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되살려낸 대표적 산악인 출신

• 가이드 산행 ‘산대장’ 제도권 흡수 주장

• 국립공원 입장객 제한 공론화 필요

• 산행은 하늘 가까이 가기 위한 구도(求道)

• 전국 최초 노인 무료 급식 등 나눔의 삶 30년

벗어내린 초야의 설레임
문항라 속옷 같은 숫눈이
마등령을 덮었다
부신 눈 밤 깊도록 앓게 한
수줍던 그대 속살빛으로
대포항 물 때 맞춘 달빛 내리고
이십수 년 혹은 더
꼭꼭 품어온 까무러칠 듯 보드라운 그대 가슴
쓰다듬던 무지한 내 손길이듯
어디선가 눈을 쓸어 영을 넘는
거친 바람의 소리
앓다가 쉬어버린 내 마른 목의
당신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되어
발시리고 손끝아린 새벽길 헤쳐
설악골 비선대로 내려갑니다
_{- ‘바람은 당신에게로’ 전문}

한겨울 야간 산행의 감동을 이렇듯 ‘성(性)스럽게 담아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 거친 산을 오르고, 시심을 갈고닦기 위해 불면의 밤을 지새웠을까. 

이 시를 쓴 권경업(67)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1970~80년대 부산을 대표하는 산악인이었다. 1990년 여성산악인 남난희 씨와 함께 최초로 백두대간을 종주, 일제에 의해 지워진 ‘백두대간’을 복원해내기도 했다. 또한 ‘산악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시인이기도 하다.

집무실을 직원 휴게실로

1월 9일 강원도 원주에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탄탄한 가슴, 날렵한 허리, 단단한 팔뚝이 일흔을 앞둔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산을 타는 사람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몸이 좋다”고 하자 “한 달 넘게 산을 못 탔더니 몸이 무너지는 게 느껴진다. 직원들이 나를 뺑뺑이 돌리나 싶을 정도로 정신 못 차리게 바쁘다”라며 웃었다. 그는 2017년 11월 30일 취임했다. 

“산에 못 가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식사다. 집에선 아내가 챙겨주는데 여기서 혼자 살다 보니 규칙적인 식사가 힘들고, 특히 과일과 채소를 챙겨 먹기가 힘들다. 나뿐 아니라 지난해 4월, 우리 공단이 서울에서 이곳 원주로 이전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사는 많은 직원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집무실을 직원 휴게실로 만들어 한쪽에 샐러드바를 만들려 한다. 누구든 와서 과일과 채소를 저렴하게 마음껏 먹을 수 있게. 직원 복지 차원이 아니라 당장 나부터 필요해 만들려 한다.” 



그럼 집무실은. 

“옆에 있는 작은 창고를 사용하면 된다. 그 정도 크기면 업무 보는 데 아무 지장 없다. 나 혼자 쓰는 집무실이 이렇게 클 필요 없다.” 

월급 일부도 직원들과 나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와서 보니 비정규직이 많더라. 올 1월 1일 자로 비정규직 775명을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다. 얼마 전 설악산에서 근무한 무기계약직원들을 만났는데, 15~20년이 지나도 월급이 거의 그대로였다. 진급도 안 되고. 월급은 국가가 법으로 정하고 있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간접적으로라도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 우선 내 월급에서 매달 100만 원씩 떼어 이분들 복지를 위해서 쓰도록 했다. 비록 얼마 안 되지만 고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오색 케이블카 설치 논란

산악인이기는 하지만 국립공원 관련 전문가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 모토가 국민 관점에서 행정을 펴겠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선 50년 이상 국립공원을 이용해온 내가 적임자라는 주변 권유가 많았다. 정부가 나를 임명한 건 그동안 생각했던 문제점들을 개선해보라는 뜻인 것 같다.” 

낙하산 논란도 있었다. 

“나는 암벽등반을 오래 했기 때문에 줄은 잘 타지만 낙하산은 탈 줄 모른다(웃음). 문재인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다. 2016년 함께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다는 건 오보다. 아, 대선 직전 문 대통령이 부산시민들과 함께 금령산을 산행한 적이 있는데, 시민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기는 했다.” 

