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인정, 칭찬, 신뢰하고 의심, 비교, 기 싸움 말라

위기의 ‘중2병’ 종합처방전

  • 이진아 | 브랜드-유 리더십센터 소장 www.buleadership.com ‘중2병 엄마는 불안하고 아이는 억울하다’ 저자

    입력2014-09-18 1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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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교육부가 초·중·고교생들의 인성 수준을 분석한 결과 ‘성실’ ‘자기조절’ ‘지혜’ 등의 덕목에서 낮은 점수를 보였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능력’이 부족했다.
    • 주목할 만한 건 중학생의 인성 수준이 가장 낮다는 점.
    • 급격한 신체적 변화를 겪으며 인지적, 사회적으로 초등학교 때와 질적으로 다른 발달 양상을 보이면서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몸집 큰 질풍노도기 아이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은 가능할까.
    인정, 칭찬, 신뢰하고 의심, 비교, 기 싸움 말라
    중2병(病)은 사춘기의 정점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형태로, 심리적 불안과 그에 따르는 허세가 가장 강력하고 복합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증상이다. 그래서 세간에선 중학생들을 ‘환자’로까지 분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2병은 꼭 중학교 2학년에게만 해당되진 않는다. 이르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늦게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증상이 나타난다. 500명 이상의 중2병 환자와 그들의 부모, 교사들을 만나본 결과 중2병에도 여러 증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염성 강한 ‘병 아닌 병’

    중2병의 유형은 크게 10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반항아, 고집불통 ‘꼴통’, 친구 올인, 연애 집착, 외모 우선, 공부 스트레스, 진로 고민, 가정불화, 게임·스마트폰 집착, 성 탐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그 때문에 중2병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염성 강한 ‘병 아닌 병’, 즉 중2 신드롬 또는 중2 증후군이라 할 수 있다.

    유형 1 반항아



    사전적 의미에서 반항이란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 맞서 대들거나 반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유형은 어디까지나 어른 시각에서 봤을 때 반항한다는 느낌이 들뿐이지, 아이들이 실제 문제아인 건 아니다.

    혹시 여러분 가정의 방문 고리는 잘 붙어 있는지? 중2쯤 되면 아이들은 자아가 더욱 강해지고 자기 의견대로, 생각대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상황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미성숙한 자아는 그것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 이때 아이들이 나타내는 성향은 여러 가지다. 소위 ‘일진’이 되고 싶어 하기도 하고, 모든 일에 심드렁하기도 하며, 이유 없이 무조건 반항하기도 한다. 마음의 문을 닫고 방문을 잠그고 대화를 거부하기도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학원에 빠지려 하고, ‘날라리’ 친구들과 친해지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어른 처지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이런 모습을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 부모는 자기 의견대로 그들을 조종하려 한다. 그 결과, 집집마다 방문 고리가 부서진다. 이게 어른들이 바라는 모습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형 2 고집불통 ‘꼴통’

    중2병을 대표하는 유형이다. 가장 큰 특징은 허세다. ‘허세(虛勢)’란 실속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기세다. 쉽게 말해 ‘속빈 강정’이란 말과 일맥상통한다. 중2병 환자들이 부리는 허세는 매우 다채로운 양상을 띠지만, 그 내면을 살피면 자기 인식을 부풀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쥐뿔도 없으면서 대단한 것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자기는 다 컸고, 잘나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부모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부모가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고 부모에게 요구사항을 당당히 말한다. 말 그대로 모순덩어리다. 그들도 이 사실을 안다. 그래서 헷갈리고 더 허세를 부린다.

    사실 아이들의 허세엔 다 이유가 있다. 몸의 성장과 더불어 마음도 같이 성장해야 하는데, 몸의 성장은 마음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고 급속히 일어난다. 이에 아이들은 자기가 어른과 다를 바 없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마음이나 능력은 몸을 따라가지 못한다.

