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호

가상화폐 역풍

과거에서 미래까지 가상화폐 톺아보기

‘혁명? 거품?’ 두 얼굴의 ‘대박 신화’

  • 입력2018-01-2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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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육성’  美 ‘육성+규제’  韓 ‘무데뽀 헛발질’

    • “달러와 은행 대체할 폭발적 잠재력”

    • 가치평가 불가하고 거래소만 돈방석

    • 한국정부 무능해 투자자 다수 피해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시가총액(349조 원)이 지난해 12월 18일 처음으로 ‘1등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의 시가총액(331조 원)을 넘어섰다. 세계 가상화폐 시장 규모(8167억 달러)는 ‘네덜란드’의 국내총생산 규모(8244억 달러)와 비슷하다. 

    가상화폐 투자 열기가 ‘광풍’이라 할 정도로 뜨겁다. 특히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영어 표현이 생길 정도로, 한국이 가상화폐 투자 열기에 일조한다. ‘가상화폐 대박 신화’가 퍼지면서 많은 한국인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SNS에선 “비트코인으로 43억 원을 벌어 당당하게 직장을 그만뒀다” “비트코인을 10만 원 주고 샀는데 1000억 원이 쌓였다”는 ‘출처 불명 투자 성공담’이 횡행한다.

    ‘그때 샀다면’ 시리즈

    2017년 12월 13일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한 가상화폐 채굴현장.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2017년 12월 13일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한 가상화폐 채굴현장.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가상화폐로 막대한 부를 얻은 것으로 실제로 확인된 사람도 있다. 투자자가 아니라 개발자다. 가상화폐의 한 종류인 ‘리플’을 개발한 크리스 라센은 ‘구글’ 창립자를 제치고 미국의 5대 부호로 꼽혔다. 

    요즘 국내 SNS에선 ‘그때 샀다면’ 시리즈도 돌아다닌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나는 지난해 초 5000만 원을 주고 고급 승용차를 샀다. 만약 그때 이 돈으로 비트코인을 샀다면 수백억 원을 벌었을 거다. 심지어 나는 지금 이 차를 잘 타지도 않는다. ㅠㅠ” 

    ‘그때 샀다면’ 같은 이야기는 직장인은 물론 대학생, 주부, 청소년의 추격 매수를 부추긴다. 특히 취업도 잘 안 되고 내 집 마련도 요원한 20, 30대가 아껴둔 종자돈을 빼서 가상화폐 투자를 주도한다. 지하철이나 버스, 식당에선 스마트폰으로 가상화폐 등락 폭을 확인하는 ‘비트코인 좀비’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가상화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이들은 가상화폐를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시대 흐름에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은 야릇한 불안함을 느낀다. 

    이에 필자는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상화폐의 A-Z를 설명한 뒤 ‘가상화폐 톱3 국가’인 한국, 미국, 일본 간 비교를 통해 그 시사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장(전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 이사)은 가상화폐 붐을 제2의 인터넷 혁명으로 비유한다. 김재윤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가상화폐와 함께 등장한 블록체인은 새로운 구글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예견한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과연 제2의 인터넷이자 구글이 될까? 

    가상화폐는 지폐나 동전 같은 실물이 없이 사이버 공간에서만 거래되는 전자 화폐를 뜻한다. 해외에선 눈에 보이지 않고 컴퓨터에서만 표현되는 화폐라고 해서 ‘디지털 화폐’라고 불렸다. 최근에는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 암호화 기술을 사용하는 화폐라는 의미로 ‘암호화폐’로 칭해진다. 국내에서 언론과 대중은 가상화폐라는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반면 업계와 학계는 암호화폐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한국 정부는 ‘가상통화’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용어의 불일치가 각 계층의 온도 차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한다. 

    2013년까지 해외에선 가상화폐라는 말이 쓰였다. 하지만 ‘가상’이 도박 칩이나 게임머니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에 CNBC,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외신은 암호화폐로 부르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2013년 비트코인 거래소인 ‘코빗’이 ‘국내 최초 가상화폐 거래소’라는 표현을 쓰면서 가상화폐라는 용어가 대중화됐다. 한국 정부는 ‘암호’보다 ‘가상’이 실체가 없는 특성을 잘 보여주고 ‘화폐’보다는 ‘통화’가 돈이라는 인상을 덜 주기에 ‘가상통화’라 칭한다. 이 기사에서는 국내에 가장 대중화되어 있는 가상화폐라는 용어를 주로 쓰기로 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가상화폐는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화폐다. 정부의 통제하에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기존 화폐와 달리, 가상화폐는 누구나 만들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말대로, 블록체인 기술을 알면 누구나 가상화폐를 만들 수 있다. 가상화폐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은 캐나다 출신 비탈릭 부테린이 19세 때 만든 것이다. 1월 9일 기준 거래 가능한 가상화폐는 1394개에 달한다. 가상화폐는 송금이나 소액 결제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개인 간 불법적 거래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하루 동안 이뤄지는 가상화폐 거래량은 480억 달러(52조 원)를 넘어섰다.

