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호

포커스

국가-지방 이원화 일본 경찰제도 분석

“경쟁 치열하지만 치안은 튼실”

  • 입력2018-01-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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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화됐지만 경찰청 산하 통일된 구조

    • 기초 단위에는 한계…1954년 광역 단위 자치경찰로 변화

    • 국가공안위원회-경찰청-관구경찰국-경찰본부-일선 경찰서 職制

    • 최대 규모 도쿄도 경시청, 국가경찰 역할도

    • 경찰 수사는 ‘본래적’, 검찰 수사는 ‘보충적’

    • 국가경찰 對 지방경찰 간 갈등은 해묵은 과제

    도쿄도 지요다구 가스미가세키 정부 합동청사에 자리한 일본 경찰청과 그 로고. [Wikimedia Commons]

    도쿄도 지요다구 가스미가세키 정부 합동청사에 자리한 일본 경찰청과 그 로고. [Wikimedia Commons]

    “사건은 회의실에서 일어나지 않아! 현장에서 일어난다!” 

    일본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踊る大捜査線)’의 명대사다. 이 영화는 후지TV 동명(同名) 드라마를 원작으로 제작됐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스크린으로도 옮겨져 호평받았다. 

    ‘춤추는 대수사선’의 배경은 도쿄 미나토(港)구의 신상업지구 오다이바(お台場)에 자리한 완간(灣岸)경찰서. 관할 구역에 미개발지가 많아 ‘공터서(署)’란 별칭으로 불리는 신설 경찰서다. 드라마 및 영화 속 주인공 아오시마 슌사쿠(青島俊作) 순사부장(경장 해당)은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사고를 몰고 다니는 좌충우돌 형사. 중소 컴퓨터회사 영업사원 출신으로 샐러리맨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경찰에 투신했다. 

    ‘춤추는 대수사선’은 단순 형사물이 아니다. 일본 경찰의 실태를 현실감 있게 묘사한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복지부동하고 부패한 경찰관, 살인이나 인질 사건 발생 등 긴급 상황에서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경찰 간부 등 일본 경찰의 병리(病理) 현상을 주 소재로 삼았다. 관객들이 열광한 주된 이유다.

    1940년대부터 자치경찰 도입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는 일본은 한국과 달리 경찰제도 또한 ‘지방자치경찰’이 근간이다. ‘국가경찰’도 별도로 존재한다. 별개의 두 조직은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이를 ‘통합형’ 경찰제도라 한다. 한국도 경찰개혁위원회 논의를 바탕으로 자치경찰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어 일본의 경찰제도 사례는 참고가 된다. 

    일본 경찰은 외형적으로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이원적 구조지만, 경찰청을 정점으로 한 전국적 통일 조직이다. 국가경찰제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일본 경찰제도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은 1947년이다. 그해 ‘경찰법’이 제정됐다. 이듬해 국가경찰과 시(市)·정(町)·촌(村) 단위 자치경찰의 이원(二元) 체제가 출범했다. 요체(要諦)는 종전의 중앙집권적 국가경찰제도의 폐해를 없애는 것이었다. 

    1954년 ‘경찰법’은 대폭 개정됐다. 핵심은 자치경찰 시행 단위를 기존 기초자치단체에서 47개 도(都)·도(道)·부(府)·현(縣)으로 ‘광역화’한 것이다(한국은 2019년 서울, 제주 등 몇 개 시·도에서 광역단위 자치경찰제를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종전 시·정·촌 단위로 세분화한 경찰 업무는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집단·광역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전반적인 치안 상태도 악화됐다. 인구가 적고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압박 문제도 있었다. 실제 1951년 경찰법 일부 개정으로 주민투표를 통해 자치경찰제 존폐를 결정할 수 있게 했다. 1953년까지 시정·촌 자치경찰은 4분의 1로 감소했다. 법 개정은 피할 수가 없었다. 

