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세태 리포트

“옵빠~ 안녕하세요” 금발 여친 애교에 심쿵

국제연애 ‘썸’ 타는 한국 남자들

  • 김상훈 | 뉴스웍스 기자 loveruck21@naver.com

    입력2016-04-11 13:47:4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한국 男, 데이트 비용 다 대고 세심”
    • “한국 男, 외국 여성을 너무 ‘쉽게’ 여겨”
    • “외국 女, 솔직해서 ‘밀당’ 감정 소모 없다”
    • “외국 女, 남자 집안, 스펙 안 따져 좋아”
    직장인 김모(30·서울 여의도동) 씨는 오후 11시가 되자 어김없이 자기 방 컴퓨터 앞에 앉는다. 미국에 사는 금발의 백인 여자친구(24)와 영상통화를 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오후 11시면 여자친구가 있는 캘리포니아는 오전 6시. 두 사람이 어느 한쪽의 수면시간을 침해하지 않고 통화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친근하면서 공손한 여친

    연결이 되고 얼마 뒤 화면에 여자친구가 나타났다.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 듯 부스스한 얼굴이지만 김씨에겐 예쁘기만 하다. “헬로, 굿모닝!” 김씨의 영어 인사에 여자친구는 “옵빠~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답한다. 여자친구가 이렇게 말할 때 김씨는 그야말로 ‘심쿵’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이어 여자친구는 “You look so tired! How was your day?(많이 피곤해 보이네. 오늘 어땠어?)”라고 걱정스럽게 묻는다. 김씨에 따르면 그의 여자친구는 미국의 ‘친근 문화’와 한국의 ‘공손 문화’를 함께 지녔다고 한다. 통화는 한 시간 정도 이어진다.  

    두 사람은 2년 전 서울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부킹’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여자친구는 이화여대에 공부하러 온 교환학생이었다. 둘은 첫 만남에서부터 호감을 느꼈으며 얼마 되지 않아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여자친구가 어차피 교환학생으로 있다 자기네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될 줄 알았다. 교환학생과의 연애는 대개 이처럼 끝이 정해져 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한국말 실력이 늘자 여자친구는 더더욱 사랑스러운 존재가 됐다고 한다. 성격도 잘 맞고 대화도 잘 통해 결국 여자친구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이렇게 매일 영상통화로 마음을 이어간다.



    대학가에선 더 일상화

    요즘 김씨처럼 외국인 여성과 교제하는 남성이 부쩍 늘고 있다. 농촌 노총각이 동남아에서 신붓감을 데려오는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20~30대 많은 남성이 미국,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을 포함해 세계 각지의 여성과 굳이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귄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이 연간 10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데다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도 많다. 자연히 한국인 남성이 외국인 여성을 만날 기회가 늘어났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한류(韓流)가 확산되면서 한국의 글로벌 이미지가 좋아진 점, 영어를 구사할 줄 알고 해외 문화를 접해본 젊은이가 늘어난 점, 한국 남성들이 외모 가꾸기에 공을 들이는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이태원, 홍대 앞, 강남, 명동에서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커플이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요즘 흔히 볼 수 있다. 대학가에선 국제연애가 더 일상화해 있다. 미국 등지로 어학연수나 유학을 떠나 현지인 여성이나 외국인 유학생과 연애하는 한국인 학생도 적지 않다.

    얼마 전엔 다수의 외국인 여성이 자신의 옛 한국인 남자친구를 품평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 화제가 됐다. 이들은 한국인 남성이 연애 상대로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국인 남성이 서양인이나 일본인 남성보다 좋은 점으로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거의 다 부담한다는 점 △문자메시지를 무척 자주 보내고 여자를 세심하게 챙겨준다는 점을 꼽았다. 반면에 안 좋은 점으로는 외국인 여성을 너무 쉽게 잠자리 상대로 생각한다는 점을 들었다.

    국제연애에 대해 보고 들은 남성들은 이런 견해에 대해 “대체로 맞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서울 M대를 졸업한 김모(26) 씨는 “1년의 미국 어학연수 기간 중 같이 연수를 받던 일본인 대학생과 연인으로 지냈다. 한국인 여성을 사귀는 것과 외국인 여성을 사귀는 것 간에 국적에 따르는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밀당 안 해 좋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제결혼에 동의한다는 의견은 63.2%나 됐다. 20~30대는 70% 이상이다. 연예계에서 들려오는 국제연애 소식도 이런 세태를 반영하는 듯하다. 한류 스타 송승헌은 중국 배우 류이페이와 연인관계임을 인정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가수 빈지노(임성빈)는 독일 출신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와 공개 연애를 했다.

    얼마 전까지는 한국-중국, 한국-일본 같은 동양인 커플이 많았던 반면, 최근엔 동서양 간 국제연애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최근엔 한국인 남성과 영국인 여성 사이의 러브스토리가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영국 여성 알리 애벗 씨는 한국 아이돌그룹 비스트를 좋아했고 펜팔 앱을 통해 한국인 김재정 씨를 알게 됐다. 2주간의 만남 뒤 김씨가 군에 입대하자 애벗 씨는 2년을 기다렸다. 이윽고 제대 후 영국으로 날아온 김씨를 애벗 씨는 뜨겁게 포옹했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오른 뒤 조회 수가 140만 건을 넘었다.

