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동아시아 격전장을 가다

두 마리 토끼 쫓는 아베 브레이크가 없다

美와 동맹 강화, 군국주의 회귀

  • 전계완 | 시사평론가,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저자 jkw68@daum.net

    입력2016-03-25 13: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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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 개정해 ‘전쟁 가능국’…야당 무능도 한몫
    • 북한 선제공격론, 제로센 전투기 시험 비행
    • 아베 “일본이 패망한 게 아니라 미국과 終戰한 것”
    “북한 미사일이 일본 영토, 영공 또는 영해에 들어오면 즉각 요격하라!”

    2월 3일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은 이렇게 명령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일본은 이 같은 미사일 파괴 명령 이후 요격 장치를 갖춘 이지스함을 동중국해에 배치했지만,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뒤 실제 요격에는 나서지 않았다. 위험성을 널리 알리면서 정치적, 외교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었다.

    북한의 도발 직후 일본은 북한의 위협을 국내외 정치에 적극 활용했다. 아베 신조 정권은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북한 이슈가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여론을 움직이고 있다. 집단자위권을 통한 안보정책에 한계가 있어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전쟁 가능국가’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흘린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의원 3분의 2 찬성이 있어야 하기에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을 적극 지지해달라는 것이다.



    ‘美 2중대’ 벗어나 존재감 과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지만, 이미 군사력 강화라는 고삐가 풀린 상태에서 ‘개헌 절대불가’ 여론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3년 만에 찾아오는 이번 참의원 선거(임기 6년으로 3년마다 절반 교체)에선 아베 정권의 경제 실정이 묻히고 북한 도발이 주요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외교적으로도 일본은 유엔의 대북제재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북한으로 출국한 사람의 재입국 금지, 자산동결 대상 확대, 북한 선박 전면 입항 금지 등의 독자 제재에 나섰을 뿐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서 미국보다 먼저 이사국 설득에 팔을 걷어붙이며 마치 안보리 대변인처럼 북한 제재에 앞장섰다. ‘미국의 2중대’ 이미지를 벗어나 일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북한의 도발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뿐 아니라 아베 정권의 국내외 영향력 확대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동아일보’ 권순활 논설위원은 1월 13일 칼럼에서 “민족을 내세우는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이 국수주의자들을 포함한 일본 보수세력의 재무장 숙원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도우미’로 전락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민족적 행위”라며 탄식했다.

    북한 도발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국내적으로 ‘국민 결속’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얻었고, 대외적으로는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결실을 봤다. 무엇보다 일본 보수세력의 야망인 군사대국화 빗장을 풀어버렸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군사력 강화를 드러내며 이를 외부에 적극 알리는 상황마저 빚어졌다.


    다시 떠오른 가미카제機

    지난 1월 말 가고시마(鹿兒島)현 가노야(鹿屋) 항공기지에서는 태평양전쟁 때 가미카제(神風) 자살공격기로 사용한 제로센(零戰) 전투기가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도쿄에 본사를 둔 제로엔터프라이즈 재팬이라는 회사가 기획한 행사지만 정부 허가를 받고 공군기지에서 이뤄진 것이라 주변 국가들의 반발을 샀다.

    이 비행기는 1970년대 파푸아뉴기니 정글에서 발견된 것으로, 2년 전 미국에서 일본으로 갖고 온 것이다. 주최 측은 “제로센 전투기가 71년 만에 다시 하늘을 날았다”며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슬픈 역사를 짊어졌지만 훌륭한 일본 제조업의 모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은 즉각 관영 CCTV를 통해 “제로센 전투기는 살인마로 악명이 높던 일본군의 상징이었다. 일본이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야망을 드러냈다”고 맹비난했다.

    일본 정부는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유서와 유품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다 실패한 바 있다. 지금도 가고시마현 미나미규슈(南九州) 시에 특공평화회관을 두고 가미카제가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성스러운 부대였다고 대내외에 알리고 있다.
    3월 초에는 일본 정부가 이례적으로 미야자키(宮崎)현 뉴타바루(新田原) 항공자위대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곳은 가고시마현 가노야 항공기지에서 100km 떨어진 곳으로, 두 곳은 동중국해와 태평양을 관할하는 일본 공군의 전략적 요충지다. 뉴타바루 기지는 F4 전투기가 상시 대기 중이며,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분쟁 이후 준전시상태로 운영되고 있다. 가노야 기지엔 ‘잠수함 킬러’로 불리는 해상초계기 P-3C가 배치돼 있는데, 이곳도 언론에 공개됐다. 가노야 기지는 가고시마 오스미 반도에 있는 인구 10만 명의 도시로 1941년 일본군이 진주만 공습을 최종 결정한 가노야 회의가 열린 곳이다.


