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중순 현재 걸프지역의 하늘엔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면 이미 전쟁이 터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은 ‘충격과 두려움(shock and awe)’이란 작전개념에 바탕을 두고, 12년 전 걸프전 때의 10배에 이르는 막강 화력으로 이라크를 공격한다는 방침이다(‘신동아’ 2003년 3월호 ‘이라크전쟁 공습전략 A to Z’ 기사 참조).
“4월말까지 후세인정권 생존확률 0%”
수도 바그다드를 지키기 위해 이라크군 정예부대인 특수공화국수비대는 도시 게릴라 전술로 맞서겠지만, 결국은 패배할 것이다. 후세인에게 충성하는 이라크군 지휘부가 ‘시리야(Siriya)’라 일컫는 일종의 독전(督戰)부대(1개 사단마다 200명)를 일선 부대 바로 뒤에 배치해놓고 후퇴하는 병력을 사살하며 저항해도 끝내는 무너질 것이다. 역사상 최대의 군사초강대국인 ‘파워 아메리카나(Power Americana)’와 이라크군 간의 전투는 처음부터 결과가 보이는 싸움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작전계획을 보면, 영국군은 이라크 남부 바스라 항구와 이라크 석유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루말리아 유전지대를 맡고, 미군은 바그다드로 진격하기로 역할 분담을 했다. 영국군이 이라크 남부를 맡기로 한 것은 병참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영국군은 참전부대 규모가 작아 이라크 북쪽으로 긴 병참선을 잇기 어렵다. 대규모 공습에 이어 미 해병 1사단이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진격할 때 영국군도 함께 진격할 것이다. 그런 다음 바스라 항구와 인근지역 일대를 장악하는 임무를 영국군이 맡게 된다.
영국은 식민지 종주국으로서 영국이 세운 꼭두각시 하세미트 왕조가 1958년 쿠데타로 무너질 때까지 이라크 석유 이권을 챙겼던 나라다. 바그다드 교외엔 거대한 영국군 묘지가 있다. 대영제국의 군인으로 이라크 침공전쟁에서, 그리고 그 뒤 주둔군으로서 반란에 맞서 싸우다 죽은 2000여 명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이라크 침공 당시 이라크인들의 거센 저항을 경험한 바 있는 영국군과 그런 경험이 없는 미군은 작전개념에서 얼마간 다른 입장을 취한다. 대규모 공습으로 이라크군을 압도해 항복을 받아내려는 게 미군의 전술인 데 반해, 영국은 그런 작전이 이라크인들의 반외세 감정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결론은 “초반 대규모 공습으로 이라크군을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오히려 영미 연합군 쪽 사상자가 많이 생겨날 수 있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는 소식이다. 초점은 이라크 쪽 인명피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국인과 영국인의 목숨 보호에 맞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