    몸에 집중할 때 이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반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몸만 컸지 아직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자기가 생각해도 자신이 유치하다. 이럴 때 이들의 자신감은 바닥을 향한다. 이렇듯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듯한 상태와 바닥인 상태의 간극을 바로 허세가 채우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사이클이 어떤 땐 일주일, 또 어떤 땐 1분 단위로 변화하기에 그들도 우리도 적응할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진 말자. 아이들의 허세 또는 꼴통 짓은 곧 줄어든다. 아이들에게 약간의 시간을 주자. 평생 동안 자기 행동이 허세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듯 당당하고 스스로가 ‘쪽팔리지’ 않는 시기가 있을까. 이때뿐이다. 이들이 현실을 인식해 위축되기 전에 좀 더 자신의 허세를 즐기도록 귀엽게 봐주자.

    유형 3 친구 올인

    성인에게 대인관계가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듯 아이들 세계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친구관계다. 이들에게 친구란 제2의 부모이며, 간혹 부모보다 더 큰 존재이고, 보호자이며 동반자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자기의 분신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친구가 없어도 걱정, 너무 많아도 걱정, 자주 다퉈도 걱정, 친구가 하자는 대로 따르기만 해도 걱정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친구는 많은데 친한 친구가 없어 고민, 친한 친구 그룹이 있으면서도 서로 흉보고 싸우고 또 화해하길 반복해서 고민, 이른바 잘나가는 친구 그룹에 끼고 싶은데 잘 안돼서 고민, 친구와 지내고 싶은데 부모가 이해해주지 않아서 고민이다. 이런 문제를 보고만 있기 안타까워 친구 문제에 부모가 끼어든다면 낭패다.

    시험이 코앞인데 친구 생일파티를 위해 밤낮없이 종이학을 접고 비행기를 만들어 선물 상자에 담는 아이가 부지기수다. 이런 자녀를 보고 있자면 속이 답답하다. 괜한 잔소리에 공부는 안 하고 반항할까봐 큰소리도 못 내고 ‘그러지 말고 공부 먼저 하고 그건 시험 후에 하는 게 어떻겠니?’라고 하면 ‘시험은 1년에 4번이나 되지만 친구 생일은 1년에 한 번인데 그냥 넘어가면 그 친구가 얼마나 섭섭해하겠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참나,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소중한 친구 생일에 어딜 가서 뭘 하나 살펴보면 기껏해야 노래방이나 게임방에 가서 노는 게 고작이면서 말이다.

    그래도 너무 속 터져 하지 말자. 그래봤자 내 속만 터지고 혈압만 오르지 아이들은 ‘그건 내 알 바 아니오’로 일관하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다. 차라리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고 우리에게도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기억하며, 그저 조금만 더 지켜보고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아파해준다면 아이는 해답을 찾아나간다. 좋은 친구는 좋은 성적보다 훨씬 큰 자산이다. 아이들이 큰 자산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갖고 조금만 기다려보자.

    유형 4 연애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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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아이를 만나면서 세대차와 소통의 어려움을 절감한 게 이성교제에 관한 부분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성교제’란 표현은 없다. 단지 ‘연애’다.

    가장 이해되지 않는 건 연애에 대한 그들의 집착이다. 맘에 드는 이성이 있어서 사귀고 싶은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정도를 뛰어넘는다. 맘에 드는 이성의 유무에 상관없이 그들은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말 그대로 연애지상주의다. 그 이유를 물으니 어처구니없게도 ‘외로워서’란다. 이제 갓 열다섯, 열여섯 살인 친구들이 외로워서 연애하고 싶단다. 요즘 아이들 표현대로 ‘헐~’이다.

    심지어 이성친구가 없는 친구를 위해 친구들끼리 학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성을 골라 데리고 와서 둘이 사귀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그날부터 사귀기 시작한다. 어디 그뿐인가. 나와 사귀던 남친 또는 여친이 내 단짝과 사귀는 일도 허다하다. 이때 그들은 우리 세대처럼 어색해하거나 몸 둘 바 몰라 하는 시간이 매우 짧다.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둘의 연애를 코치하기도 한다. 둘 다 자기가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이를 어른인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알아서 잘 처신한다. 이렇게 만난 아이들이 깊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기에 ‘22데이(사귄 지 22일째 되는 날)’를 축하하는 풍경마저 나타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연애를 달갑잖게 여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성적이 떨어질 걸 우려해서다. 그렇지만 이건 큰 걱정거리가 못 된다. 아이들도 이미 부모의 이런 우려를 알기에 성적에 대해선 나름대로 관리를 한단다. 그리고 성적이 더 이상 떨어질 수도 없는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걱정을 하는 게 사실 아닌가. 그렇다고 아이들이 연애를 안 하면 그 시간에 공부할 것이란 생각도 버려야 한다. 두 번째로, 진한 스킨십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이 부분은 성과 관련돼 있으므로 다시 이야기하겠다.

