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Interview

“어떠한 시장 상황에도 가치투자 원칙 고수”

‘설립 10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이채원 CIO

  • 윤영호 | 동아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yyoungho@donga.com

    입력2016-03-25 14: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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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으로 돈 버는 가장 간단한 방법.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된다. 누구나 아는 이치지만 실제로 주식시장에서 돈 벌었단 사람은 드물다. 이와 반대로 행동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주가가 오르면 탐욕이 발동해 ‘상투’에도 사고, 주가가 폭락하면 싼 주식이 널렸는데도 공포에 질려 시장을 떠난다.

    가치투자자는 어쩌면 이런 본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주가가 폭락하면 오히려 투자의 적기라고 판단한다. 주가가 내재가치 밑으로 떨어지는 종목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반면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상한가 행진을 계속하는 주식이라도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높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이채원(52) 부사장은 국내에 가치투자를 대중화한 주인공.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에 곧잘 비유된다. 모회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대표이사 김남구 부회장)가 이 부사장의 가치주 펀드 운용을 위해 설립한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4월이면 어느덧 10년이 된다. 한국투자금융은 산하에 한국투자증권(주), (주)한국투자저축은행 등을 거느린 금융그룹.
    이 부사장의 책상 위엔 주가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가 3대나 있다. 다른 한쪽엔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는 “게을러서 아직 다 못 봤다”고 했지만 고독한 가치투자자의 길이 엿보였다. 그는 특별한 취미도 없이 오로지 주식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3월 7일 그를 만났다.



    ‘10년 기다려줄 여유’

    ▼ 10주년을 축하한다. 그런데 회사 설립 자체로만 보면 올해 20주년을 맞은 신영자산운용(주)이 더 오래됐다.



    “비(非)제도권엔 뒤늦게 운용사를 설립한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등 가치투자 선배들이 있다. 그러나 제도권 기록만으로 보면 1998년 12월 출시한 ‘동원밸류 이채원 1호’가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전용 펀드다. 외환위기 직후 코스피가 1000포인트에서 300포인트로 추락하면서 운용하던 펀드가 40%가량 손실이 난 게 계기다. 코스피 하락률보다는 나은 실적을 기록했지만 고객의 원금을 까먹은 것이라 괴로웠다. 깊은 반성 끝에 ‘금리 + α’의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가치투자 전용 펀드가 답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회사가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신영자산운용의 대표 상품인 신영마라톤펀드가 14년 됐기 때문에 우리가 회사 설립은 늦어도 가치주 펀드만으로 따지면 1호 기록은 내가 갖고 있다.” 

    ▼ 신영 CIO 허남권 부사장을 의식할 것 같다.

    “당연하다. 개인적으로 절친한 사이로, 가치투자의 동반자이자 경쟁자다.”

    ▼ 허 부사장과의 운용 스타일 차이라면?

    “나는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정량적인 부분 못지않게 지배구조나 비즈니스 모델 같은 정성적인 부분도 감안한다. 보유 종목만으로 평가한다면 신영은 PER(주가수익비율)이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은 주식 및 대형주를 선호하는 듯하다. 또한 우리는 경기 민감주 비중이 낮고 보험주 같은 경기 방어주를 선호하는 편인데, 신영은 조선·철강·건설주 같은 경기 민감주 비중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장 민감도를 나타내는 우리 펀드의 베타계수가 신영보다 현저히 낮은 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좀 더 소심하고 겁이 많은 편이고, 신영은 다소 과감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 국내에선 단기 수익률에 집착하는 회사 경영진이나 투자자들 때문에 CIO들이 자기의 투자 철학을 마음껏 펼치기 힘든데….

    “코스피가 급등하는데 자기가 산 주식이 1년 동안 오르지 않는다면 이를 버텨낼 CIO는 없다. 회사를 그만두든지,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갈아엎든지 해야 한다. 그런 압력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나나 허 부사장은 행운아다. 김남구 부회장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스타일로 운용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또한 운용업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김 부회장이 투자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입장에서 때로 ‘수익률에 조금만 더 신경써주면 안 될까’ 하고 속으로는 답답해할 수 있겠지만 그런 얘기를 일절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수익률을 위해 철학을 포기하고 시장의 인기주를 추격 매수할 수 없기 때문이고, 또 가치주 펀드는 수익이 장기간에 걸쳐 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창업주인 김재철 회장도 사람을 길게 보고 평가한다는 얘길 듣는다. 더욱이 처음부터 ‘10년 이상 투자할 분만 모신다’고 선언했기에 고객도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줄 여유를 갖고 있다. 펀드 투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분들이다.”