    일본 국가경찰의 본산은 경찰청(警察廳)이다. 법적으로 내각부(內閣府·총리실) 산하 특별행정기관이다. 특이점은 내각부의 직접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공안위원회 소속이라는 점이다. 국가공안위원회는 내각 국무대신(國務大臣·장관 해당)이 맡는 위원장 외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임기는 5년. 공안위원은 임명 전 5년간 검찰·경찰 관련 직무를 수행한 적이 없는 자를 총리가 국회 양원(兩院·중의원과 참의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이는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경찰 수장(首長)인 경찰청 장관(長官·청장 해당)은 국가공안위원회가 총리의 승인을 얻어 임명한다.

    ‘커리어조’는 도쿄대가 장악

    지방자치경찰 수사 조직은 각 경찰본부가 중심이다. 경찰본부에 세분화, 전문화된 수사 조직 및 인력이 집중 배치돼 실질 수사를 전담한다. 이는 일선 경찰서 중심으로 조직된 한국과 다른 점이다. 한국 지방경찰청은 수사기관이기보다는 ‘관리기관’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관구경찰국이 존재하는 일본과 제도상의 차이에 기인한다.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규칙’ ‘관청의 법칙’ 등과 더불어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은 ‘커리어(キャリア·Career)조(組)’, ‘논(Non) 커리어조’란 표현이다. 전자는 ‘국가공무원Ⅰ종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 경찰관, 후자는 ‘국가공무원Ⅱ종 시험’ 혹은 지방공무원 공채를 통해 입직한 이를 가리킨다. 무로이 신지, 경찰 고위 간부를 아버지로 둔 ‘파파보이’ 마시타 마사요시(真下正義)는 커리어조의 대표, 주인공 아오시마 슌사쿠는 논 커리어조다. 

    ‘커리어조’의 승진 속도는 빠르다. 드라마 및 영화 속 마시타 마사요시의 커리어 패스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국가공무원시험Ⅰ종 시험에 합격 후 경찰에 투신했다. 드라마 초기 완간경찰서 형사과 경부보(警部補·경위 해당)로 시작한 마시타 마사요시는 파이널 편에서 경시정으로 승진, 확장·이전한 완간경찰서장이 된다. 무로이 신지도 마찬가지다. 경시청 수사1과 관리관(경시)이던 그는 약 10년 만에 경시감(警視監·치안감 해당)으로 승진, 경찰청 장관관방(官房) 심의관 겸 경찰조직개혁심의위원장을 맡는 것으로 설정됐다. 

    매년 20명 정도가 국가공무원Ⅰ종 시험을 통해 경찰에 입문한다. 경찰청은 일본 관료 사회에서 이른바 ‘1급 성(省)·청(廳)’으로 불리는 내각부, 총무성, 외무성, 재무성, 경제산업성 등에 이어 인기 부처로 꼽힌다. 경찰간부로 고속 승진해 일선 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는 점,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점, 경찰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신뢰도가 높다는 점 등이 주요 인기 이유다. 다른 성·청과 다르지 않게 커리어조 경찰은 도쿄대학 출신이 주류다. 2018년 1월 현재 경찰 ‘투톱’인 사카구치 마사요시(坂口正芳) 경찰청 장관, 요시다 나오마사(吉田尚正) 경시총감 모두 도쿄대학 법학부 동문이다. 

    일본 경찰계급은 경찰청 장관-경시총감-경시감-경시장(警視長)-경시정-경시-경부-경부보-순사부장-순사(巡査)로 나뉜다. 커리어조는 경부보로 시작해 수습 과정을 마친 후 경부로 승진, 경시장(경무관 해당)이나 경시감까지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논 커리어조는 순사부장으로 입직해 경시 정도에서 퇴직하는 것이 보통이다. 경시장이나 경시감까지 승진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유행하는 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야 가능한 정도’다. 총경에 해당하는 경시정 이상 고위 간부 수는 전체 경찰관의 1% 이하다. 그만큼 승진 경쟁은 치열하다. 최후의 생존자만이 경찰청 장관이나 경시총감까지 진급할 수 있다. 

