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단독] 김옥이 前 보훈공단 이사장 '억지 사퇴' 전말 “보훈처 과장, '사표 안 내면 안 간다’ 소란”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9-03-19 15: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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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7월 직원 만류 뿌리치고 쳐들어와 ‘사퇴하라’

    • “나도 국가유공자…예의도 절차도 없이 막무가내”

    • 평가 ‘A’ 받아 임기 연장…정권 바뀌니 평가도 바뀌나

    • “환경부 블랙리스트 비슷, 이게 ‘체크리스트’냐”

    김옥이 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의 국가유공자 증서. [뉴스1]

    김옥이 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의 국가유공자 증서. [뉴스1]

    “40대 국가보훈처 과장이 사전 약속 없이 새벽 나절 강원도 원주로 달려왔다. 1급 직원 5명의 제지를 뿌리치고 이사장실에 쳐들어와 하는 말이 ‘사표 내라, 안 내면 안 간다’였다. 나도 국가유공자(보국수훈자)이고, 기획재정부 기관장평가에서 A등급을 받아 임기가 1년 연장된 기관장인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난동’을 부릴 수 있나. 어이없고 부끄럽기도 해서 참고 있었다. 이게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체크리스트’인지 참 한심스럽다.” 

    김옥이 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하 보훈공단) 이사장은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국가유공자를 우대해야 할 보훈처의 행태는 문재인 정부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며 이같이 말했다. 

    여군(女軍)단장 출신인 김 전 이사장은 군 예편(육군 대령) 후 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을 지냈고, 2013년 1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보훈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보훈공단은 애국지사와 국가유공자의 의료·복지 증진을 위해 보훈병원과 보훈요양원을 운영하는 보훈처 산하 준정부기관으로, 그는 이사장 재임 중 보훈처 국·과장의 사표 강요에 못 이겨 임기를 5개월여 앞두고 사퇴했다. 그의 후임에는 문 대통령과 경남고 동문인 양봉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가 취임했다. 

    김 전 이사장은 최근 ‘신동아’ 2월호에 보도된 ‘청와대의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 사퇴 종용 논란’ 기사를 보고 자신이 사퇴 강요를 받은 2017년 7월이 떠올랐다고 했다. “‘신동아’ 보도 이후 기자들의 확인 전화가 왔지만 가슴이 먹먹해 대면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는 그와 3월 5일 서울 신논현역 주변 커피숍에서 마주 앉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내게도 왔구나 싶었다”

    - 윤 전 관장은 보훈처 국장이 찾아와 ‘청와대 뜻이니 사표를 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보훈처 산하 3개 기관장 모두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고 했다. 

    “잘 알고 있다. 2017년 7월 윤 관장이 전화를 해서 ‘BH(청와대를 지칭) 뜻이라며 나가라고 하는데 (김 이사장도) 연락을 받았느냐’고 묻더라. ‘독립기념관법에 따라 임원추천위원회를 열어도 윤 관장은 일정상 임기를 충분히 마치는데 임기 2개월 남기고 왜 나가야 하나. 정권이 바뀌었다고 독립유공자 후손을 이렇게 대해도 되나’ 하고 위로한 기억이 난다. 그러고는 ‘피우진 보훈처장과 통화하라’고 조언했다. 윤 관장은 매헌 윤봉길 의사의 직계 장손녀인데,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후손 예우는 못할망정 이렇게 대하는 데 화가 났다. 윤 관장은 ‘사표 내는 건 문제도 아닌데 잘못된 선례를 남길 거 같아 걱정’이라고 하더라. 며칠 뒤 나도 (보훈처 국장으로부터 사표 종용을) 같은 일을 겪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겪었나. 

    “2017년 7월 어느 날 보훈처 A국장이 찾아왔다. 윤 전 관장에게서 (사퇴 종용을 받았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은 터라 ‘내게도 왔구나’ 싶었다.” 

    - 어떤 대화를 나눴나. 


    “나는 기재부 기관장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아 임기가 1년 연장됐다. ‘일을 잘했다고 (박근혜) 대통령 임명장을 다시 받은, 엄연히 임기가 남은 사람인데 이렇게 사표를 내라면 어떻게 하나. 정권이 바뀌었다고 기관장 평가도 바뀌는지 물었다. ‘당신도 담당 국장이어서 내가 일 잘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으냐’라고 말했다. 내가 국회 정론관에 가서 기자회견하면 어떻게 책임지겠나.” 

