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김대중과 김정일은 피눈물의 역사를 만나야 한다

통일잔치에서 소외된 통일전사 백기완의 분노

  • 육성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08-17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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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통일의 기본원칙을 밝힌 6·15선언. 이산가족의 상봉과 비전향장기수의 송환…. 한반도 전역이 통일무드에 들떠 있지만, 한평생 통일운동에 몸바쳐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피눈물을 쏟고 있다. 》
    지난 7월이었다. ‘신동아’는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관한 오피니언리더의 견해’를 취재하는 과정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에게 전화를 건 일이 있다. 당시 수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백소장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세상천지가 다 통일을 얘기하는데 누구 하나 나를 찾아와서 통일문제를 묻는 사람이 없어. 김대중 정권이 나를 악랄하게 탄압하고 있단 말이야.”

    남북 정상이 포옹하는 화해무드의 뒤안길에서 한평생 통일운동에 몸바쳐온 ‘통일전사’가 울부짖고 있었다. 장준하 선생과 함께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가 31년 만에 쓸쓸히 문을 닫을 때도 눈물을 참아냈던 그가 절규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백소장과의 인터뷰는 그 의문을 푸는 데서 시작됐다.

    “광주시장과 김대중씨는 답변하라”

    6월16일 오후 3시30분. 백소장은 광주시청에서 초청강연을 하게 돼 있었다. 주제는 ‘우리문화의 실질로 세계 암흑을 깨자’였다. 하지만 백소장은 광주로 내려가지 못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대통령이 출국하기 이틀 전 광주시청으로부터 강연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고, 내부적으로 토론을 거쳐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광주시청 문화예술과의 해명이다.



    “광주시청 문화예술과장이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여기까지 사과하러 찾아왔어. 내가 ‘정치적 편견이나 지방정서가 개입된 거냐’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고 위에서 시킨 거래. 그래서 ‘광주시장이냐 청와대냐’고 했더니 대답이 없어. 그날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는데 갑자기 위경련이 오는 거야. 소화제를 먹어도 소화가 안돼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가는데 웬 젊은이가 나보고 그래. ‘백기완씨는 통일운동전선에서 추방됐다죠? 통일운동이 어떻게 되는가 보려고 관중석에 앉았는데 관람권이 없다고 끌려나왔다면서요’ 하는 거야. 소화는 안되고 가슴은 울렁거리는데 전철을 탔더니 ‘김대중씨와 김정일 위원장이 내일 만난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어. 한심하고 울적해서 전철칸을 나와 소주 반병을 마시고 울었어. 한편으로는 통일을 말하면서 백기완이가 광주시민도 못 만나게 하는 째째한 분열주의는 누가 획책하는 음모냐 이 말이야.”

    ―왜 선생님의 강연이 취소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압력 때문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도대체 한 달 전부터 광주시청에서 나하고 광주시민이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그걸 못하게 하는 분열주의는 무슨 범죄적인 작태냐 이 말이여. 광주시장과 김대중씨는 답변을 해야 합니다. 나는 분명히 광주시민을 못 만나게 하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오.”

    ―올해의 광주는 어느 때보다도 말이 많았습니다. 특히 가라오케에서 술판을 벌인 386세대 정치인들이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광주민중항쟁은 1980년 5월18일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광주의 민중들이 끊임없이 싸워오다가 80년 5월18일에 폭발했던 겁니다. 따라서 광주민중항쟁은 지금도 계속되는 겁니다. 민중들이 갖고 있는 긴장성은 지금도 계속 폭발되는데 혹시 일부 젊은이들이 그 긴장을 해체하는 작태를 했다면 이것은 마땅히 역사의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반성도 해야 할 겁니다.”

    “나는 소외된 게 아니라 탄압받고 있어”

    세상이 모두 통일을 얘기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났고 비전향 장기수가 송환된다.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도 남북관계에 대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어디에도 백기완 소장의 목소리는 없다. 안보논리가 판을 치던 군사정권 때부터 목숨을 걸고 통일운동을 해온 백소장이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다. 백소장 자신은 ‘소외당하는 것이 아니라 탄압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분명 그를 외면하고 있다.