    ‘실과 바늘’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실과 바늘처럼 떼어놓을 수 없다.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이 담긴 블록들을 연결한 사슬을 뜻하는 것으로 공공 거래 장부라고도 한다. 주로 해킹을 막는 데에 사용된다. 기존의 금융기관들은 이용자의 거래 기록을 모두 모아 중앙 서버에 보관해왔다. 해커들이 중앙 컴퓨터 서버 기록만 조작하면 됐기에 해킹의 위험에서 안전하지 못했다. 

    블록체인은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이에게 거래 내역을 보여줌으로써 데이터 위조를 막는다. 거래 내역을 블록에 담고, 거래 순서대로 체인에 연결해, 자유롭게 열람하게 한다. 해커가 한 참여자의 컴퓨터에 접속해 데이터를 변조한다고 해도 다른 참여자들이 원본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으므로 해킹에 성공할 수 없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은 큰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서령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도 “4차 산업혁명의 가장 강력한 성장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금융·산업계도 블록체인 기술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신한·하나·우리은행은 일본 SBI은행과 같이 ‘리플’이라는 가상화폐를 이용해 국제 송금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 시범 서비스를 진행할 계획이다. 해운업계에도 블록체인 열풍이 불고 있다. IBM은 블록체인 기술이 세계 해운물류 시장에서 연간 270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초의 가상화폐는 나카모토 사토시가 2009년 개발한 비트코인이다. 사토시는 비트코인 98만 개(최대 2조 원 가치)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카모토 사토시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BBC, 이코노미스트, CNBC가 추적했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비트코인 창시자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64세 미국계 일본인 도리안 사토시, 테슬라의 CEO인 엘론 머스크, 호주 기업인 크레이그 라이트가 후보군에 올라 있다.

    “비트코인은 달러보다 낫다”

    비트코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캐나다 KFC의 비트코인버킷 치킨.

    비트코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캐나다 KFC의 비트코인버킷 치킨.

    비트코인은 가상화폐 시장의 대장주로 꼽힌다. 시가총액이 1위인데다 최초의 가상화폐라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5일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19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워런 버핏(830억 달러)과 빌 게이츠(900억 달러)의 자산을 훌쩍 뛰어넘었다. 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코인들은 알트코인이라 불린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비트코인에 대해 “달러보다 낫다. 주고받기 위해 만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이 기존의 화폐들과 달리 통화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중앙은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점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비트코인은 개인들이 서로 만나지 않고 거래하게 해준다. 또한 정부나 중앙은행, 시중은행의 개입 없이 온라인상에서 직접 돈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한다. 

    해외에서 비트코인을 실생활에서 화폐처럼 쓰는 사례가 속속 나온다. 캐나다 KFC는 ‘비트코인으로 치킨 주문하세요’라는 온라인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비트코인 버킷(The Bitcoin Bucket)’이라는 치킨을 20캐나다달러(1만6981 원)가치의 비트코인을 받고 판매하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부동산이 거래되기도 했다. 영국 부동산 개발회사인 고 홈즈(Go Homes)는 지난해 12월 비트코인을 받고 영국에서 단독주택 2채를 판매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알렉산더 이는 리바란섬의 1만2190㎡ 땅을 0.5비트코인(5758달러)을 받고 친구인 폴리카프 친에게 팔았다고 한다. 

    가상화폐 업계의 언어 중에 매우 빈번히 쓰이는 말이 ‘채굴’과 ‘거래소’다. 채굴은 가상화폐를 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가상화폐는 거래나 채굴을 통해 획득된다. 채굴은 단어의 뉘앙스와 달리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다. 그 보상으로 가상화폐가 주어진다. 