    - A 국장은 뭐라고 했나. 

    “내가 말할 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위에서 ‘미션(사표 종용)’을 받았는데 내가 ‘저항’하니 A 국장 심정은 이해가 간다.”

    “‘완장 찬 일본 순사’처럼 나타나서…”

    2014년 10월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는 윤주경 독립기념관장, 김옥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박승춘 보훈처장(왼쪽부터). [동아 DB]

    2014년 10월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는 윤주경 독립기념관장, 김옥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박승춘 보훈처장(왼쪽부터). [동아 DB]

    - 사퇴를 종용한 A국장이 ‘BH 뜻’이라고 했나. 

    “나는 윤 전 관장의 사퇴 종용 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윤 전 관장과 같이 임면권자도 대통령이니 당연히 ‘청와대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과거와 다르다고 했는데 예전 정권과 똑같이 하면 되나.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돌아가라’고 했다. 모든 걸 말할 순 없지만, 내가 사퇴를 안 하는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생각해보라. ‘평가’가 좋아 규정에 따라 임기가 연장됐고, 규정된 임기도 제법 남았는데 어떻게 막무가내로 나가라고 하나.” 

    - 기관장 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이유는 뭔가. 

    “어디에 있더라….” 

    그는 지갑에서 무엇인가를 찾더니 초록색 증서를 꺼냈다. 1990년 7월 등록된 국가유공자 증서였다. 

    “나도 국가유공자(보국수훈자)이고 보훈처는 유공자를 우대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다른 어느 일보다 최선을 다했다. 보훈병원 의사들의 서비스 마인드를 높이려고 포상과 독려를 참 많이 했다. 나이 많은 유공자 분들은 아침 7시 반이면 병원에 오는데 의사들 업무는 9시 넘어 시작해 진료 시간도 앞당기고, ‘의료 복덕방’ 안 만들려고 부단히 교육하고 분위기를 바꾸었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는 포상을 하고 내부 승진도 많이 시켜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공단이 활성화됐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 ‘의료 복덕방’은 뭔가. 

    “유공자 분들에게 다른 큰 병원을 소개하는 걸 부동산에 빗댄 말이다.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이왕이면 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면 얼마나 좋나. 의사들에게 유공자 어른들을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치료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내가 이런 일을 한 것을 A국장도 잘 안다. 그러니 말을 못 하지. 일주일 간격으로 이 국장이 두 번 찾아와 나 나름대로 ‘저항’을 했더니, 그다음에는 보훈처의 40대 B 여자 과장이 왔더라.” 

    - 당시 인사 쪽 일을 했던 B 과장 말인가. 

    “그렇다. 사전 약속 없이 이른 아침에 찾아왔다기에 실장 등 간부 5명에게 ‘약속도 안 하고 뭐 하는 거냐. B 과장을 설득해 보훈처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당시 간부들은 ‘아무래도 시끄럽게 하니 만나주시라’고 건의했지만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B 과장은 ‘완장을 찬 일본 순사’처럼 1급 남자직원들의 만류를 다 뿌리치고 5층 이사장실로 올라왔더라. 나중에 들어보니 공단 직원들이 분노할 정도로 소란을 피웠고, 마지못해 간부들이 이사장실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개방했다고 하더라. 기개가 대단했다.”

    이해 못 할 보훈처 과장의 행동

    - 첫마디는 무엇이었나. 

    “‘오늘 사퇴서를 받아가겠다. 내놔라’였다.” 

    - 이사장 임기는 규정돼 있고, 임면권자도 대통령인데 과장이 사퇴서를 내라는 건…. 

    “참 어이가 없더라. 공단의 실장들 말을 무시하는 건 그렇다고 쳐도 인사 절차와 규정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인사 일을 하는 과장 아닌가. 직권남용도 참 가관이었다. 그러니 공단 직원들이 분개하지. 어이가 없어 피우진 처장에게 전화해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데리고 가라’고 했다.” 

    - 그래서 돌아갔나. 

    “피 처장 전화를 바꿔주고 두 사람이 통화하더니 이 과장은 이사장실을 나갔다. ‘사표 강요’를 한 B 과장은 현 정부 들어 초고속 승진을 했다. 내가 ‘저항’을 하니 망신을 주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의도, 절차도 없었다.” 