    아이들에게 연애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그런 깊은 사랑과 힘든 과정이 아니다. 그들에게 연애는 하나의 놀이이고 문화다. 그러니 그것을 즐기고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이제 우리도 그런 그들의 삶을 힘들게 이해하려 하지 말고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유형 5 외모 우선

    성적 이상으로 아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외모다. 외모지상주의의 사회 분위기를 타고 외모에 관한 아이들의 관심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더 예뻐지고 싶고, 더 멋있어지고 싶고, 더 날씬해지고 싶은 아이들의 욕구와 부모의 욕구가 상충한다.

    무조건 외모에 집착하는 아이도 있지만, 착각이 문제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객관적인 미의 기준을 따르려 한다. 요즘 중2병 여학생은 화장은 기본이고, 글래머러스하게 차리고 싶어 하고, 성형수술까지 하고 싶어 한다. 남학생의 경우는 여학생보다 브랜드에 훨씬 민감하다. 여학생은 브랜드보다 주위 아이들과의 비교에 민감하다.

    사실 이런 모습은 아이들 때문이 아니다. 외모지상주의와 성형 열풍이 유난히 강한 우리나라에 살면서 외모에 관심 갖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

    너무 지나치지 않게 허용하고 지켜본다면 이 바람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잦아든다. 성적으로 칭찬받을 기회가 적은 아이일수록 외모에 집착한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칭찬과 피드백을 통해 자존감을 높일 기회를 제공하자. 외모가 아닌 내면에 자신감을 가질 기회를 주자.

    유형 6 공부 스트레스

    대한민국에서 성적 문제에서 자유로운 청소년은 없다. 좋든 나쁘든 누구나 최대의 관심사는 성적이다. 부모는 ‘공부엔 관심 없고 다른 일에만 신경 쓴다’고 나무라지만 과연 그럴까.

    모든 일의 우선순위를 성적에 두는 아이도 있고, 핑계를 찾아 유학이나 자퇴를 요구하는 아이도 있다. 공부는 안 해도 성적에 대해선 짜증내기도 하고, 매번 시험을 망치면서도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때 잘하면 된다’고 자위하는 스타일도 많다. 영어, 수학만 잘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정작 해당 과목 성적이 안 좋아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부모는 성적에 가장 큰 관심을 갖지만 중2병에 걸린 아이들은 뜻밖에도 성적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다. 아이들에게 공부와 성적은 걱정거리임엔 틀림없지만, 그냥 일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 새로울 일 없는 즐겁지 않은 삶이란 뜻이다. 이러니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중요한 건 성적이 좋은지 나쁜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행복한지, 행복할 수 있는지다. 부모 스타일이 아니라 아이들 스타일에 맞게 공부하고 자신을 책임질 기회를 주자.

    유형 7 진로 고민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진로와 미래에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갖는다. 그저 먹고사는 문제에 얽매인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사회와 부모가 꿈을 가져야 한다고 외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고민한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고민이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도 고민이다. 꿈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고, 꿈은 단지 꿈일 뿐이라고 현실과 타협하기도 한다. 무작정 연예인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라도 자기 미래와 진로에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이들을 지지해줄 필요가 있다.

    학생들과 진로 워크숍을 하거나 상담을 할 때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대부분 ‘다른 애들은 꿈이 있는데, 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도 동일하다. 나는 단숨에 그들의 고민을 사라지게 해준다. 그저 한마디 말로 말이다. 이렇게 말해준다. ‘지금 꿈 없어도 괜찮아. 어차피 꿈 가진 애들도 그렇게 안 될 가능성이 훨씬 큰데 뭐. 딱 한 가지 꿈만 꾸다가 그게 안 될 때 걔네들의 실망감이 얼마나 크겠니? 근데 넌 실망할 일이 없잖아’라고 말이다.

