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도심 가로수·아파트 조경수로 이식…“좋은 나무 가져와 죽이는 꼴”

명품 소나무 수난시대

  • 송화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1-05-20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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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경상북도 등 이름난 소나무 서식지에서 소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 수형 좋고 건강한 나무들이 앞 다퉈 서울 등 대도시로 실려 나가는 까닭이다.
    • 도심 가로수와 고급 아파트 조경수로 소나무가 인기를 끌면서 최근 명품 소나무는 부르는 게 값일 만큼 비싸게 팔리고 있다.
    • 지방에서는 불법 굴취로, 서울에서는 고사(枯死)와 병충해로 신음하는 ‘국가목’ 소나무 실태를 취재했다.
    도심 가로수·아파트 조경수로 이식…“좋은 나무 가져와  죽이는 꼴”

    소나무는 병충해에 약하고 비바람에 쓰러질 위험이 있어 가로수로 적합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경북 영양군 영양읍 한 야산에서 수령 30~50년 된 소나무 50여 그루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원면과 청기면 등 관내 마을에 있던 수령 100년 이상의 명품 소나무들도 잇따라 사라졌다. 경찰은 전문 나무 절도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 중이지만 아직 범인을 잡지 못했다.

    최근 전국적으로 소나무 절도범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공무원까지 낀 소나무 불법 굴취단이 적발됐다. 강원도 강릉에서도 지난달 정동진리 임야에서 수령 40~50년 된 소나무 130여 그루를 뽑아 반출하려던 일당이 경찰에 잡혔다. 충북 제천에서는 국유림에 들어가 소나무를 훔친 절도범이 구속되기도 했다. 강릉시 관계자는 “지난해 1년 동안 적발한 소나무 불법 굴취 건수가 7건이었는데, 올해는 벌써 5건”이라고 밝혔다. 소나무 굴취가 대부분 밤 시간대 깊숙한 산지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적발되지 않은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국립공원 비법정 탐방로상의 소나무를 주로 노리는 조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나무 전문 사진작가인 장국현씨는 “요즘 지방 야산에는 소나무 있던 자리에 구덩이만 파여 있는 경우가 많다. 지역의 명목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소나무 불법 굴취가 이처럼 성행하는 것은 최근 조경용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예년에 비해 2배 이상 올랐기 때문. 특히 골프장, 아파트 단지들이 앞 다퉈 소나무를 조경수로 심으면서 소나무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게 영향을 미쳤다.

    명품 소나무의 종말

    지난해 8월 입주를 시작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의 경우 수령 100년이 넘는 대적송 1500그루를 비롯해 그루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소나무 2200여 그루를 심었다.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단지도 1200여 그루에 달하는 고송(古松) 조경으로 유명하다. 한 건설사 조경 담당자는 “요즘은 소나무를 심지 않으면 싸구려 아파트 취급을 받기 때문에 조경 담당자들 사이에서 수형 좋은 고급 소나무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다”고 전했다. 농경지나 임야 조성 등의 필요성이 있을 때 가능한 합법적인 소나무 굴취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법 굴취, 유통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건설사들이 이처럼 조경에 열을 올리는 것은 브랜드 아파트가 많아지고 내부 마감재와 인테리어, 평면 구조 등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단지 조경이 아파트 수준을 가늠하는 판단 기준이 됐기 때문. 특히 생김새가 수려한 고송은 단지 조경의 품격을 높이는 구실을 한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소나무가 수백만원대에 거래되는 반면 수령이 많고 수형이 아름다워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는 소나무는 수천만원대에서 억대 가격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조경업자는 “2~3년 전만 해도 고급 아파트나 관공서, 골프장, 클럽하우스 주변의 독립수로 쓰이는 근원경(根元徑) 1m 이상의 소나무는 1000만원대, 근원경 60㎝ 정도로 일반 아파트에 심을 만한 나무는 400만~500만원대에 거래됐는데, 요새는 수요가 더 늘어 이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고 밝혔다.

    문제는 조경수로 이식된 소나무가 오래 살지 못한다는 점. 이경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세계적으로 우리처럼 대경목(大莖木)을 많이 옮겨 심는 나라가 없다”며 “특히 다 자란 소나무를 옮겨 심는 것은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무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큰 나무는 옮길수록 모양이 망가진다. 나무 크기에 맞게 구덩이를 파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뿌리가 많이 잘려나가고, 가지도 죽는다. 소나무는 토양에 민감해 옮겨 심으면 잘 자라지 못한다. 소나무 조경수를 즐기고 싶다면 작은 나무를 심은 뒤 길러야 한다”는 게 이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도 “수령이 100년 이상 된 큰 나무를 옮길 때는 뿌리돌림(수목을 이식하는 경우 활착을 돕기 위해 사전에 뿌리를 잘라 실뿌리를 발생시키는 방법)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대부분 그런 노력 없이 옮겨 심는다. 이런 나무들은 새 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 죽게 된다”고 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조경업자는 “준공한 지 1년도 안 된 아파트에서 죽은 소나무 제거 공사를 한 적이 있다”며 “26그루가 죽어 있었고, 다른 나무들도 오래 살기는 어려워보였다”고 전했다.