    ―최근 신문과 방송에서 통일에 관해 얘기하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그분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 통일문제연구소가 문을 연 지 올해로 꼭 33년이 됐소. 그런데 그동안 우리 연구소가 한 일이 딱 하나밖에 없어. ‘통일’이라는 ‘통’자를 일반화시키는데 기여했어. 박정희 때는 통일문제 들고나오면 그냥 잡아갔어. ‘이 자식아 반공, 안보지 무슨 통일이냐. 너 빨갱이 아니냐’며 무조건 때리는 거야. 그런 탄압을 받으면서도 우리 통일문제연구소가 ‘통일’이라는 말을 일반화시키는데 이바지해왔어. 그런데 말이야 이 얘기는 꼭 좀 써줘.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 나하고 친한 사람들 많은데 말야. 그 사람들 내 책 한 권도 안팔아줬어. 날마다 신문과 방송에 나와서 통일을 얘기하는 정치인들, 교수들, 통일전문가들 단 한 권도 안샀어. 노동자, 농민, 철거민들이 몇백권씩 팔아줘서 통일문제연구소를 끌고 나가는 거야.”

    “김대통령의 통일노선은 이율배반”

    김대중 대통령과 백기완 소장. 70년대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어찌 보면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도 김대통령이 백기완 소장과 인연이 깊다. 하지만 백소장은 최근 국민의 정부를 향해 강도높은 비판을 퍼붓고 있다. 87년과 92년 대통령선거 때의 앙금 때문일까. 그보다는 최근의 변화된 환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지난 7월17일 오후에 벌어진 ‘사건’도 김대통령에 대한 백소장의 분노를 폭발시킨 계기가 됐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문화특강을 하고 오후 1시쯤 청와대 앞길로 해서 집으로 가던 중이야. 난데없이 백차가 가로막고 길 옆으로 서라는 거야. ‘오늘이 제헌절인데 왜 청와대 앞에서 길을 막느냐’고 했더니 ‘백기완씨 맞죠? 조사할 게 있습니다’ 라고 해. 그래서 ‘이거 누가 시켰느냐? 청와대 김대중이 나오라고 해’ 라고 했더니 경찰들이 몰려와. 제헌절 날에 내가 누군지 뻔히 알면서 나를 조사한다는 거야. 지금도 그때의 수모가 풀리지 않아. 50년 동안 통일운동한 나를 백주대낮에, 그것도 제헌절날 청와대 앞에서 신분조사하는 이유는 뭐야. 청와대 김대중씨는 대답을 하라 이 말이야. 뒷골목에서 이렇게 억울하게 탄압을 받고 있는 시민의 목소리를 누가 대변해. ‘동아일보’가 대변해? 아니면 내가 주주로 있는 ‘한겨레’가 대변해? 왜 이런 얘기를 신문에 한줄도 안내는 거야? 이런 인권탄압을….”

    ―일부에서는 김대통령이 통일논의를 독점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김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텔레비전에 그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통일을 떠드는데 신문 방송에서 나한테 통일을 묻는 사람이 없어. 나는 언론이 어용화돼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 김대중 정권의 언론통제고 언론탄압이라고 생각해. 나는 이 시점에 김대중씨에게 꼭 요구하고 싶은 게 있어. 더 이상 민중이 주도하는 통일운동을 탄압하지 말고 언론통제하지 말고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다루는 민족적 관점으로 돌아오라고 말해주고 싶어.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시절부터 통일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다가 용공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김대통령의 통일관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나는 그분이 통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잘 몰라. 나는 김대통령이 통일문제에 앞장서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이율배반은 꼭 지적하고 싶어. 겉으로는 평양에 가서 통일을 말하지만, 남한 사회를 완전히 미국 자본에 넘겨주었잖아. 통일이 돼도 미군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말하잖아. 통일을 우리 민족이 주도할 것이냐, 아니면 미국이 주도할 것이냐. 이 문제를 가파르게 대립시켜 놓은 사람이 바로 김대중씨라고 생각해. 심정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김대중씨는 미국이 주도하는 통일로 기울지 않을 수 없게 돼 있어. 어떻게 냉전구조를 고착화시키는 미군을 그대로 두고 통일을 할 수 있겠어. 그래서 김대중씨는 입으로 통일을 말해도 실제로는 이율배반에 빠져 있다는 거야.”