이제 업무 파악은 끝났나. 

“들어와서 보니 이게 어마어마한 조직이다. 내가 알던 부분은 전체의 1%도 안 된다. 자칫 손을 잘못 대면 우(愚)를 범할 수도 있겠다 싶어 아주 조심스럽다.” 

경영 원칙이 있다면. 

“자연 제일 우선주의다. 자연에도 주권이 있고, 이는 보호되어야 한다. 자연이 없으면 국립공원도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자연을 떠받들고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 문제다.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하지만, 꼭 자연 생태 중심으로 가야 할 곳들이 있다. 지리산과 설악산이 대표적이다. 우선 이 두 곳만이라도 ‘특별자연보존지구’로 지정해 사람이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인간이 양보할 수 있지 않을까.” 

국립공원 안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을 놓고 갈등이 첨예하다. 환경 파괴라는 주장과 오히려 더 큰 환경 파괴를 막고 보행 약자의 관광 권리를 높인다는 반론이 팽팽한데. 

“설악산 오색약수 케이블카 설치는 반대다. 지금 여건은 보행 약자가 오색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갈 수도 없다. 휠체어가 들어가는 고속버스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설악산 정상은 완전 망가진다. 이미 설악산엔 권금성까지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다. 거기서도 수려한 경관이 다 보인다. 그 정도로 만족했으면 좋겠다.”

권 이사장은 기자에게 “1년 동안 지리산과 설악산 간이 화장실에서 수거하는 인분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300t이 넘는다. 드럼통으로 1500통이다. 이걸 사람이 손으로 수거해 헬기로 실어 나른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헬기가 한 번 뜰 때마다 동식물이 얼마나 피해를 받겠나. 환경오염은 또 어떻고. 우리처럼 국립공원을 인원 제한 없이 밤낮으로 출입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외국은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단위로 출입 허용 인원을 한정한다. 사람의 흔적을 자연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국립공원 입장객 수를 제한하자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공론화를 거쳐 국민적 합의를 얻어 시행해야 한다. 적어도 설악산과 지리산만이라도 제대로 지켜내야 한다. 지난 50년 동안 산을 다니면서 산이 변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지리산 주능선이 옛날엔 이끼가 쌓여 푹신푹신했다. 천왕봉 꼭대기도 그랬다. 지금은 어떤가. 하도 많은 사람이 밟고 다녀 맨땅이 되었다. 비가 오면 토사가 다 쓸려 내려간다. 지리산을 17시간 만에 종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악마라톤을 하는 셈이다. 그런 건 다른 산에서 해도 된다. 지금 많은 과학자가 매달리고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지리산에 곰, 여우 등 멸종위기 동물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밤새도록 사람들이 다니면 동물들이 적응하겠나.”

국립공원의 날 제정

우리나라에 국립공원이 처음 지정된 지 50년이 되었다. 그리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되었다. 현재 22개 국립공원이 있다. 전 국토의 6.6%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립공원은 그동안 우리나라 자연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일제강점기, 산업화 과정에서 훼손됐던 자연이 많이 복원됐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숲은 비교적 많이 복원됐지만 아직 완벽하게 복원된 게 아니다. 아름드리 고목 안에 다람쥐, 오소리가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데 그 정도가 되려면 100년쯤 더 흘러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산은 산이 아니다. 사방이 도로로 막힌 섬일 뿐이다. 산이 이어지지 않고 조각조각 나 있다. 여전히 산짐승이 살기 힘들다. 지리산 반달곰이 지난해 6월 경북 김천 수도산자연휴양림에서 발견됐다는 건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어떤 일을 하나. 