    이와 관련해 공단 관계자는 ‘신동아’에 다음과 같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17년 7월 9시 업무 시작 전으로 기억한다. 이사장 비서실에서 전화가 와서 ‘보훈처에서 와서 시끄럽게 구는데 상황을 파악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공단 2층 인사부서로 갔다. 가보니 인사 파트를 관장하는 사무실이 굉장히 시끄럽더라. (보훈처에서 온 B 과장은) ‘왜 이사장 방에 못 가게 하느냐. 왜 막느냐’며 큰소리를 질렀다. 공단에는 워낙 ‘강한 민원’이 많아 이사장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록(잠금)’이 걸려 있는데, 이 록을 풀어주지 않으니 곧장 올라가지 못하고 인사 파트에 들른 거다. 그곳 직원이 40여 명 되는데 (이 과장이) 막 큰소리를 내니 업무에 지장을 주고, 부끄럽기도 하고, 모양새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록을 해제하고 5층 이사장실로 함께 갔다. 이후 (이 과장은) 이사장과 면담 중에도 ‘왜 못 올라오게 했느냐’며 큰 소리를 쳤고 이사장이 불쾌해했다는 얘기가 공단에 쫙 퍼졌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법 제8조 5항은 ‘이사장 임기는 3년으로 하고, 이사 및 감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각각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김 전 이사장은 당시 임기 3년을 채우고 1년 연임 중이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성립하는데, 보훈처 B 과장이 임기가 남은 김 이사장에게 사퇴 압박과 강요를 해 사임하게 했다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다시 김 전 이사장 인터뷰로 돌아가보자.

    “직원 들쑤셔놓을까 걱정돼 사표 냈다”

    2월 26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2월 26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어쨌든 B 과장의 사표 종용 이후 사퇴했는데. 

    “나는 (국가공무원법이 규정한) 결격사유도 없었고, 법인카드 부정 사용 등으로 ‘걸릴 게’ 없었다. 앞서 두 차례 다녀간 국장도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니까 포기하고 그냥 돌아간 거다. 다만 B 과장이 와서 소란을 피우는 걸 보고 ‘내가 저항하면 직원들을 괴롭히고 들쑤셔놓겠다’ 싶어서 사표를 냈다. 현 정부의 ‘기관장 망신 주기’가 통했는지 모르겠지만, 국장이 사퇴 종용을 했는데 기관장이 (사퇴) 안 한다고 과장을 보내 이렇게 해야 하나. 적폐청산 한다던 문재인 정부가 이래서 되나. 그리고 위의 사람(피우진 처장)이 와서 좋게 말해주면 안 되나. 법적 문제는 둘째쳐도 꼭 과장을 보내야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 왜 그렇게 했다고 보나. 

    “기본적으론 저항했으니까, 그리고 한나라당 의원 출신인 탓 아닐까.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보니 비슷한 거 같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난해 말 김태우 전 수사관이 청와대 특별감찰반 시절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하면서 촉발돼 현재 검찰(서울동부지검)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정권 때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실상 사표를 강요했는데, 전 정권 사람을 몰아내고 친정부 성향 인사들을 심기 위해 청와대가 부당하게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 김 전 이사장은 여군 시절 피 처장 상관 아닌가(김 전 이사장은 육군 제15대 여군단장을 지낸 뒤 육군 대령으로, 피 처장은 중령으로 예편했다). 

    “군 복무 시절 (피 처장과는) 관계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 내가 단장할 때에는 장교가 100명 미만이어서 웬만한 여군들은 다 안다. 내가 여군단장 시절 여군병과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모든 여군을 일반 병과로 재(再)병과해 피 처장은 항공병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는 군 구조조정 얘기만 나오면 여군이 주요 대상이 됐는데, 재병과화 이후 그런 관행은 없어졌다. 여군의 근속연수도 늘었는데, 아마 피 처장이 나보다 연금도 많이 받을 거다. 피 처장에 대한 평가는 다른 여군 출신들에게 물어보면 안다. 그가 보훈처장 됐을 때 다들 반응이 비슷했으니까.” 

    ‘신동아’는 B과장의 반론을 들으려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메모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신 보훈처는 A국장과 B과장이 보훈공단 사무실을 찾은 이유와 B과장이 사무실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주장에 대해 “새정부 들어 보훈처 정책기조를 설명하기 위한 일반적, 관행적 방문으로 알고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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