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소재기술’의 세계

썩는 플라스틱, 생체 3D 프린터, 5분 충전 1000km 전기차…

  • 전승민 과학칼럼니스트

    enhanced75@gmail.com

    입력2019-04-0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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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이 지나면 썩어 없어지는 플라스틱, 살아 있는 세포를 척척 쌓아 인공장기를 만들어내는 생체 3D프린터, 단 5분만 충전하면 1000㎞를 달릴 수 있는 전기자동차. 언젠가 현실에 등장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아직은 꿈처럼 느껴지는 기술이다. 모두 핵심 기반이 되는 소재를 개발하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오토복 헬스케어는 신소재 기술로 장애인이 걸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장비(오른쪽), 물리적으로 까다로운 작업을 하는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는 장비 등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오토복 헬스케어는 신소재 기술로 장애인이 걸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장비(오른쪽), 물리적으로 까다로운 작업을 하는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는 장비 등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소재 기술은 다가올 미래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손꼽힌다. 첨단 소재를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에 승패가 갈리고 패권의 향방이 갈린다. 과학·산업계 전반에서 최근 ‘신소재 개발전쟁’이 한창인 이유는 극명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소재 기술이 각광받는 이유는 산업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유럽에선 신생 유니콘, 즉 기업 가치 10억 달러(약 1조1300억 원) 이상인 비상장 기업 탄생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스타트업 정보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의 신생 유니콘은 14개. 중국이 97개(중국 후룬연구소 발표)를 배출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신흥국가 유니콘은 정보기술(IT)에 기반을 둔 서비스업종에서 주로 등장하고 있다. 산업화가 아직 진행 중인 중국은 인구수가 많고 국토가 넓어 아이디어를 간단히 기술로 구현하기만 해도 기업이 큰 폭으로 성장하는 게 가능하다. 반면 유럽은 산업구조가 안정돼 있어 기업이 급성장할 여지가 적다. 이 상황에서 첨단 신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통한 혁신으로 돌파구를 뚫는 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 ‘오토복 헬스케어’가 한 사례다. 

    오토복 헬스케어는 1919년 창업 당시 제1차 세계대전 퇴역군인을 대상으로 의수나 의족 등 보조기를 판매했다. 그런데 설립 98년을 맞은 2017년 새롭게 유니콘이 됐다. 연간 2000만 유로(약 25억5000만 원)를 연구개발에 투자해 카본 소재 등 가볍고 튼튼한 보조기용 신소재를 개발한 덕분이다. 이 소재를 이용해 장애인이 입고 움직일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일명 아이언맨 로봇) 개발에 나서면서 산업계 ‘신흥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이런 사례는 한국 산업계에 시사점을 준다. 최근 한국에서는 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 등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업체가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국내 내수시장 여건이나 산업 기반 구조를 볼 때 중국만큼 유니콘 기업이 급증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난해 국내 신생 유니콘 수가 4개에 그친 게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인구나 국토 크기가 한국과 비슷해 우리와 자주 비교되는 영국은 지난해에만 유니콘 16개를 배출했다. 한국 역시 제조업에 근간을 둔 첨단기술 개발을 통해 산업 활로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다행히 그 연결고리를 담당할 한국만의 ‘신소재 기술’ 혁신에 정부와 과학기술계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필수 조건으로 신소재 혁명을 꼽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미래 신소재 10대 기술

    3D프린터로 만든 인공장기(왼쪽)와 삼성디스플레이가 개발한 스트레처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shutterstock, 뉴스1]

    3D프린터로 만든 인공장기(왼쪽)와 삼성디스플레이가 개발한 스트레처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shutterstock, 뉴스1]

    임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선임연구위원팀은 2월 말 ‘2019년 10대 미래유망기술’ 을 선정 발표했다. 이 작업에는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50여 개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했는데, △환경 분야 ①친환경 바이오플라스틱 기술 △바이오 분야 ②인체 감각을 대체하는 기기용 소재 ③3D 프린팅 인공장기 기술 △에너지 분야 ④불이 안 나는 고성능 고체전해질 ⑤고속 충·방전이 가능한 배터리 ⑥무겁지 않은 초경량 수송체 기술 ⑦초고온 극한 환경을 견디는 차세대 핵융합 소재 △전기전자 분야 ⑧스트레처블(늘어나는) 디스플레이 ⑨자율적으로 수명을 제어하는 화학소재 ⑩완전 직물형 웨어러블 소자 등이 선정됐다. 

    환경 분야에서 유망 기술로 꼽힌 친환경 바이오플라스틱은 ‘미세플라스틱’ 문제 해결 기대주다. 이 분야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건 셀룰로오스나노섬유(CNF)라 불리는 신소재로, 목재펄프를 처리해 만들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썩어 없어진다. 현재 플라스틱 제품 못지않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 환경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으나, 제조 공정에서 황산, 염산 등이 쓰여 개선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이오 분야에선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인체 감각을 대체하는 소재’ 개발이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이 실용화되면 의족이나 의수에 인공피부를 입혀 실제 손발과 거의 차이가 없는 촉각을 구현하는 고성능 의수, 의족 개발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피부에 반창고처럼 붙이는 스마트 기기?

