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호

김정은 리더십 다시 읽기

핵과 함께 성장한 자유시장 정권 목 죄는 큰 도전 요인

  • 입력2018-02-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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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대 세습으로 정권을 잡은 북한 김정은에 대해 우리 국민은 ‘공포정치’로 정권을 유지하는 폭군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와 달리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지지와 기대가 높다고 한다.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 70년을 맞아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을 위해서는 김정은의 리더십을 새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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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지지와 기대는 김일성 집권 후반기, 김정일 시기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존에 우리 사회가 인식해온 ‘폭압정치’ ‘공포정치’라는 김정은 정권의 리더십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김정은 정권리더십의 실체를 새로운 관점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김정은 정책에 대해 모든 주민이 지지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양극화의 심화에 따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주민 간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고, 여전히 식량난에 시달리는 주민이 적지 않다. 

    우리는 지금까지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 대해 고정된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봐왔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남북대화와 교류에 한계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새로운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김정은 정권의 실체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특히 익히 알려진 핵미사일 정책에 대한 것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경제에 대한 리더십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김정은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김정은 리더십이 이끈 시장화

    자본주의체제 국가 대부분은 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본주의국가로 탄생했다. 그러나 북한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본주의국가가 되고 있다. 북한 정부는 여전히 자신들을 사회주의국가라고 한다. 그러나 상당수 탈북자는 그들이 살았던 북한 사회를 자본주의사회라고 인식한다. 빈부격차, 독점재벌,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부정부패 등 자본주의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 증언을 토대로 판단하면 북한은 정권 자체를 제외하곤 세계 어느 곳보다 자본주의가 강하게 작동하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더욱 심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은 사회주의체제 고수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시장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해왔다. 

    한국은행은 2016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3.9%로 199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추정 발표한 바 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2016년 북한 경제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북한 내 확산되고 있는 시장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많은 사람이 북한의 핵 보유와 경제 발전은 병행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가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듯이 핵미사일 고도화 시도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고강도 제재를 불러왔다. 웬만한 저개발국가라면 경제파탄에서 벗어나기 힘든 환경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플러스 성장을 이끈 점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 집권 아래 북한은 공식적으로 ‘개혁’ ‘개방’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지만 경제정책과 제도, 기존의 관행을 개혁, 혁신하는 노력을 해온 것은 분명하다. 물론 이는 김정은의 강력한 경제 분야 리더십이 이끈 변화다. 특히 과학기술 발전이 생산력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방 분야 과학기술이 민수 분야로 이전되는 현상도 목격된다. 현재 북한 내 국산제품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이런 정책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

    시장화 실태와 특징

    김정은 정권이 사회주의 계획경제 근간을 유지하면서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한 결과, 계획경제보다는 시장경제 비중이 증가해왔다. 갈수록 국가 주도 시장화를 강화하는 추세도 보이고 있다. 현재 북한 시장경제는 크게 ▲시장(장마당) 확대 ▲돈주 성장과 투자 활성화 ▲온라인 시장 등장 ▲새로운 금융 시스템 구축 등으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시장이 부상하면서 물리적 구조가 형성되고 자본주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 시장에서 상품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상품을 생산, 재생산하며 계속 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 개인수공업자, 사기업, 고리대금업, 환전상 등의 급성장도 함께 목격되고 있다. 

    종합시장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추고 있으며 생산을 유도하고 활성화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위성사진을 통해 살펴보면, 김정은 집권 이후 23개 공식 시장이 새로 생겼으며, 78개 시장이 확장하거나 새롭게 단장했고, 25개 시장이 더 많은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넓은 곳으로 옮기는 등 북한 시장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 조사를 수행한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커티스 멜빈(Curtis Melvin) 연구원은 2010년 북한 전역에 장마당 수는 약 200개였지만, 2017년엔 468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는 김정은 체제가 장마당을 통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했을 수 있음을 짐작게 한다. 허가받지 않은 길거리에 조성한 장마당이나 임시 시장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증가한다. 시장이 새로 생기거나 확장·보수되는 현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돈주의 성장과 투자 활성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2017년 10월 평양에 있는 류원 신발공장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동아DB]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2017년 10월 평양에 있는 류원 신발공장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동아DB]

    시장 확대와 더불어 김정은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 돈주들의 투자를 공식, 비공식적으로 활성화하고 있는 점이다. 돈주들이 어느 정도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데는 김정은 ‘교시’가 한몫하고 있다. 김정은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한 출처를 따지지 말고 투자하게 하되, 이윤도 최대한 보장해주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2014년 기업소법을 개정해 ‘돈주’(신흥부유층) 등 개인의 기업 투자를 합법화했다. 신의주와 남포시 등에서는 이미 주택을 사실상 사유재산으로 인정해주는 것으로 전해진다. 

