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간 정도 카페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팔짱 낀 남녀가 있는가 하면, 혼자 들어가는 여성도 제법 많았다. 갓 스물 넘었을 것 같은 앳된 여성도, 환갑이 지났을 것 같은 여성도 보인다. 남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테이블마다 여성이 가득했다. 한쪽엔 뷔페식으로 음식도 차려져 있다. 꼭 달라붙는 브라톱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오빠 이름이 어떻게 돼요?” 대충 이름을 둘러대자 명찰을 만들어 가슴에 달아주었다.
이곳에서 한 인터넷 CD카페 회원들이 정모(정기모임)를 하는 중이다. 카페마다 1년에 몇 차례 오프(오프라인) 모임을 하는데, 많으면 전국에서 100명 이상이 모인다. CD는 크로스드레서(Cross Dresser)의 약자다. 주로 여장을 한 남자를 일컫는다. 여성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모두 ‘고추 달린’ 남자인 것이다.
기자 바로 뒤에 들어온 사내가 카페 구석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을 들여다보니 이브닝드레스, 여고 교복을 비롯해 다양한 여성 옷과 가발이 보였다. 화장대도 있는데 각종 색조화장 도구가 널렸고, 바닥엔 붙이는 속눈썹들이 어지럽다. 분장실이라고 했다. 방금 풀업(풀 메이크업,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여자처럼 치장하는 것)을 마친 CD가 전신거울을 들여다보며 화장을 확인하고 옷매무새를 매만진다. 만족스러운 듯 동료와 밝게 웃었다.
“남자로 사는 거, 피곤하다”
빈자리에 앉아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이미 서로들 잘 아는 듯 사적인 대화가 오갔다. 기자 옆에 앉은 CD는 유행이 한참 지난 1980년대풍으로 코디를 했는데, 알고 보니 ‘왕언니’ 격으로 나이가 많았다. 건설감리사로 일하다 정년퇴직해 지금은 쉰다고 했다. 가장 남성적인 직업이라 할 수 있는 건설인이 여장을 하다니 아이러니였다.
“언제부터 여장을 했냐고? 한 25년 됐지. 남자로 사는 거 피곤할 때 많잖아.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 ‘내가 여자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 그러다 우연히 이런 곳을 알게 돼 화장도 해보고 여자 옷도 입어봤는데 정말 신나더라고. 또 다른 내 모습을 보게 되니까. 스트레스도 풀리고. 지금은 쭈그렁 할망처럼 보이지만 예전엔 예쁘고 몸매도 자신 있었다니까.(웃음)”
그는 시집갈 나이가 된 딸도 있다고 했다.
“가족에겐 비밀이지. 아내가 알면 사달이 날 테니. 딸에겐 언젠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내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딸이라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어.”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CD가 “끈이 없는 드레스라 자꾸 흘러내린다”며 뒤에서 추켜올려달라고 부탁했다. 남자란 걸 알면서도 괜히 민망스러웠다. 왕언니가 옷 뒤를 올려주더니 어깨를 만지며 “어떻게 이렇게 피부도 곱고 어깨선도 좋으냐”고 칭찬했다. 기자가 보기에도 남자치고는 어깨선이며 몸의 굴곡이 부드러웠다. “호르몬제를 맞냐”고 묻자 “운동과 요가로 몸매를 관리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요가가 참 좋다. 골반 넓히는 자세, 어깨 좁게 만드는 자세, 허리 라인부터 발목까지 각선미를 잡아주는 자세도 있다.”
직업을 묻자 “들으면 웃을 것”이라며 머뭇거리더니 “성직자”라고 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종교 쪽에서 볼 때 CD야말로 ‘음란마귀’가 아니던가.
▼ 언제부터 여장을 하게 됐나.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여장대회를 했다. 처음 화장을 하고 여자 옷을 입어봤는데 뭔가 기분이 묘했다. 그 후 집에 혼자 있을 때 엄마나 누나 옷을 입고 화장도 해보곤 했다. 그러다 들켜 엄청 혼났다. 그 후 잊고 살았는데, 3년 전쯤 인터넷에서 CD카페를 알게 됐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 풀업은 자주하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가족은 물론 신도 눈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여장을 할 때는 즐거우면서도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처음엔 인적 없는 곳에 차를 세워놓고 풀업을 한 채 앉아 있다 왔는데 나중엔 산책할 정도가 됐다.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풀업을 한 것은 최근 들어서다.”
▼ 이유가 있나.
“너무 깊게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다. 더 빠져들면 내 이성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