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민주, 北 인권 문제엔 의견 일치
대북 전단보다 라디오방송이 효과적
공고해 보이는 북한과 중국, 서로 경계
김정은, 주민 통제력 잃는 데 공포
‘장마당 세대’에도 자유 허용치 않을 것
끊임없는 문제 제기가 北 변화시킨다
2015년 11월 16일 당시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서울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동아DB]
● 미국 브리검영대 정치학과 졸업, 터프츠대 국제관계학 박사(PhD)
● 톰 랜토스 하원의원 비서실장
●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 특별대사
● 現 국제전략연구소(CSIS) 선임고문
● 現 북한인권위원회(HRNK) 이사
2022년 11월 2일 북한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등 미사일 25발을 동해 및 서해상으로 발사했다. 미국 랜드연구소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이날 미사일 발사에 들어간 비용을 5000만~7000만 달러로 추정했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1년치 쌀값에 맞먹는 액수다. 2022년 9월 미국 농무부가 발표한 ‘국제식량안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 10명 가운데 약 7명이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이 핵 개발에 몰두하는 동안 북한 주민의 인권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인권 문제 제기에 소극적이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 불참, 대북전단 금지법 제정, 탈북어민 강제송환 등 북한인권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필사적이었다. 인권은 이념·종교·성별·인종 등 모든 조건을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보편적 권리지만, 한국 사회에서 ‘북한인권’은 남북한의 정치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5년간 공석이었던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하고 유엔 총회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도 다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6년간 표류하던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기 위한 노력도 가시화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8년 동안 미 국무부 북한인권 특별대사를 지낸 로버트 킹(Robert King)은 최근 ‘지구상 가장 억압적이고 비밀스러운 국가’의 인권 문제에 관여했던 본인의 특별한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북한인권과 불처벌의 관행’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북한인권이라는 난제를 풀기 위한 전 세계적 노력과 이에 동참하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북한인권이 윤석열 정부의 화두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킹 전 대사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美에선 분열 상황에도 北 인권 증진 한목소리
한국에서는 ‘북한인권’이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사안입니다.“북한인권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국내 정치는 정반대의 양상을 띱니다. 한국에서 북한인권은 정치적 이념 진영을 확고하게 둘로 나누는 사안입니다. 한쪽은 북한인권 문제를 축소하려 들고 다른 한쪽은 북한인권 증진을 위해 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미국은 지금 어느 때보다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심각하지만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확고하게 의견을 함께합니다. 4년 전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이 만장일치로 의회에서 통과된 것이 단적이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미국은 2004년 세계 최초로 북한인권법을 제정했고 2008년, 2012년, 2018년에 재승인했다. 현재 2027년까지 법적 효력을 연장하는 네 번째 재승인 법안이 의회에 계류돼 있다. 미국은 법안이 정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거의 모든 법안에 만료 날짜를 명시하고 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을 경우 내용을 수정해 재승인한다. 미국은 북한인권법을 재승인할 때마다 내용을 강화했다. 북한인권특사는 비상근직이었고 ‘사절(envoy)’ 신분에 불과했지만 2008년 재승인 법안은 북한인권특사직을 상근직으로 변경하고 ‘대사(ambassador)’ 칭호를 부여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은 일본(2006)과 한국(2016)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북한인권 문제를 정쟁화하지 않으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스스로가 인권 문제를 정치적 사안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오용되기 쉽습니다. 2011~2012년 당시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당시 북한은 화폐개혁 이후 민생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심각한 식량난이 발생했고 북한이 먼저 미국에 식량 지원을 요청해 왔어요. 식량난은 인권 문제이자 인도적 사안이기에 정치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진행돼야 하지만, 당시에는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 재개 논의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전혀 별도의 영역인 이 두 가지 사안을 한데 엮어 하나의 협상에서 양보하는 대신 다른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습니다. 비핵화 협상에 참여하는 대가로 식량 지원의 규모나 모니터링 방식에서 양보를 얻어내려 한 것이죠. 미국에서 아무리 인권 문제를 정치 문제와 분리하려 애써도 북한 당국이 두 문제를 엮으려들면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킹 전 대사는 북한이 미국인 억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관행에 대해 설명했다. 2009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은아 리(Euna Lee), 로라 링(Laura Ling)이 북한에 체포됐을 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을 하고 나서야 석방될 수 있었다. 이후 북한은 미국인을 억류해 거물급 정치인을 방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높였다. 2009년 사건 이후 10년간 무려 16명의 미국인이 북한에 억류됐다. 미국인 억류로 대통령의 위신과 지도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북한은 더 큰 요구를 해도 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북한인권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8년간 북한인권 특사로 재직하면서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와 교류했습니다. 서울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여러 정당의 국회의원들과도 두루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록 제 임기가 문재인 정부와 겹친 기간은 짧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인권 문제를 경시했습니다. 북한인권 문제가 불거진다면 남북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김정은 정권은 북한 주민들이 한국을 매력적인 곳으로 인식하는 게 두려웠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인권을 경시하면서까지 북에 손을 내밀었지만, 김정은의 처지에서는 우호와 협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예요.”