“국립공원을 관리·보호하고, 방문객들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 대피소는 물론 해발 1000m가 넘는 산 요소요소 거점에 전문 인력을 배치해 조난객이나 부상자를 구조하는 일을 한다. 이분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비박을 하며 대기하고 있다 상황이 발생하면 현장으로 바로 달려간다. 며칠 전에도 거점 근무자가 등산객을 살려냈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또한 종복원기술원에서 곰, 여우, 늑대, 산양 등 멸종위기 동식물 복원사업을, 국립공원연구원에서 철새연구센터, 해양연구센터 등을 두고 국립공원 보전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훼손된 자연 지형 복원 연구도 한다. 한마디로 더 좋은 자연을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사명감 하나로 벽지 오지에서 일하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국립공원의 날’을 제정해 국민 여러분이 이분들을 격려하고 위로했으면 한다.” 

새로 구상하는 사업이 있다면.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에 가는 인구가 1300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에는 사람을 모아 버스를 대절해 가는 가이드 산행이 많다. 여기엔 꼭 ‘산대장’이라 하는 인솔자가 있다. 등산객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산대장을 제도권 안으로 품어야 한다.” 

자격증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노인을 돌보는 일도 노인요양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 산대장의 능력도 모르고 무조건 따라가는 건 문제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사고가 많다. 이제는 그들을 제도권 안에 품어 체계화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자연을 보존하는 첨병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올해 초안을 잡아보려 한다. 잘 활용하면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다.” 

역점을 두고 있는 또 다른 사업이 있다면. 

“북한 지역의 자연, DMZ(비무장지대)에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어느 날 덜커덕 통일이 되면 북한 지역의 자연을 지켜낼 수 있을까? 단시간에 훼손돼버릴 가능성이 크다. 한번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려면 수백 년이 걸린다. 통일이 되기 전에 보존 계획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 지금 미리 준비해야 한다. 연구원에 북한과 DMZ 관련 팀을 꾸리라고 지시했다.”

맨발의 셰르파가 준 교훈

16세 때부터 산에 오른 권 이사장은 1977년 1월 사상 두 번째로 설악산 토왕산 빙벽등반에 성공하며 한국 산악계에 이름 석 자를 각인했다. 1982년엔 지방으로는 최초로 부산학생산악연맹팀을 이끌고 히말라야 파빌봉 등정에 성공했다. 그는 “히말라야 등정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당시 원정 비용이 1억5000만 원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50억 원쯤 되는데, 그걸 부산지역 사업가 김동인 사장이 지원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매일 등산으로 건강을 회복한 분인데, 산이 새 생명을 줬으니 보답해야 한다며 산악인을 후원했다. 그분 도움으로 등정을 떠났는데, 250명의 셰르파를 고용했다. 그런데 모두 맨발로 수십 kg 짐을 지고 며칠 동안 설산을 오르는 거다. 그렇게 받은 돈이 하루 1달러가 채 안 됐다. 잠깐 산 정상에 서는 희열을 맛보기 위해 쓰는 50억 원의 거금을 이곳 주민들의 주거, 교육, 의료 환경을 바꾸는 데 쓰는 게 더 보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사회사업에 뛰어드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 후 부산 구포에서 식당을 차린 그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1989년부터 전국 최초로 노인 무료 급식을 시작했다. 혼자 하던 자선사업에 후원자들이 생겨났다. 비영리단체 ‘아름다운사람들’은 회원만 3000명이 넘는다. 

“처음엔 먹고살려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빚도 다 갚고 부자는 아니더라도 여유가 생겨 집사람에게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김동인 씨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좋은 일을 한다면 이 사회가 나아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011년엔 네팔 체풀룽에 자선병원 ‘토토 하얀병원’을, 2015년과 2017년엔 라오스 오지 2곳에 자선병원 ‘여민락 여성아동병원’을 각각 설립했다. 

“1982년 히말라야 등반 때 하산하던 중 셰르파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에 빠져 목숨이 위중한 상황이 되었다. 어렵게 구조했는데, 그가 품에 간직하고 있던 사진을 꺼내더라. 우리가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인증 사진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기에 자기 목숨을 걸고 지켰던 거다. 네팔 자선병원은 그에 대한 보은이었다.”