    이 대답에 황당해하며 그들이 묻는다. ‘그럼 꿈이 없어도 돼요? 그럼 전 나중에 커서 뭐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점쟁이야? 단지 내가 아는 건 그런 걸 고민할 시간에 너 자신에 대해 고민하라는 거다. 네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어떤 때 가장 즐거운지, 무엇을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런 것들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저절로 꿈이 생길 거야.’

    사실 열다섯, 열여섯 살인 그들에게 꿈이 있다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 취직을 한 서른 살 제자도 찾아와 ‘교수님, 전 꿈이 없어요’ 하는데 말이다.

    아이들에게 꿈꾸라고 강요하지 말고 꿈꿀 시간과 자유를 좀 주자. 꿈이란 건 잘 때 꾸는 것 아닌가. 아이들 맘이 자는 것처럼 평화롭고 자유롭게 되도록 시간과 여유를 허락하자. 그래야만 꿈을 가질 수 있다.

    유형 8 가정불화

    문제 부모, 문제 가정은 있어도 문제 아이는 없다는 말이 있듯 대부분의 청소년 문제는 가정 문제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보금자리이고 안식처라야 하지만, 아이들에게 가정은 타임머신을 타고 간 조선시대이거나 잔소리의 온상이다. 이들에게 부모는 가식덩어리거나 부끄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말하는 가정불화란 아빠가 술 마시고 들어와서 집을 다 때려 부수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일상적인 부부싸움, 자녀들 사이의 비교, 형제간 갈등과 같이 우리 삶에 늘 따라붙는 일상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걸 가정불화라고 한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매우 놀라웠던 건 대화를 시도하는 아빠를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이유인즉슨, 아빠들의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 훈계’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마음과 달리 아빠들은 대화할 줄 모른다. 대화를 어려워한다. 특히 아들과는 더 그렇다. 아이들의 말을 들으려하기보다는 더 좋은 얘기를 해주고 싶어 안달이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를 ‘고장 난 라디오 같다’고 했다. 한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일방통행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를 믿지 않으면서 ‘○○야, 엄마는 너를 믿는데 혹시 나쁜 짓 하지는 않지?’라고 하는 엄마들을 무식하고 재수 없다고 얘기했다. 가식적이라고 일갈했다. 부모는 단지 아이들 특성에 따라 자녀를 다르게 대한 것뿐인데 아이들은 차별을 느낀다. 이것이 그들에겐 벌로 느껴진다. 결국 그들을 속상하게 한 부모를 직접 벌주고 싶어 하는데, 그게 바로 반항이고 가출이고 일탈이다. ‘부모가 나를 힘들게 했으니 나도 부모를 힘들게 하는 거다. 이렇게 복수하는 거다’라고 입을 맞춘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아이들이 걱정된다면 이제 그만 걱정을 접고 우리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자녀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대화 방식은 어떤지, 그들의 말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아이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가정 문제가 해결되면 아이들은 분명히 치유된다.

    유형 9 게임·스마트폰 집착

    아마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고 싫어하는 유형일 것이다. 게임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고, 휴대전화는 신체의 일부다. 학교에 지각하더라도 집에 놓고 온 휴대전화를 가지러 가야 직성이 풀린다. 남학생들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게임 생각만 하거나, 밤새 게임하느라고 학교에서 자기 일쑤다. PC방이 집보다 더 익숙하기도 하다.

    많은 중2병 환자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카카오톡에 빠져 현실세계로 돌아올 줄 모른다. 밤 12시가 넘어 카톡과 문자를 주고받는 건 다반사다. 가끔 아침에 몰래 휴대전화를 훔쳐보면 새벽 4시에 카톡 문자가 와 있기도 하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이럴 때 우리는 아이들을 향해 뭐라고 해야 하는가.

    아이들에겐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아이들은 게임과 문자 자체보다 그것을 통한 자기들만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자부심이 중요하다. 혹시 아이들의 카톡 내용을 본 적이 있는지. ‘ㅋ, ㅋㅋ, ㅎ, ㅎㅎ, 헐, 대박, 쩐다’가 대부분이라 화가 나거나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우리에겐 이상한 나라의 문자이지만 그들에겐 이게 소통이다. 안타깝게도 그들 세계의 언어를 인정해줘야만 그들 세계로 입장하는 걸 허락받을 수 있다.

