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단독발굴

2028년 일본이 영유권 주장할 7광구의 과거·현재·미래

8만4000㎢ 바다영토로 日 압박 포철 건설비 2억 달러 받아내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6-04-04 16: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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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광제·권병현 前 대사가 8만4000㎢ 확보
    • 12년 후 협정 만료…“치밀하게 무장해야”
    • 석유·가스 72억t 매장 추정…中도 숟가락 얹어
    • “명명백백한 우리 영토도 주장해야 돌아온다”
    철은 ‘산업의 쌀’이다. 종합제철소 건설이 늦었다면 산업화 역사가 현재와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1968년 4월 1일 포항제철주식회사(현 포스코)가 출범했다. 2년 뒤(1970년) 같은 날 포항제철소 1기 설비가 착공됐다. 포스코의 역사는 한국 산업화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포스코는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에 따른 청구권 자금으로 세워졌다. 피 맺힌 돈으로 ‘제철보국(製鐵報國)’에 나선 것. 한국은 1965년 체결한 한일기본조약 중 ‘청구권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무상자금 3억 달러, 유상자금(정부 차관) 2억 달러, 민간 차관 3억 달러를 들여왔다.

    그런데 당시 외교관 두 사람의 헌신과 노력, 기지(機智)가 없었다면 종합제철소 건설은 미뤄졌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그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신동아’에 전하면서 “치밀한 무장”을 당부했다.



    “대한민국 영토만한 바다”


    “조약을 담당하는 외교관은 나라의 변호사로서 국가 이익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조광제(85) 전 주(駐)스페인 대사는 3월 7일 이렇게 말했다. 조 전 대사는 한국이 산업화에 전력을 다하던 1968~1970년 외무부(현 외교부) 조약과장을 지냈다. 1957년 외무부에 입부해 이듬해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후 40년 동안 외교관으로 일했다.
     
    권병현(78) 전 주중대사는 조 전 대사가 조약과장일 때 사무관으로 일했다. 권 전 대사는 같은 날 이렇게 말했다.

    “조 전 대사와 내가 북한을 제외한 대한민국 영토만한 8만4000㎢ 바다를 확보해 일본을 압박했다.”

    북한을 제외한 한국 영토는 9만9720㎢이다. 두 전 대사가 국제법에 근거해 확보한 8만4000㎢ ‘바다영토’에 ‘7광구’가 속해 있다. 석유시추선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동명의 스릴러 영화(2011년)로도 유명한 곳이다. 8만4000㎢와 종합제철소의 관계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시곗바늘을 1969년으로 되돌려보자.

    1969년의 어느 날 ‘외무부 조약과장 조광제’는 일본 신문을 읽고 있었다. 제주도 서남방과 일본 서북방의 대륙붕이 겹치는 지역에서 니혼세키유(日本石油)와 데이코쿠세키유(帝國石油)가 제3국과 제휴하거나 단독으로 석유 탐사 및 시추를 계획하고 일본 정부에 그 허가를 신청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조약과장 조광제’는 ‘우리와 상의도 없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대륙붕은 일반적으로 대륙의 토양이 수만 년에 걸쳐 바다로 밀려 내려오거나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에 잠긴, 얕고 기복이 적은 평탄한 해저 지형을 가리킨다. 대륙붕이 주목을 받는 것은 석유, 가스, 인산염광물, 메탄수화물 등 광물자원과 관련해서다.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은 지금도 각지에서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거나 육지와 이어진 대륙붕을 근거로 영유권 다툼을 벌인다. 

    1969년의 다른 어느 날 ‘외무부 조약과 권병현 사무관’이 처음 들어보는 얘기를 전했다.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간에 대륙붕 경계선 분쟁이 생겨 국제사법재판소에 계속(係屬)된 끝에 심리를 거쳐 판결이 나왔는데, 1958년 제네바 협약의 등거리 원칙을 배제하고 ‘자연 연장설’을 취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대향(對向)하거나 인접한 국가 간 중복되는 대륙붕의 경계는 등거리 원칙에  따른다’는 제네바 협약에 근거해 니혼세키유, 데이코쿠세키유의 유전 개발을 허가했는데, 1969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가 ‘육지영토의 자연적 연장을 해치지 않도록 당사국과 공평하게 합의해야 한다”고 판결한 사실을 권 사무관이 찾아낸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 판례 찾아내

    조광제 전 대사의 증언을 들어보자.

