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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세태

체르니도 안 배우고 베토벤을 치겠다고?

‘수학(數學) 만능 시대’의 허상

  • 김상욱 | 다빈치 수리논술연구소장 dasinti@naver.com 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체르니도 안 배우고 베토벤을 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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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수능 영어의 절대평가 도입이 큰 방향에서 잡혔다”고 밝혔다.
  • 영어 절대평가제가 실시되면 수학 사교육 시장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 수학은 고교 내신과 대학 입시의 열쇠일 뿐 아니라 취업, 승진의 중요한 잣대다.
  •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의 ‘수포자’는 ‘성포자’(성공을 포기한 사람)와 동의어가 됐다.
체르니도 안 배우고 베토벤을 치겠다고?

고등학교 수학 수업에서 학생들이 ‘별팔면체’(별 모양의 팔면체)를 직접 만들어보고, 이를 통해 정사면체와 정팔면체에 대해 배운다.

정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영어 절대평가를 도입함으로써 사교육비를 경감할 수 있다고 예상하는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 2월 “사교육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영어 사교육 부담을 대폭 경감해야 한다”고 교육부에 주문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 해당 영역에서 1등급을 받는 학생이 대폭 늘어나고, 입시에서 영어 성적의 변별력이 떨어진다. 분명 ‘입시 사교육’에 한해서는 영어의 비중이 크게 낮아질 것이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 전체가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영어 사교육에 투자하던 시간과 돈이 수학, 국어 등 다른 과목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등급 구간별 점수 편차가 작은 국어보다 편차가 큰 수학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면 입시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수학 사교육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입 준비’가 급선무인 일선 고교는 영어 수업 시수를 줄이고 수학을 집중적으로 가르칠 수도 있다.

초등생이 대학 교재로 공부

수학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요즘 치러지는 각종 시험에서 수학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입 논술에서도 수학 문제가 다수 출제되고 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는 매번 참가자가 북적인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수학은 중요하다. 삼성그룹 SSAT 등 대기업 입사 인·적성 시험에 수리 및 추리 능력을 테스트하는 문항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최근에는 공무원 시험에서도 수학이 선택과목으로 도입됐다. 행정고시, 입법고시의 1차 시험이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시험인 LEET에서도 추리논증, 수리추리 등 수학 과목이 최상위권을 가리는 잣대다. 금융권 종사자들이 승진을 위해 따야 하는 자격증 시험도 수학을 배제하고는 치를 수 없다.

그렇다보니 대학에서 수학과의 인기가 날로 치솟는다. 서울대의 경우 수학과가 의예과와 함께 수년째 이공계 입시 경쟁률 1~2위를 다투고, 지난해 연세대 수학과 수시모집 경쟁률은 87.38대 1로 전체 학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취업 전망도 좋다. 2010년 기준 수학 관련 학과 졸업생 취업률은 73.81%다. 최근 빅데이터, 알고리즘 등을 이용해 소비자 성향을 분석하는 직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올해 최고의 직업으로 ‘수학자’가 꼽혔다.

요즘은 유치원생 때부터 수학을 배운다. 교육계에서 “수학 공부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게 정설이다.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만 있다면 최대한 일찍 수학 공부에 나서는 것이 좋다는 것. 유치원생도 ‘창의력 수학’ ‘스토리텔링 수학’ 등 꽤 높은 수준의 책을 본다.

초등생은 말할 것도 없다. 10여 년 전만 해도 초등생이 중등수학올림피아드(KMO)에 응시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 응시생이 상당수다. 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초등학생이 교재를 찾아다닌다. 문제풀이 교재는 시중에 많지만 이론서를 찾기는 쉽지 않다. 많은 초등학생이 대학가 서점, 도서관 등을 돌아다니며 좋은 책을 구하려 기를 쓴다.

수학올림피아드에 응시하는 데는 수학 선행학습이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수, 대수, 기하, 조합 등 4가지 영역에서 문제가 출제되는데, 모두 대학 수학과 전공수업에서나 배우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작 올림피아드 수학은 대입 수학과는 관계가 없다. 그래서 초등생이 응시하는 중등올림피아드 시험이라도 웬만한 고교생은 문제에 손도 못 댄다.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에게도 수학올림피아드 대비가 필수 코스다. 대부분의 특목고가 이러한 경시대회 문제를 접해본 학생들에게 유리하도록 비슷한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이다. 사실 수학올림피아드 대회 수상이 성공적인 대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입 비교과 영역에 대한 가산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중고생이 올림피아드에 응시한다. 각종 수학시험에 대비하며 ‘수학적 마인드’를 키우기 위해서다.

축구 선수들이 실전 훈련만큼 웨이트트레이닝을 강조하듯, 대입 수학 문제를 잘 풀려면 문제풀이 능력 자체를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은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증명하는 학문이다. 복잡하게 꼬인 이해관계를 풀어가다보면 저절로 추리력과 사고력이 발달한다.

체르니도 안 배우고 베토벤을 치겠다고?

7월 1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치러진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한국 대표 학생들은 금메달 2개, 은메달 4개로 종합 7위를 차지했다. 특히 김동률 군(서울과학고 3년·오른쪽)은 3년 연속 금메달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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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 다빈치 수리논술연구소장 dasinti@naver.com 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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