    예측불가 재료주 대박 안 믿어

    2006년 4월 18일 선보인 한국밸류 10년투자 증권투자신탁1호 주식형 펀드의 3월 4일 현재 설정액은 1조5334억 원. 지난 1년간 및 2년간 수익률은 각각 -3.82%, -2.09%로 손실을 기록했지만 설정 이후 누적 수익률은 151.26%나 된다. 국내 공모 펀드 3600여 개 중 수익률 기준으로 상위 1% 안에 드는 실적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은 37.64%에 불과했다.   

    ▼ 최근 1, 2년 수익률이 안 좋은데….

    “다행히 고객들이 단기 수익률에 별로 신경을 안 쓴다. 2009년, 2010년엔 절대 수익률이 각각 44.16%와 15.73%로 괜찮은 편이었지만 코스피 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꼴찌에 가까운 실적이어서 힘들었다. 이후 3년간은 좋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누적 수익률이 상위 1%에 들었기에 고객들도 이해를 잘 해준다.”

    ▼ 최근 몇 년 새 화장품, 제약주가 급등했다. 해당 주식을 상당히 일찍 팔아버린 것도 최근 저조한 수익률의 원인은 아닌가.

    “그 점에선 실수를 했다. 화장품 업종의 펀더멘털 개선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빨랐고 이익도 많이 기록했는데, 이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옛날 생각만으로 대응하다 일찍 처분했는데, 이후 주식이 폭등해 다시 살 수가 없었다. 2009~2010년 경기 민감주가 크게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LG화학을 펀드에 편입했다가 주당 20만 원에 팔았다. LG화학의 내재가치 측면에서 그게 적정 가격이라고 판단해 매도했는데, 이후 60만 원까지 올랐다. 그런데 시장엔 늘 거품이 끼게 마련 아닌가. 그러다 결국 16만 원까지 떨어졌다. 적어도 LG화학만 놓고 보면 우리 펀드가 많이는 못 벌었지만 손실은 내지 않았다.”

    ▼ 기업의 내재가치를 어떻게 계산하나.

    “여러 방법이 있지만 워런 버핏이 쓰는 현금 흐름 할인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어떤 기업이 미래에 창출할 현금을 현재 가치로 할인하는 방법이다. 미래의 물가와 금리, 환율 등 모든 것을 예측해야 하기에 버핏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치합산법을 쓴다. 기업은 대체로 과거에 번 돈을 공장 설비, 부동산, 유가증권 현금 등으로 쌓아놓는데 이게 자산가치다. 또한 현재 지속적이고 구조적으로 벌 수 있는 수익가치와 미래 수익인 성장가치가 있다. 기업가치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의 합으로 본다. 성장가치는 보너스로 보고 여기에 합산하지 않는다. ‘현재 실적은 안 좋지만 5년 후 신약을 개발해서 대박을 칠 것’이라는 얘기는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협지로 스트레스 해소

    ▼ 미래의 성장성을 너무 무시하는 건 아닌가.

    “성장의 함정에 빠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1999년 정보기술(IT)주 거품 당시 SKT 주식이 50만 원이었다. 이 회사 이익은 이후 6배 늘었지만 주가는 되레 떨어져 현재 20만 원 수준이다. 성장을 하더라도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 주가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런 것까지 감안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대체로 PBR이 10배 넘는 회사는 아무리 성장해도 남는 게 없다. 여기에 체질적으로 대박을 터뜨릴 주식보다는 손실을 안 볼 주식을 선호한다. 돈을 잃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기에 목표 수익률도 낮다. 금리가 1.5%인 상황에서 5%만 벌어도 3배 이상 수익률 아닌가.” 

    ▼ 수익률 스트레스가 심할 텐데.

    “수익률이 좋을 때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주식이란 어차피 언젠가는 떨어지게 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선 수익률 자체보다 크게 수익을 낼 만한 주식이 안 보인다는 데서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2000년 IT 거품이 꺼진 상황에서도 아모레퍼시픽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실현하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아모레퍼시픽을 지금 수정주가 기준으로 1800원에 매입했다. 지금 주가기준으로 200배 상승한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종목이 안 보이는 데다 전반적으로 기업 수익도 꺾이고 있다. 게다가 중국이 과잉 설비를 해소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힘든 시절을 보내야 할 것 같다.”

    ▼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주식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주식에서 해답을 찾아야 풀리는 성격이다. 주식을 분석하면서 내가 본 자료들 중 놓친 부분이 없는지, 가치를 잘못 계산한 건 아닌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마음이 놓일 때까지 확인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다음 단계로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나 워런 버핏 관련 책을 읽거나 무협지를 열심히 읽는다. 특히 용대운의 ‘군림천하’를 좋아한다.”