김정은과 교류 단절 우려해 침묵한 文
그는 책에서 문재인 정부의 북한인권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2019년 탈북어민 북송에 대해서는 “이들의 변호인 접근도, 사건에 대한 법원 심리도, 정부의 송환 결정에 대한 항소도 허용되지 않은 채 이뤄졌다”고 적었다. 같은 해 11월 베트남 국경에서 탈북민 11명이 체포됐을 때 이들을 국내에 데려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적었다. 킹 전 대사는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과 교류가 단절되는 것을 우려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고 평가했다.문재인 정부의 탈북어민 북송 사건을 최근 윤석열 정부가 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탈북어민 두 명은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돌려보내졌습니다. 새롭게 공개된 송환 당시 정황을 보면 탈북 어민들은 북송 당시 강렬히 저항했고, 북송 사실을 미리 고지받지 못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탈북어민이 동료 선원 살해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법원의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북한에서 범죄를 저질렀거나 탈북 의도가 부정직하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탈북민을 북송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탈북어민 북송을 결정했을 때 4명의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은 공동 명의로 한국에 서한을 보내 왜 탈북어민의 귀순을 거부했는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인권 보호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선택했던 게 분명합니다. 당시 논란이 된 이 사건을 재조사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리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7월 문재인 정부 내내 공석이었던 북한인권대사직에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또 4년 만에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 참여했다. 우리 정부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했으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남북관계를 고려해 불참했다.
대북 전단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대북 전단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남측에서는 북한의 이런 반응을 근거로 대북 전단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죠. 그러나 풍선으로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내는 것은 효과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평양은커녕 DMZ(비무장지대)를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보다는 한국의 라디오방송이 북한 주민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미국의 ‘미국의 소리’나 ‘자유아시아방송’, 영국의 BBC, 중국 옌볜 지역에서 송출하는 한국어 방송도 북한에 청취자가 꽤 많습니다. 1950년대 냉전 시기 미국은 유럽에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에 전단을 날려 보냈지만 1956년에 대부분 중단했어요. 라디오에 비해 효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북 전단은 북한 주민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비효율적 수단일 겁니다. 다만 풍선을 띄울 때마다 북한 주민의 알권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이 문제에 관여하는 단체들이 알려지는 효과는 있겠죠.”
킹 전 대사는 냉전 시절인 1970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둔 자유유럽방송(Radio Free Europe)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자유유럽방송은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중부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 방송을 송출하던 방송사다. 당시 미국과 공산주의 진영 사이의 치열한 정보전(戰) 한가운데 있던 그는 풍선을 이용한 전단 살포가 양 진영의 긴장만 고조시킬 뿐 실제 정보 전달의 기능은 하지 못해 폐기됐던 사실을 책에서 언급했다. 그는 “거대한 풍선이 솟아올라 북쪽을 향해 표류하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훌륭하지만 정보 확산에 효과적이라고 할 순 없다”고 적었다.
인권은 상대방 공격하는 수단 돼선 안 돼
문재인 정부는 친중 행보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모색했습니다.“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행위자입니다. 먼저 중국은 북한의 최대 무역국이자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기도 합니다. 한국 전체 수출의 26%가 중국으로 수출됩니다. 그에 비해 대미 수출액은 15%에 불과하죠. 중국과 북한은 여러모로 가까운 사이이지만, 흥미롭게도 북한은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 행보를 보이기도 합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6년이 지나서야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죠. 시진핑이 남북관계 개선에 직접적으로 노력한 바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중국 처지에선 남북관계 개선이 자국에 이롭다고만 볼 수도 없으니까요. 북한은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한편으론 중국의 이익을 위해 북한이 이용당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북·중관계는 역사적으로 매우 공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서는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죠.”
2022년 11월 17일 필자인 김수경 한신대 교수에 의해 번역·출간된 ‘북한인권과 불처벌의 관행: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 특별대사 회고록’. [한국과미국]
“중국은 홍콩과 신장 위구르자치구 인권탄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국민의 인권에 대해 억압적입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엔난민기구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중국을 경유하는 탈북민을 북한에 강제 송환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특사 재직 시절 중국 관료들을 여러 차례 만나 중국을 경유하는 탈북민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고 이들이 한국으로 갈 수 있게끔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탈북민들은 북한으로 강제 송환돼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지거나 처형당했습니다.”