    채굴 방법은 가상화폐마다 다르지만, 보통 채굴 전용 컴퓨터를 24시간 가동하면서 문제를 풀게 된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기에 일반인이 쓰는 PC로는 채굴에 성공하기 어렵다.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적게는 수십 대, 많게는 수백 대를 연결해 채굴해야 수익을 낼 수 있다. 채굴은 비싼 전기료와 컴퓨터의 발열을 수반한다. 이 때문에 채굴 업자들은 전기 값이 저렴하고 기후가 선선한 곳에 ‘채굴공장’을 세운다. 

    중국은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량의 80% 가까이 차지한다. 그러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최근 가상화폐 채굴 작업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관련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지도하라’는 내용을 지방정부에 공지했다. “채굴이 다량의 전기를 소모하고 투기를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거래소, ‘수수료 장사’로 대박

    채굴 관련된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1월 8일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북한이 악성코드를 퍼뜨려 채굴된 가상화폐 ‘모네로’를 송금토록 했다. 익명성이 높은 ‘모네로’는 자금세탁, 테러지원, 마약거래에 사용되기 쉽다.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 ‘에일리언볼트’ 측은 “얼마나 많은 컴퓨터가 이 악성 코드에 감염됐는지, 얼마나 많은 모네로가 송금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채굴로 가상화폐를 얻기 어려운 일반인들은 가상화폐를 사고파는 시장인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구입할 수 있다. 주식거래를 증권거래소에서 하듯이 가상화폐 거래도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한다. 1월 13일 기준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소는 총 7905개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은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량 2위를 차지했다. 

    거래소는 가상화폐를 사고파는 투자자들로부터 거래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낸다. 가상화폐 거래가 늘면서 거래소의 수수료 수익도 급증하고 있다. 거래소들이 꽃놀이패 장사로 돈방석에 앉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빗썸의 하루 평균 수수료 수익은 25억9000만 원으로 추산된다. 연간으로 수익은 9461억 원에 달하는 셈이다. 

    가상화폐 거래소 수수료는 증권거래소 수수료보다 높다. 거래소는 가상화폐를 입금하거나 출금할 때도 수수료를 매긴다. 지난해 12월 주요 거래소들이 출금 수수료를 올려 원성을 샀다. 가상화폐로 ‘대박’이 난 쪽은 ‘투자자들’이 아니라 ‘거래소’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구글? 암 치료제? 강남 땅?
    거품? 대륙화폐? 휴지조각?

    높은 수수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상화폐 거래에 몰리는 것은 ‘수수료 이상의 수익을 낼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상화폐가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실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매출이 일천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능가하는가?’에 대해 사실 어떤 전문가도 딱 부러지는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가상화폐의 현재 가치가 얼마인지에 대해서도 누구도 정확한 계산을 하지 못한다. 

    다만, “가상화폐는 ‘제2의 구글’이라고 하니 조만간 엄청나게 뜰 것 아니냐?” “가상화폐는 연구 단계에선 매출이 거의 없지만 시판되면 대박이 나는 ‘암 치료제’ 같은 것 아닐까?” 하는 다소 막연한 말이 나올 뿐이다. 몇몇 투자자는 가상화폐를 ‘황무지였다가 금싸라기가 된 강남 땅’에 비유한다. ‘흙수저’가 노려볼 만한 투자처라는 것이다. 

    가상화폐의 앞날에 대해선 긍정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선다. 투자 귀재인 워런 버핏은 “비트코인은 정말 거품”이라며 “비트코인은 가치 판단이 불가능하고 적정가를 전망하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도 “비트코인은 대륙화폐와 같다”고 말한다. 대륙화폐는 미국 독립전쟁 시절 미국 대륙의회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화폐로, 7년 만에 휴지조각이 됐다. 

    하지만 IT전문 매체인 ‘테크크런치’의 마이크부처 유럽 편집장은 “가상화폐로 인해 산업 환경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국제통화기금) 총재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가 미래에 금융 시스템을 대체할 것이다. 비트코인이 기존 은행을 대신할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트코인 거품론’을 주장하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도 “비트코인은 사기라는 발언을 후회한다. 블록체인은 현실이며, 암호화된 가상달러도 가능하다”고 했다.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금융기관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가치 측정이 불가능한 거품 요소 같은 부정적인 부분을 우선적으로 봐야 할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잠재력 같은 긍정적인 부분을 봐야 할지를 두고, 둘 사이에서 방황한다. 각국 정부의 대응도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대중화는 미국, 시장 규모는 일본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월 11일 법무부에서 가상화폐 규제안을 발표하고 있다. [스포츠 동아]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월 11일 법무부에서 가상화폐 규제안을 발표하고 있다. [스포츠 동아]

    한국, 미국, 일본에서 벌어지는 가상화폐를 둘러싼 양상을 △대중화 정도, △산업 규모, △정부 정책이라는 세 범주로 비교 분석해봤다. 

