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사고도시’ 대구, 안전과 생명존중의 메카로 탈바꿈

대한민국 소방안전박람회의 조용한 혁명

  • 최영철 기자│ftdog@donga.com

    입력2012-04-20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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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지하철 방화사건 계기 2004년 제1회 박람회 개최
    • 올해 제9회 소방안전박람회(5월 2~4일)는 생명존중 네트워크 구축
    • 소방방재청,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 포럼 발족
    • ‘다크투어리즘(블랙투어리즘)’ 체험관광 활성화 43만 명 체험
    당신은 그날을 기억하십니까/오늘에서 정확하게 100일 전/대한민국 광역시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을 기억하십니까/200여 명의 목숨이 어이없이 잿더미가 된/200여 명의 미래와 희망이 검은 연기가 된/도저히 믿을 수 없는 죄악의 현장을/그렇습니다/범인은 모두 우리들/나는 아니라고 누구도 말하지 마십시오./‘나’만 알고 ‘우리’를 모르는/냉혹한 우리의 이기심이/우리의 아버지를 우리의 어머니를 / 우리의 아들을 우리의 딸을 불속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 신달자 ‘당신은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중

    ‘사고도시’ 대구, 안전과 생명존중의 메카로 탈바꿈

    지난해 열린 제8회 대한민국 소방안전박람회.

    2003년 2월 18일 대구광역시는 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한 큰 아픔을 겪었다. 1995년에는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로 101명이 사망하고 202명이 부상하는 재난을 당했다. 대구라는 지명 앞에는 ‘사고도시’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9년여가 흐른 지금 대구에 대해 그런 말을 하는 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큰 사고 없고 안전한 도시라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실제 2003년 지하철 참사 이후 대구에서는 큰 사고가 없었다. 또 대구 지하철 참사는 타산지석의 교훈이 돼 이후 전국 지하철 객차 시설이 불연재로 바뀌었다.

    ‘사고도시’의 이미지를 털어내며 구원투수 역할을 한 주체는 대구 엑스코(대구전시컨벤션센터)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소방안전박람회(소방안전엑스포)’였다. 지하철 참사 1주년이 지난 뒤인 2004년 3월 18일 엑스코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소방안전박람회에는 미국 독일 중국 일본 영국 러시아 등 12개국 129개 업체가 참여했다. 소방안전, 방재산업 육성을 위한 전문 전시회가 개최됐고, 아시아태평양 화재소방학회가 함께 열려 ‘안전’이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이 마련됐다.



    수요자 대부분이 정부기관인 소방안전 산업의 특성상 박람회 초기에는 “소방관서 사람을 직접 만나면 되지 왜 전시회에 나와야 하는가”라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업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기술력 있는 업체들이 대거 참여했고, 이제 박람회는 소방안전 산업의 메카로 부상했다. 특히 박람회와 함께 진행된 선진국형 체험행사에는 매년 5만~7만여 명이 참여함으로써 시민이 안전의식과 재난대응능력을 키우는 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첫 소방안전엑스포를 기획한 박상민 대구 엑스코 기획전시팀장은 “대구하면 지하철 참사가 연상될 만큼 부끄러운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안전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실천적 노력이 요구되는 시기였다. 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사고 직후 소방안전엑스포 개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지난 8년간 소방방재청이 개최한 소방안전엑스포를 통해서 1474개의 기업이 3조7800억 원 상당의 상담을 벌였다. 그 결과, 산업으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소방안전방재 분야가 수출산업으로 육성되고 있다. 또 선진국에 비해 소방관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소방관의 처우가 조금씩 개선되는 계기가 마련됐고 ‘사고도시’ 대구의 이미지는 ‘안전도시’를 전파하는 출발도시로 변모했다.

    특히 안전 체험행사는 대구에 ‘다크투어리즘(블랙투어리즘)’이라는 특별한 관광 형태를 만들어냈다. 다크투어리즘은 전쟁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벌어졌던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 소방안전엑스포 기간 중 벌인 대규모 시민체험행사는 2008년 12월 시민이나 관광객이 언제든 안전체험을 할 수 있게 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탄생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2008년 12월 개관 후 2011년 말 현재까지 43만 명의 내외국인이 안전체험을 했다. 하루 평균 400여 명이 다녀간 셈. 시민안전테마파크는 2003년 지하철 참사 당시 중앙역사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역사교훈여행의 공간화에 성공했다.