난민협약 가입국인 중국은 난민에 대한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탈북민은 난민이 아니라 경제적 이주민이라고 주장하며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다. 일부 탈북 브로커들은 강제 북송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탈북 여성들을 중국의 성매매 업소에 팔아넘기거나 농촌 남성에게 돈을 받고 강제로 결혼시킨다. 매년 미 국무부가 발간하는 ‘인신매매 보고서’는 2022년 북한과 중국을 모두 최하위인 3등급으로 지정했다. 이는 양국 정부가 인민매매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도 통과하지 못했으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미·중 갈등이 인권의 가치를 내세운 ‘가치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에도 영향이 있을까요.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인권은 우리 모두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라는 점입니다. 인권 존중은 ‘옳은 일’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홍콩과 위구르자치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인권탄압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매우 좋다 해도 이 문제는 비판해야 합니다. 인권은 절대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됩니다. 한국, 중국, 미국 모두 유엔 가입국이고 ‘모든 인류 구성원이 지닌 천부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초’라는 세계인권선언을 준수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권은 권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김정은이 주민 목소리 묵살하는 이유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12월 취임 이후 첫 대북제재를 단행했다. 미 재무부는 리영길 국방상 등 15명의 인물과 중앙검찰소 등 10개 기관을 인권탄압을 이유로 제재 명단에 올렸다. 바이든 행정부의 첫 대북제재 명분이 인권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제재 조치가 이뤄지던 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은 인권을 외교정책의 중심에 놓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의 가치 외교가 대북제재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해석했다.북한이 연일 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북한은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느라 주민에게는 식량, 보건 등의 각종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여력이 없습니다. 핵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려면 결국 김정은은 정부 정책에 대한 주민의 목소리를 묵살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에게 인권이 허락된다면 막대한 자원을 핵 프로그램에 쏟아부을 수 없게 됩니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에 대한 통제를 잃는 것에 대해 편집증에 가까운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핵 도발에 대한 제재가 무고한 북한 주민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북제재는 의도치 않게 북한의 일반 주민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는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물품에 대해서만 국소적으로 제재를 부과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중엔 비군사적 용도로 필요한 것들도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모든 자원을 군사적 목적을 채우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것들만 비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북한은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주민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2019년 김정은 정권이 무려 50만 달러짜리 벤츠 리무진 2대를 사들인 것입니다. 대북제재를 피해서 들여오느라 6개국 항만을 돌고 돌아 평양에 밀반입됐습니다. 운반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들었습니다.”
유엔 대북제재는 고급 리무진을 사치품으로 분류해 북한으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대북제재를 피해 8개월간 6개국의 항만을 거쳐 50만 달러가 넘는 초고가 벤츠 차량 2대를 밀반입했다. 대북제재가 아무리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해도 부족한 자원의 전부를 정권 유지에만 사용한다면 고통은 결국 북한 주민의 몫이 된다.
미미하긴 하지만 북한인권도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지만, 중요한 건 북한 당국이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북한인권 문제와 관련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인권을 지키는 척할 뿐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그런 제스처조차 인권 규범 준수의 의무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북한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북한은 미국이나 한국 등 개별 국가의 인권 문제 지적에 대해서는 강렬히 저항하면서도 유엔의 인권 메커니즘에는 비교적 협조하는 편이다. 4년 6개월에 한 번씩 실시되는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에 성실히 임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유엔 장애인 인권 특별보고관의 방북을 허용했다. 얼마 전에는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이행 상황을 보고하는 자발적 국가검토보고서(VNR)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정치적으로 덜 예민한 취약계층의 인권 개선에만 집중할 뿐 정치범 수용소 폐지, 고문 철폐, 언론의 자유 보장 등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인권 분야의 개선 요구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발하고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
이념적으로 유연하고 시장화에 익숙한 ‘장마당 세대’가 북한 사회 주축이 되면 인권 상황에도 변화가 올까요?“장마당 세대가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 등 ‘K-컬처’에 익숙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김정은은 분명 청년 세대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동시에 김정은은 문화와 이념의 영역에서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얼마든지 권력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장마당 세대가 아무리 이념적으로 유연하고 시장화에 익숙한 세대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자유를 허용해 주진 않을 것입니다. 북한 주민이 외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19와 국경봉쇄, 대북제재 등으로 북한이 더욱 고립되면서 장마당 세대가 외부 사조와 문화에 관심을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할 대목입니다.”
‘장마당 세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났거나 유년기를 보낸 세대로, 국가 배급 체계가 붕괴되고 극심한 빈곤을 겪으면서 생계를 오로지 장마당에 의존해야 했던 경험을 공유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문화에 비교적 익숙하고 외부 사조에도 유연한 편이다.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했기에 이념적으로 이완돼 있고 정권에 대한 맹목적 충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장마당 세대’를 통제하고 포섭하는 것이 체제 유지에 대단히 중요하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한국 드라마 등 불법 영상물 시청 및 유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북한의 10대 학생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친구들에게 유포한 혐의로 당국에 적발돼 공개 처형됐다는 보도가 전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현실 방안은 무엇일까요.
“먼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수용되길 원하기 때문에 유엔의 인권 메커니즘에는 호응하는 편입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한 인권 압박이 비핵화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고 심지어 방해까지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포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고발하는 결과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북한은 극렬히 반발했지만 한편으론 15년 만에 외무상을 유엔 고위급 회의에 파견하고 당시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인권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는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합니다. 북한이 비교적 열린 자세를 보이는 인권협력 분야를 발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은 현재 장애인 인권 증진에 큰 관심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덜 민감한 분야의 협력부터 도모한다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내기가 한결 부드러울 것입니다. 일단 물꼬를 튼 뒤 분야를 더 확장해 나가야겠지요.”
김수경
●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 박사
● 동아일보 기자
● 고려대 국제대학원 연구교수
●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통일교육위원
● 現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동아 1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