    ―최근에 보도된 남북정상회담의 비화를 보면, 김정일 위원장도 주한미군의 실체를 인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건 확실히 모르겠어. 김정일씨를 만날 수 있다면 한번 물어보려고 해. 지금 우리나라 신문 방송에서 떠드는 것만 같고는 믿기가 힘들어. 미국과 일본 언론도 믿을 수가 없어. 내가 추측하건대 미국이 북쪽에 대해서 지나치게 경제통제를 하고 있으니까 북쪽도 숨을 쉬기가 힘들잖아. 경제제재를 풀기 위한 전략, 전술이 요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은 해본 일이 있어.”

    ―이산가족이 고향을 방문하고 비전향 장기수가 송환되는 것은 일보 전진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는 거 잘하는 거야. 김대중씨, 김정일씨 정말 잘하는 거라니까. 이산가족만이 이산가족의 아픔을 알거든. 장기수 그 양반들 북쪽으로 보내는 것도 잘하는 거야. 나는 김대중씨가 이북으로 갈 때 같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야. 자기 뜻으로 사는 사람이 무슨 죄인이야.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범죄자로 모는 곳은 남쪽밖에 없어. 하지만 통일을 자꾸만 추상적 민족주의나 인도주의적 경협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보다는 우리 민족이 어떤 통일을 이룰 것이냐에 대한 합의가 시급해.”

    백기완 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통일문제 전문가다. ‘통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시기에 통일문제연구소를 차렸다. 5공 때는 모진 고문에 시달렸고 6공 때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남북민중정치협상을 제안했다. 또한 92년 민중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서 밝힌 통일부문 공약에는 ‘민중주도 연방제’가 1순위로 명시돼 있다. 그렇기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감회는 남달랐을 듯하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포옹하는 장면을 지켜보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너무나 감격해서 울었어. 좌우지간 우리 민족끼리 55년간 싸우다가 실권자끼리 만났으니 얼마나 감격스런 일이야. 신문에서는 김대통령이 예상 밖의 환대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야. 우리 민족 마음보가 원래 그런 거야. 텔레비전을 보면서 한참을 울다보니까 영화의 겹치기처럼 우리 어머니하고 나하고 55년 만에 껴안는 것처럼 착각을 했어. 그래서 꺼이꺼이 울었어. 나는 두 사람이 정말로 민족적인 원칙을 가지고 만났으면 해. 그냥 만난 게 아니라, 분단의 역사, 피눈물의 역사를 만나야 해. 나는 두 분이 진짜 민족성원의 한 사람으로 분단을 깨부수기 위해 싸워온 통일운동의 역사를 만나시라고 빌었어.”

    “미군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

    ―선생님께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일허무주의’로 규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의 독점자본이 온 한반도를 장악하는 것도 통일이야?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건 한반도에 대한 전면적인 지배와 침략이지 결코 통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썩어문드러진 재벌이 금강산 선녀탕이나 백두산 천지에 별장을 짓는 것도 통일이야?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것은 부패를 한반도에 강요하는 것이지 분단으로부터 고통받는 민중을 해방시키는 통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 통일은 우리 민족을 위한 통일이 아니기에 ‘통일허무주의’라는 거야.”

    ―최근엔 미국의 한반도 지배 양식도 변하고 있다는 주장이 우세합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경우 미국도 당황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의 분단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습니까. 분단구조를 누가 장악하고 있어? 미국이잖아. 전세계에서 남의 나라 군대가 50년 넘도록 총칼을 들고 와 있는 예가 없어. 그런 미군을 그대로 놓고 통일 어쩌구 하는 건 미국의 힘이 주도하는 통일이지 우리 민족의 통일이 아니야. 경제적으로 어떻게 돼 있어? 다 팔아 동이 날 정도로 미국의 독점자본이 거머쥐지 않았어? 남한경제는 사실상 미국금융제국주의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이렇게 볼 때 앞으로 미국의 금융자본이 한반도를 장악하는 음모도 통일이라는 명분으로 다가오게 돼 있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외세를 완전히 배제한 통일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외세를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보십니까.

    “외세는 존재하는 거야. 다만 외세를 배척할 대상으로 보느냐, 외세의 상호모순을 이용할 대상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돼. 한반도 분단의 물리적 장치가 바로 외세야. 그러니 외세를 몰아내지 않고는 자주적인 통일이 불가능해. 그런데 말야. 외세는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상호모순으로 존재해. 그래서 외세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도 봐야 한다는 거야.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정치행태의 문제일 뿐이고, 민족적 대원칙에서는 반드시 몰아내야만 해.”