    돈 주는 상업 활동과 고리대금업, 나아가 아파트 건설 등 각종 이권사업에 투자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당과 군대 산하 외화벌이 기관에서 오랫동안 무역한 사람들과 장사해서 부를 모은 사람들을 지칭한다. 돈주들은 대형 국가 프로젝트가 시행될 때마다 ‘충성기부’를 강요받는다. 기부 방법은 외화, 건축 자재, 연료, 식품 등 다양하다. 이들은 기부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기부를 하면 메달과 수령증을 받게 되고 불법적인 사업 활동을 하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주의 투자 영역은 시장을 넘어 부동산, 국가급 건설 분야는 물론 교통과 여객 운수, 유통 등 거의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특정 기업의 독점적 시장 지배 현상도 눈여겨봐야 한다. 한국의 재벌과 같은 특정 기업이 여러 업종과 비즈니스 영역을 차지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시장에서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다양한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소비자가 다양한 혜택을 보고 있기도 하다. 가격, 품질, 서비스 경쟁에 따른 혜택이다. 그리고 당국의 감시 시스템에서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체계적인 마케팅이 이뤄지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북한도 초보적 형태의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국가가 시장과 협력하면서 계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리더십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제 붕괴에 강한 위기감

    이처럼 오늘날 북한에서 벌어지는 시장화 현상은 김정은의 강한 의지와 지도 아래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주의를 강조하면서도 교묘하게 자본주의 시장경제 요소들을 대폭 수용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공포정치를 펴면서도 시장화에 대한 단속과 통제는 강화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김정은의 솔직한 시각은 과거 외신이 보도한 김정은 어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2012년 4월 16일)은 김정은의 발언록을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이 신문이 입수한 김정은의 2012년 1월 28일 자 발언록에 따르면 그는 “경제 분야의 일꾼과 경제학자가 경제 관리를 ‘이런 방법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도 색안경을 낀 사람들에 의해 ‘자본주의적 방법을 도입하려 한다’고 비판을 받아 경제 관리에 관한 방법론에 의견을 갖고 있어도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비판만 해서는 경제 관리 방법을 현실 발전의 요구에 맞춰 개선해갈 수 없다”고 지적하고, 금기가 없는 논의를 통해 북한에 맞는 경제 재건축 방법을 찾아내도록 지시했다. 

    노동당 관계자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동지는 당 간부에게 ‘중국의 방법이든 러시아든 일본이든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도입해야 한다’고도 지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정은이 경제 붕괴에 강한 위기감을 가지고 대응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는 발언록에서 “공장이나 기업이 충분히 가동되지 않아 인민의 소모품에서 생산 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민에게 이런저런 생활상의 불편을 주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발언록이 기록된 20일 뒤인 2월 16일에는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탄생 7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있었지만, 김정은은 “인민들에게 공급되는 축하물자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통해했다고 발언록에 나와 있다. “인민은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변함없이 당(조선로동당)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훌륭한 인민에게 보다 나은 물자, 문화생활을 보장해줘 인민이 언제 어디서나 ‘로동당 만세’를 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당 간부에게 대책을 요구한 것이다.

    “사회주의 열차에 자본주의 태우라”

    경제 관리 개선에 대한 발언은 이후에도 상당한 일관성을 갖고 후속 조치로 이어졌다.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2년 12월에도 외국인 투자 관련 법령이 대폭 개정됐고, 외국 투자기업의 투자 자산을 보호하고 이윤 송금을 허용하는 등 국제법상 법규를 수용한 바 있다. 

    김정은은 2012년 집권 초 “사회주의 열차에 자본주의를 태우라”고 강조했다. 즉 북한이라는 열차에 자본주의라는 시장경제를 도입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이어 북한에 ‘6·28’조치라는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이 등장했다. 

    김정은은 2013년 처음으로 경제-핵개발 병진노선을 내세우면서 핵 보유를 통해 군비경쟁에 종지부를 찍고, 그 기술과 재원으로 인민생활 향상에 복무하는 ‘경제건설’에 좀 더 초점을 둘 것을 다짐했다. 

    김정은은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경제 관리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의 구체적인 실행 도구인 ‘사회주의 기업책임 관리제’(지배인책임경영제)를 제시했다. 2014년에 나온 ‘5·30 노작(또는 담화)’에서 김정은은 1990년대 중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라 경제와 인민생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두고 경제일꾼들은 물론 모든 일꾼들이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낡은 틀과 격식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했다. 경제 문제를 풀자면 결정적으로 경제 관리 방법을 혁신해야 한다고 변화를 강조했다. 

    되돌아보면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줄곧 변화를 외쳐왔다. 내각 주도하에 이뤄진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에 관한 연구는 본질적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기업책임 관리제는 농장, 공장기업소 등 생산주체들에게 경영권, 계획권, 생산조직권, 노력조절권, 제품개발권, 품질관리권, 인재관리권, 무역과 합영·합작권, 재정관리권, 가격제정권과 판매권 등 12가지의 경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 조치에 따라 농업과 공업 부문에서 여러 가지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났다.