산악인과 등반가

백두대간을 처음 종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1987년 산경표라는 고서가 발견됐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지도가 없었다. 그래서 산을 중심으로 지리를 따졌다. 교통, 물자교류 등 우리네 삶과 밀착한 산줄기를 한 개의 대간, 한 개의 정간, 13개 정맥으로 분류한 게 ‘산경표’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산맥은 일제가 전국 토지 측량을 하면서 지질을 기준으로 분류한, 우리 삶과는 무관한 개념이었다. 산경표 발견을 계기로 우리 산줄기를 복원하자는 의미에서 가장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을 종주하게 됐다. 종주하며 나는 시를, 남난희 씨는 기행문을 쓰며 세상에 알렸다.” 

우문이지만, 산을 오르는 이유가 있다면. 

“나는 산악인과 등반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등반가는 오직 정상에 서기 위해 산을 오르지만 산악인은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산에 오른다. 우리 선조들은 구도(求道)의 과정으로, 좀 더 높은 정신세계에 이르기 위해 산에 올랐다.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가 되는 산행이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도 좋고 그저 멀리서 산을 마음에 품고 돌아와도 좋은 거다. 반면 서구 알피니즘(alpinism)은 오직 정상에 깃발 꽂으려 산에 오른다. 그동안 우리 산행 문화가 알피니즘에 매몰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산과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담은 시가 하나둘 묶여 18권의 시집이 되었다. 그의 산행관을 잘 보여주는 시가 있다.

오르는 것이 아니네
내려오는 것이네
굽이굽이, 두고 온 사연만큼
해거름 길어지는 산 그리메
막소주 몇 잔, 목젖 쩌르르 삼키듯
그렇게 마시는 것이네
거기 묵김치 같은 인생 몇 쪽
우적우적 씹는 것이네
지나보면 세상사 다 그립듯
돌아 보이는 능선길
그게 즐거움이거든
_{- 시 ‘등산’ 전문}

‘자벌레’ ‘갈참나무’의 심성

‘농심마니’라는 단체도 만들었던데. 

“1987년 소설가 박인식·최성각, 산악인 남난희, 연극인 최유진 등 산을 좋아하는 10여 명이 모여 당시 멸종위기인 산삼을 산에 심어 미래 세대에게 전해주자고 의기투합했다. 30, 50, 100년 후에 우리가 심은 삼을 등산객이든 약초꾼이든 누구든 캐면 우리 사회의 부가 커지는 거니까 좋은 일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참여자 숫자가 150여 명으로 늘었고, 그 동안 심은 3년근이 12만 주가 넘는다. 그 옆엔 산삼 씨앗도 함께 뿌렸다. 우리가 심은 덕에 이젠 산삼이 멸종 단계를 넘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회원들 모두 이 땅에 한 가지는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30주년 행사도 치렀다.” 

사회활동을 오래 했으니 정치 권유도 많이 받았을 텐데, 그동안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는 대지주의 아들이었지만 당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평생 나라의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바치고 감옥에도 가셨다. 광복 후에는 진보운동을 하며 고초도 겪으셨다. 어머니가 행상을 하며 어렵게 5남매를 키우셨다. 어려서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커서는 가장 존경하게 되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떠올린 게 남을 돕는 거였다. 그것으로 만족하고 행복하다.” 

그러면서 그가 ‘산행’이라는 자신의 시 한 편을 들려주었다. 

“길섶, 키 낮은 들꽃에게도 / 고개 숙이고 / 경배의 허리를 굽히는 이여 //꽃향기는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정상만을 향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 고개를 숙일 때 비로소 보이는 자신보다 낮은 편에 있는 존재들을 향한 그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이를 통한 행복이 전해졌다. ‘아침이슬 한 방울도 무거워할’ 자벌레의 여린 심성과 ‘키 낮은 것을 위해 / 한여름엔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만들고 / 한겨울엔 (잎을 떨궈) 볕을 더 들이려는’ 갈참나무의 베푸는 마음을 함께 가진 권 이사장이야말로 이 시대의 참 산악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