    “20번 넘게 비밀회의를 했다. 1958년 제네바 협약과 1969년 국제사법재판소 판례를 면밀하게 검토해 대한민국의 관할권 주장이 국제법상으로 당연하다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일본 처지에서는 억울할 일이겠으나 한반도와 제주도를 잇는 지형이 남쪽 바다로 완만하게 흘러가다가 류큐해구(琉球海溝)까지 이어진다. 일본의 경우는 규슈(九州, 일본 열도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위치)에서 서쪽으로 얼마 안 가서 류큐해구를 만나 가파르게 떨어진다. 국제사법재판소 판례대로라면 류큐해구가 한일 간 대륙붕의 경계가 되는 것이다.”  
     
    ‘류큐’는 오키나와의 옛 이름이다. 해구란 심해저의 좁고 기다랗게 움푹 꺼진 지형을 가리킨다. 

    조 전 대사의 설명을 듣던 권 전 대사가 “극비의 극비로 일했다”고 덧붙였다. 권 전 대사는 당시 서울 종로구의 하숙집에서 한국의 대륙붕 구역을 한반도의 자연적 연장이 끝나는 류큐해구까지로 하는 ‘해저 광물자원 개발법’의 초안을 잡았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당시 ‘대외비’ 문건을 짚어가며 설명하는 권 전 대사의 표정은 바로 어제 일을 말하는 듯 양양(揚揚)했다.

    “누상동 하숙집에서 법률안을 썼다. 보안이 걱정돼 사무실에선 작업할 수 없었다.”

    한국이 관할하는 대륙붕 구역을 위도, 경도로 표시하는 내용은 대통령령인 ‘해저 광물자원 개발법 시행령’에 넣었다. 조 전 대사는 ‘해저 광물자원 개발법 및 동 시행령’ 문건과 한국의 대륙붕 경계선을 명시한 해도를 들고 최규하 당시 외무부 장관을 찾아갔다. 최 전 장관은 “이래도 될까?”라면서 결재를 망설였다.


    “주장해야 보장받는다”

    권 전 대사는 “최 전 대통령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안 건너는’ 치밀한 분으로 유명했다”며 웃었다. 조 전 대사는 “한일 간 분쟁의 불씨가 될 것을 걱정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전 대사는 윤석헌 당시 차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윤 차관과 ‘조 과장’이 최 장관의 결재를 받아낸 후 ‘해저 광물자원 개발법’은 국회를 통과해 1970년 1월 1일자로 공포됐다.”

    예상대로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조 전 대사는 일본의 협의 요청을 일축했다. 

    “국제법에 근거해 법률을 만들고 시행령으로 위도, 경도까지 정해 관할지역을 확정했는데 우리가 왜 만나주나. 한국의 당연한 권리일 뿐 교섭 사항이 아니라고 통보했다. 일본은 중간선 안쪽은 국제법상 자국이 관할권을 가진 것으로 잘못 알았다.”(조 전 대사)

    “대륙붕에 대한 국제법적 사안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때다. 중간선으로 영역을 나누면 일본이 관할하는 지역이 커지지만 자연 연장에 근거하면 일본은 아주 조금, 나머지는 우리의 바다영토가 되는 것이었다. 조 전 대사의 지휘를 받으면서 톱다운 방식이 아닌 보텀업 방식으로 역사에 남을 일을 해냈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권 전 대사)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동창으로, 한국 국제법학계의 학문적 기틀을 세우고 평생을 후학 양성에 힘쓴 기당(箕堂) 이한기(1917~1995) 박사의 제자다. 이 박사는 “명명백백한 자국의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이한기, ‘한국의 영토’ 중)”고 썼다. 스스로 주장하지 않는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국익을 지키는 나라의 변호사’들이 8만4000㎢ 바다영토를 확보하는 쾌거를 이뤄냈을 때 한국은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종합제철소 건설을 도모했으나 자금 확보가 난제였다.