    대중화 정도 가상화폐를 실제 생활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로 대중화 정도는 측정될 수 있다.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하는 업소들을 보여주는 코인맵에 따르면, 미국 뉴욕에선 124개의 업소에서 가상화폐를 화폐처럼 쓸 수 있다. IT 산업이 발달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109개의 업소가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 받아줬다. 반면, 일본 도쿄에서는 68개의 업소가, 한국 서울에서는 52개의 업소가 가상화폐를 취급했다.
    세계적으로 가상화폐가 실제 화폐처럼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데는 아직 시간이 꽤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까지 가상화폐의 대중화 측면에서 미국이 선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 규모 ‘얼마나 많은 자본이 가상화폐 투자에 투입되느냐’로 가상화폐의 시장 규모는 추정될 수 있다. 코인힐스에 따르면 1월 10일 하루 동안 세계에서 비트코인 거래량이 가장 많은 지역은 일본, 미국, EU, 한국 순이었다. 이날 하루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45.5%가 일본 엔화로 거래됐다. 이어 35.5%는 미국 달러로, 7.1%는 유로화로, 5.5%는 한국 원화로 거래됐다. 한국은 지난해 말까진 거래량에서 세계 3위를 유지했으나 정부의 규제 발표 이후 다소 주춤해졌다. 그러나 EU는 국가연합체이고 한국은 단일 국가다. 

    일본에선 ‘미세스 와타나베’와 ‘미스터 와타나베’가 함께 비트코인 거래를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세스 와타나베는 해외 고금리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일본의 주부 외환투자자들을 의미한다. 미스터 와타나베는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일본 남성을 뜻한다. 와타나베는 일본에서 가장 흔한 성(姓) 중 하나다. 지난해 12월 도이치뱅크의 보고서는 일본인 투자자들이 외환거래 시장에서 가상화폐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상화폐 투자 열기에선 한국이 가장 뜨겁다고 할 수 있다.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같은 가상화폐라도 한국에선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40~50% 가까이 높다. 최근 국내 거래소 빗썸에서 비트코인은 2219만 원에 거래됐다. 같은 시간 전 세계 가상화폐 시세를 보여주는 코인마켓캡에서 비트코인의 시세는 1만4595달러(1565만 원)였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는 국적이 없는 화폐라 이론적으로는 모든 나라에서 같은 가격에 거래돼야 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살 때 사용되는 원화, 달러, 엔화 같은 법정화폐는 해당 국가 중앙은행의 통제하에 있어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그러나 정부의 가상화폐 거래 규제안이 발표되면서 김치 프리미엄도 다소 가라앉고 있다.

    선물거래도 허용… 美 발 빠른 대응

    정부 정책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한국, 미국, 일본 정부의 시각은 서로 다르다. 일본 정부는 가장 적극적으로 가상화폐를 제도권 시장에 도입하려고 노력한다. 미국 정부는 조심스럽게 ‘선(先)규제’ 움직임을 보인다. 반면, 한국 정부는 중대 발표 내용을 뒤엎으며 오락가락하고 있다. 

    일본은 2014년 2월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마운트 곡스’가 파산한 이후 가상화폐 양성화를 위한 제도 정비에 돌입했다. 지난해 4월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 허용했다. 법정화폐로 인정하지 않지만 달러처럼 ‘불태환 화폐(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로 인정한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에 부과하는 소비세 8%를 폐지했다. 가상화폐 취급업소 등록제도 실시했다. 지난해 9월엔 세계 최초로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를 실시했다.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차익이 200만 원을 넘으면 스스로 국세청에 신고하도록 했다. 

    일본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오쿠리비토(가상화폐로 10억 원 가까이 수익을 얻은 사람)’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과열 현상을 보였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막대한 차익을 올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미국은 가상화폐를 화폐나 지급수단이 아닌 하나의 ‘상품’으로 규정하면서 올해부터 양도차익에 대해 10~37%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가상화폐 관련 파생금융 규제 방침을 마련한 후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허용했다. 지난해 12월 1일 시카고선물거래소를 시작으로 비트코인 선물거래가 시작됐고, 12월 8일 시카고상품거래소도 비트코인 거래에 뛰어들었다. 일본도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가상화폐가 자금세탁이나 테러지원 같은 불법적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규제안을 준비해왔다. 미국 뉴욕주 금융감독국(NYDFS)은 2015년 6월 자금세탁 방지와 이용자 보호를 고려한 가상화폐 종합규제체계를 마련했다. 가상화폐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대해 영업인가를 받도록 규정한 것이다. 