    생명을 구하는 엑스포, 소방산업

    ‘사고도시’ 대구, 안전과 생명존중의 메카로 탈바꿈

    어린이들의 재난 체험은 ‘안전’을 위한 또 다른 투자다.

    전동차를 견학한 후에는 실제 전동차 객실로 옮겨 타 비상 시 탈출방법을 배운 뒤 실제 화재가 났을 때처럼 연기를 피우고 전기가 나간 상태에서 바닥의 야광타일과 비상유도등을 따라 대피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정남희(40·여) 씨는 “2시간가량의 체험을 하는데 당시 사고현장을 담은 영상과 전동차를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며 “우리가 희생자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은 우리 아이들에게 재난 시 대피요령을 몸으로 체득하게 해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실제를 방불케 하는 지하철 화재 사고 시 대피체험을 비롯해 지진대피, 산악안전체험, 심폐소생술과 소화기 완강기 작동 등 화재와 재난 발생 시 안전을 지키기 위해 꼭 배워야 하는 체험코스로 이뤄져 있다.

    오경묵 엑스코 브랜드전시팀장은 “올해 제9회 대한민국 소방안전엑스포의 주제는 ‘생명을 구하는 소방산업 활성화’다. 5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 엑스코 실내전시장 및 야외전시장에서 열리는 엑스포에는 120여 개 업체가 참여해 700개 부스(체험, 야외시연 부스 포함)에 내진설계 소방설계 구조구급 소화장비 스테인리스스틸 배관 신제품신기술 특별관 등 분야별로 특화된 전시관을 마련한다.” 고 소개했다.

    이번 엑스포 기간에는 소방안전산업의 수출산업화를 위한 수출상담회도 열린다. 또 한국화재소방학회는 국내외 300여 명의 학자가 참석한 가운데 ‘초고층빌딩의 내화안전’ 및 ‘도쿄스카이라인의 방화설계’ 등을 주제로 한일 국제소방콘퍼런스를 진행한다. 국내 최대의 소방 설계 공사 감리 단체인 한국소방시설협회와 제조업체 간의 제품 설명회 등 상담의 장도 마련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이번 엑스포는 응급환자 사망률 낮추기와 자살률 낮추기를 위한 범국민 문화운동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와 함께 소방방재청이 생명존중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편의 하나로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 포럼을 만들고 각종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한 것.

    ‘생명을 구하는 일’과 관련된 정부 기관과 여러 단체가 참여한 협의체는 이번 엑스포 기간에 ‘제1회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 포럼’을 개최하고 다회 헌혈자, 민간인하트세이버, 위험을 무릅쓴 인명구조 지도자 등 사회적 의인을 발굴해 표창할 예정이다. 장기기증사업, 자살예방사업, 헌혈, 응급처치 교육, 각종 재난 현장에서의 구호활동, 심폐소생술 보급·확산을 위한 연구 세미나 등이 공동사업으로 추진된다.

    소방방재청은 심폐소생술 보급 확산을 위해 5월 2일부터 4일까지 전국심폐소생술 경연대회를 개최하며 이 기간 엑스코에서 팔공산 입구에 자리 잡은 시민안전테마파크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해 외지인들의 체험을 돕는다.

    이번 엑스포를 주관한 박종만 엑스코 사장은 “소방산업 활성화가 안전도시를 향한 과학적인 접근법이라면 체험은 안전산업을 촉진하는 국민의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대구의 대한민국 소방안전엑스포가 안전한 도시 만들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 포럼 발족한 이기환 소방방재청장

    “생명존중 네트워크 구축해 더 많은 생명 구한다”


    ‘사고도시’ 대구, 안전과 생명존중의 메카로 탈바꿈
    소방방재청은 5월 2일 대한민국 소방안전박람회 행사장에서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 포럼 발족식과 관련 토론회 등 각종 행사를 벌인다. 이 포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원불교 등 4대 종단, 대한응급의학회, 한국응급구조학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심폐소생협회, 한국응급구조사협회 등 전문가 단체, 한국생활안전연합, 생명보험 사회공헌재단 등 시민단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대한적십자사 등 공공기관 및 소방방재청 등 총 15개 기관이 참가할 예정이다. 4월 10일 이 포럼을 제안하고 실제 이끌어갈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을 만났다.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포럼이 앞으로 큰 역할을 하길 기대합니다.