    “역사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어”

    백소장의 지론인 ‘민중주도연방제통일론’이 이어졌다. 외세를 배격하고 민중 중심의 통일을 일구어내자는 주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백소장은 그 자리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없다. 평생을 함께 싸워왔던 문익환 목사와 계훈제 선생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재야의 젊은 일꾼들도 하나둘 정치권으로 편입됐다. 요즘엔 백기완 소장이 누군지조차 모르는 대학생들이 부지기수라는 말도 엄연한 현실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그것을 대세로 인정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세계적인 자본의 지배에 대해서 아무런 자각도 없이 그냥 후퇴하게 된다면 그건 잘못된 세계사를 만드는 공범자가 되는 거야. 자기 알기성, 주체성을 포기하는 거야. 눈앞의 압도적인 현상에 매몰돼선 안돼. 역사라는 건 다그쳐오는 현상을 깨는 거야.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어. 일본이 하와이를 폭격하고 남양군도를 차지했는데 선생님이 그러는 거야. ‘일본은 압도적으로 강하다. 그러니 한민족은 독립운동을 해봐야 소용없다. 일본을 도와서 동양이 서양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일본이 망했잖아. 지금 미국의 금융제국주의가 전세계를 휩쓰는 것 같아도 그건 일시적인 현상이야.”

    ―하지만 민중운동 진영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학생운동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축소됐습니다.

    “젊은이들이 뭐 출세 좀 하겠다고 민중운동 진영에서 이탈해서 현실 정치권으로 진출하고 관료권으로도 들어갔는데, 나는 그게 젊은이의 개인적 좌절이라고 생각해.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소시민으로 편입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은 중대한 사태라고 생각하지 않아. 역사는 결코 좌절하지 않아. 인류의 역사를 보면 돈이 지배하는 세상은 안 되겠다는 흐름이 주류를 이루어왔거든. 때로는 바위에 부딪혀 깨지기도 하지만, 깨졌다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땅속으로 스며들어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고 바다로 흘러가고 있잖아. 인류의 보편적인 이념이 승리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게 돼 있어.”

    “젊은이여 올바른 꿈을 가져라”

    청년세대에 대한 백기완 소장의 열정은 남다르다. 청년이 살아야 민족이 통일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온 그다. 90년대 중반 민족문화대학 설립운동을 벌인 것이나 최근 계간잡지 ‘노나매기’를 창간한 것도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져드는 젊은이들을 끌어안기 위해서였다. 그런 백소장이 지난 5월 난생 처음으로 대학교수 자격으로 강단에 섰다. 뭔가 신선한 충격이 있었을 것도 같다.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습니까.

    “한마디로 ‘개죽’을 보는 느낌이오. ‘개죽’은 나뭇잎인데 가랑잎하고는 다릅니다. 가랑잎은 여름 한때의 짙푸른 자기 역사와 자기 추억이 있거든. 그런데 ‘개죽’은 얼핏 보기에 가랑잎과 비슷하지만 짙푸르러지기도 전에 메말라서 떨어져서는 실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다가 썩은 물살에 거품처럼 흘러가는 거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나는 꼭 ‘개죽’이 떠오릅니다.

    ―희망이 없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이 땅의 청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승리한 게 아냐. 성공한 게 아니라구. 성취한 것 뿐이라구. 감옥엘 가봤어? 감옥에 가면 강도질하고 도둑질한 놈도 일시적으로 성취한 놈들이라구. 그러나 그 사람들이 승리한 건 아니잖아.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이 잘못된 역사를 갖고 마치 독점자본이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고 경제적으로 뿌리를 내리려고 다투잖아. 그렇게 출세하려고 하잖아. 자기만 잘살려고 하잖아. 썩은 물살에 그저 흘러가는 ‘개죽’이잖아. 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어떤 것이 역사냐 하는 공부를 다시 하라 그거야.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극복하기 위한 양심의 역사, 피눈물의 역사만이 진짜 역사라는 것을 깨치길 바래. 두 번째로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없어. 욕망만 있지 꿈이 없잖아. 나도 잘살고 너도 잘사는 올바른 꿈을 가져라 이 말이야. 나는 감히 그 꿈의 실체가 ‘노나매기 세상’이라 말하고 싶어.”