    유형 10 성 탐닉

    중2병에 대해 연구하면서 가장 놀란 부분은 2013년 기준으로 중학생의 10.9%가 성경험이 있다는 자료를 볼 때였다. 아이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을 땐 더욱 놀랐다.

    남학생들은 스스럼없이(물론 오랜 시간, 여러 차례 만나 공감대를 이룬 후였기에 가능했다) 자신들의 여자친구 자랑과 스킨십에 대해 얘기해줬다. 생각보다 많은 남학생이 여러 명의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여자애들과 자니?’라는 질문에 그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었고, ‘(그중에) 누구랑 자니?’라는 질문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누구긴요? 다 자죠’라고 대답해 또 놀라움을 주었다. ‘누구와 잘 때 가장 좋았어?’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나를 비웃었다. 중2병에 걸린 남학생에게 중요한 것은 ‘누구와 자느냐’가 아니라 ‘여자와 잔다’는 것이었다. 그런 행동을 통해 자신이 남들, 특히 또래집단의 다른 아이와 다르고 그들보다 더 어른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우월감을 갖는 것이다.

    반면 남학생과의 성행위가 좋다고 느끼는 여학생은 매우 드물었다. 흥미로운 점은, 심지어 불쾌하거나 싫은 감정을 느끼면서도 상습적으로 이런 행위를 하는 학생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솔직하게 싫다는 말을 할 때 남학생의 반응, 즉, ‘나와 자지 않겠다면 헤어지자’ 또는 ‘그런 마음이라면 넌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는 남자친구의 반응을 두려워했다. 물론 성행위를 해본 중학생 가운데 이렇게 상습적으로 하는 경우는 소수다. 그러나 어른들의 남녀관계가 그대로 투영된 결과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씁쓸한 결과다.

    한편,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는 ‘뽀뽀’까지를 사귀는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스킨십의 한계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른들이야 이 말만으로도 놀라겠지만 더 이상 이들이 어린아이가 아니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든 않든 이들은 이미 우리보다 훨씬 더 성적인 존재다. 성춘향과 줄리엣도 10대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부모 세대의 역할은 금지하거나 야단치는 게 아니라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미리 안내해주는 일이다. 성과 스킨십에 관해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예방하는 것 외에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물론 이를 위해선 부모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믿고 지켜보자

    이제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가진 중2병 환자들에게 부모, 교사, 어른 처지에서 아이들에게 주고자 하는 걸 주려 하지 말고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중2가 판단능력과 인성, 자기조절능력이 떨어진다는데 그러다 큰일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버리자. 그 시기는 길지 않다. 그렇게 실수를 해봐야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그냥 잘 클 것이란 믿음을 갖고 지켜보며 칭찬하자.

    아이들이 부모와 어른들에게 원하는 건 사실 그다지 크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건 ‘훌륭하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하는 것, 지금 이런 맘에 안 드는 낯선 행동들이 바로 내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증거라는 믿음을 갖고 아이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좀 빈둥거리며 놀다 지쳐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허락하는 것(일주일이면 충분하지만 아이가 일주일을 빈둥대는 걸 지켜볼 수 있는 부모는 거의 없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제 시간에 일어나고, 학교 갔다 가출 안 하고 집에 돌아오며, 여기저기 밥 흘리지 않고 먹는 것 등)을 했을 때 칭찬하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같은 시절 부모에게 바랐던 것도 그 정도다. 그래도 우린 휴대전화도 없었고, 과외도 금지된 시절에 학교를 다닌 덕에 놀 시간이 많았고, 학교에 10분만 늦게 가도 ‘너 어디야?’ 하는 소리를 듣고 자라진 않았으니 한 시간의 자유도, 여유도 없이 감시당하며 사느라 힘든 요즘 아이들에게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믿고 지켜보자. 나부터 아이들이 본받을 수 있게 잘살자. 금실 좋은 부부 사이를 만들어서 화목한 가정 분위기부터 조성하자. 아이들이 가출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가정불화니 말이다. 문제는 중2가 아니다. 자신과 아이들을 불신하고, 맘에 여유가 없고, 부부 사이가 안 좋은 어른들이 문제다. 그런 문제를 개선하다보면 어느샌가 멀쩡해진, 그리고 성숙해진 아이와 달라진 아이에게 익숙해진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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