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노래가 있는 풍경

혁명가가 부르는 시대의 노래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

정태춘 ‘북한강에서’

  •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혁명가가 부르는 시대의 노래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

2/2
개구리복과 ‘북한강에서’

30대 어느 날 새벽, 그는 예비군 동원훈련에 소집된다. 서울 근교 초등학교 운동장에 소집당한 개구리복의 30대 예비군 아저씨들은 지금은 없어진 대한통운 트럭에 짐짝으로 던져졌다. 호로도 없는 트럭은 새벽 강 안개를 뚫고 동원훈련장이 있던 북한강변을 쉴 새 없이 달렸고 감수성이 빼어난 낭만적인 30대 아저씨는 개구리복을 입은 그 순간에도 노랫말을 메모하고 콩나물 대가리를 열심히 그려댔다.

그해 예비군 동원훈련을 마치고 발표한 노래가 바로 ‘북한강에서’였다. 한때 시인협회가 선정한 우리 시대 최고의 노래가 아이러니하게도 군사훈련을 받는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이 땅에서 군복을 입으면 누구나 개가 된다는 속설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개구리복 속에서 우울하고 무거운 비극적 서정을, 그러나 몹시도 결이 고운 노래를 뽑아냈다.



‘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리를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 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빈 거리를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리를 들으려 했소/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히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오.(하략)’





음울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부르는 정태춘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문득 자신이 강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을 받게 된다. 노래는 8년 앞서 발표된 정희성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와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을 준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창작과비평사, 1977)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삶의 고단함을 반추하는 중년 노동자의 모습을 통해 가난한 자들의 아픔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노래와 시는 얼마간의 공통점이 있다. 노래 ‘북한강에서’는 절제된 감정과 차분한 어조로 우리 시대의 현실과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도시인의 슬픔을 노래했다고 한다. 자신의 목소리와 신념을 드러내 강조하지 않고 새벽 강변의 안개 낀 풍경을 통해 삶의 현장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현실참여 노래의 한계를 극복해낸 점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시대를 거쳐오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혼란스럽다. 어둠의 시대, 새벽을 알리는 깊은 울림이라는 상찬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사회변혁운동에 몸담아온 데 대한 안타까운 비판의 소리가 있다. 그럼에도 그의 노래가 갖는 짙은 서정성과 아름다운 선율, 호소력 짙은 잘 발효된 음색 등을 부정하기 어렵다.

혁명가가 부르는 시대의 노래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그래서 그의 노래들은 그 시절 어둠의 공간에서 불렸던 다른 운동권 노래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권위주의 시대를 관통한 수많은 저항가요의 경우 대개 분노, 저항 등을 날것으로 품고 있었지만 정작 정태춘의 노래에선 거칠고 생경한 대목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그가 사회변혁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배경 설명을 사전에 듣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아름답고 서정성 짙은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요로 들을 뿐이다. 누군가는 깊은 산사에서 듣는 풍경 소리와 같다고도 평가했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어둠의 시대가 끝나고 그토록 목말라하던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희망을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지금 북한강은 정태춘이 노래했던 30년 전 그 시절 강은 아니다. 이른바 4대강 개발 사업으로 강은 콘크리트 옷으로 완전히 갈아입었다. 소박하고 고즈넉했던 강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인공의 흔적이 강 전체를 뒤덮고 있다. 끝없이 늘어선 음식점과 카페, 러브호텔이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리를 들으려 했던’ 노랫말의 낭만을 깡그리 지워버린다. 장어구이, 청국장, 갈치조림, 토종닭, 참붕어찜, 설렁탕, 김치말이국수, 올갱이국, 우렁 쌈밥집 사이로 에메랄드, 텔레파시, 힐타운, 베네치아, 알프스, 잉카 등이 둥지를 틀고 있다. 점령군처럼 우뚝 선 강변의 러브호텔들이다.

그 옛날의 북한강 풍경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이제 가수 정태춘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가고 오는 세월 속에 사람들이 그의 노래가 던지는 깊은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된 지금, 그러나 ‘한국의 보브 딜런’이란 비유가 외려 부족한 느낌의 그는 이제 대중의 곁을 떠나 점점 더 은둔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는 스스로 ‘일몰의 고갯길을 걸어가는 고행의 방랑자’가 되고 있다.

신동아 2014년 2월호

2/2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관련기사

목록 닫기

혁명가가 부르는 시대의 노래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