    ‘노나매기’는 ‘같이 힘을 합쳐 잘살자’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로 백소장이 창간한 계간지의 이름이다. 백소장이 ‘노나매기’ 발간을 결심한 데는 쓰라린 사연이 묻어 있다. 98년 통일문제연구소가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은 뒤 백소장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강사료로 받은 돈을 지하철에서 소매치기 당했는데, 며칠 뒤에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돈의 일부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백소장은 ‘소매치기도 나를 알아보고 돈을 돌려주는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며 책을 쓰기 시작했고, 그 책을 판 돈으로 ‘노나매기’를 발간하게 됐다.

    ―노나매기 세상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세상입니다.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야. 지구의 인구가 60억이 넘는데 그중에서 10억은 굶어죽고 있잖어. 20억은 배고파서 병들고 있잖어. 60억 인구 중에 뚝 잘라 절반이 병들고 있는 이유가 뭐야? 자본주의의 모순이 가져온 잘못된 사태거든. 미국이나 구라파는 잘살되 올바로 잘살고 있지 못하잖어? 아프리카의 노동자와 스위스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300 대 1이야. 미국과 구라파의 젊은이들이 젊음을 만끽할 때 아프리카와 아시아 인구의 30억이 굶어죽고 있잖어? 이게 잘못된 세상 아니야?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명제를 들고 나와야 된다 이거야.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이여, 노나매기 공부 좀 하시라는 거야.”

    ―노나매기주의는 선생님께서 오래전부터 말씀해오신 ‘통일적 인간형’과 어떻게 다른가요.

    “노나매기 인간형이 바로 통일적 인간형이야. 그럼 어떤 게 통일적 인간형이냐. 몽양 여운형 선생이 스물한 살 때 독립운동하러 가시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노비문서를 불지르고 땅을 노비들에게 다 나누어줬어. 돌아가실 때도 땅 한평 없이 가셨어. 49년도에 암살당한 백범선생도 뭘 남겼어? 입던 두루마기하고 신발밖에 남긴 게 없어. 장준하 선생도 땅 한평, 집 한칸 안남겼어. 통일이라는 게 뭐야. 세계의 분열과 분단을 전제로 해서 한반도의 분단을 해결하는 거잖아. 양심이 분열되면 안되는 거야. 사회적 분열을 통일하는 몸부림을 통해서 내적분열을 통일하는 인간상, 나는 그런 사람을 통일꾼, 통일적 인간형이라고 생각해.”

    잘 알려진 것처럼 백기완 소장의 고향은 황해도 구월산 밑이다. 해방 직후 축구화를 사주겠다는 아버지를 따라 맨발로 서울에 온 뒤 지금껏 한번도 고향을 찾지 못했다. 1946년 겨울과 1947년 봄 38선을 넘어 북으로 가려다 미군의 제지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 뒤 6·25전쟁이 터졌고, 백소장은 평생을 두고 있지 못할 어머니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6·25때 국군이 북쪽으로 밀고 올라갔어. 국군이 우리 어머니더러 ‘왜 태극기를 달지 않느냐’고 했더니 우리 어머니가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나는 남쪽에 가 있는 내 남편하고 내 아들 딸을 기다리지 군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군인들이 ‘이놈의 할망구 죽을려고 환장했느냐’며 총부리를 들이대니까 우리 어머니는 3·1운동때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었던 피묻은 태극기를 걸었어. 그런데 이번엔 인민군이 들어와서 태극기를 당장 걷으라는 거야. 언제 국군이 올지도 모르는데 그냥 걷을 수도 없잖아.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피묻은 태극기의 모가지를 꺾었다는 거야. 국군이 들어와 ‘왜 태극기를 꺾었냐’고 하니까 우리 어머니는 ‘바람에 날려 꺾인 걸 난들 어떡하냐”고 말했다는 거야. 우리 어머니가 그 어려운 전쟁을 그렇게 이겨냈어.”