    “한국은 청구권 자금 중 2억 달러를 종합제철소 건설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와 교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나야마 마사히데 주한 일본대사를 은밀하게 불러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으나 일본 정부는 승인해주지 않았다. 종합제철소는 한국의 경제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조 전 대사)

    그 무렵 일본 경제단체협의회 대표들이 한국을 찾아와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에게 대륙붕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일본의 협의 요청에 응해줄 것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종합제철소 건설에 필요한 2억 달러를 지원하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결국 한국 측이 대륙붕 협의에 응해주는 조건으로 일본 측은 종합제철소 건설을 돕기로 약속했다(이 내용은 한일관계 막후에서 활동한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이 가나야마 대사에게서 확인한 것이다). 2억 달러 중 포항제철 건설에 1억3200만 달러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에 쓰였다.  

    조 전 대사는 “우리가 1970년 1월 1일 일본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8만4000㎢에 대한 관할권을 선포하지 않았더라면 종합제철소 건설이 미뤄져 경제 및 공업 발전 속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무부 조약과’의 활약과 종합제철소 건설의 상관관계가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진 것은 조 전 대사가 2월 ‘한 직업외교관의 회상록’이라는 기록을 출간하면서 짧게 언급한 사안을 권 전 대사가 사적인 자리에서 자료를 뒷받침해 설명하면서다. 



    中도 호시탐탐 노려

    한일 대륙붕협정은 1974년 1월 30일 한일 간에 체결되고 1978년 6월 22일 발효됐다. 대륙붕에 관한 2개의 협정 및 부속문서로 돼 있다. 한일 간 대륙붕 경계는 미정으로 놔두고 한일 양측의 영유권 주장이 겹치는 이른바 7광구는 공동개발해역(JDZ, Joint Development Zone)으로 합의했다.

    한일 대륙붕협정은 발효 50년 후인 2028년 만료된다. 일본은 재협상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협정을 개정하려들 것이다. 7광구 전체에 대해 자신들이 영유권을 가진다고 주장할 공산이 크다. 7광구는 독도만큼이나 일본이 탐내는 지역이다. 석유와 가스가 흑해 유전과 비슷한 수준인 72억t가량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권 전 대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1970년 일본이 (우리한테) 한방 얻어맞았다. 자신들의 바다영토라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놀랐겠나. 우리는 실무선에서 협의를 거절해버렸고 다른 차원의 협상을 통해 종합제철소를 세운 것이다. 일본, 중국보다 국제법상의 대륙붕에 먼저 눈을 떴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 중국과는 중간선으로 경계를 그어버렸다. (우리가) 일본에 한 주장을 그대로 했으면 불리할 수 있었다. 중국과 한국은 영토 크기가 다르지 않나. 자연 연장이 아닌 200해리가 최근의 흐름이다. 기존 협정 덕분에 공동개발해역으로 유지될 공산이 크지만 일본이 딴소리하지 못하게 지금부터 면밀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일본이 7광구에서 석유 시추를 중단한 것은 한국과 나누기 싫어 2028년 이후로 미뤄놓은 것이다.”

    7광구에서 시추가 제대로 이뤄진 적은 없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탐사할 수밖에 없는데, 1986년 일본이 일방적으로 공동탐사를 중단했다. 셰일가스의 예에서 보듯 탐사 방법에 따라 7광구는 지하자원의 보고(寶庫)로 떠오를 수 있다.

    조 전 대사, 권 전 대사가 자연 연장설로 일본에 한방을 먹였을 때와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1985년 리비아-몰타 대륙붕 분쟁 이후로는 지형이 아닌 거리를 기준으로 삼는 추세다. 일본이 7광구에서 시추를 중단한 것도 리비아-몰타 대륙붕 분쟁 직후다. 중국마저 7광구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게 현재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2013년 8월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서 7광구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한반도 대륙붕이 오키나와까지 뻗어 있다고 강조했다. 2028년 이후를 대비하고 나선 것이다.



     바다 놓고 싸우는 시대

     조 전 대사는 “치밀하게 무장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구와 맺은 불평등 조약의 경험 탓인지 일본은 국제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믿기지 않겠지만 북한도 그렇다. 최근 외교부를 보면 당장 불 끄는 소방수 노릇에 치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법, 행정의 칸막이도 문제다. 각자의 영역만 지키려 한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조약을 담당하기도 한다.

    지금은 바다를 두고 싸우는 시대다. 앞으로 해양법 다툼이 치열할 것이다.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를 보라. 일본, 중국도 바다를 놓고 다투는 것 아닌가. 이어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당연히 우리의 영토’라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 말로만 떠들어서도 안 된다. 뒷받침할 이론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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