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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으로 10대 팬 제압 스타 쫓느라 학사경고, 사직

20대 ‘팬덤’의 세계

  • 이남윤 |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이고은 |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4학년

경제력으로 10대 팬 제압 스타 쫓느라 학사경고, 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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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포, 조공, 사생…3대 키워드
  • ● 연월차 내고 한류스타 해외공연 순례
  • ● “삶이 지루하고 외로워서…”
경제력으로 10대 팬 제압 스타 쫓느라 학사경고, 사직
특정 연예인을 열성적으로 좋아하고 몰입하는 팬덤(fandom). 지난 수십 년 동안 10대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풍속이 바뀌었다.

아이돌 스타의 열성 팬으로 활동하는 20대가 크게 늘었다. 좋아하는 스타를 응원하려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쏟는다. 극성스럽기로는 10대 팬 못지않다고 한다. 심지어 ‘20대가 우리나라 팬덤 문화의 헤게모니를 쥐는 역사적 순간을 맞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10대보다 정신도 성숙하고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직장에서 일하기도 바쁠 텐데 이들은 왜 동생뻘 연예인에게 푹 빠지는 걸까. 20대 팬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엑소 뜨자 ‘대포’ 운집

2014년 2월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시상식장. ‘요즘 대세’로 통하는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멤버 12명이 참석했다. 그러자 무대 앞자리 관객석은 엑소의 ‘대포들’로 빼곡해졌다. 대포는 20대 팬들이 들고 다니는 ‘커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고성능 카메라’를 뜻한다.

불과 수년 전까지 아이돌 스타들이 공연하는 무대 앞자리에서 팬들은 천연색 풍선 같은 것을 흔들며 응원했다. 그러나 이젠 망원렌즈가 풍선을 대체했다. 무대 앞 대포들의 범람은 팬덤의 주류가 10대에서 20대로 옮겨진 사실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대포는 거의 20대 팬의 전유물로 통하기 때문이다.



대포로 주로 활용되는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디지털 일안 반사식)급 카메라에 망원렌즈까지 갖추려면 수백 만~1000만 원 이상이 든다. 10대 청소년 팬이 자력으로 구입하기는 어렵다. 반면, 20대 팬들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구입해 쓴다.

대포를 갖춘 팬은 당연히 이것으로 자신의 우상인 아이돌이 공연하는 모습을 고화질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낸다. 이러한 능동적 팬 활동은 20대 팬덤 문화의 차별화된 양상이다. 이로 인해 일부 대포 팬은, 아이돌 스타의 인기에 미치진 못하지만, 대중 사이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갖는다.

대포 팬인 ‘polar light’는 엑소 멤버인 백현만 찍어 일부를 인터넷에 공개한다. 그가 찍은 백현의 사진들은 색채, 구도, 독특함으로 네티즌의 시선을 붙잡았다. 지금 ‘polar light’의 트위터 팔로어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신과 인간 사이의 교황처럼…”

우리나라에서 인기스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기존 매체에서 보여주는 인기스타의 모습은 분량 면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스타의 소속사가 공개하는 사진이나 영상 정보도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대중의 갈증을 20대의 대포 팬이 채워주는 셈이다. 이를 두고 한 네티즌은 “신과 인간 사이에 교황이 있는 것처럼 아이돌과 대중 사이에 대포 팬이 있다”고 말한다.

대포 팬이 부가가치가 큰 ‘시각적 자본’을 틀어쥐면서, 이들은 팬 세계 내 위계구조에서 지배적 위치에 올라섰다. 이에 따라 요즘 스타의 온라인 팬 활동은 주로 대포 팬의 홈페이지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20대가 대부분인 대포 팬은 이렇게 팬 세계 내의 중간 거점(포털)이 됐다. 이들의 홈페이지에서 활동하는 팬은 ‘안방 팬’으로 불린다. 대부분의 10대 팬은 안방 팬이다. 한때 우리나라 팬덤 문화와 대중문화 산업을 쥐락펴락한 10대 팬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20대 팬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그 아래로 들어가는 형국이 된 것이다. 대신 10대 안방 팬은 대포 팬을 공인(公人)화해 도덕적으로 잘못하면 까 내리는 식으로 대응한다.

우리는 20대 팬의 활동상과 이들의 생각을 좀 더 상세히 알아보려 국내 최고 인기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엑소, 인피니트(INFINITE), 빅스(VIXX), 소녀시대의 20대 팬 여러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솔직히 ‘20대가 되고도 연예인 쫓아다니나’라는 사회적 인식이 부담스럽다”면서 익명을 전제로 답했다.

이들은 “인기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각 스타의 대포 팬은 주로 20대 중후반이다. 이들 중엔 미혼의 직장인 여성도 많다”고 말했다. “20대 남성 팬은 체력이 좋아 굉장히 큰 카메라를 갖고 다닌다”고 했다.

이들은 아이돌 스타의 팬이 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삶이 지루하고 외로워서”라고 답했다. 엑소의 팬인 대학생 A(여·22)씨는 “20대부터 본격적으로 팬 활동에 나섰다”면서 팬 활동을 하게 된 계기로 성인이 되면서 느낀 외로움을 꼽았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타지에서 서울로 오면서부터 친구를 사귀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팬 활동을 하면서 지루함이나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고 했다.

빅스의 팬인 대학생 B(여·25)씨는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통학하지만 늘 고독을 느낀다”며 “하루 종일 친구들과 함께했던 고등학교 때와 달리 혼자 있는 시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B씨는 “20대 팬들 중에 결핍이 있는 친구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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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윤 |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이고은 |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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