    대학생 강모(25·서울 불광동) 씨는 요즘 프랑스인 여자친구와 핑크빛 사랑을 나눈다. 김씨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여자친구를 교내 봉사활동에서 만나 ‘썸’을 이어가다 연인으로 발전했다. 강씨는 외국인 여자친구의 좋은 점으로 ‘솔직한 감정 표현’을 꼽았다. 그는 “두 사람 다 감정에 솔직해 서로 밀당(밀고 당기기)할 필요가 없다. 서운한 점, 바라는 점을 즉각 말한다. 그러니 괜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씨는 여자친구의 ‘연예인급 외모’에 끌렸다. 여자친구의 미모는 주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강씨는 “여자친구와 캠퍼스를 걷다 보면 남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이젠 오히려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태원이나 홍대 주변엔 여전히 한국인 여자-외국인 남자 커플이 많다. 이에 대해 강씨는 “요즘엔 서양인 여자도 한국인 남자에게 관심을 많이 갖는다. 인종 간 장벽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영어나 제2외국어가 취업을 위한 필수 스펙이 되면서 어학 스터디 모임이 국제연애의 창구가 되기도 한다. 일본어를 전공하는 대학생 이모(23·서울 남가좌동) 씨는 매주 토요일 신촌에서 한일 언어교류 모임을 갖는다. 이 자리엔 한국인과 일본인 대학생, 직장인들이 함께 모인다. 이씨는 이 모임에서 알게 된 일본인 여성과 자주 만나고 있다. 이씨는 “다른 언어와 문화를 자주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모(29·서울 연희동) 씨는 “일본인 여자친구가 섬세하게 이것저것 정말 장 챙겨준다. 사귀는 게 정말 즐겁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롱디’는 오래 못 간다?

    직장인 주모(32·서울 잠실동) 씨는 3년 전 터키 출장에서 만난 터키인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아내가 된 터키 여성은 요즘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에 열중한다. 주씨 가족과 잘 소통하기 위해서다. 주씨는 “아내가 나를 배려해주고 인정해준다. 또한 작은 친절에도 감동한다. 한번은 차도 쪽에서 걷던 아내와 위치를 바꿔 인도 쪽에서 걷게 했더니 정말 고마워하더라”라고 말했다. 데이트 비용에 대해 그는 “외국인 여성은 반반씩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돈을 잘 벌면 더 많이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요즘 결혼 적령기 남녀는 경제적 조건을 많이 따진다. 미래가 불안정하다 보니 아무래도 상대에게 기대하는 수준이 높다. 거기에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결혼을 집안 대 집안의 결합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강하다. 그래서 혼수 등 신경 쓸 일이 많다.

    직장인 박모(32·서울 역삼동) 씨는 소개팅이나 선보는 자리에 지쳐 있던 차에 미국인 여성을 우연한 기회에 만나 사귀게 됐다. 박씨는 “결혼 적령기의 한국 여성에 비해, 겉으로 드러나는 남자의 스펙을 별로 따지지 않는다. 부모나 집안에 대해 묻지도 않는다. 그런 점이 인간적으로 보이고 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국제연애는 오래가지 못하는 편이라는 얘기도 있다. 대개 일정 기간 사귀다 어느 한쪽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헤어지는 패턴이다. 서울 K대 영어영문학과 재학생 김모(27) 씨는 “주변에 외국인 여성과 사귄 친구가 여럿 있는데, 롱디(long distance couple, 장거리 커플) 중에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전했다.

    대학생 김모(27·인천 간석동) 씨는 미국에 있는 여자친구와 얼마 전 결별했다. 두 사람은 2년 동안 태평양을 사이에 둔 롱디로 지냈다고 한다. 거의 매일 영상통화와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서로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그런 친밀함이 오히려 ‘독’이 됐다. K씨는 “여자친구가 올린 사진 중엔 파티 사진이 많았다. 자신의 이성친구들과 노는 모습들이었다. 내가 싫어하는데도 달라지지 않아 결국 헤어지자고 했다”고 털어놨다. K씨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남녀만이 구사할 수 있는 섬세한 표현과 뉘앙스가 있다. 여자친구와 이런 부분까지 공유하지 못하는 점도 어려움이었다”고 설명했다.



    취업 준비도 장애물

    취업이 잘 안 되는 현실도 롱디에겐 큰 악재다. 취업준비생 서모(28) 씨는 “취직에 열중하다 보니 미국 교환학생 때 사귄 중국인 여자친구와의 접촉이 절로 뜸해졌다. ‘널 만나러 꼭 중국에 가겠다’는 영혼 없는 약속만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신모(24, 서울 방배동) 씨도 취업 준비 때문에 태국인 여자친구와의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취업난이 극심해 실업자로 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다. 한국인, 외국인을 떠나 취업하기 전까진 아예 연애 자체를 못 하겠다”며 답답해했다.

    조동기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민족 정체성이 희석되고 대신 개인의 다양한 가치가 강조되고 있다. 이런 변화 때문에 국제 연애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