536쪽, 1만8000원스위스에서 배운다 | 장철균 지음스위스는 국토 면적이 남한의 40%에 지나지 않고 인구 780만 명인 작은 나라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 7만 달러, 세계 1위의 청정국가, 국민행복지수 세계 3위인 복지 선진국이다. 스위스는 한국과 닮은 점이 많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같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외세와 전란에 시달렸고, 국토의 75%가 산과 호수여서 줄곧 척박하고 가난했으며, 지하자원도 없어 믿을 건 인적자원뿐이다. 게다가 독일계 프랑스계 이탈리아계가 모여 살며, 사용하는 언어는 4개나 된다. 전 스위스 대사인 저자는 스위스의 성공 비결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한국이 스위스에서 배울 점을 소개했다. 스위스의 정신을 독립성, 중립성, 자율성, 타협성, 실용성, 창의성, 근검성, 준비성 등 여덟 가지로 설명한 저자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 스위스 국가경쟁력의 근원이라고 분석했다.
살림, 256쪽, 1만5000원넬슨 만델라 어록 | 넬슨 만델라 지음, 윤길순 옮김지난해 말, 향년 95세로 세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의 주옥같은 어록은 그 깊은 울림이 지금도 전 세계인을 감동시킨다. 하지만 그의 말이 회자되는 과정에서 실제 발언과 다르게 인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넬슨 만델라 메모리센터에는 전 세계로부터 만델라 말의 진위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이 책이 만들어진 이유다. 만델라의 개인 문서와 연설문, 편지, 음성 기록 등 지난 63년간 방대한 자료를 조사해 진위를 가린 뒤, 그의 삶의 지혜, 철학 등을 보여주는 어록을 추린 ‘만델라 사전’이라 할 수 있다. 2000여 개의 어록을 ‘책임(Accountability)’에서 ‘시오니즘(Zionism)’까지 217개 주제로 나누고, 이를 다시 연대순으로 정리해 그의 신념이 어떻게 발전했고, 끝까지 변하지 않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알에이치코리아, 610쪽,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