    ▼ 종목 발굴은 어떻게?

    “신문을 정독하고 증권사 리포트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듣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기업 탐방을 통해 얻는다. 우리 회사에선 많을 때는 1년에 1400~1600회의 기업 탐방을 다닌다. 나도 최고경영자(CEO) 미팅을 1주일에 한 번씩, 연간 40~50회 한다. 분기마다 저PER 상위 100종목, 저PBR 상위 100종목, 고배당 상위 100종목 등을 뽑아 펀드에 편입하지 않은 종목이 있으면 탐방을 보낸다. 지배구조나 사업 전망, 비즈니스 모델 등을 본 후 괜찮다는 판단이 서면 일부 편입을 시작한다.”



    CEO와 투자자의 공통 가치

    ▼ 어떤 스타일의 주식을 좋아하나.

    “정량적인 부분에선 수익가치와 자산가치를 각각 40%, 30% 본다. 나머지 30%는 성장가치를 포함한 정성적인 부분에 대한 점수다. 특이하게 지배구조 분야에선 투명 경영, 사외이사 수 등보다는 대주주 지분이 높은 주식을 선호한다. 이런 회사는 대주주와 투자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같기 때문이다. 버핏이 얘기하는 최악의 지배구조는 주식은 한 주도 없으면서 회장 자리에 앉아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경우다. 정부 지분이 없으면서도, 공기업적 성격이 강한 기업들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지분율이 높은 대주주가 CEO로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도 대주주도 함께 행복하다. 배당을 많이 줘도 CEO와 투자자 모두 좋다. CEO의 지분이 낮으면 배당을 많이 하기보다는 본업과 상관없는 엉뚱한 곳에 투자할 유인이 더 높다. 지주사로 전환한 기업은 대체로 이런 의미에서 지배구조가 확립됐다. 가령 삼성물산이 기업가치에 반하는 일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요 주주가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가족이니까.” 

    ▼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

    “삼성물산은 PBR이 낮긴 했지만 실적 변동성이 크고 건설업 비중이 높았다. 제일모직은 PBR이 높았다. 그래서 합병 전이나 후나 한 주도 편입하지 않았다. 일부에서 합병 비율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합병은 시세대로 하는 게 원칙이다. 삼성물산은 합병이 되면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상단으로 이동했기에 투자자 처지에선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물론 합병의 최대 수혜자가 이재용 부회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사서 주가가 조금 오른 다음에 합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최소한 60세까지는…”

    ▼ 현재 주식형 펀드의 수탁고는 80조 원대다. 반면 주가연계증권(ELS)은 이미 100조 원어치나 팔렸다. 운용업계 종사자들이 반성해야 하지 않나.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운용사와 판매사의 공동 책임이라고 본다. 판매사는 고객들이 많이 찾는 상품들만 갖춰놓고 팔고 싶어 하고, 운용사는 그런 상품을 만들어준다. 브라질 채권이 인기 높으면 너도나도 브라질 채권을 편입하고, 바이오주가 뜨면 바이오 펀드 만들기에 정신이 없다. 이런 쏠림 현상을 통해 돈 버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철학이나 원칙이 확고하고 자기만의 영역을 갖는 운용사가 많아지면 고객의 선택 범위는 그만큼 넓어진다. 미국에 비해 우리 자본시장의 역사는 짧지만 한국투자 10년투자펀드나 신영의 마라톤펀드가 20, 30년 되면 좋은 레코드가 나올 것 같다. 그때엔 ‘봐라, 이 펀드에 30년 투자했더니 금리 이상의 수익률이 났지 않냐’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펀드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미국처럼 안정된 운용 시장이 될 것이다.”

    ▼ 지금까지의 투자 중 대표적인 실패 사례를 꼽으라면.

    “1997년부터 한국전력을 사서 15년 간 물린 적이 있다. 3만4000원 근처에서 샀는데 10년 이상 수익을 올리지 못했고, 배당도 거의 없었다. 한전의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 서민 전기요금도 생각해야 하고 수출 대기업의 경쟁력도 생각해야 하니 전기요금을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전기요금을 외국 수준으로 올려 그 돈으로 유전을 사든지,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하든지 해야 한다. 전기요금에 관한 한 너무 포퓰리즘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전기요금이 현실화돼 주가가 2배 이상 올랐다.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 언제까지 운용을 계속할 건가.

    “육체적 건강과 함께 건전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될 때까지는 계속할 생각이다. 최소한 60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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