    3월 8일 오전 전라북도·전주시와 효성첨단소재(주)가 탄소섬유소재 생산 설비 증설을 위한 투자 협약식을 열었다. [뉴스1]

    3월 8일 오전 전라북도·전주시와 효성첨단소재(주)가 탄소섬유소재 생산 설비 증설을 위한 투자 협약식을 열었다. [뉴스1]

    3D 프린팅 인공장기는 살아 있는 세포를 원하는 형태로 차곡차곡 쌓아 인공장기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일컫는다. 이 과정에서 세포를 지지하고 영양을 공급할 미세한 지지체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현재 각국 연구진이 젤라틴, 키토산, 콜라겐, 히알루론산 등의 생화학 물질을 동원해 서로 섞어보거나, 그 분자구조를 채용해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 신소재 개발에 성공하면 인공장기, 인공생체조직 제작이 가능해져 의료기술 분야에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안전성이 뛰어나고 효율이 높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이 관심을 끌고 있다. ‘불이 안 나는 고성능 고체전해질’ 기술이 실용화할 경우 배터리 폭발 등의 사고가 원천적으로 사라진다. 안전성이 확보된 만큼 배터리 용량도 늘릴 수 있다. 

    또 머잖아 드론, 자율주행 자동차, 항공기 등이 보편화할 것이므로, 다양한 이동체에 적용할 수 있는 가볍고 튼튼한 소재 개발 역시 유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분야에서는 탄소복합섬유의 성질을 크게 개선한 새로운 ‘열가소성복합소재(CFRTP)’ 등이 각광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 밖에 차세대 에너지원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고성능 내열소재 개발도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핵심 기술로 꼽혔다. 핵융합 기술은 원자력발전과 달리 폭3월 8일 오전 전라북도·전주시와 효성첨단소재(주)가 탄소섬유소재 생산 설비 증설을 위한 투자 협약식을 열었다.발 위험이 없고, 효율은 5배에 달해 미래 청정에너지로 각광받는다. 향후 30년 이내에 실용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발전 과정에서 섭씨 1억 도 이상의 고온이 발생한다. 진공용기 속에서 반응시키므로 소재가 실제로 섭씨 1억 도를 견딜 필요는 없지만 복사되는 열을 막으려면 최소한 섭씨 수십만 도 이상의 열을 견딜 수 있는 내열소재 개발이 필수적이다. 

    전자 분야에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폴더블(접는) 디스플레이를 넘어선 스트레처블(늘어나는) 디스플레이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소재가 개발되면 피부에 반창고처럼 붙일 수 있는 차세대 스마트 기기 제작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임현 KISTEP 선임연구위원은 “여러 분야 학자들과 미래 사회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재 기술’이 산업의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10대 유망 기술을 발표하며 신소재 분야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소재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건 KISTEP만이 아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2월 13일 ‘올해 우리 기업이 주목해야 할 5대 신산업’으로 사이버보안, 스마트 헬스케어, 에너지 신산업, 친환경 신소재, 커넥티드카 등을 선정했다. 표현상 차이가 있지만 헬스케어, 에너지 등 분야도 신소재 개발과 따로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소재 기술의 중요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국제무역연구원 측은 “친환경 소재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커지면서 자연분해가 가능한 생분해 플라스틱 및 경량 소재 관련 산업이 활성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소재 분야 기술 확보 필요성을 느낀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분야 전문 기업과 공동으로 전문 사업단을 구성한 사례도 눈에 들어온다. 전라북도와 전주시는 3월 8일 효성첨단소재와 탄소섬유소재 생산 설비 증설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탄소섬유는 철보다 4배 더 가볍고, 10배 더 강해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연료용 CNG 고압용기, 자동차용 구조재, 풍력 및 우주항공용 소재와 스포츠레저용 제품 등 철이 사용되는 모든 곳에 대체재로 활용할 수 있다.

    과학계·산업계 소재 연구 잰걸음

    최근 정부출연연구기관도 경쟁적으로 신소재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은 2017년부터 ‘극한연구’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사업단을 꾸리려고 준비하고 있다. 극한의 고열을 견딜 수 있는 특수소재, 수만 기압 이상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는 특수실험시설, 절대영도(영하 273.15도)에 가까운 초저온 냉각용 소재 등 일상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첨단 소재 개발 및 관련 과학기술 연구에 도전하는 분야다. 이근우 표준연 융합물성측정센터 책임연구원은 “현재 국내 극한연구는 해외 선진국의 1차 연구 성과를 가져와 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독자적 연구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1월 합성생물학을 통해 혁신 소재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을 설립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각 부서마다 소재 관련 연구팀을 전담 배치하고 있다. 전기차 관련 연구진을 위해 ‘EV(전기배터리) 부품소재그룹’을, 바이오 소재 연구자들을 위해서는 ‘청정화학응용소재그룹’을 별도 운영하는 식이다. 

    첨단 소재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구기관도 우리나라에 존재한다. 경남 창원에 있는 ‘재료연구소(재료연)’다. 그동안 한국기계연구원 부설이던 재료연은 올해 독립 연구기관인 ‘재료연구원’ 승격을 준비하고 있다. 재료연이 발간한 ‘소재기술백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1년 이후 소재 분야 연구개발비를 연평균 7.2% 정도씩 증액했다. 이는 전체 기술 분야 투자액(5.2%)보다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그간의 투자와 노력이 첨단산업국가로 발전하는 기반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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