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호

세태 리포트

총기난사범 조승희 도 넘은 우상화

‘동양 예수’ ‘마틴 루터 조’…

  • 강지남 기자 | ayra@donga.com, 유설희 인턴기자 | 고려대 철학과 졸업

    입력2016-04-11 13: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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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 장군님’이 쏜 것은 동양인 인권차별?
    • ‘컨셉질’로 시작…진짜 우상으로 모시는 누리꾼도
    • 버지니아州 보고서 “망상 때문에 저지른 살인”
    • “온라인상의 현상이라도 조기 개입 필요”
    유튜브에 ‘조장군의 뮤직비디오’라는 동영상이 있다. 서양인들이 양손으로 눈꼬리를 밀어 올리며 동양인 눈매를 흉내 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조승희가 총을 든 사진이 나온다. 2007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조승희는 이 영상에서 동양인 인권차별에 저항한 ‘투사’로 그려진다. 배경음악으로는 록밴드 미스터빅(Mr. Big)의 ‘샤인(Shine)’이 흐른다. 조승희가 즐겨 들었다고 알려진 노래다.

    이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제너럴 조(General Cho)’는 광주에 사는 고등학생 H(17)군. 그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누가 뭐래도 조승희 님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유튜브에 조승희 동영상을 올리고, 게임에서 ‘제너럴 조’ ‘조 장군’ 같은 닉네임을 사용해요. 조승희 님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죠. 조승희 님을 만날 수 있다면, 안아주고 싶습니다.”

    사건 당시 23세의 버지니아 공대 재학생이던 조승희는 권총을 난사해 32명을 살해하고 29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자살했다. 이 사건은 현재도 미국 총기난사 사건 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으로 꼽힌다.

    그런데 최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조승희를 우상화하는 게시물이 퍼지고 있다. 그를 구국영웅으로 치켜세우는 표현인 ‘조 장군’이나 ‘제너럴 조’가 유행어가 됐을 정도다. 포털 사이트에서 ‘조승희’를 검색하면 이런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등은 아예 ‘조 장군’ ‘제너럴 조’를 금칙어로 지정했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은 ‘조-장군’ ‘제너럴@조’ 등으로 변형해 그를 우상화하는 표현을 여전히 사용한다.





    ↖(_ _)↗, ┐(-_-)┌

    이러한 게시물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조승희 어록’이다. 그는 범죄행위를 하기 전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과 영상을 미국 NBC 방송국에 보낸 바 있는데, ‘조승희 어록’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며 온라인상에 떠돈다. 그 일부는 아래와 같다. 


    ‘너희들이 나한테 해준 만큼 총알로 되갚아주마.’

    ‘백인의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동양인 스스로가 백인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을 갖는 것이다.’

    ‘약하고 힘없는 동포들에게 희망을 주고 예수처럼 죽는다.’

    ‘나는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내 동포들을 이끌 것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총이 있습니다(제너럴 조).’

    ‘조승희는 사람을 쏜 게 아니다. 인종차별이란 괴물을 쐈다.’

    ‘조장군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동양인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야수의 심정으로 미국의 심장을 쏘았다.’


    조승희 우상화 게시물에는 “조 장군님 그립습니다” 등 해당 내용을 옹호하는 댓글이 무수하게 달린다. 반감을 보이는 댓글은 수십 개 중 한두 개에 불과하다. 누리꾼 사이에선 조승희 옹호를 이모티콘으로 만든 ‘조모티콘’도 즐겨 쓰인다. 조승희가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_-)ㄱ ↖(_ _)↗ ┐(-_-)┌ 등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버지니아 대첩’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구스위키’(위키백과 같은 인터넷 백과사전으로 누리꾼이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다)는 ‘버지니아 대첩’에 대해 “제너럴 조는 인종차별 문제를 알리시고 32킬 29부상(32명을 살해하고 29명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뜻)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시고 승화하시었다”라고 설명한다. 조승희가 미국 역대 총기난사 사건 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점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또한 조승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여겨진다. 그가 주요 범죄자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8월 미국 ABC 방송사 생방송 도중 백인 기자 2명을 권총으로 살해한 베스타 플래내건, 2011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초등학교에서 25명을 권총으로 사살한 웰링턴 올리베이라는 ‘조승희에게 영감을 받아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러한 범죄 기사를 퍼뜨리며 조승희 ‘업적’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린다.