    소나무 가로수 적합성

    도심 가로수·아파트 조경수로 이식…“좋은 나무 가져와  죽이는 꼴”

    서울 남산의 소나무가 대기오염 등 환경적인 이유로 곧게 자라지 못하고 휘어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서울 강남구·중구, 전북 고창군, 충남 부여군 등 여러 지자체에서 조성 중인 소나무 가로수길에서도 나타난다. 경기도 의정부시가 지난해 그루당 400만~600만원에 달하는 금강송 64그루를 심어 조성한 가로수길 ‘행복로’의 경우 조성 직후부터 나무가 죽기 시작해 도심의 골칫거리가 됐다. 전체 가로수의 50% 이상을 소나무로 바꾼 서울 중구에서도 퇴계로·을지로·남대문로 등 도심 일대 소나무의 상당수가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오충현 교수는 “소나무는 토양과 햇빛 변화에 민감해 이식할 경우 고사율이 상당히 높다. 가로수로 심으면 좁은 거리 폭에 맞춰 나무 뿌리와 가지를 잘라내기 때문에 더 많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소나무는 매년 1단씩 가지가 자라기 때문에 가지만 봐도 수령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심 가로수 소나무를 보면 해가 지나도 단이 늘어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나무도 제대로 생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소나무길을 조성하는 건 소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높은 수종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산림청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단연 소나무(67.7%)로, 2위 은행나무(5.6%)와 큰 차이가 났다. 도시 한가운데에 소나무를 심으면 시민들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애리조나대 로널드 왓슨 교수는 ‘소나무에서 발생하는 ‘피톤치드’라는 물질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고 나쁜 냄새를 없애는 효과가 있으며, 뇌중풍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국립산림과학원은 “소나무 가로수 식재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최명섭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소나무는 병충해에 약하고 태풍처럼 비바람이 몰아치는 기후에서 쓰러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소나무 가로수에 대한 문의가 오면 심지 않는 게 좋다고 안내한다”고 했다.

    관공서의 소나무 가로수길 조성에 참여한 한 조경업자는 “일단 심어놓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무 흙이나 쓰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나무가 제대로 자라게 하려면 부엽토와 마사토를 잘 섞은 토양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점토질의 논흙을 그냥 쓰더라. 논흙은 배수성과 통기성이 나빠서 소나무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흙이 질척해져 더 나빠진다. 그런 상황에서 태풍이라도 와보라.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전문가들은 도복(倒伏·작물이 비나 바람에 쓰러지는 일)이 일어날까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나무 숲 160ha

    도심 가로수·아파트 조경수로 이식…“좋은 나무 가져와  죽이는 꼴”

    고급 아파트 조경수로 소나무가 인기를 끌면서 소나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도심에 가로수로 서 있는 소나무는 대부분 마대에 감겨 있다. 줄기 수분 증발 억제, 여름철 햇빛 침해 방지 등이 주된 목적이지만, 동시에 이식 후 기운이 약해진 소나무를 공격하는 소나무좀의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심우경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소나무는 공해가 없고 물 빠짐이 좋으며 햇볕이 내리쬐는 산 능선에서는 잘 자라지만 공해가 심하고 그늘지고 병균이 많은 도심지에서는 건강하게 자랄 수 없는 나무”라며 “전국의 소나무가 조경수·가로수로 쓰이기 위해 대도시로 옮겨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심 교수에 따르면 1825년경 창덕궁과 창경궁 내부를 그린 세밀화 ‘동궐도’ 분석 결과 전체 수목의 약 20%가 소나무였다. 그러나 2002년 문화재청이 궁궐 내 식생을 조사한 결과 소나무 비율은 8.6%에 불과했고, 살아 있는 나무도 건강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전국의 소나무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소나무 숲 면적은 1985년 252만㏊에서 1995년 180만㏊로 10년 만에 28.6%가 줄었고, 2005년에는 다시 148만㏊로 20년 전에 비해 41%가 줄었다. 20년 사이에 남산 면적의 3068배에 달하는 104만㏊의 소나무 숲이 사라진 셈이다.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소나무 숲 면적은 160만㏊로 전체 산림의 25% 수준이다.

    광릉숲의 소나무도 지난 100년 동안 88%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광릉숲이 시험림으로 지정된 1913년엔 전체 면적 2200㏊ 가운데 소나무 면적이 50%인 1100㏊를 차지했으나, 1927년엔 823㏊(전체 면적의 39%)로, 1960년 641㏊(30%), 1990년 524㏊(25%)로 꾸준히 감소했다. 광릉숲의 소나무 면적은 2008년 현재 130㏊에 불과하다. 솔나방, 솔잎혹파리에 이어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소나무재선충병과 지구 온난화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오충현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애국가 가사에도 담았을 만큼 ‘국가수’로 여기며 사랑하지만, 실제로는 소나무 숲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 가로수 수종으로 적합하지도 않은 소나무를 도심에 옮겨 심고, 조경수로 쓰기 위해 다 자란 나무를 파오는 것만이라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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