    미국 정부도 가상화폐 투기 수요를 잡지 못했다. 제이 클레이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의장은 “가상화폐 투자는 증권법을 따르지 않는다.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가상화폐 투기 심리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경고였다.

    “정부, 갈피 못 잡고 균형 잃어”

    한국 정부는 가상화폐 규제와 관련해 부처별로 말을 바꾸는 발표를 했다. 정부가 큰 혼란을 자초한 것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하는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부처 간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박 장관을 거들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 높은 조치에 국내 가상화폐 시장은 요동쳤다. 비트코인 가격이 2100만 원에서 1550만 원으로 35%가량 폭락하고 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 110조원이 증발됐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9월 투자 위험이 높고 범죄 악용 소지가 많다는 이유로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했는데, 한국 정부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를 닮아가는 것으로 비쳤다. 같은 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박 장관 발언은 법무부가 준비해온 방안 중 하나지만,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면서 한 발 뺐다. 5시간 만에 드러난 부처 간 ‘불협화음’이었다. 법무부가 “추후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나가겠다”고 말을 바꾸자 가격은 다시 2100만 원대로 뛰었다. 

    하루 동안 600만 원 가까이 급등락하면서 투자자들은 폭발했다. 특히 2030세대의 불만이 폭주했다. 청와대 게시판엔 가상화폐 관련 청원이 쇄도했다.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국가인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해임하라”와 같은 글이 올라왔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한국처럼 정부의 ‘번복’으로 가상화폐 시장이 요동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가상화폐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육성’을, 미국 정부는 불법을 차단하면서 거래를 활성화하는 ‘실리’를, 한국 정부는 투자자들에겐 ‘무데뽀’로 비치는 ‘강력한 억제’를 내세우고 있다. 일본과 미국 정부는 서로 닮아가고 있고, 한국 정부는 이 두 나라 정부들과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세 나라 정부 사이엔 공통점도 있다. 이 세 정부는 모두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가상화폐 투기를 잡는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몇몇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가상화폐의 세계적 중심이 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헛발질이 나왔다. 또한 정부는 육성과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원숭이와 가상화폐

    가상화폐 열풍을 풍자한 아래의 비유가 최근 전문가들과 법률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원숭이가 많은 한 마을에 어떤 사업가가 와서 ‘마리당 100만 원을 주겠다’면서 ‘잡아다 달라’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널리고 널린 원숭이를 잡아 사업가에게 줍니다. 사업가는 100만 원을 지불합니다. 

    원숭이 개체 수가 줄자 사업가는 200만 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기를 쓰고 잡아줍니다. 사업가는 약속대로 돈을 지불합니다. 더더욱 줄어든 원숭이는 이 마을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집니다. 사업가는 가격을 더 올립니다. 

    이 마을에는 애 어른 할 거 없이 원숭이 잡기에 혈안이 됩니다. 씨가 마른 원숭이를 사업가는 800만 원까지 제안합니다. 하지만 원숭이는 없습니다. 

    사업가는 도시로 나가고 밑에 있던 부하직원이 와서 말합니다. ‘마리당 500만 원에 그동안 잡은 원숭이를 주겠다’고. 이어서 ‘나중에 사장이 오면 800만 원에 팔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열광해 빚을 내서라도 원숭이들을 사들입니다. 

    원숭이를 모두 판 직원은 사라지고 사업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마을은 다시 원숭이로 넘쳐납니다. 마을 사람들에겐 빚만 남았습니다.”

    아마 ‘원숭이’는 ‘가상화폐’이고, ‘사업가’는 ‘가상화폐 거래소’이고, ‘마을 사람들’은 ‘가상화폐 투자자’일 것이다. 이 비유는 ‘가상화폐는 실질적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 가상화폐의 활발한 거래로 거래소만 큰돈을 번다, 투자자들은 결국 손실을 본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가상화폐 업계 한 관계자는 “‘가상화폐는 사기’라는 프레임은 이미 미국에서 폐기되고 있다. 이 비유는 현실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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