    이목 끌려고 시작한  ‘놀이’

    조승희 우상화는 언제, 어디서 시작됐을까. 약 1년 전, 디시인사이드 ‘야갤’(야구갤러리의 약칭)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야갤은 디시인사이드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은 게시판 중 하나로, 인터넷상 각종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엘지, 롯데, 기아 야구구단을 한데 묶어 표현하는 ‘엘롯기’도 여기서 나왔다. 누리꾼들은 야갤에서 만들어져 인기를 끄는 신조어를 인터넷상의 다른 커뮤니티로 퍼 나른다.

    자신의 블로그에 ‘조승희 장군님 추모관’이라는 별도 카테고리를 만들어 조승희 관련 게시물을 수집하고 있는 대학생 배모(25) 씨는 “조승희 컨셉질이 야갤에서 인기를 끌면서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컨셉질’이란 온라인상에서 특이한 콘셉트(concept)를 잡고 노는 것을 가리키는 인터넷 용어. 컨셉질을 해야 조회 수가 올라가는 등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즉, 조승희 우상화는 별다른 생각이나 논리 없이, 그저 이목을 끌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문제는 장난으로 시작한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누리꾼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조승희를 동양인 인권투사로 여기며 ‘동양 예수’라 부른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에 빗대 ‘마틴 루터 조’라고도 호칭한다. 배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신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조승희는 인종차별이라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영웅이자 위인”이라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그를 흉악범으로 여겼지만, 야갤 등에서 인종차별을 겪은 해외교포나 유학생들의 경험담을 접하고는 조승희도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조장군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H군도 “인종차별을 멈추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군대에서 총기 쥐여주면…

    조승희는 정말 ‘동양인 인권투사’였을까.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오 교수는 “조승희는 NBC 방송에 보낸 선언문에서 자신은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를 추앙한다고 밝혔다”며 “서양인 범죄자를 롤 모델 삼은 조승희가 동양인 인권차별을 위해 싸웠다고는 보긴 어렵다”고 했다.

    온라인상에서 즐겨 소비되는 ‘조승희 콘텐츠’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 역시 ‘왜곡 소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조승희 어록’ 중 일부는 그가 실제로 한 말이 아니라 일부 누리꾼이 지어낸 말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총이 있습니다(제너럴 조)’, ‘조장군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동양인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등의 표현은 조승희가 실제로 남긴 기록 중에서 찾아볼 수 없다. 또 조승희가 즐겨 들었다는 음악도 잘못 알려져 있다. 미스터빅의 ‘샤인’은 조승희 우상화 게시물에 어김없이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며 조승희 테마곡으로 자리 잡았지만, 실제 그가 좋아한 노래는 록밴드 컬렉티브 솔(Collective Soul)의 ‘샤인’이었다.

    조승희 우상화가 국내에서 모방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을까. 블로그에 ‘조승희 장군님 추모관’을 만든 배씨는 “한국에선 총기 소지가 허용되지 않기에 그럴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공정식 한국심리과학센터 교수는 “우상이란 마음속으로 동경하는 준거집단”이라며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의 가치관, 행동, 말을 따라 할 확률은 매우 높다”는 견해를 밝혔다.

    오윤성 교수도 “범죄자를 우상으로 삼는 사람은 언제든 범죄행위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라며 “그런 사람이 군대에서 총기를 소지하게 된다면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공 교수는 “조승희의 경우에도 부모 등 외부인의 조기 개입이 있었더라면 총기난사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며 “조승희 우상화 현상에 대해서도 적절한 외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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