    “지난해 11월 9일 소방의 날부터 포럼 발족을 줄곧 생각했습니다. 소방방재청의 임무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구하는 것이지요. 그동안 성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구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관련 기관 단체들과 공동 노력을 하자는 거죠. 이들과 함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묶어내자는 취지입니다. 예를 들어 심장질환 환자의 소생률을 높이기 위해선 심폐소생술 교육이 가장 중요한데 소방방재청에서 교육을 실시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교육생 모집과 교육장소 확보입니다. 교육생 모집과 교육장소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종교단체, 시민단체와의 연대사업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소방방재청은 국내 10대 사망원인 중 뇌혈관질환(신속한 처치 및 이송), 심장질환(심폐소생술 교육 및 신속한 처치), 교통사고(신속한 처치 및 이송), 자살(3자 통화 및 위치추적 등) 등을 119 구급대와 관련 기관의 유기적 노력으로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질환이나 사고로 보고 있다.

    -포럼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자살 시도자에 대한 위치추적 성공률을 높이고, 자살 기도 의심자에 대한 DB를 구축(U안심콜 등록)해 대처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구급상황관리센터 근무자의 대처능력도 길러야죠. 특히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심폐소생술 교육이 시급한데요. 2022년까지 10~70세 인구의 50% 이상에게 심폐소생술 교육을 실시한다는 게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전국적인 심폐소생술 경연대회를 열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도 중요한데요.

    ‘사고도시’ 대구, 안전과 생명존중의 메카로 탈바꿈

    심폐소생술을 직접 시연하는 이기환 소방방재청장

    “심정지, 중증외상, 심혈관, 뇌혈관 환자들은 쓰러지고 난 후 몇 분이 생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환자에 대한 적절한 처치와 신속한 이송체계를 구축하는 게 시급합니다. 이런 환자를 1시간 이내에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는 전국적 출동체계(HELI-EMS)를 구축할 예정이죠. 6월에 1339와 119가 통합되면 응급처치에서 병원까지 가는 체계가 훨씬 선진화되고 국민도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정부나 단체가 서로 협력해서 만들어나가면 되는데 위급한 환자를 살리는 심폐소생술은 전 국민적 협조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심장이 멎어버린 환자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빠른 119신고와 목격자에 의한 심폐소생술 실시, 신속한 응급처치(AED) 및 이송, 전문심폐소생술 실시 등 여러 과정(이른바 생명의 고리)이 모두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가장 취약한 부분이 목격자에 의한 심폐소생술입니다. 4분 내에 심폐소생술을 하고 10분 내에 병원에 이송하면 심정지된 환자 대부분이 살 수 있습니다. 쉽습니다. 깍지 끼고 가슴팍에 1초 두 번씩 30회 누르면 되죠.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심폐소생술만 잘 배우면 한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심폐소생술을 교육하는 거죠. 국민도 내 가족과 내 친구를 살린다는 생각으로 심폐소생술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실제 심장 정지 후 1분 지연될 때마다 환자의 생존율은 7~10%가량 감소하는데 최초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경우 생존율 감소치는 2.5~5%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목격자에 의한 심폐소생술 실시율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미국이 16%에 이르는 데 비해 한국은 1.4%로 부끄러운 수준. 심정지 환자의 소생률도 미국 시애틀이 8%, 일본 오사카가 12%인 데 반해 한국은 2.4%에 그쳤다. 이를 몇 년 안에 5.4%까지 올리는 게 소방방재청의 목표다. 이 청장이 심폐소생술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위해 소방방재청이 하는 일이 있다면….

    “소방방재청에서는 전국 192개 전 소방관서에 범국민심폐소생술 교육센터를 설치했습니다. 교육과정을 표준화하기 위해 대한심폐소생협회의 도움을 받아 교관요원에 대한 교육 및 인증(BLS Instructor)을 받도록 하고 있죠. 실습 위주의 교육을 위해 교육생 2명당 실습장비 1개 이상을 갖추도록 하고 교관 1인당 교육생은 20명 이하, 1회 교육시간 2시간 이상 등을 지키도록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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