    “안보법은 전쟁법”

    올 들어 일본이 군사시설을 공개하고 패전의 유산인 제로센 전투기를 되살린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2013년 아베 총리가 ‘731’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전투기에서 손가락을 치켜세워 생체실험 부대로 악명 높던 731 부대를 연상시킨 것과 다를 게 없다. 2월 유엔 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 표명은 또 뭔가. 일련의 행태에선 이미 주변국 눈치를 볼 단계는 지났다는 아베 정권의 자만심이 짙게 배어 나온다.

    일본은 2002~2012년 연평균 150억 달러를 무기 수입에 사용했다. 세계 1위 무기 수입국이었다. 같은 기간 2위 영국과 3위 한국이 각각 연평균 100억 달러, 61억 달러를 지출한 데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액수다. 그러나 일본은 헌법 제9조(평화헌법)에 의해 군대를 보유할 수도, 전쟁을 수행할 수도 없다. 지난해 아베 정권은 ‘헌법 재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안보법을 만들었다. 집단자위권 제한을 철폐하고 자위대 활동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한 것이다. 이같은 조치에 대해 위헌 시비가 끊이지 않자 아베 정권은 아예 헌법을 바꾸려는 시도에 나섰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에 의한 국제분쟁의 해결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민주당, 유신당, 공산당 등 일본 야당은 헌법 9조를 내세우며 지난해 아베 정권이 강행처리한 안보법이 ‘전쟁법’이라며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정권은 논란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 헌법 개정 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한국, 중국 등 침략 전쟁에 희생된 국가를 의식하거나 미국 눈치를 보며 방어적 의미로 군사력을 키우던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

    아베 총리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 2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헌법에 (자위대의) 실력 조직에 대한 서술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자위대 조직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1주일 뒤 나카타니 겐 방위상은 “자위대의 존재도 합헌인지 위헌인지 의견이 엇갈린다. 국가 안전 보장과 기본 대목은 국민이 알기 쉽게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카타니 방위상은 자민당 출신의 대표적인 극우 인사로, 아베 정권에서도 헌법 개정, 군사대국화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했다. 또한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이기 때문에 일본 자위대의 북한 진입 시 한국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한민구 국방장관의 발언에 대해 “한국은 휴전선 이남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말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확고한 개헌 의지

    여러 움직임을 종합해볼 때 아베 정권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계기로 평화헌법 개정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중의원, 참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중의원은 자민당, 공명당 등 연립여당이 장악하고 있어 현재 과반인 참의원만 3분의 2 정족수를 확보하면 된다는 계산이다.

    이를 위해 중의원을 해산하고 7월에 참의원·중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르고 개헌 이슈를 내걸 수 있다. 현행 일본 의회제도는 참의원의 경우 임기 6년을 보장해야 하고 중의원은 임기 4년이지만, 의회가 해산되면 다시 선거를 치른다.

    아베 총리는 최근 들어 자신의 재임 중에 개헌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그는 “국민 생명을 수호하기 위해 국제법상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자민당의 개정 헌법 초안에는 국방군 보유를 명시하고 있다”며 발언 수위를 높인다. 야당인 민주당과 유신당은 선거를 앞두고 합당을 통해 자민당 독주를 막기로 결정했지만 합당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아베 정권의 무한질주는 자민당 내에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도 있다. 일본의 전통적 파벌정치는 실력자 또는 후계자 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했지만, 1990년대 이후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 의미가 크게 축소됐다. 실력 있는 정치 신인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일본 보수세력의 우경화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하는 형국이다.

    현행 임기가 그대로 보장된다면 아베 총리는 2018년 9월까지 무려 6년 9개월을 총리로 재임할 수 있다. 전후 세 번째 ‘장수 총리’가 되는 것이다. 그의 계획대로 7월 참의원·중의원 동시 선거가 진행되면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될지도 모른다.

    집권 자민당 안에서는 총재의 3연임 금지 규정을 개정해 아베 총재의 장기 집권을 허용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문제는 이를 저지할 수 있는 내부 정치세력과 외부의 힘이 없다는 사실이다. 일본 야당의 무능력은 정치 불신을 가중시켜 일본 국민의 탈정치화에 불을 붙이고 있다. 자민당 내부의 경쟁구도 파괴도 아베 총리의 독주에 브레이크 장치를 풀어버렸다.

    그나마 미국이 나서 일본의 비정상적 질주와 재무장화를 억제해야 하는데 상황은 반대로 가고 있다. 중국의 팽창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은 오히려 일본의 군사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 틈을 탄 아베 정권은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동맹 강화, 내부적으로 군국주의 회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고 있는 것이다.


    힘이 약해서 졌으니…

    전 세계가 태평양전쟁을 일본 패망이라고 표현했을 때 아베 총리는 “우리는 (대동아전쟁에서) 패망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전쟁에서 종전(終戰)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종전의 원인은 힘이 약했기 때문이고, 힘을 키우면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을 표현한 것이다.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변신하고 군사대국화를 이루는 것이 아베의 최우선 목표다. 그다음 순서는 일본의 경제적 이득(국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우리는 일본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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