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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긴축·파편화 속 억눌린 회복 걸을 듯

  •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세계경제, 긴축·파편화 속 억눌린 회복 걸을 듯

  • ● 공급망 재편기 한국 경제 활로, 제조업에서 찾아라
    ● 코로나 팬데믹, 세계경제 구조적 전환 가속화
    ● 미국의 중국 견제, 첨단산업에 초점
    ● 원천기술·원자재 확보에 민관이 합동해 노력해야
윤석열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네 번째)이 2022년 5월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오른쪽)과 함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GettyImages,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네 번째)이 2022년 5월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오른쪽)과 함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GettyImages,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세계경제가 구조적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세계화로부터 방향을 선회 하면서 파편화가 진행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 구도가 강화되면서 우리 경제가 양국 간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는 형국이다. 시야를 더 넓게 가져야 할 필요도 있다. 세계경제의 흐름에서 우리 경제가 놓인 맥락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990년 초반 옛 소련이 해체된 후 세계경제는 미국 주도의 안보 일극 체제 아래 세계화에 매진했다. 국경 사이 경제적 장벽을 낮추고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이면에 경제학의 비교우위 이론이 있었다. 선진국이 자본과 기술을, 신흥국은 국경 간 이동이 제한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구조인데,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생산기지로 발돋움했다.

비용 외주화가 초래한 불평등

선진국 처지에서 세계화 이면에는 비용의 외주화가 있다. 20세기 후반 환경과 인권 등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자국 내 생산 네트워크 유지에 따른 관련 규제 비용이 증가했고, 많은 부분이 글로벌 생산기지로 외주화됐다. 다만 최종 조립에 이르기까지 중간재의 국경 간 이동 비용을 낮출 필요가 있었고 이는 다자 간 혹은 양자 간 통상 협정으로 구체화했다. 한편 세계화는 선진국 내부에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가져왔다. 글로벌 생산 기지의 생산성이 빠르게 높아짐에 따라 선진국 내 일자리가 줄어들고 신흥국 노동자의 소득으로 대체됐다. 민주적 과정을 통한 정치적 압력이 높아지자, 선진국에서는 소득 재분배 정책을 강화하면서 전 방위적 세계화에 대한 재검토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트럼프 정부 시기 미·중 통상 분쟁으로 눈에 띄게 표면화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이전부터 비용의 외주화가 자국 내 일자리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환경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대중의 관련 비용 지불 의사도 늘어났는데, 이는 세계화의 무분별한 측면을 통제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했다. 새로 추진되는 통상 협정에 환경 및 인권 관련 조항을 강화하는 추세가 생겨났다. 이는 공정한 무역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흥국 처지에서는 관련 비용 상승으로 선진국 시장 접근성이 제약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어느 정도 비용 상승을 감내하고도 일자리를 지키려는 선진국의 처지에서는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경제의 구조적 전환을 가속화했다. 알려지지 않은 보건 위험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제약이 가해지면서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급감했다. 디지털 기술이 비대면 경제활동을 지탱했는데, 향후 삶의 양식 변화를 예상하며 관련 투자가 증가했고 기술개발도 빠르게 진행됐다. 백신의 빠른 보급에도 팬데믹의 위협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글로벌 생산 체계를 이어주는 지점 곳곳의 작동을 때때로 중단시키며 공급망 병목현상을 발생시켰다. 세계화로 구축된 글로벌 적시 생산 체계가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는 경험을 하면서 안정적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공급망 병목은 효율성 저하를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비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환경에 대한 관심 증가는 전 지구적인 탄소중립에 무게를 실어주면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압박했다. 유럽 국가들은 청정에너지에 대해 오랜 준비를 해왔으나,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2021년 겨울, 유럽의 에너지 가격 급등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고, 높게 형성된 에너지 가격을 배경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유럽에 공급하는 천연가스를 자원 무기화하고 있다. 최근 주요국의 금리 인상 배경에 있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단기적 현상으로만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세계경제의 공급 측면에서 지정학적·구조적 변화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한정지어 보면 경제회복의 기대가 지속적으로 꺾이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22년 11월 발표한 ‘2023년 세계경제 전망’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2022년 3.1% 성장하는 데 이어 2023년 2.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갈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세계경제는 2023년에도 지속적인 하방 압력에 노출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3년 세계경제는 ‘긴축과 파편화 속에 억눌린 회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신속한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각국의 확장적 정책 수행과 국제 공조의 원활한 작동이 필요한데, 이러한 시도에 제약이 가해지면서 회복이 억눌리고 지연되고 있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미·중 전략 경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자. 중국이 글로벌 생산기지로 빠르게 부상하며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미국은 국제관계를 재정립할 필요를 깨달았다. 국내 일자리 보호 등의 목적으로 추진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안보 논리가 현재의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 안보를 강조하면 경제성은 무시되게 마련이다. 최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해 군사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비용도 치를 각오를 하는 것이 안보의 논리다. 미국의 중국 견제는 이제 일반적인 영역이 아닌, 첨단산업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려는 그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 우리 경제가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자명해 보이나, 반드시 확인하고 진행할 부분이 있다.

첨단기술 이해도 높은 전문가 활용해야

첨단산업에서 일어나는 혁신의 가능성을 가감 없이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현재 상황에 근거해 미래를 예측한다. 미국은 최근 수십 년간 글로벌 혁신의 공급처로 작동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앞으로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말라는 법 또한 없다. 최전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기업이 제시하는 평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정부는 경제 전반에 대한 지식 외에도 첨단기술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깊은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대내외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정학적 갈등과 파편화의 진행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전망된다. 민간 부문의 적응이 필요하며 그것은 서서히 진행될 것이나, 안보와 관련한 일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원천기술과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공급망 구축에 민관 합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장단기 전망 모두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와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에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관행이 장기 성장 동력을 훼손하지 않는지 빠르게 검토하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경쟁력을 다시 확보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소비재에서 중공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제조업 기반을 단단히 해왔다. 우리가 편입되는 체계에서 이러한 기반이 장기적으로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신동아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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