    제재 역이용 자립경제 기반 강화

    북한 선전 매체인 ‘우리 민족끼리’에서 공개한 북한 상점 모습. [동아DB]

    북한 선전 매체인 ‘우리 민족끼리’에서 공개한 북한 상점 모습. [동아DB]

    김정은은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제재를 오히려 시장화를 촉진하고, 자립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데 활용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내생적 성장동력 확충의 기회로 삼았다. 

    북한의 자립경제는 시장화 진전에 의해 그 기반이 강화되었다. 2016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처음으로 ‘자강력 제일주의’를 주장했다.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에서 자강력 제일주의를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면서 “강성국가건설대업과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 리상을 반드시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으로 이룩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 신년사에서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수입병을 없애고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이자”고 호소한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강력 제일주의’란 개념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중국 무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고,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제재 국면의 장기화를 예상한 정책이기도 하다. 즉 모든 경제 문제를 스스로의 기술과 인력, 원료, 기계 등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자강력 제일주의의 내용인데, 실제 김정은 통치 아래 국산화는 급속히 진전되었고, 시장화와 과학기술 혁신에 힘입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시장경제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이는 내부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장경제 확산에 따른 빈부격차, 부정부패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전체 경제의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생산성이 높은 사람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돈을 버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부익부 빈익빈의 폐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김정은과 권력을 가진 특수기관들과 돈주들 간의 재산 분할이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 반국가범죄와 전쟁 중이기도 하다. 김정은 정권이 내부 체제 결속을 다지기 위해 주민들의 한국 비디오 시청 및 마약 밀거래 등을 ‘반국가범죄’로 규정하고 단속과 처벌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노동당과 보위성, 보안성이 ‘강력범죄 단속 상무 조직’을 구성해 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고 공개총살 등 잔혹한 처벌을 가하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주민들의 일탈행위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장경제 요소 도입으로 극도의 가난에서 벗어난 주민이 일부 있을지는 모르지만, 김정은 정권은 통치력 측면에서 시험대에 올라와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식량, 전력, 급여 등 모든 측면에서 주민들의 국가 의존도가 크게 낮아지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시장화 확산과 성장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정보들이 북한 사회 내부에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점도 만만치 않은 도전 요소다. 시장의 발달에 따라 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도 약화되고 있다. 탈북자들은 “‘만약 우리를 먹여 살리지 못하면 시장을 통해 생활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라’라는 게 정부를 대하는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험대에 오른 김정은 정권

    2017년 12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에 올라 눈 덮인 천지를 둘러보고 있다. 김정은은 중대 결단을 하기 전 백두산을 찾곤 했다. [동아DB]

    2017년 12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에 올라 눈 덮인 천지를 둘러보고 있다. 김정은은 중대 결단을 하기 전 백두산을 찾곤 했다. [동아DB]

    김정은도 주민들의 지향과 의식 변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2008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처음 언급됐던 ‘인민생활제일주의’란 표현이 김정은 시대에 와서 ‘인민대중제일주의’란 표현으로 공식화되었고, 북한이 2013년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면서 처음으로 국방보다 경제를 앞세운 것도 이러한 인식의 반영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이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민들의 생활 개선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지 않고서는 정권 유지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핵미사일만으로 체제를 유지하기는 힘든 것이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인민들에게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장화 진전으로 주민들의 의식 수준과 소비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장화를 끊임없이 고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라도 주민의 생활을 상당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김정은의 육성 연설 내용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2017년 이룩한 핵무력 건설 성과를 새로운 도약대로 삼고 경제 건설에서 총공세를 벌여나가겠다고 선언했다.

    통제 가능한 시장경제 지향

    시장의 확장으로 체제 불안을 두려워한 김정은이 화폐 개혁과 같은 충격 요법을 동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지만, 현재의 시장경제 상황을 돌려세우기엔 너무 멀리 왔다. 오히려 북한이 향후 수년 안에 사유재산을 부분적으로 공식 인정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실제 이런 과정이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더구나 고강도 국제사회 제재가 지속됨에 따라 국가기관이 재정에 쪼들리게 되면 국가 재산을 매각 또는 사용권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외화 확보에 나설 수도 있다. 

    김정은은 통제 및 관리 가능한 시장경제를 희망한다. 하지만 시장경제가 고도화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시장경제 욕구가 급속히 확산되고, 어느 순간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지금도 돈주들은 겉으로는 김정은 체제에 순응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시장경제체제의 자본가와 다를 바가 없다. 

    ‘시장경제’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김정은은 호랑이를 길들여 민생을 안정시키고, 체제 안정에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반대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핵무력은 고도화되겠지만 시장화도 고도화되면서 김정은에게는 커다란 도전 요인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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