    ―지난해 서울방송에서 백선생님의 방북을 추진해 성사직전까지 간 일이 있습니다. 고향방문이 막판에 취소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방송사에서 가자고 해서 좋다고 했지. 그런데 어디를 통해서 가느냐고 물으니까 북경으로 들어간다는 거야. 나는 53년부터 내 나라 내 땅을 우리 마음대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울부짖으면서 싸워온 사람이야. 그런데 북경을 통해서 간다고 하면 50년 동안의 내 통일운동 노선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잖아. 만일 내가 북경으로 해서 고향에 가면 우리 어머니가 회초리로 때리며 꾸짖으실 거야. ‘너 이놈 외세 앞잡이를 몰아내고 와야지, 왜 너 혼자만 오느냐’고 하시면서 도로 내려보내실 거야. 어머니께 불효를 저지르면서 갈 수는 없잖아. 이번에 이산가족 방북신청한 거 보니까 1차로 낸 사람만 8만명이 넘는대. 그 사람들이 다 갔다 오려면 백년도 더 걸릴 거야. 나는 살아 생전에 고향에 가기는 틀린 것 같아.”

    “밤을 지낸 숲은 한방울 이슬로 남는다”

    ―선생님의 원칙에 공감하면서도 북경을 통해서라도 가셨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 땅으로 가는데 나는 왜 못가? 돈 없고 권력 없다고 중국을 통해서 가라는 거야? 지금 누구의 의사를 대변하는 거야? 어떤 돈 많은 재벌은 소떼 천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갔잖아. 나도 소 한 마리 살 돈은 있어. 그런데 나는 왜 못가? 돈 많은 놈들, 권력 있는 놈들은 통일을 반대해왔잖아? 이 새끼들은 미국놈 앞잡이 짓밖에 안했잖어? 돈 많은 놈들 오래 살면서 금강산 다녀오라 그래. 사진 찍고 영광 다 차지하라 그래. 난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뭐.”

    89년의 일이다. 백기완 소장과 문익환 목사는 남북민중정치협상을 제안한 뒤 방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익환 목사가 혼자서 밀입북해 공안정국이 조성된 일이 있다. 당시 북한을 다녀온 문목사는 백소장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바로 백소장의 어머니가 벌써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였다. 하지만 백소장은 문목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올해로 102살이 되는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계시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객관적 현실을 주관적으로 거부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아들 딸이 보고 싶고 남편이 보고 싶어서 온몸이 그리움으로 사무쳐 있는 그 할머니가 눈을 감겠어? 나는 어머니가 지금 눈사람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해. 눈보라치는 언덕에 우리를 기다리다 꽁꽁 얼어붙어 선 채로 눈사람이 돼서 혹시 아들 딸이 길을 잃을까봐 그 눈빛으로 불을 밝혀주시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잖아. 나도 평범하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람의 하나야. 그런 내가 왜 어머니한테 달려가고 싶지 않겠어? 가능하다면 간첩이 돼서라도 어머니를 보고 싶어. 누구 앞잡이가 돼서라도 어머니를 보고 싶은 심정이야. 그러나 내가 그런 식으로 어머니한테 달려가면 우리 어머니가 내 종아리를 때린다니까. 난 못갈 거야 아마. 못가는 거지 뭐. 밤을 지샌 숲은 한방울 이슬로 남는다고. 이슬로만 가는 거지 뭐.”

    눈물이 주름진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20대엔 주먹 하나로 명동의 뒷골목을 휘어잡았고 30대 이후엔 독재정권과 치열하게 싸워온 그였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한 사람의 자식일 뿐이었다. 백소장은 눈물을 닦으며 문득 92년 대통령선거 때의 유세장면을 회고했다. 추운 겨울날 보라매공원에서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건설하자고 울부짖던 당시의 음성 그대로였다. 하지만 연설이 끝난 뒤에 흘러나온 독백은 그때와 달랐다.

    “정말 이민가고 싶은 심정이야”

    “다들 내 얘기가 옳다고는 했지만, 표는 안나왔어. 경상도는 경상도대로 가고 전라도는 전라도대로 갔어. 노동자, 농민, 진보적 학생까지 나한테 표를 안줬잖아. 오늘 내가 한 얘기 기사로 나가봐야 이젠 읽을 놈도 없어. 읽어도 감명도 안받고… 이게 오늘의 현상이야. 백기완이가 일생을 통일운동했는데 백주대낮에 신분조사를 받고 있잖아. 내가 그렇게 몸부림치고 다녀도 돈 없고 권력 없다고 우습게 보잖아. 전철을 타도 열 번 중 두 번이나 자리를 양보할까? 엊그저께도 전철을 탔는데 아무도 일어서지 않아. 나는 전두환이한테 매맞고 열네 번을 입원했어. 지금 권력쥔 놈들 누가 전두환이한테 매맞았어. 다 살살 빌었잖아. 전두환, 노태우는 청와대 불러다가 통일문제를 자문한다고 좋은 음식 먹이면서 나는 신분증 조사하잖아. 나 정말 이민가고 싶어. 민중이 나를 기억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보고 있는 거야.”

