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호

미술과 마음 이야기

연인 연인 2

르네 마그리트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입력2016-02-22 14:33:2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저는 상담사입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내담자를 만나 다양한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제게 누군가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거나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한 가지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그것은 사랑’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유일하게 삶의 위안이었다고 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 때문에 생애가 지옥이었다고 이야기한 이도 있으며, 평생을 갈구했지만 진실한 사랑이 뭔지 결국 알 수 없었다고 고백한 사람도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사랑을 크게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로 나눴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인 간의 사랑이 에로스이고, 친구 간의 사랑은 필리아이며, 종교에서 말하는 희생적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가족을 중시한 동양의 전통 사회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특별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인 ‘효(孝)’는 유교 사회를 지탱하는 대표적인 윤리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연인 간의 사랑이 무시된 건 아닙니다. 연인 간의 애틋한 사랑은 우리 역사에도 여러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고구려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나 고려시대 가요 ‘서경별곡’, 조선시대 황진이가 남긴 시조 등을 보면 우리 선조들도 로맨틱한 사랑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초현실 속 현실

    연인 간의 사랑을 생각할 때 제게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의 ‘연인(The Lovers)’ 연작입니다. 마그리트는 벨기에 태생의 화가입니다. 그는 스페인 태생의 살바도르 달리, 독일 태생의 막스 에른스트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초현실주의 화가입니다. 달리의 그림은 다소 그로테스크하고 에른스트의 그림은 난해해서 감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마그리트의 그림은 적당히 어려우면서도 메시지가 분명해 많은 이에게 사랑받아 왔습니다.
    마그리트는 자신만의 개성 있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주변의 대상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는 그것들과 전혀 다른 요소들을 작품 안에 배치하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회화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이런 발상의 전환은 그의 작품을 보는 관찰자들로 하여금 삶과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파악하도록 유도합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마그리트 작품이 초현실주의 회화치고는 너무 쉽고 단순하다고 비판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의 작품들은 재치가 넘치는 고급 광고 디자인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피레네의 성’ ‘빛의 제국’ 등 그의 많은 걸작은 기성 회화의 문법을 무너뜨리는 뜻밖의 놀라움과 지적인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선 감동을 선사하는 마그리트 작품은 모네의 인상파와 고흐의 후기 인상파 시대가 지나고 20세기 회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표지판 같습니다.
    마그리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초현실주의 회화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위시한 정신분석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적 무의식의 세계를 중시한, 제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약 20년 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문학 및 예술운동입니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무의식과 욕망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화폭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마그리트 역시 우리가 볼 수 없더라도 느끼거나 알고 있는 것을 캔버스에 담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고 중첩된다는 것을 펼쳐 보였습니다. 보이는 현실이 현실의 모든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초현실’이 현실의 또 하나의 영역이라는 게 그의 작품들이 전달하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미술이 가져야 할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가 보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그 방식은 여럿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담은 작품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고, 어떤 이들은 사회의 빛과 그늘을 담은 작품에서 공감을 얻곤 합니다.



    철저한 단절과 이별

    마그리트는 인간의 심연에 있는 것들로부터의 공감, 다시 말해 인간 심리 내면에 있는 무의식·욕망·꿈 등에 주목함으로써 기존 회화와는 다른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관찰하는 사람의 심리 내면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연인’ 연작 또한 낯선 풍경을 통해 사랑에 대한 심연의 어딘가를 슬쩍 건드립니다.
    ‘연인’(1928)에는 두 사람이 서 있습니다.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넥타이를 한 남자와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얼굴을 맞대고 다정하게 선 것을 보면 둘은 작품의 제목처럼 연인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기이합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베일로 가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은 서로의 눈을 보고,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서로가 서로의 한 부분임을 확신하는 기쁨을 나누는 게 정상적일 텐데, 그림 속 연인은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습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없고,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 없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 온도를 알 길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지만 두 사람은 기실 서로 잘 모른다는, 서로에게 정직하지 않다는,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지 않나요? ‘연인’이라는 고전적인 제목과 화폭에 담긴 뜻밖의 모습은 감상자에게 긴장을 안겨주고 질문을 유발합니다.
    마그리트는 왜 이렇게 기이하고 당황스러운 연인의 모습을 만들어낸 걸까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현대인의 정직하지 못한 사랑을 지적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연인이라 하더라도 사실 인간이란 지독하게 외로운 존재임을 말하려던 걸까요. 그도 아니라면, 사랑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속담을 그림으로 설명해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이런 저런 질문을 하다가 이내 혹시 나의 사랑도 저 그림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 불편해집니다.
    마그리트가 화폭 속 연인들의 얼굴에 이토록 당혹스러운 느낌의 베일을 씌운 것에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마그리트는 양복 재단사 아버지와 모자 상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14세 때 어머니가 강에 투신 자살했는데, 어린 마그리트는 어머니의 시체를 강에서 건져내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게 됩니다. 그때 어머니의 얼굴을 덮고 있던 베일을 봤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점에서 어머니의 자살은 어린 마그리트에게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트라우마가 됐을 듯합니다. 추측해보면, 마그리트에게 베일이란, 사랑하지만 함께할 수 없는 철저한 단절과 이별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을 듯합니다.





    이해와 소통이 없는 사랑

    ‘연인 2’(1928)는 ‘연인’보다 좀 더 극적인 작품입니다. 작품 속의 연인은 키스를 하고 있습니다. 앞선 그림처럼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넥타이를 한 남자와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있습니다.
    저만의 느낌일까요? 베일을 쓴 채 가만히 서 있는 연인을 볼 때도 불편한 느낌이었는데, 베일을 쓴 상태에서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은 당혹스럽고 혼란스럽습니다. 서로의 눈을 볼 수 없는 연인이 서로의 마음은 볼 수 있을까요? 절망스러운 느낌까지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제가 만난 여성 미영(가명) 씨는 혼자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롭고 불안해져서, 제대로 익지 못한 만남을 매번 급속도로 친밀한 만남으로 쉽게 바꿔버렸습니다. 미영 씨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한 세상에서 자신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잘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혼자 남겨지지 않았지만, 슬프게도 따뜻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삶에 온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꿈에서도 그리운 존재였지만 미영 씨의 불안은 사랑하는 이를 알아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렸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의 눈을 바라보고, 체온을 느끼고,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몰랐던 셈입니다. 그녀는 사랑할 수 없었기에 행복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랑처럼 정의하기 어려운 것도 없을 겁니다. 사랑은 불타는 에로스일 수도 있고, 은근한 필리아일 수도 있고, 숭고한 아가페일 수도 있습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고, 인격으로 존중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으며,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결단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인 간의 사랑이란 더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의 핵심은 마음에 있겠지만, 그 마음은 이성과 감성과 욕망의 복합적인 결합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성이든 이성이든 욕망이든 연인 간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의지가 담긴 소통일 겁니다. 마그리트의 ‘연인’ 연작이 보여준 사랑은 이런 이해와 소통이 부재한 사랑 아닐까요. 사랑하고 싶지만 서로를 발견할 수 없고, 알아차릴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사랑의 비극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이기심, 나약함, 게으름의 베일

    베일을 쓰고는 서로의 진실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친밀하게 붙어 있어도, 아무리 달콤한 키스를 한다고 해도 진실과 진심에 다가가지 못한 연인의 행동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마그리트의 호소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연인’ 연작을 통해 바쁘고 가벼운 삶에 물든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넌지시 묻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나약함 때문에,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 때문에 가장 소중한 이들과 점점 멀어지고, 결국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서로에게 베일을 쓰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다가가는 사랑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박 상 희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