    경찰 입직 경로를 떠나 경시정으로 승진하면 자동 국가경찰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뀐다. 이때부터 ‘경찰관료’로 불린다. 경시청을 비롯해 지방경찰본부에 근무하는 경시정 이상 간부를 ‘지방경무관(警務官)’이라 한다. 경시총감·경찰본부장을 비롯해 본부 과장급 이상 간부들은 국가경찰 신분이다. 이는 명목상 자치경찰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실제는 중앙집권적 국가경찰제라는 지적을 받는 주 원인이기도 하다. 

    “관할서는 체스판 위의 졸(卒)일 뿐이야!”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경찰 간부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국가직’ 간부가 ‘지방직’ 일선 경찰관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국가경찰과 지방경찰 간 갈등 구조는 매회 등장하는 드라마 스토리 라인의 핵심 축이다.

    수사권은 경찰 몫

    실제 국가경찰 간부와 일선 지방경찰 간 불협화음은 해묵은 문제로 꼽힌다. 커리어조가 주류인 국가경찰은 지방경찰을 지시 및 예속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연장선상에서 도쿄도 지요다(千代)구 가스미가세키(霞が関) 정부 합동청사에 나란히 둥지를 틀고 있는 경찰청과 경시청 관계도 좋지 않다. ‘춤추는 대수사선’ 속 경찰청 간부가 무로이 신지에게 하는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경시청은 우리를 늘 눈엣가시처럼 여기지.” 

    인사제도와 더불어 일본 경찰제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예산 부문이다. 경찰 예산은 국가예산인 경찰청 예산과 지방자치단체 예산인 도·도·부·현 경찰 예산으로 구분된다.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관내 경찰본부(경시청)에 필요한 경비를 자체 조달·지급한다. 국가 및 광역 단위 경찰 활동 소요 예산은 별개다. 경찰법 제37조 규정에 의거, 경찰청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방경무관’ 급여, 순찰차 등 장비 정비 비용, 테러 등 공안 사건 관련 수사 비용, 경찰 통신 시설 관리비 등이다. 1995년 3월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オウム眞理教) 피해자 보상금 지급도 경찰청 예산으로 충당했다. 

    한국과 비교할 때 일본 경찰제도가 가지는 두드러진 차이점은 ‘수사권’ 보유다.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연합국최고사령부(GHQ)가 주도한 사법·경찰 개혁의 산물이다. 수사권은 기본적으로 경찰이, 기소와 기소유지는 검찰이 분담하는 형태다. 형사소송법 제189조 제2항은 “사법경찰직원은 범죄가 있다고 사료되는 때 범인 및 증거를 수사할 수 있다”고 명시해 경찰이 독자적 수사기관임을 밝힌다. 동법(同法) 제191조 제1항은 “검찰관은 필요가 인정되는 때 스스로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이는 검·경이 수사 실무에 있어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상호협력 관계이며 경찰이 1차 수사기관, 검찰이 2차 수사기관임을 의미한다. 아울러 경찰 수사는 ‘본래적’, 검찰 수사는 ‘보충적·보정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구속영장 청구는 경부(경감 해당) 이상이 할 수 있으며 검찰은 경찰 수사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수사권을 가진 일본 경찰은 수사 역량 강화책도 시행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1980년 10월 제정된 ‘형사경찰강화종합대책요강’이다. 요강에 근거해 ‘형사선고요강준칙’을 시행하고 있다. 준칙에 따라 각 지방 경찰본부는 ‘형사선고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는데, 주 업무는 우수 수사요원 선발 및 관리다.

    日 국민, 경찰 신뢰 높아

    ‘춤추는 대수사선’에는 일본 경찰의 부정적 모습을 주로 투영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실제 일본 국민은 경찰을 신뢰한다. 그 바탕에는 세계 최고수준으로 꼽히는 치안 상태, 높은 범죄자 검거율 등이 깔려 있다. 

    1947년 자치경찰제를 실시, 반세기 넘은 역사를 지닌 일본 경찰제도는 한국 경찰제도 개혁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귀감(龜鑑)과 반면교사(反面敎師) 감을 찾아 좀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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