    ―몸이 많이 수척해지셨습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당뇨가 있어서 밥을 못먹고 있어. 요새는 3분지 1공기씩 먹었는데 오늘 아침엔 그것도 다 못비웠어. 전두환이한테 고문당할 때 그놈들이 ‘넌 이제 오줌도 못싼다’고 했어. 80킬로나 되던 몸이 43킬로까지 떨어졌거든. 내가 축구를 좋아해서 장딴지가 이만치 굵었는데 얼마나 고문을 당했는지 지금도 살이 안붙어. 하지만 전두환이 같은 거는 지금도 뒷골목에서 만나면 나한테 한방이면 죽어. 나는 때리는 요령이 있거든. 그냥 한 대 때리면 전두환이는 죽어.”

    “통일 이야기꾼이 소원이요”

    백소장은 감옥에서 고문당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덮쳐올 때 지었다는 시가 바로 이다. 백소장은 목청을 높여 을 낭송했다.

    “삶의 여정이 많이 남아있는 젊은이들은 나 같은 늙은이를 참고하지 말았으면 해. 그냥 눈깔을 밝히고 거짓말하면서 이를 악물고 물어뜯어야만, 끼니라도 때울 판국인데. 내가 이러구 앉았으니…”

    ―백범 김구 선생은 통일된 조국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조국이 통일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옛날에 장준하 선생이 살아계실 때였어. 자기는 통일 되면 백두산 천지 밑에 주막집을 만들어서 술장사를 하고 싶다는 거야. 독립운동 하다가 병든 사람들, 출세도 못한 사람들에게 공짜술을 따라주고 싶다는 거야. 그러다 죽고 싶다고 했어. 나는 통일 되면 이야기꾼이 소원이요.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다가 나를 좋아하는 마을이 있으면 하룻밤 묵어가고, 나를 배척하는 마을이면 하늘을 지붕삼아 풀섶에서 자고, 혹시 동네 꼬마들이 몰려들면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외세의 앞잡이를 몰아내기 위해 이렇게 싸웠다’는 것을 전해주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

    인터뷰를 마치고 통일문제 연구소를 나서는데 대문에 걸린 이라는 시 한 편이 눈길을 끌었다.

    ‘노상 성화대는 물살에 잠겼다 나오면 쉬어가는 건 이름모를 새들일 뿐. 또다시 깨지면서도 그냥 그렇게 바다를 살구니.’

    지난 1월 통일문제연구소의 문이 다시 열렸을 때 그 자리엔 라는 시가 있었다. ‘쓰러져 죽더라도 한 발자욱만 더 밀어보자’고 외쳐대던 백소장이었다. 그런 백소장이 지금은 을 노래하고 있다.

    통일문제연구소는 지금

    “돈을 번다는 게 혁명보다도 힘들어”

    백기완 소장은 요즘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한다. 위경련에 당뇨병 증세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밥도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조금씩 먹는다. 술잔을 받아도 냄새만 맡고 마시질 못한다. 고기도 삼겹살 열 점 이상을 넘기지 못한다.

    백소장이 요즘 꼼꼼히 챙기는 일은 구속된 노동자들을 면회하는 것이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통일문제연구소를 찾던 날도 백소장은 의료보험 노동자들을 면회했다. 이날 대학로에서는 농민대회가 열렸는데, 집회에 참석했던 농민과 철거민이 백소장을 찾아왔다. 백소장은 예전처럼 그들을 정겹게 맞아주었다. “막걸리 한잔씩 하고 가라우. 농민은 술을 한잔씩 마셔야 싸움을 하지.”

    백소장은 지난 봄부터 계간지 ‘노나매기’를 발행하고 있다. 서점에 유통시킬 돈이 없어서 직접 전화를 받는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가 않다. 240만원을 들여 신문광고를 냈는데도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가끔씩 들르는 농민, 철거민, 노점상인들이 팔아주겠다며 서너 권씩 들고갈 뿐이다. 어쩌다 걸려온 전화를 붙잡고 주소를 받아적는 백기완 소장이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번다는 건 혁명보다도 힘들어.”

    (도서출판 노나매기 762―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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